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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민족주의와 하나님의 나라" (발표문)



전쟁반대·평화 교회가 앞장을…복음주의협 월례발표회  

한국교회는 배타적 국수주의로 흐를 수 있는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며 하나님 나라 개념에 입각한 세계화와 사랑·정의·평화를 추구하면서 한반도 평화정착과 외국인 근로자를 향한 사랑실천에 앞장서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서울 강변교회에서 10일 ‘민족주의와 하나님나라’를 주제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고용수 총장(장신대) 한명수(예장합동 총회장) 전병금 목사(기장 총회장) 등은 하나님 나라의 입장에서 모든 정의를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제발표자들은 “기독교는 결코 민족주의가 아니다”면서 “특히 기독교의 민족주의는 자유 평등 인권 정의 등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정리된 것이며 세계화 역시 이같은 개념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용수 총장은 “자기 민족의 우월성만을 강조하면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속성을 지닌 국수주의,맹목적 애국주의,전체주의에 사로잡힌 신앙을 유의해야 한다”면서 “이념적으로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균형을 잡고 인류의 평화와 번영,상호협력을 추구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명수 목사는 “사해동포주의의 개념으로 민족주의를 봐야 한다”면서 “어떤 명분으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미관계와 한·미관계,남·북관계도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해결돼야 하며 한·미관계의 경우 상호평등 관계로의 조속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병금 목사는 “민족을 떠난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한국교회는 민족공동체를 섬기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교회는 민족통일에 관심을 갖고 전쟁을 반대하며 세상의 평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은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의 3·1정신을 본받아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힘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목회자들은 또 “국제 정세를 배타적인 민족주의 입장에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열강의 패권주의 입장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통일 공동체적 입장에서 한반도의 핵문제와 통일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전재우기자 jwjeon@kmib.co.kr


“민족주의와 하나님의 나라”      

                                한복협월례모임(2003.3.10) 발표 요약 발췌
  
고용수 총장 (장신대):
  기독교 복음은 세계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세계주의의 배후에는 전 인류의 형제애, 가족성이라는 정신이 있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문제와 함께 세계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민족주의와 함께 세계주의에 동시적으로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기 민족의 우월성만을 강조하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며 침략적인 속성을 지닌 국수주의, 맹목적인 애국주의(chauvinism),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기독교적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좌나 우로 치우치는 국수주의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조국의 앞날을 어둡게 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지니는 세계주의는 지구촌 전체를 자신의 거주지로 생각하는 동시에 전 인류를 형제로 생각하고, 만민이 다같이 행복과 평화와 번영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기본 정신을 가진다. 그리고 여러 민족과 국가를 인정하고 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상호협력관계 속에서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오늘의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폭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가 세계 속에 아직도 구현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또한 우리는 다(多) 문화와 다(多) 종교 그리고 다(多) 민족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와 같은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깊고 넓으신 사랑(요 3:16) 안에서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야 하며, 이들과 더불어 정의와 공의, 평화,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수행을 통한 하나님 나라 구현에 힘써야 할 것이다(창2:15; 시8: 1-9; 롬8:19-21).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한 구절(롬14:7)로 요약하고 있다. ‘의’의 복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둔 덕목이요 '평화'의 복음은 이웃과의 관계, '기쁨'의 복음은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그리고 '기쁨의 나라'로 충만하길 기원한다. 따라서 '믿음, 사랑, 소망'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이 땅에 구현하는 일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부과된 지상 과제이다.

전병금 목사 (한국기독교 장로회 총회장):
  역사상 3.1 운동은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이상이 잘 조화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3.1운동은 기독교 신앙과 민족적 양심이 결합하여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1 운동은 민족운동이면서 인류양심의 회복,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당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민족을 핍박한 일제에 대한 항거이자, 폐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인류의 보편적 진리에 접근하려는 운동이기도 하였다. 또한 3.1 운동은 당시 남녀, 연령, 종교와 이념, 지역을 초월한 일치된 정신으로 민족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던 운동이었다. 이 같은 정신은 50년이상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민족으로 남아 있는 조국에 그 평화통일의 토대를 구축하는 정신적 기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 교회는 민족 구원과 통일에 관심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이 세상의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 교회는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 교회는 분단된 우리 민족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 정세를 주체적 입장에서 올바로 이해하고 이에 적극 대응하며, 민족의 평화 통일을 이루는 데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한간의 대화를 계속하며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주장(예: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정책)에 동조하기보다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한반도의 핵문제를 평화적이고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민족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복음의 진리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는 약자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특별히 지금 우리의 땅에서 차별 받고 학대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직면하여 그들을 나의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명수 목사 (예장 합동 총회장):  
  기미년 때도 친소파, 친청파, 친일파가 있었듯이 금년 3.1절만해도 한편에서는 반핵 반김 등을 외쳤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공조를 내세웠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약소민족의 비애를 씹으면서도 사대주의 사상에 물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물론 우리의 문제를 밖으로 만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며 지난 이조 500년의 사색당쟁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들은 오늘의 남북관계를 북미문제와 한미 사이에서 국제정치의 역학적 틈 바구니사이에서 자주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풀고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숙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사회가 여러 면에서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그간 한국교회는 진보와 보수로 갈렸었고 분열의 긴 터널을 건너왔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끝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갈등이 내비쳐지기 시작한 것 같아서 걱정스럽다. 기독교는 민족주의를 이해함에 있어서 편협된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라고 하는 협의적 개념이 아닌 사해동포주의적인 개념으로써의 입장에서의 나라사랑과 모든 민족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사랑하여야 할 것이다.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사람 일어난다 조선 사람 조심하라고 하는 소리는 명언처럼 들린다. 어떤 명분으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은 없어야 하며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가인의 후예는 없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도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겠으며 북미관계와 한미관계 및 남북 관계 등도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두 여학생의 미군전차에 의한 사망 후에 불거진 한미관계도 최소한 대 나토와 독일 및 일본과의 소파협정과 같은 상호평등관계로 속히 개정되어야 하며 종속관계처럼 보여지는 일체의 협정내용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와 하나님의 나라"

"민족주의와 하나님의 나라"

                             고용수 총장(장신대)

해마다 3월이 오면 우리는 한민족 역사 속에서 3·1운동의 당시 사건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 인식을 일깨워주곤 한다. 우리는 3·1 독립만세운동의 기본정신을 '독립선언서'에서 찾을 수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1) 조선이 독립된 나라요, 조선인이 자주국민임을 먼저 전제했고, (2) 일본의 잔악한 침략행위로 한민족 역사 이래로 처음 당하는 고통임을 밝히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3) 생존권의 위협과 인간존엄성의 박탈에 대해 정의와 인도주의 입장을 천명하면서, (4)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선언하고 있다.
3·1 운동은 독립을 위한 민족운동이면서 한걸음 더 높은 차원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차대전 후 민족주의와 인도주의 세계로 끌어가는 세계사의 흐름에 발맞추어 일어난 반군국주의 운동이었다. 그리고 무력정치시대의 종식과 함께 도덕시대의 도래를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미래적인 안목으로 역사를 내다 본 예언자적 통찰이다. 이러한 역사의 선언은 성서를 통해 본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외친 예언자들의 메시지와 연결할 때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역사의식을 일깨워 준다.
3·1 운동의 독립선언서에서 부각되는 언어 구조는 정치적 범주 뿐 아니라 지성적인 차원에서 분명히 새로운 형태의 역사의식이 부각되고 있다. 즉, 새것과 낡은것, 미래와 과거, 비전과 전통이 교체되는 것이 3·1 운동의 역사의식으로 나타났다.  3·1 독립 선언서는 모든 언어가 민족을 주격으로 해서 '민족'이라는 언어에 의해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문법적인 서술형태로 보기보다는 실제로 민족이 역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 민족을 '신민'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역사의 새로운 주체로서의 한국 민족은 온계레가 하나되어 고난과 수치와 억압의 역사를 극복하는 동시에 정의, 자유, 평등의 새로운 갈망(사상)을 실현하는 창조적 주체로 등장했다.
이같이 3·1 운동에서 새로 부각된 역사 언어는 기독교의 복음이 지닌 언어와 깊은 연관(뿌리)을 지닌다. 이는 33인 민족대표 중 16명이 기독교를 대표하고 있음이 입증된다. 그들은 예언자적 통찰력을 가지고 한국의 역사속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그리고 지방의 남북, 종파의 유무, 성의 남녀, 지식의 다소, 연령의 노소, 계층의 상하를 막론하고 온 겨례가 하나되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함은 우리 민족의 자기발견과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커다란 원동력을 지닌 자주적 국민임을 실증했다.

교회와 민족

민족자주권의 정신은 기독교 국가관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경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창조하신 동시에 개인을 개별적으로 지으셨다. 그리고 모든 민족은 그의 기원이 직접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각 민족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지상에서 생존할 권한을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받았고 이 권한은 아무도 침범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그 민족의 구성원은 하나님이 주신 생존권과 영토 방위의 신성한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다.(행17:26) 하나님은 개인과 민족 모두를 동등하게 취급하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공의의 질서에 따르는 개인이나 국가민족을 우선적으로 보호하신다. 따라서 개인이나 민족은 자주의 생존권을 포기해서는 안되고 자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깔뱅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말하면서, 세속정부를 '하나님의 시녀'라고 말함으로서 지상의 국가 권세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국가주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 존재할 수 없음을 분명히 천명했다. 이러한 깔뱅의 국가관은 1648년 작성된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반영되었다. 그 고백서 23장 1항에는 다음과 같이 고백되고 있다. "최고의 주가 되시고 전 세계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자기의 영광과 공동선을 위하여 관, 공직제도를 두셔서 자기의 관할 하에 두셨다. 그들이 대중을 다스린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칼의 힘을 주어 선한 무리를 보호하고 격려하는 반면 악을 행하는 자를 처벌하게 하셨다."(롬13:1-4)
국가는 국민의 최대 다수의 안녕과 행복과 질서를 보장하고 유지하는데 존재의 목적이 있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권한을 부여받은 정부에 협조하고 국법에 순종해야 한다. 만일 국가나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묵살하고, 집권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 권력을 남용한다면, 그것은 국민을 배신하는 일이 되므로 교회는 정부나 국가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시정을 촉구하면서 민족의 안녕과 발전을 위한 파수꾼의 역할을 다 해야 한다.
이같이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계율에 우선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예레미아나 바울처럼 동족을 위한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철저한 애국심, 애족심을 가져야한다.

이와 함께 기독교 복음은 또한 세계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세계주의의 배후에는 전 인류의 형제애, 가족성이라는 정신이 있다.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창조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의 문제와 함께 세계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민족주의와 함께 세계주의에 동시적으로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기 민족의 우월성만을 강조하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이며 침략적인 속성을 지닌 국수주의, 맹목적인 애국주의(chauvinism),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기독교적이 아니다. 이념적으로 좌나 우로 치우치는 국수주의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주의는 조국의 앞날을 어둡게 할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지니는 세계주의는 지구촌 전체를 자신의 거주지로 생각하는 동시에 전 인류를 형제로 생각하고, 만민이 다같이 행복과 평화와 번영을 함께 누려야 한다는 기본 정신을 가진다. 그리고 여러 민족과 국가를 인정하고 그들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며 상호협력관계 속에서 살아갈 것을 요청한다.

성경에 의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동서양의 세계역사를 주관하시면서 강대국을 중심에 세우지 않고 약소 민족인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하나님의 구속과 통치사역을 나타내셨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저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중 '남은 자'를 그루터기로 남겨 두어 그들을 통해 '때가차매' 예수그리스도를 오게 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고후5:18-20)이요, 새 이스라엘(교회)로 세우셔서 교회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이루어 가신다.
한국민족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비슷한 고난의 삶을 살아왔다. 최근의 분단이라는 열악한 역사 속에서도, 그러나 하나님은 대한민국이라는 한민족을, 그리고 한국교회를 축복하셔서 세계 속에 부각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는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선택받은 성민임에도 '유대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민족공동체의 결속에 머무를 뿐, 하나님을 중심한 국가 건설에 실패했다. 그로 말미암아 결국 이방인의 침략을 받아 멸망한 과거의 역사를 교훈 삼아 이제 한국교회는 우리 민족이 그 전철을 밟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국가의 기초로 삼고 대한 민국을 건설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 오늘을 사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기야 말로 이 민족 역사의 현실 속에서 진리와 자유, 사회정의와 평화의 파수꾼으로 부름받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때이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

교회는 이어받을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요(신  7:6; 벧전 2:9; 계 21:3), 그리스도의 몸이며(고전 12:12), 성령님의 전(고전 3:16; 6:19)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회개와 믿음을 통해 그 축복의 자리에 들어간 이들의 교제모임이요, 동시에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 나라에 봉사하는 도구이다. 교회가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 속에는 최소한 세가지 차원의 삶이 강조된다. 첫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는 개혁교회의 기본정신에 기초해서 일상생활 속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추구한다. 둘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수단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천할 힘(자원)이 되는 경건한 삶을 추구한다. 이와 함께 셋째로 우리의 일상적 삶이 세상의 문화와 역사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복음의 빛 아래서 성찰함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최상의 표현을 추구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교회는 예언자(암 5:24)와 제사장의 역할(출 19:6; 벧전 2:9)을 담당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를 이 땅에 구현시켜야 하고, 만민과 만유를 살리고자 하시는 성령님의 활동에 동참해야 한다.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죄와 흑암의 권세에 맞서 싸우며 사랑과 정의가 강같이 흐르는 사회, 억압과 착취가 사라진 나라, 자유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 인간과 창조세계가 조화롭게 안식하는 지구생명 공동체와 우주의 샬롬을 구현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 복음의 확장에 문화도 중요한 대상이자 영역이다. 세상 속의 다양한 문화는 그것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다양한 문화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의해 변혁되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새롭게 형성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나라와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고, 또 표현되어야 한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정보화와 지구화 그리고 테러와 폭력으로 특징 지워지는 21세기의 상황과, 분단된 한국적 상황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다양한 과제를 한국 교회와 신학에 요구하고 있다. 오늘의 세계의 심각한 위험과 수많은 과제들 앞에서 언약에 따라 사랑으로 통치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내주(內住)와 교류(交流)에 의한 사랑의 코이노니아(시 119:63; 대하 20:35 ; 행 2:42; 롬 15:26; 고전 1:9; 요 17:21)와 디아코니아(에1:10, 겔48:18-19, 롬12:7, 고후8:4)가 세계 문제 해결의 궁극적 구원의 상(像)이고, 하나님 나라를 반영하는 세계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오늘의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폭력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의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가 세계 속에 아직도 구현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또한 우리는 다(多) 문화와 다(多) 종교 그리고 다(多) 민족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길이 바로 이와 같은 코이노니아와 디아코니아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깊고 넓으신 사랑(요 3:16) 안에서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여 이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야 하며, 이들과 더불어 정의와 공의, 평화, 창조세계에 대한 책임수행을 통한 하나님 나라 구현에 힘써야 할 것이다(창 2:15; 시 8: 1-9; 롬 8:19-21).  

예수님의 지상사역의 중심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제자들에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도 우리는 기억한다. 부활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행1:6) 질문하는 제자들을 향한 답변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라 잃은 민족의 현실을 보면서 조국의 국권을 회복하고 민권과 인권을 회복하는 일이 제자들에게는 긴박한 관심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응답은 민족의 회복보다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사명이 '하나님 나라의 증인된 삶'(행1:8)임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정의를 한 구절로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롬14:17) 의(義)의 복음은 세상이 말하는 정의의 개념보다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의(義),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둔 덕목이라면, '평화'의 복음은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기쁨'의 복음은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에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의 관련 속에서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열쇠는 오직 '믿음' 뿐이요, '평화'의 삶을 살 수 있는 기초가 '사랑'이라면, 기쁨의 삶의 기초는 '소망'의 복음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의의 나라', '평화의 나라' 그리고 '기쁨의 나라'로 충만하길 기원한다. 따라서 '믿음, 사랑, 소망'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이 땅에 구현하는 일은 오늘의 한국교회에 부과된 지상과제이다.

맺는 말

지구촌 시대를 맞아 '세계화'는 21세기의 정보화와 다양화의 거대한 역사적, 세속적 도전과 지구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대적 소명으로 받게되는 중심용어이다. 한국교회가 추구할 '세계화'의 기본 방향은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다.
21세기를 향한 세계화의 비전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종말론적 신앙공동체 속에 약속된 성경적 비전이다. 예언자 이사야의 비전에서 보듯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11:6-9) 하나님께 속한 백성을 향해 보여 주는 신앙 공동체의 비전이 우리의 비전이 된다면, 우리는 21세기의 세계가, 그리고 한국의 장래가 아무리 불투명하다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 될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믿음의 눈으로 직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기초한 윤리적 삶을 살도록 세상 속에서 책임 있는 참여를 요청받게 된다.
이 땅에서 이루어 질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하나님 나라의 주권적인 통치로 실현된다. 그러나 그 실현 과정에서 인간의 책임과 행위가 배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 내적인 실현을 위해 우리를 파트너로 지금도 부르신다. 기독교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생명, 나눔, 섬김, 정의, 평화) 추구의 통로인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향한 한국교회의 과제는 말씀의 신앙화 → 신앙의 생활화 → 생활의 문화화 → 문화의 역사화로 이어지는 관계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고 활성화하는 일 일 것이다.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전병금 목사(한국기독교 장로회 총회장)

1. 들어가는 말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소련과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동서 냉전의 세계 질서가 붕괴되었지만, 세계 도처에서는 여전히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지금까지 이데올로기 틀에 갇혀 있던 각 민족들이 자기 본래의 민족과 국경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비록 세계 곳곳에서 민족주의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이데올로기나 민족의 문제로 국가와 민족이 서로 갈라지는 시대는 아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특정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고민하면서 해결해야 할 식량, 질병, 인구폭발, 환경, 핵 확산, 자원의 고갈, 대체 에너지 개발, 전쟁 억제 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어느 한 민족이나 국가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며, 우리 후손들이 이 지구에 계속 생존할 수 있느냐는 미래의 생존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 '세계화'는 오히려 제3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약소국을 강대국의 경제질서에 강제로 편입하려는 미국의 패권주의 전략으로 전락하여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각 나라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혹은 세계화를 내세우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하에서 한국 교회는 민족주의 문제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그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주권이 확립되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이 글에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에서 세계의 유일한 분단 국가로 살아가고 있는 한민족의 입장에서 민족주의 문제를 검토하고, '하나님 나라'의 지평에서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1. 민족주의(nationalism)의 허와 실

민족주의는 "지역, 문화적 활동, 언어, 사상, 그리고 국가라는 기구의 공통점과 생물학적인 관계를 갖고 있는 혈연적 집단의 공통적 생각"이라고 정의할 수 있으며,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이후에 구체적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김 인수, "지구화와 민족주의", 기독교 사상 423호(1994, 3), pp. 47-48.
이 때 등장한 민족주의는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나라나 민족들에게 무자비한 침탈을 감행하였던 제국주의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이다. 독일의 나치즘이나 일본의 천황제와 군국주의는 최악의 민족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는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성격이 함축되어 있어서 항상 팽창주의 정책을 통하여 약소국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내국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할 염려가 있다. 한 예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는 민족주의를 명분으로 하여 서구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토착적, 비민주적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억압하였다.
그러나 약소국 민족주의는 강대국에 대한 종속을 줄이거나 없애려 하는 저항 이데올로기로 출현하기도 한다.) 제 3세계의 민족주의는 해방의 논리로서 발전의 이념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글에서는 이 입장에 따라 '한국 민족주의의 특성'을 다음 항목에서 논하게 될 것이다. 제 3세계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진 덕규, "제3세계와 민족주의", 기사연 편, 민족주의와 기독교(서울: 민중사, 1981), pp. 25-46.  
이러한 저항 이데올로기로서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주와  해방을 추구하는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약소국의 민족주의는 불편한 것이 된다. 그래서 그들은 약소국의 민족주의를 1) 대내 억압적이고 소수자의 권리를 억압하며, 2) 국제 분쟁을 유발하며, 3) 대외 팽창적 이라고 비판하면서 '세계화'를 주장한다.) 강대국적 시각의 민족주의와 세계화에 대한 주장과 그에 대한 비판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김 영명, 우리 눈으로 본 세계화와 민족주의(서울: 오름출판사, 2002), pp.15-39.
'세계화'의 열풍은 1990년대에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어 일국 패권주의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세계적으로 전파되면서 전 세계에 몰아쳤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세계화'는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구체화할 수 있으며,) 김 영명, 세계화와 민족주의, p. 20. 세계화란 용어는 1960-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소련 동구 공산권이 붕괴된 이후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 문물이 세계를 제패하는 도구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IMF, 세계 은행, WTO 등의 국제기구를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보편 원칙인 양 전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IMF를 움직여 부채 위기에 빠진 개발도상국들의 유동성 위기를 처리하면서 강력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해당국가에 요구하도록 하였다. 세계 은행은 구조조정을 위한 재원을 지원하면서 이들 국가들의 국민경제를 수출 지향적이고 대외 의존적인 구조로 탈바꿈시켰다.
결국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획일적인 시장 경제 논리와 미국 문명이 세계에 전파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국내외적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으며 지구 환경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 패권주의도 팽창적 민족주의 혹은 국민주의(nationalism)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김 영명, 세계화와 민족주의, p. 44.

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민족주의 문제를 논할 때, 우리는 지나친 민족주의의 추구가 민족 내부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민족간의 갈등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함과 동시에 '세계화'의 패권주의적 성격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약소국의 입장에서 민족의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출현한 저항적 민족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2. 한국 민족주의의 특징

북한의 핵 문제로 야기된 북미간의 갈등과 주변국의 이해관계로 말미암아 현재  한반도 내에서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우리 민족은 강대국의 이익을 위한 각축장으로 변절되어 민족의 생존이 절대적인 위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아시아판 Time(Feb 24, 2003) 지는 한반도의 주변정세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아시아 전쟁이 실제로 발발하게 되면 핵을 가진 북한과 상대편인 미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가 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p. 16)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 한민족에게 민족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특별히 반만년 동안 단일 민족으로 하나로 살아오다가 현재 분단되어 살고 있는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특별한 입장을 요구한다.
우리 민족의 민족주의 개념은 19세기말 침략주의 성격을 띤 제국주의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말의 한국은 한반도를 둘러 싼 동아시아 일본 세력의 침략과 경제적 이익을 획득하려는 서구 제국주의의 세력에 대항하여 민족 자주국가를 수립해야 하는 시대적 명제를 안고 있었다. 일제는 1905년 을사늑약(勒約)으로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정미 7조약으로 경찰과 군대를 해산하고, 드디어 1910년에는 한일합방을 선포하는 폭압을 자행함으로써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촉발시켰다. 따라서 한국의 민족의식 내지 민족주의의 성격은 자국에 침략해 들어오는 외적을 무찌르는 데 목표를 둔 저항적 형태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자존을 위한 민족주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김 인수, "지구화와 민족주의", pp. 48-49.

해방 이후 분단 시대가 고착되면서 위정자들은 국가주의적 체제를 강화해 갔다. 그들은 분단 국가의 정당성과 필연성, 절대성을 실재로 강조하면서 분단 국가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하여 민족주의 이름으로 오히려 국가주의적 체제를 강화하였다. 분단 국가들이 그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표방한 민족 주체성은 사실은 분단 국가 상호간의 대립주의, 폐쇄주의, 침략주의를 양성하는 국가주의적 이론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격의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면서,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 시대의 한국 민족주의 목표는 국민 주권주의의 확립과 민족 통일 문제로 직결되며, 이 두 가지 문제는 언제나 동일선상에 있는 한 가지 문제로 이해하여야 한다.) 강 만길, "한국 현대 민족주의의 전개과정", 기사연 편, 민족주의와 기독교, p. 24.
즉, 국민 주권주의의 확립이 전제되지 않은 통일 문제 논의는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며, 또 국민 주권주의와 통일 문제를 따로 떼어 이해하려는 어떤 종류의 민족주의론도 미완성의 이론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3. 성서의 가르침에 나타난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할 때, 그 핵심 내용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며, 예수 운동의 성격을 규정하고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 이상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어디에서 유래하며, 예수의 사역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는가?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 자체는 구약성서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으며, 신구약 중간 시대의 묵시문헌에서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다.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은 약 140여회 나오는데, 이 용어는 주로 예수에 관한 보도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 나라' 표현은 예수나 초대 기독교가 처음으로 언급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유대 사회에 충만했던 묵시문학적 종말 사상에서 연원(淵源)한 것이다. 예수는 이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를 내린 적이 한 번도 없는데, 그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 나라'란 개념이 특별한 설명 없이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 나라(   , 막 1:15)' 혹은 '하늘 나라(    , 마태 4:17)'라는 용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상징언어로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낸다. 마태복음에서 사용하고 있는 '하늘 나라'는 용어는 공간적 개념으로 구원받은 백성들이 거하는 천상의 장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마가복음에서 사용하는 '하나님 나라(         )'라는 용어를 마태복음은 '하늘 나라(          )'로 바꾼다. 그 이유는 마태 복음이 '하나님'이란 이름을 거룩하게 받아들여서 이를 직접 사용하지 못하고 대체 용어를 사용하는 유대 전통에 서 있기 때문이거나, 하늘 나라가 에덴 동산과 여러 면에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 경희 외, 신약성서개론(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pp. 243-244.  
그러나 이 글에서는 논의를 효과 있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이 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종말적으로 성취할 구원 세상, 즉, 하나님이 모든 인간과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종말적 세계라고 간략하게 정의하고자 한다.) '하나님 나라'의 기원과 개념,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이해 등은 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논의되는 쟁점이다. 이 글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종말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하나님 나라'의 전승사적 기원과 개념, 그 해석 역사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시오. 김 창락, "'하나님의 나라': 그 기원과 해석의 역사", pp.11-57. 황 성규 박사 정년은퇴 기념논문집, 하나님 나라 : 그 해석과 실천(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0).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셔서 그의 통치권을 회복하여 왕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여 사악한 자들은 징계하고,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이다. 결국 '하나님 나라' 개념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그의 통치권을 회복하여 다스린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이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메시야가 도래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해 줄 것을 대망하던 편협한 유대 민족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제 '인자' 메시야의 도래로 이루어 질 전 우주적 구원을 소망하게 되며 전 세계를 포용하는 희망을 갖게된다.) G. BornKamm, Jesus von Nazareth, 강 한표 역, 나사렛 예수(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3), 178.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로 이루어질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인류, 더 나아가서 전 창조 세계까지 포괄하는 우주적 차원의 구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로 종말적 구원이 실현된 세상이다. 이 '하나님 나라'는 불의가 없는 정의로운 세상,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리고 차별과 억압, 가난과 착취가 없는 평등한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J. Fuellenbach, The Kingdom of God(New York, Orbis, 1998), 46.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이 구절은 예수의 사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잘 설명해 준다.  

실제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전망에서 그의 사역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예수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적대시하며 상종하지 않던 사마리아인들과 함께 상종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을 뿐 아니라(요한 4:1-42),) 유대인이 사마리아인을 적대시하던 상황은 요한복음 본문에 반영되어 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어라"(요 4:9).
이방 도시인 두로와 시돈에서도 복음을 전파하며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 주셨다(막 3:7-12). 하지만 예수는 민족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다. 예수는 항상 자기 동족인 유대 민족을 향한 애끓는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계셨다. 예루살렘의 죄 때문에 이 도시가 멸망하게 될 것을 안타까워하며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마 24:37) 라고 애통해 하였다. 결국 예수는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면서, 유대 민족을 포함한 전 인류를 구원하고 해방하는 사역을 하셨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바울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은 이방인 선교를 위하여 그의 삶을 헌신하였다. 예루살렘 사도회의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베드로를 비롯한 원사도는 유대인을 주 선교 대상으로 삼았으며,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임명받았다(갈 2:7-9; 행 15:22-25). 바울은 안디옥을 선교 거점으로 하여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지역에 많은 교회를 설립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특별히 안디옥 사건에서 바울은 베드로와 심하게 다투고 면박하면서 까지 이방인들을 옹호한다(갈 2:11-13). 바울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방인들을 옹호하기 위해 율법을 강하게 비판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인론을 전개하기도 한다(갈 2:14-18). 결국 바울은 이방인들의 권리를 옹호하고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자기 동족인 베드로를 반박하며 유대 민족의 특권으로 상징되는 율법을 비판하고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바울은 유대 민족에 대한 민족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원줄기에 접붙임을 받은 존재로 거명한다. 여기에서는 오히려 유대인을 차별하며 멸시하는 로마 교인들을 비판하며, 그들을 선택하여 부르신 하나님의 참 뜻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유대인을 옹호한다(롬 11:11-24). 더 나아가서 그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롬 9:4) 그의 골육의 친척인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원한다고 강변한다.)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 로마 교회는 유대 그리스도인과 이방 그리스도인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49년 글라우디오 칙령으로 로마 교회에서 쫓겨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로마 교회에 합류한 상황이어서 이 때는 로마 교회에서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차별을 받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로마서의 배경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김 경희 외, 신약성서개론, pp. 369-381을 참조.  

바울의 이와 같은 외견상 모순되는 행동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바울은 어떤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어떤 때는 이방인을 옹호하고, 어떤 때는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옹호하는 것일까? 바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하나님 나라'의 구현인 것이다.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참고: 롬 10:12; 골 3:11) 라고 선언함으로써, 기독교의 진리는 인종과 사회적 계급, 성의 모든 차별을 뛰어 넘어 차별이 없는 평등과 정의,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는 유대인의 차별과 소외도, 이방인의 차별과 소외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되어 정의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었다.
요약하면, 예수와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복음의 진리, 곧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이었다. 이것은 세계주의적 보편적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와 바울은 자기 유대 민족이 이 하나님 나라의 대열에서 소외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어느 것이 우선인가? 그것은 상황의 문제이다. 민족의 문제를 절대화하여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억압할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내세워(이 경우는 대개 강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약자를 억압하는 세계 보편주의 원칙을 적용한다) 어느 민족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정의와 평화가 넘치고, 모든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자유롭게 누리며 살 수 있는 평등의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    

5.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정신의 융합 : 3.1 운동

우리 역사상 3.1 운동은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 이상이 잘 조화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일제 하 우리 민족의 불행과 수난의 근본 원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에서 기인하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는 아직도 연약한 요람기에 있었지만, 기독교인들은 민족의 선각자로서, 온 정열을 민족의 개화, 그 후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저항하여 싸웠다. 송 건호에 의하면 "3.1 운동 때까지만 해도 조선 민족의 항일 세력의 본거지 하면 그것은 기독교였다. 일제가 105인 사건을 조작해 무고한 수많은 기독교인을 체포, 고문, 학살한 것도 항일세력인 기독교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33인 대표를 비롯해서 전국적으로 앞장서 일제와 투쟁한 것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도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이다 ".) 송 건호, "일제하 민족과 기독교", 가사연편, 민족주의와 기독교, p. 88.

실제로 기독 교회의 이념적 확신과 역사 의식, 그리고 전국적인 조직을 가진 교회의 통로가 없었다면, 3.1 운동의 전국적 확산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 발발의 점선이 교회 산재의 지형도와 중복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의 반수인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유 관순은 그 당시 감리교인 이었다), 일제 진압 과정에서 피해자의 30%가 기독교인이었으며, 만세 운동의 궐기 회집 장소도 대부분의 교회당이었다.) 3.1 운동에서 기독교가 차지한 역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시오. 이 만열, "3.1 운동과 기독교",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7호(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7), pp. 15-17.

3.1운동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는데, 그것은 단순히 한 민족의 구성원으로 참여한 것이라기 보다는 확실한 기독교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참여한 것이다.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신앙과 민족 사랑을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한 예로 이미 모세, 삼손, 다윗, 다니엘의 사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대비하고 있던 한국 기독교인들은 3.1 운동의 만세 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 <독립단 통고문>을 뿌렸다. 내용은 1) 매일 3시에 기도하고, 2) 주일은 금식하고, 3) 매일 성경을 읽는데, 월요일에는 이사야 10장(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에는 예레미야 12장(유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기 때문'), 수요일에는 신명기 28장(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받아 고통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에는 야고보서 5장(고난 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할 것을 권면), 금요일에는 이사야 59장(죄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에는 로마서 8장(성령이 주시는 생명,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다') 등이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족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킨 선인들을 엿보게 된다.) 이 만열, "3.1 운동과 기독교", p. 19.

그러므로 3.1운동은 기독교 신앙과 민족적 양심이 결합하여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기독교인의 민족의식의 성격은 기독교 신앙이 정의, 자유, 평화에 기반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과 확대에 둘 수 있다면, 민족적 양심은 자주, 평등, 해방을 목표로 한 독립국가, 민족자주의 건설에 있었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는 접점에 3.1 운동에 참여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민족주의 신앙'이 서 있는 것이다.) 이 만열, "3.1 운동과 기독교", p. 20.

요약하면, 3.1 운동은 민족운동이면서 인류양심의 회복, 인류의 공동선을 추구한 운동이었다. 당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민족을 핍박한 일제에 대한 항거이자, 폐쇄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인류의 보편적 진리에 접근하려는 운동이기도 하였다. 또한 3.1 운동은 당시 남녀, 연령, 종교와 이념, 지역을 초월한 일치된 정신으로 민족독립을 쟁취하려 하였던 운동이었다. 이 같은 정신은 50년이상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 민족으로 남아 있는 조국에 그 평화통일의 토대를 구축하는 정신적 기저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6. 한국 기독교의 나아갈 방향

민족을 떠난 종교는 살수가 없다. 한국 기독교는 먼저 한국 민족 공동체를 섬기도록 보냄을 받아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모세와 예수, 바울이 그러했던 것과 같이 뜨거운 민족애가 있어야 하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한국 교회는 민족 통일에 관심하고, 전쟁을 반대하며 이 세상의 평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민족을 구원하는 교회로, 더 나아가서 세계 평화를 구체화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교회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먼저 한국 교회는 교회 연합과 일치 운동에 적극 협력하여야 한다. 한국 교회는 우리 민족과 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분열로 인하여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으며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많이 상실하였다. 3.1 운동 당시 우리 기독교는 장로교와 감리교, 더 나아가서 타종교와도 연합하여 민족의 독립 운동을 선도하였으며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시대에 민족 통일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한국 교회에게 가장 먼저 요청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러한 연합과 일치의 정신이다. 한국 교회는 교파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루는 데 노력해야 하며, 연합을 통하여 대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 교회는 분단된 우리 민족을 둘러싸고 있는 국제 정세를 주체적 입장에서 올바로 이해하고 이에 적극 대응하며, 민족의 평화 통일을 이루는 데 노력해야 한다. 남한 사회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분단 이데올로기를 교육하기보다는 하나님 중심적인 통일 공동체의 성격에 대한 교육과 의식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임 성빈, "동북아 평화와 민중의 안보를 위한 한국 교회의 역할과 과제", p. 7, 기독교 사회 연구원 자료집(www.jpic.org). 하나님 중심적인 언약 공동체란 그 공동체 구성원이 모두 하나님의 피조물이자 자손들임으로 모두의 존재 가치가 무한히 귀중하다는 사실에 기초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 통일 공동체는 국수주의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세계 공동체를 품는 역사적, 민족적 비전과 함께, 통일 공동체 구성원들의 존엄성을 평등하게 반영하는 내용을 담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한국 교회는 북한에 대하여 핵을 포기하도록 요구함으로써 한반도를 비핵화 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핵 문제는 한민족을 공멸로 몰아가는 매우 위험한 요소이다.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고 우리는 남북한간의 대화를 계속하며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일방적 주장(예: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정책)에 동조하기보다는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한반도의 핵문제를 평화적이고 자주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는 민족주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복음의 진리인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전쟁을 반대하고 세계 평화와 정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지난 2003년 2월 13일에 발표된 반전 평화기독연대(준)의 성명서는 하나의 좋은 예가 된다. 이 성명서는 미국에 대하여 1) 이라크에 대한 모든 군사적 행동을 중단할 것, 2) '한반도의 핵 위기' 조장을 중단하고 남북한의 평화 정착을 위해 적극 나서 줄 것, 그리고 3)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해 세계 국가들과 공동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열강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하며 복음의 진리를 수호하고,  세계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소수민의 인권을 옹호하는 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는 성서의 가르침이 항상 작은 자들의 유익을 먼저 의식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약자와 소외된 이웃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 교회는 요즈음 문제가 되고있는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레 19:33-34) 라고 말씀하고 있다. 지금 우리의 땅에서 차별 받고 학대받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직면하여 그들을 나의 형제처럼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


 "민족주의와 하나님나라"
                                                              
                              한명수 목사 (예장 합동 총회장)


민족주의란 민족의 통일 독립을 자주적으로 꾀하려는 사상과 운동을 말하는 것으로써 이 내쇼날리즘은 손문(中)의 삼민주의로써 민족, 민권, 민생을 이끄는 의미로도 이해되며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기독교도의 시각으로 이 민족주의를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하나의 숙제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들의 관심의 대상인 현실적 문제와 국제문제 등에 준하여 지난 3.1절 행사 등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주어진 시간을 메워 보려고 한다.
우선 바울사도의 민족애를 표현한 말씀인 로마서 9장 3절의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한 표현은 오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음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조국이 남북으로 동강나 있고 민족이 헤어져 살아야 하고 한나라라고 말할 수 없는 두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비극적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이 국제 정치의 틀 속에서 조국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까를 고민해 본 때도 없었으리라.
혈맹관계라고 하는 한미동맹관계와 동족인 남과 북의 관계며 지대한 영향을 미칠 북미 관계 등, 또는 한국과 조선과 미국 등의 삼국관계는 매우 중대하면서도 복잡한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요즘 여러 신문사의 기자들로부터의 질문이 "북쪽은 적성국이고 우리의 주적인데 어떻게 생각하며 동시에 미국은 6.25때 우리를 도와 준 혈맹이고 전쟁이 나면 우리를 도와 줄 나라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미국과 조선을 비교하는 듯한 질문을 받게 된다. 그때 나는 민족과 동생사이에서 고민중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우리나라의 긴 역사를 다 얘기할 수도 없고 또 다 구체적으로 연구한 바도 없거니와 짧게 일제식민지 통치하에서의 역사를 보면 1910. 8. 29.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된 것은 당시 학무대신이던 이완용이 원덕엽을 시켜 어새를 날인케 하여 반강압에 의한 합방조약을 발표함으로서 식민지 정책이 시작된 것임을 우리는 역사의 기록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때는 한일합방 5년 전인 1905년 10월 가쓰라 테프트 협정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의 특사로(육군장관) 일본의 가쓰라다로와 밀약을 맺고 일본의 조선을 지배하고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묵인하고 일본은 필리핀에 대하여 침략하지 않고 미국의 지배하에 둔다는 상호협정은 우리나라 지배의 원초적 원인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5년 뒤인 1910. 8. 29. 한일합방조약이 체결되었으며 바로 그 당사국인 미국의 제28대 대통령이 된 윌슨은 한일합방이후 8년 뒤인 그러니까 제 1차 세계대전 말기에 민족자결주의원칙 14개 조항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모든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에 대하여 간섭을 배제하며 인간이 개인적으로 날 때부터 기본권이 있는 것처럼 민족 공동체도 민족자결권이 있음을 선언하였고 기미년 3.1운동도 당시 팽배했던 이 같은 민족자결사상에 고무되어 일어난 하나의 독립운동이라 할 것이다.
모든 나라가 그랬고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미국의 이 같은 두 얼굴이 조선의 식민지화의 일역을 했다는 사실 앞에 오늘의 현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보여진다.
오늘의 분단 조국 역시 제 2차 세계대전 전 강대국이었던 미국과 소련 그리고 영국과 중국의 합의에 의한 외세로 북위 38도선이 갈라진 것이며 우리가 갈라놓은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금년 3.1절만해도 남남갈등이 유감스럽게 보여졌거니와 그때 한편에서는 반핵 반김 등을 외쳤고 다른 한편에서는 남북공조를 내세웠으나 이것 역시 남북의 대치상황이 좋아졌다는 본질적 행사라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는 약소민족의 비애를 씹으면서도 기미년 때도 친소파, 친청파, 친일파가 있었듯이 오늘도 불가피성을 내세우기는 해도 사대주의 사상에 물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물론 우리의 문제를 밖으로 만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며 지나 이조 500년의 사색당쟁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오늘의 남북관계는 북미문제와 한미 사이에서 국제정치의 역학적 틈 바구니사이에서 자주성을 잃지 않으면서 지혜롭게 풀고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숙제들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사회가 여러 면에서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걱정스럽다.
오늘 주최자들이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라는 주제를 설정하여 주었거니와 그 본래의 의미가 학술토론의 장이라기 보다는 오늘의 분단조국의 현실을 해결해 보려는 주제인 것 같기에 나역시 제한된 의견만 말하려고 하려니 본질문제에 소홀한 것 같으나 넓은 이해를 바란다.
그간 한국교회도 진보와 보수로 갈렸었고 분열의 긴 터널을 건너왔던 것이 사실이고 지금도 끝난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갈등이 내비쳐지기 시작한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여기에 참고 삼아 인터넷에서 뽑은 민족주의에 관한 자료를 제시코자 한다.

民族主義(nationalism)

사람들은 누구나 민족국가(국민국가)에 대하여 최고의 충성심을 품게 된다는 신조.

국가가 국제정치적 원칙이나 개인 수준의 이해관계보다도 더욱 큰 중요성을 갖는다는 주의로서 정책이나 사상체계라기보다는 정치적 견해라고 할 만하다. 역사적으로는 자기 민족을 다른 민족이나 국가와 구별하고 그 통일·독립·발전을 지향하는 사상 혹은 운동이며, 정치적으로는 민족을 사회공동체의 기본단위로 보고 그 자유의지에 의하여 국가적 소속을 결정하려는 입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일민족(一民族) 일국가(一國家)의 원리를 주장하는 이러한 민족주의는 자각적 민족의식이 성립한 근대 이후의 현상으로서 시민적 자유주의와 궤를 같이한다.

장 자크 루소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는 초기의 민족주의 사상가로 유명하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를 연구하고 깊이 자극된 루소는 인간의 정치성향과 종교적인 추구 사이의 괴리를 메꾸기 위해서 정치적 공동체가 모든 생활양태의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고, 전시민이 일반의지(volonte generale)의 형성에 참여해야 하며 동시에 정치체제는 공동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므로 공동체의 특수성을 온전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헤르더는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서 받아들인 뒤,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핵심 요소로서 민간전승과 민족적 전통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편 후대의 M. 헤르츠는 고전적 민족주의를 '나치오니스무스'(Nationismus), 확장적 민족주의를 '나치오날리스무스'(Nationalismus)로 구분한 바 있는데, 20세기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의 식민지 민족주의는 전자를,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 분할정책은 후자를 대표한다.

민족주의는 근대적인 운동이다. 그 생명력과 광범위한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유서깊은 사조이고 정치행태의 불변적 요소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지만 실제로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을 기하여 비로소 만개했다. 19세기는 유럽에서 민족주의의 시대로 불리었다. 남아메리카의 신생국들이 민족주의를 받아들인 뒤 19세기 초엽에는 중부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중반기에는 남·동유럽으로 번져나갔다. 20세기의 민족주의 운동은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서 치열한 투쟁양상을 보였다. 18세기가 되기까지 국가나 영토는 민족성에 따라서 규정되지 않았고 사람들은 도시국가, 봉토·영주·왕조국가·종교단체·교파 등에 묶여 있었다. 민족국가의 개념은 역사상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으며, 과거에는 이상적 국가형태로 서술되지도 않았다. 15세기에 걸친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이상의 모습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보편적인 세계국가였지 분할된 정치단위가 아니었다. 로마 제국은 중세에 신성 로마 제국으로 명맥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그리스도교 공화국 혹은 공동체)의 개념 속에 살아 있었으며 세속화가 진행된 뒤에는 '일치된 세계문명'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치단위가 민족성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던 것처럼 문명의 측면에도 다양한 민족성이 발현될 수 없었다. 중세에는 그리스도교 세계나 이슬람 세계에서나 오직 한가지 색깔을 가진 문명이 존재할 따름이었다. 내용이 고대의 그리스 로마 문명으로 바뀌었을 뿐 르네상스와 고전주의시대에도 이와 같은 일원성은 변함이 없었으며, 이후로는 프랑스 문화가 지성인들에게 일반적인 호소력을 가진 시대도 있었다. 18세기로 접어들면서 교육은 오직 모국어로만 가능하다는 생각이 나타났다. 고전어나 고도의 문명을 이루었던 민족의 문예적 산물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18세기가 끝날 무렵 교육 및 공공생활의 민족주의화 경향은 정치적 충성의 범위를 넘어 민족적 차원으로 나아갔다. 문화적 민족주의를 처음으로 입에 담았던 시인·학자들은 자국어(속어)를 개척하여 문어체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족의 전통들을 하나하나 탐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정신을 물려받은 민중들은 장차 민족국가의 형성을 요구하게 된다. 18세기 이전 일부 세력들 사이에서는 민족적 감정이 생성되었고 특히 갈등이 빚어졌을 때 두드러졌다. 정치적으로 중요성을 띠는 민족감정의 발흥에는 복잡다단한 사태의 진전이 배경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 절대군주가 등장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지방 분권주의(分權主義)를 타파하고 영토확장과 함께 중앙집권적 국가를 탄생시켰으며, 둘째, 생활 및 교육의 세속화가 진행됨에 따라 자국어가 유행하고 교회와 종단의 구속력이 약해졌으며, 셋째, 상업이 발전됨으로써 중산 시민계층과 자본주의적 기업형태를 창출해냈다. 정치적·경제적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영토적 통일국가에는 중세의 종교운동에 견줄 수 있는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고 국가의 중심으로 자처하고 있던 군주는 국민주권 이론과 인권사상에 밀려났다. 군주는 더이상 민족이나 국가가 아니었고 국가는 국민의 국가, 민족적 국가, 조국이어야 했다. 국가는 민족과 동일시되었으며 문명은 민족적 문명을 의미했다.

이러한 발전양상은 2,000년 이상 정치사상을 지배해왔던 기본적 관념들에 배치되었다. 인간이 통상 보편성을 강조하고 일치와 화합을 바람직한 목표로 상정해왔던 반면, 민족주의는 특별하고 국지적인 것들과의 차이, 민족의 개체성 등을 내세웠다. 그러나 초기의 민족주의는 좋지 않은 면들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다. 보편적 인간성, 인간 통성(通性)으로서의 이성에 대한 신뢰, 그리스도교와 스토아 철학의 전통 등 서유럽 문명의 공통된 기준들은 17~18세기에 확실하게 살아 남았고 민족주의로 인해 사회공동체에 혼란을 가져오는 상황을 막아냈다.
특히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고전적 민족주의'는 세계시민적 신념이나 인류애와 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유럽의 민족주의

근대 민족주의는 17세기 영국의 청교도혁명에서 처음 발현된다. 영국은 과학정신·자본주의·정치사상 및 현실정치의 측면에서 선두적인 지위에 있었다. 혁명이념에는 낙관적인 인문주의(人文主義)와 칼뱅주의 윤리학이 뒤섞여 있었으며 〈구약성서〉의 영향을 받아 영국 국민을 고대 이스라엘 민족과 동일시하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성립시켰다. 영국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새로운 것이었던 혁명의 메시지는 존 밀턴의 저작을 통하여 표현되었다. 밀턴의 자유관은 "자유가 꽃을 피운 곳으로 영원히 이름을 떨칠" 영국으로부터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갔다. 17세기 영국 민족주의는 후대에 나타난 세속적 민족주의보다 종교적인 성격이 짙었으며 상업에 종사하는 중산계층의 성장에 호응하는 것이었다. 존 로크는 영국 민족주의의 정치철학을 집대성했고 18세기 미국 및 프랑스 민족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영국 이민들은 청교도혁명의 전통과 로크 사상 및 프랑스 철학자들이 영국의 자유주의를 해석하는 데 사용한 계몽주의(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식민지인들은 자유와 인권을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민족(국민)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한편 이들의 고투는 당시의 정치사상에 근거한 것이기도 했는데, 특히 토머스 제퍼슨이나 토머스 페인의 역할이 컸다.
미국이 자유·평등·행복을 지향했던 선봉으로 평가되는 것은 그 자유주의적·인도주의적 민족주의 때문이다. 18세기의 시대정신은 미국 독립선언과 미합중국의 탄생을 통하여 최초의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장 자크 루소는 국민주권과 민족의지를 형성하는 구성원 전체의 협력을 강조하고 일반 대중을 진정한 문명의 주체로 간주함으로써 프랑스 민족주의에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지만, 프랑스 혁명에서 드러난 민족주의는 보편적 인간성과 자유로운 진보에 대한 이성적 믿음의 표출은 루소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널리 알려진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이념 및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프랑스 국민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하여 호소력을 지니는 것으로 모든 자유민주주의적 민족주의의 공통분모가 되었다. 축제와 깃발들, 음악, 시, 국경일, 애국적인 설교들이 프랑스인의 삶 곳곳에서 피어났다. 혁명적 민족주의는 민족의식의 형성에 있어서 개인의 의사를 강조했다. 국민국가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행위에 의하여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국민투표가 국민의사의 표현방식으로 채택되었다.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는 사회진화사상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세계공동체를 추구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유럽 전역과 근동지역에까지 파급시켰으며, 이무렵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남아메리카 여러 국가들이 민족주의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정복욕은 주변 민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는데, 특히 독일의 지성인들은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원리 및 민족주의 자체의 자유주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성격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독일 민족주의는 이성보다 본능에 주목했고, 정의로운 질서를 향한 이성적인 추구에 반하여 역사적 민족전통의 힘을 강조했다. 그들은 인류공통의 소망보다는 민족간의 차이에 주목했고 프랑스 혁명의 자유주의·평등주의는 궁극적인 사회질서가 자리잡기 전 잠시 겪게 되는 도착증세 정도로 간주되었다. 19세기의 세계사 전개과정은 독일적인 민족주의 해석이 오류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유주의의 색채는 더욱 확연해졌고 중산계층, 프롤레타리아 계급에 속하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1848년 2월혁명의 여파로 주세페 마치니를 비롯한 민족주의 운동가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는 듯이 보였다. 마치니는 민주주의적인 방법에 따라 조국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룩하고 모든 민족들이 형제애로 결속되기를 염원했다. 비록 당장의 결실을 보지는 못했지만 1859~71년의 12년 사이에 이탈리아와 루마니아의 통일이 성취되었고 1860년대에는 러시아와 스페인에서까지 자유주의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독일의 비스마르크는 자유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되돌려놓은 인물이었다. 비스마르크의 독일 통일과업은 보수·권위주의에 바탕을 둔 것으로 독일 내 자유주의 세력을 말살시켰다. 19세기 후반 합스부르크 왕가의 다민족 제국(오스트리아 제국)과 술탄이 지배하는 오스만 제국이 와해되기 시작했다. 한편 러시아 민족주의는 2갈래로 나뉘었는데, 일단의 민족주의자들이 자유적·진보적인 유럽 국가들과 제휴하여 러시아의 서구화를 주장한 반면, 다른 세력은 러시아의 자주성과 그 전체적·정교회적(正敎會的) 전통에 기인하는 특수한 운명을 강조했다. 독일 낭만주의 사상에 힘입은 이러한 친슬라브파는 러시아를 자유주의와 미국·프랑스 혁명으로 잠식당한 서유럽 세계의 구원자로 조명하고 있었다. 19세기말 제국주의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민족주의의 반동화(反動化)는 점차 심화되어갔다. 1870년대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종말을 고했던 1914년까지는 유럽의 각 민족국가가 자본주의에 의한 세계발전을 추구하여 제국주의적 영토분할과 식민지 경략에 치중했던 기간이었다. 제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임과 동시에 그 발전이라 할 수 있었다. 민족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면에서는 민족주의의 부정임에 틀림없었으나, 민족의 힘을 과시하고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었으므로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부르주아지는 민족주의를 최대한 이용했다. 그들에게 민족주의는 대외침략과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하고 약소민족에 대한 압제를 합리화하며 식민지 주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적인 근거로 생각되었다. 반동화는 20세기의 1920~30년대에 걸쳐 파시즘이 대두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하에서는 개인의 자유·평등·인간성의 가치가 부정된 반면 국가나 민족이 절대시되고 민족적 이기주의와 침략전쟁이 신성화되었다.

아시아에서 반동적 민족주의를 발전시킨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프로이센과 비스마르크의 영향을 받아 천황제(天皇制)라는 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천황·귀족·지주 중심의 민족주의를 전개했다. 일본은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자본주의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킴과 동시에 대규모 침략전쟁에 나섰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이니 '세계무비(世界無比)의 국제(國制)'니 하면서 그것을 지킨다는 구실 아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었으며 침략전쟁에는 이른바 성전(聖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비롯된 중요한 결과 가운데 하나는 중·동부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승리를 거둔 일이었다. 합스부르크·로마노프 왕조의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 등 새로운 민족국가로 재편된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신생국가에서는 소수민족간의 갈등이 초래되고 밖으로는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외부민족들과 분쟁을 겪게 되는 등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러시아의 민족주의는 1917년 레닌이 볼셰비키를 이끌고 차르 체제를 전복시킴으로써 부분적으로 탄압을 받았으나 곧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기치 아래 민족주의 정책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추축국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민족·애국주의를 호소했던 스탈린은 전쟁이 종식되자 민족주의가 동유럽에 대한 공산세력의 확장에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위 민족공산주의는 소비에트 블록에 균열을 가져왔다. 1948년 크렘린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를 변절자라고 비난했다. 1956년 가을 폴란드·헝가리의 반소폭동에서 발현된 민족주의운동은 이내 루마니아·체코슬로바키아로 이어졌으며 1980년에는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으로 꽃을 피웠다.

이상으로 인터넷에서 뽑은 민족주의에 관한 자료이거니와  본란에서 '민족주의와 하나님 나라'라고 할 때 본질론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냐? 아니면 인간(Homo)이냐의 문제등의 하나님의 선교가 아닌 지상 성도들이 민족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며 그것이 남북관계와 통일의 민족적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보존하며 그것이 남북관계와 통일의 민족적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하여야 하느냐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독교는 민족주의를 이해함에 있어서 편협된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라고 하는 협의적 개념이 아닌 사해동포주의적인 개념으로써의 입장에서의 나라사랑과 모든 민족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사랑하여야 할 것이다.

시간관계상 말을 마치려함에 있어서 몇 가지의 우스게 섞인 예를 들으므로 마감하겠다.

1. 대국정신에 젖은 중국인이 한국에도 달이 있느냐?
답 : 있기는 있는데 중국달 보다는 아주 작다.

2. 한국인을 야만인으로 보고 있는 일본인이 한국에는 화장실이 없지?
답 : 우리는 똥 같은 더러운 것은 안 싸고 산다.

3. 인종차별주의자인 백인이 왜 그렇게 한국인이 피부색이 누러냐?
답 :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들어 주었는데 백인은 덜 구워서 하얗게 되었고 흑         인은 너무 타서 그랬고 황인종은 아주 잘 구워진 것이다.

4. 누구의 말인지는 몰라도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사람 일어난다. 조선사    람 조심하라고 하는 소리는 명언처럼 들린다.

끝으로 어떤 명분으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은 없어야 하며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가인의 후예는 없어야 하겠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도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하겠으며 북미관계와 한미관계 및 남북 관계등도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두 여학생의 미군전차에 의한 사망 후에 불거진 한미관계도 최소한 대 나토와 독일 및 일본과의 소파협정과 같은 상호평등관계로 속히 개정되어야 하며 종속관계처럼 보여지는 일체의 협정내용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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