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향한 우리의 비전

                                                     박 종 화 목사(경동교회)

1. 우리는 평화가 정착되는 통일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지난 60년 동안 민족 분단의 아픔 속에 살아 왔습니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화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민족의 자주를 빼앗긴 채 고통을 당했습니다. 해방의 감격은 짧았고 곧이어 불어 닥친 민족분단을 곱씹어야 했습니다. 세계의 동서간 적대적 냉전 갈등의 전형적 희생양이 되어야 했고, 민족상잔의 한국전쟁은 엄청난 희생과 상처를 남긴 채 상호 적대적 대결의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구조상으로 냉전적 대결체제를 종식하고 협력과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적대적 냉전 체제를 해소하지 못한 채 세계화 물결속의 새로운 경쟁에서 생존을 구가해야 하는 이중고의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깨닫습니다. 민족분단의 비극은 곧 민족 평화의 상실에 있으며, 분단을 극복하는 민족 통일은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민족의 평화는 다시금 세계화 물결 속에서 민족공영의 생존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세계평화의 틀을 정착시켜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발발을 막음을 물론 민족구성은 모두의 자유와 복지를 보장하는 “정의가 깃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최종단계의 통일의 과정이 평화적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통일이후의 상황도 평화구조가 담보되고 정착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길은 우선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켜 항구적 평화체제의 실질적 출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적시된 대로 남과 북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상호간의 체제를 상호 “인정하고 존중하여”(남북기본합의서 1조) 일종의 평화적 공존을 이루고 공동번영과 협력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평화공존은 북의 체제를 남의 것으로 또는 남의 체제를 북의 것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실체적 체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남과 북이 각기 기본적인 자유와 복리가 보다 크고 넓게 실현되도록 하는 생산적이며 건설적인 경쟁에 들어가 궁극적으로 민족전체의 정의로운 평화 정착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신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평화”(엡 2 :14)임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그가 기뻐하시는 사람을 속에 평화”(눅 2 :14)로 찬양함을 우리의 찬양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늘 영광이 육을 입고 오신 사건이 땅의 평화임을 믿습니다.
한반도에는 주님의 평화가 깃들 약속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이 민족이 걸머져야할 일종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인 분단에 부활이 잉태합닏. 분단을 극복한 통일은 평화라는 부활의 경험을 담는 그릇이라 믿습니다. 통일이라면 자동적으로 평화가 온다는 통일지상주의는 위험합니다. 평화없는 통일이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없이 평화만을 추구하는 평화지상주의는 가식적인 허구의 평화일 뿐입니다. 평화적 공존은 평화만들기의 한 과정입니다. 목표 자체가 아닙니다. 폭력과 전쟁없이 항구적인 평화건설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입니다.
오히려 공존적 평화과정을 통하여 평화만들기 경쟁을 유도하며 참된 평화가 승리할 수 있음을 실체로 경험케 해야 합니다. 그것은 곧 진정으로 성령이 부여하시는 자유가 들풀처럼 피어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평화의 승리입니다.


2. 우리는 안보와 협력과 인권의 획일적 틀을 추구합니다.

6.25전쟁의 참화를 직접 체험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반드시 방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 전쟁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전쟁 역시 남북 당사자를 넘어서 관련 주변 국가들의 다양한 개입 속에 치워질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전 협정이 그러했듯이 평화협정 역시 남과북 쌍방간의 협정이 아니라 최소한 정전협정 서명국들의 합의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은 한반도의 군사안보와 평화구조 정착을 넘어 동북아 내지 동아시아의 안보와 평화를 지탱하고 보장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뜻에서 우리는 평화협정과 아울러 현재 6자회담의 틀이 이 지역의 집단 공동안보로 귀결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데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결국 평화협정과 지역안보의 틀을 이룩하는데 있어서 북핵문제는 분명히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미 남과 북은 한반도 비핵화를 공식으로 공동선언한 바 있기에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하는 평화와 안보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 전폭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두 가지 동반조건이 동시에 합의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첫째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대로 남북 간의 상호 체제 인정을 국제적으로도 공인하는 일입니다. 당연히 북한의 현실체제를 인정하고 보장하는 일입니다. 둘째로는 북한의 총체적 생존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협력하는 일입니다. 북한에 드리워진 각종 경제봉쇄조치를 해제함은 물론 북한에 대한 적극적 경제 협력과 투자를 통하여 북한을 세계적 시장경제의 광장으로 이끌어내는 길입니다. 이것은 군사안보와 경제협력의 동반적 해법을 말하며 이런 일괄타결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장 타당하며 내실 있는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새로운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는 북한의 인권 보장 문제 역시 「안보 - 협력 - 인권」의 3각 틀에서 해결되기를 촉구합니다. 안보와 생존의 틀과 별개의 것으로 인권을 말함이 아니라 3영역을 포괄하는 전제하에서 인권신장을 요구하며 주장함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독일 통일의 국제적 초석과 틀로서 기능한 헬싱키 협의회(CSCE)가 안보와 협력 그리고 인권을 총괄하여 취급했던 모델을 운용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독일통일의 주역으로 헌신했던 베이츠제커 대통령의 증언대로 서독정부와 공식단체는 통일 이전까지 한번도 동독의 인권문제를 독립변수로 제기한 적이 없으며, 안보와 생존의 포괄요인으로 간주했었다는 정치적 지혜와 인도주의적 배려를 귀감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인권을 주창하는 만큼 안보노력과 동시에 생존을 위한 협력과 투자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이 인권의 실질적인 담보요 구현의 길일 것입니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만큼 경제적 생존과 군사적 안보가 보편적 평화의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으로 고백하는 평화 곧 샬롬(shalom)은 자유, 정의, 창조세계의 보전 군사안보적 평화를 총괄하는 집합적 평화입니다.(이사야서 32 : 17, 시편 85 : 10) 인간의 총체적인 삶이 골고루 평화로 엮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샬롬의 목표인 구원이 개인구원임과 동시에 사회구원이요 자연세계의 구원임과 같은 음식입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신앙이 무엇보다도 귀중한 천부의 권리요, 보편적 인류의 가치임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진정으로 인권을 위한다면 북한 주민의 경제적, 물질적 기아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인도주의적 지원과 경제적 협력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북한 주민 모두의 생존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동시에 분단에 불구하고, 아니 분단 때문에 남한이 체제경쟁을 통하여 현재와 같은 물질적 축복을 누린 것은 우리 남한 만의 소유축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의 체제경쟁에서 실패한 북으로 하여금 체제의 변혁을 간접적으로 촉구하면서 동시에 북한동포와 함께 나누어 살아야 한다는 나눔의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물질의 나눔속에 인간을 변화시키는 마음의 나눔도 동반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3. 우리는 남북화해와 남남화합의 장을 펼쳐갈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 간의 실질적 평화를 보장하는 길이 안보와 협력의 틀을 마려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함을 압니다. 남과 북의 민족구성원 모두에게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깊이 스며있는 적대감정과 적대관계를 청산하지 않고는 진정한 평화의 문화와 삶을 누릴 수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런 적대 관계와 감정이 다른 나라와는 달리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통하여 씻기 어려운 흔적으로 깊이 박혀 있음을 압니다. 눈물과 회한으로도 극복되기 힘든 비극을 이산가족을 선두로 하여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갑니다. 여기에서 우선적 해법은 과거의 아픔을 미래지향의 평화를 향한 헌신을 통하여 극복하고 위로 받자는데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곧 남북 간의 전쟁의 직접적, 간접적 피해자 내지 희생자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통일노력 곧 이산가족의 만남, 전쟁 중 행방불명자들의 생사확인, 유골송환등의 인도주의적 근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동시에 또 다른 희생의 가능성을 막기 위한 총체적인 노력과 함께 미래의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화해를 선언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지향의 민족화해는 지난 아픔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최선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에게 다시는 이런 비극을 물려주지 않고 평화를 전수할 수 있는 최선의 미래투자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미래투자에는 남과 북의 법적 제도적 장치, 예컨대 북한의 노동당 규약이나 형법 그리고 남한의 국가보안법의 적대적 조항 등을 제거하는 조치도 포함 됩니다.
동시에 남북의 공동합의에 의해 민족화해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하여 과거의 상처치유와 미래의 평화공동체 형성의 방안을 내놓게 하는 공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남북 간의 화해만큼 남한사회의 남남갈등을 치유하고 극복하는 남남화합의 과제 역시 중요합니다. 남한 사회의 진면목은 민주사회입니다. 민주주의는 획일주의적 권위나 권위주의적 획일화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민주사회의 구성원 각자의 나름대로의 다양한 견해와 결단이 민주적 방식을 통하여 합의에 이르는 삶의 원칙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다양성 속의 일치”라 부릅니다. 예컨대 진보와 보수는 다양성입니다.
진보와 보수는 통일의 과정과 목표가 평화임을 인정합니다. 안보와 협력과 인권의 요인들이 상호 함수 관계에 있음도 인정합니다. 민족화해가 통일과 평화로 가는 길이고 삶의 방식임을 인정합니다. 물로 방식을 두고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방식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는 보수는 열림이 없는 수구입니다.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는 진보는 합리성이 없는 허구입니다. 수구적 극단주의와 허구적 과격주의는 다양성에 속할 수 없습니다. 남남화합은 바로 극단과 과격이 아닌 열림과 합리성이 합하여 다양성을 만들고 다양성이 민주적 절차와 합의를 통해 일치라는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이런 다양성 속의 일치에 우리는 헌신할 것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은 화해의 복음을 믿고 전화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적대관계에 놓여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십자가에서 직권으로 화해하시고, 화해된 우리를 화해의 사도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고후 5 : 18-20)
남과 북은 먼저 각기 하나님과 화해해야 합니다. 여기에 바로 남한의 선교와 함께 북한에서의 선교가 당연한 귀결인 이유가 있습니다. 선교란 먼저 하나님과 화해하는 일입니다. 남과 북이 진정으로 하나님과 화해한다면 동시에 하나님과 화해한 남과 북 서로간에도 당연히 화해된 공동체를 이루어야 마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동전의 양면임과 같습니다.
화해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한, 남한의 화해공동체는 화해의 바탕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삽니다. 그 분의 몸에 붙은 지체로 살아갑니다. 지체는 기능과 역할과 사명이 다양합니다. 이것이 한 몸과 다양한 지체의 결합 모습입니다. “다양성 속의 일치”로 바로 “몸은 하나요 지체는 여럿”(고전 12장) 이라는 말씀의 표현입니다. 진정으로 지체끼리의 갈등과 대결은 한 몸에 붙어 있는 다양한 가능성과 필요성을 상호 인정할 때에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평화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그리스도의몸은 평화의 몸이요, 우리 지체들은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지닌 평화만들기의 지체들입니다. 어느 한 지체의 독주나 다른 지체에 대한 소외나 멸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합동하여 선을 이루는(롬 8 :28)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바로 여기에 초점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바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다양한 지체들을 연결시켜 그리스도의 평화의 몸에 헌신하도록 앞장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