광주 무등산의 성자 최흥종 목사

                                                   이덕주(감신대 교수/ 한국교회사)


“한국 교회에 성자는 없는가?”

2천년이 넘는 서양 기독교 역사에 비하면 1백년을 갓 넘은 한국 교회사는 비록 짧지만 서양 ‘성자’ 못지않은 위대한 신앙인들을 배출하였다. 한국인 특유의 심오한 종교적 영성에서 복음을 받아 들였고 선교 이후 한국 교회가 당한 박해와 시련,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견디어낸 신앙의 산물이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문화와 철학이 다른 서양 위인을 모방하기보다는 체질과 생각에서 우리와 같은 한국의 신앙 위인을 본받는 것이 훨씬 쉽다. 그런 의미에서 전라도 광주에서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성자’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 최흥종(崔興琮, 1880-1966) 목사 이야기다.  오방선생 기념사업위원회, 『영원한 자유인: 오방 최흥종 목사의 생애』, 광주YMCA, 1976; 김수진, “사회구원을 외쳤던 최흥종 목사”, 『호남선교 100년과 그 사역자들』, 고려글방, 1992, 269-382쪽; 차종순, “최흥종목사”, 『호남교회사연구』, 제 2집, 호남교회사연구소, 1998.


  ‘선한 사마리아인’ 선교사와 만남

광주 출신 최초 교인, 최초 장로, 최초 목사 칭호를 받고 있는 최흥종은 광주 불로동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깡패’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난봉이었지만 1904년 겨울, 남장로회 선교사 벨(E. Bell) 가족이 처음으로 광주 양림동에 들어왔을 때 친구 최재익과 함께 선교사 집에 들락거리다가 광주 첫 교인이 되었다. 교인이 된 후, 한 때 광주 경무청 순검(巡檢)이 되었는데 화순에서 체포된 의병 12명을 일본군 몰래 풀어 주었고 감옥에 갇힌 의병들을 몰래 놓아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국채보상운동 전남지회 간판을 떼어오라”는 경무청의 지시를 받고는 순검 옷을 벗었다. 그 후 광주농공은행에 들어갔으나 일년도 못되어 그만두었다.
그러던 중 1909년 4월, 광주 선교사 오웬(C.C. Owen)이 지방 전도를 나갔다가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목포에 있던 의료 선교사 포사이드(W.H. Forsythe)가 연락을 받고 영산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올라왔다. 최흥종이 나주 영산포 나루까지 그를 맞으러 나갔다. 영산포에 내린 포사이드는 말을 타고 광주로 들어오던 도중, 한센병(나병/문둥병)에 걸려 집에서 쫓겨난 지 10년이 넘은 여자 걸인을 만났다. 포사이드는 자기가 타고 가던 말에 환자를 태우고 자신은 걸어서 광주까지 갔다. 이 사건으로 해서 포사이드는 ‘선한 사마리아인’(눅 10:34)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Mrs. C.C. Owen, "The Leper and the Good Samaritan", The Missionary, Aug., 1909, 408-409쪽.

광주에 도착한 포사이드는 여인을 선교부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러자 다른 환자들이 난리를 쳐서 벽돌 굽던 가마굴로 여인을 옮겼다. 몸에서 냄새가 나고 손과 발이 부르터 진물이 흐르는 여인을 만지는 이는 포사이드뿐이었다. 옮기다가 여인이 지팡이를 놓쳤다. 그걸 주우려는 여인을 두 손으로 안고 있던 포사이드는 옆에 서 있던 최흥종에게 소리쳤다.

“미스터 최! 지팡이를 집어 주시오. 어서.”

최흥종은 주저했다. 결국 포사이드의 재촉에도 그날 그는 지팡이를 잡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최흥종은 고민에 빠졌다.

“서양 선교사는 인종이 다른 문둥병자를 자기 자식처럼 만지는데 왜 나는 지팡이도 잡지 못했는가? 용감하다는 나도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저 사람의 용기는 어디서 나왔는가?”  

고민은 결심으로 바뀌었다.

“그래, 저것이 예수교의 힘이다. 예수를 믿으려면 저 의사처럼 믿어야 할 것이다.”

세례는 받았지만 ‘껍데기 교인’ 수준이었던 그가 ‘진짜 교인’이 되기로 결심하였다.

나환자들의 친구

포사이드는 오웬 장례식을 보고 목포로 돌아갔고 여인도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그러나 “양림동 선교사가 문둥병자를 데려다 치료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광주 인근의 한센병 환자들이 양림동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급한대로 양림동에 세칸짜리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해 남자 환자 일곱을 수용했고 1912년 무등산 자락 봉선동 골짜기에 정식으로 요양원 건물을 마련하였다. 이것이 한국 최초 한센병 전문병원인 ‘광주나병원’의 출발이다.  R.M. Wilson, "Report on Leper Work", The Korea Mission Field, Jun., 1914, 164-165쪽; R.M. Wilson, "Industrial Work in the Kwangju Leper Colony", The Korea Mission Field, Sep., 1921, 131-132쪽; R.M. Wilson, "Kwangju Leper Colony", The Korea Mission Field, Sep., 1924, 125-126쪽.

이렇게 해서 설립된 광주나병원 초기 역사의 주역은 최흥종이었다. 포사이드와의 숙명적 만남을 통해 가슴이 뜨거운 교인이 된 최흥종은 1912년 광주 북문안교회(현 광주제일교회) 초대 장로로 장립되었고 1917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 시작된 북문밖교회(현 광주중앙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목회자가 되었지만 광주나병원 일에 더욱 적극적이었다. 광주 사람들은 한센병 환자를 업고 광주천을 건너는 그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광주나병원을 방문했던 <기독신보> 기자가, “병원을 주관하는 의사는 알 엠 윌손씨요, 조선 형제로 이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시키는 이는 최장로 흥종씨라”  홍병선, “광주 나병원 참관기”, <기독신보>, 1916.1.26.
고 쓸 정도였다.
최흥종은 민족의식 또한 깊었다. 3․1운동 때 북문안 교인들과 광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고 자신은 고종 국장(國葬)에 참석키 위해 상경해서 3월 5일 서울 시내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시위에 참가, 인력거를 타고 대한문과 남대문 사이를 오가면서 ‘조선독립’이라 쓴 깃발을 휘두르며 만세를 불렀다. 그는 남대문 학생시위 주동자로 체포되어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 6월 13일 출옥한 후 광주에 내려와 광주청년회와 광주기독교청년회(YMCA)를 창설하였으며 1921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북문밖교회 초대 당회장이 되었다. 그러나 교회 목회는 오래 하지 못하고 시베리아, 제주도 선교사로 활약하다가 1926년 광주로 돌아온 후에는 교회보다는 기독교청년회와 사회구제사업에 전념하였다.
그가 광주를 비운 사이, 나병원은 “광주를 문둥이 소굴로 만들 작정이냐?”는 광주 주민들의 항의로 여수반도 끝자락 율촌으로 옮겨 갔다. 오늘의 여수 애양원이다. 애양원 환자들은 치료를 받은 후에도 생활 터전이 없어 극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광주로 최흥종 목사를 찾아 와 도와 달라고 했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윤치호․조병옥․송진우․안재홍․김병로․이 인 등 ‘저명 인사’들과 ‘조선나환자근절협회’를 만들어 총독부에 지원을 요청하였지만 당국은 무관심했다. 이에 최흥종은 방법을 바꾸어 환자를 불러 모아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처음 광주를 출발할 때 백 오십 명 정도였던 것이 소문을 듣고 전국 환자들이 따라 나서 열하루 만에 서울에 도착할 때는 사백 명에 이르렀다. 이들 앞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도 피해 갔다. “모세가 홍해 바다 가르듯” 길이 절로 열렸다. 환자들과 함께 총독부 안마당까지 들어간 최흥종 목사는 우가끼 총독과 면담하여 소록도 갱생원을 대폭 확장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1932년의 ‘나환자 행진’이다.

  무소유의 삶

총독과 담판을 하고 내려오니 이번에는 양동 장터에 있던 빈민촌 움막들이 철거되어 2백여 명되는 걸인들이 거리로 쫓겨나 있었다. 최흥종은 즉시 경양 방죽(현 광주시청 자리)에 움막을 만들어 걸인들을 수용하고 광주중앙교회(북문밖교회) 교인들과 기독교청년회 회원들을 시켜 하루 한 끼씩 먹이기 시작했다. ‘최목사네 잔치’ 소문이 퍼지면서 멀리 화순, 담양에서도 걸인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광주 사람들이 “광주를 거렁뱅이 소굴로 만들 작정이냐?”며 또 들고일어났다. 노회나 광주 교인들 중에도 최 목사의 ‘걸인 목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가족도 더 이상 그에게 ‘가장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스스로 떠나듯 가족과 제도권 교회에서 추방당했다.
1935년 이후 최흥종의 삶은 ‘기행’(奇行)의 연속이었다. 서울 세브란스병원 의사인 친구 오긍선 박사를 찾아가 거세 수술을 받고 내려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사망통지서>를 주위 사람들에게 발송했다.

“1935년 3월 17일 이후, 나 오방 최흥종은 죽은 사람임을 알리는 바입니다. 인간 최흥종은 이미 죽은 사람이므로 차후에 거리에서 나를 만나거든 아는 체를 말아 주시기 바라오.”

‘육적 인간’의 죽음을 선포하고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 이 무렵부터 오방(五放)이란 호를 사용하였는데 1) 가사(家事)로부터 방만(放漫), 2) 사회로부터 방일(放逸), 3) 경제로부터 방종(放縱), 4) 정치로부터 방기(放棄), 5) 종교로부터 방랑(放浪)한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였다. 집을 나온 그는 ‘유산각’(遊山閣)이라 하여, 한 평 정도 되는 널판지에 다리를 붙이고 사방을 문짝으로 막고 지붕을 해 덮어 구약의 법궤 같기도 하고 조선의 가마 같기도 한 수레를 만들어 끌고 다니며 거지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일제말기엔 무등산 증심사 골짜기에 들어가 도인 화가 의재(毅齋) 허백련과 친구가 되어 함께 지냈다. 해방직후 “혼란스런 광주를 조용하게 만들 인물은 최흥종밖에 없다”는 광주 사람들에게 끌려 내려가 전남 건국준비위원회위원장, 미군정 도정고문 등을 잠시 맡았던 적이 있었지만 관심은 여전히 걸인과 환자들에 있었다. 나주 삼포에 음성 나환자 자활촌 호혜원(互惠園)을, 증심사 계곡 월롱촌에 빈민 자활촌 ‘삼애원’(三愛園)을 만들었다.
한센병과 마찬가지로 결핵도 사회의 기피대상이었다. 광주에서 결핵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곳은 광주 기독병원 밖에 없었는데 그 곳에서도 치료 가망이 없어 퇴원당한 환자들이 최흥종 목사를 찾아왔다. 최흥종 목사는 이들에게 무등산 원효사 골짜기에 무등원(無等園), 지산유원지 골짜기에 송등원(松燈園)을 마련해 주었다. 말이 요양소지 움막 같은 토담집이었다. 최흥종 자신도 무등원 안에 ‘복음당’(福音堂)이란 토담집을 짓고 들어가 함께 살면서 결핵환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그곳은 본래 광주의 유명한 절, 원효사(元曉寺) 경내였는데 최흥종이란 이름이 지닌 위력 때문에 승려들도 교회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었다. 이로써 한국에서 유일한 ‘절 안 교회’가 서게 되었다.

자식도 몰라 본 아버지

이런 식으로 최흥종은 버림받아 마지막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 지나다가 “이제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여 1966년 2월 10일부터 단식에 들어갔다. 일제말기부터 하루 한 끼, 그것도 누룽지를 갈아 한 줌 물에 불려서 먹는 것이 하루 식사 전부였는데 그것마저 중단한 것이다. 제자들의 애원으로 광주 시내 아들집으로 옮긴 후 단식 ‘95일’만에 1966년 5월 14일 세상을 떠났다. 광주사회장으로 엄수된 그의 장례식에는 광주 인근 걸인들과 무등산에서 내려온 결핵환자들, 여수와 나주에서 올라온 한센병 환자 수 백 명이 몰려 와 “아버지,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며 통곡하였다. 그들이 사실상 장례를 이끌어가는 상주들이었다. 최흥종 목사는 1986년과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대통령 표창’과 ‘애족장’을 추서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그의 묘소를 대전 국립 현충원으로 옮겼다.

명목상 상주인 아들이 상여 행렬 뒤를 따랐다. 어린 시절 자기보다 거지를 더 사랑한 아버지가 싫었고, 철이 들어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교회 출석도 하지 않았고, 성장해서 광주 시내에 음식점을 차린 후 “아버지가 버린 다섯 가지에 하나를 더하여 취하겠다.”는 뜻으로 호를 ‘육취’(六取)라 했던 아들이었기에 아버지의 죽음이 그다지 슬프지 않았다. 그런데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가족을 제외한 광주 시민 전체, 특히 거지와 환자들이 자기 친아버지를 잃은 것보다 더 큰 슬픔을 표하는 것을 본 후에야 한 숨을 내쉬며 한 마디 하였다.

“이제야 아버님을 조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