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에서 ‘고난’의 의미
-순교자 신석구 목사의 가난과 고난 목회를 중심으로-

이덕주(감신대 교수/ 한국교회사)

1. 변선환 박사의 ‘신앙의 아버지’

어느 정도 한국 교회사에 식견을 가진 사람이면 신석구(申錫九, 1875-1950) 목사 정도는 안다. 신석구 목사는 한국 감리교회 초대 목사 중의 한 사람으로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1인으로 참여하여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에 시골의 가난한 교회들을 돌며 목회하였으며 일제말기 신사참배 문제가 나왔을 때 이를 거부하고 수차례 검속당해 고난을 받다가 결국 진남포 용강경찰서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북한에 수립된 공산 정권의 회유와 협박에 굴하지 않고 ‘민족주의’노선을 지키다가 마침내 ‘반동결사’ 조직 혐의로 체포되어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용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전쟁이 터져,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탈환하기 직전 후퇴하는 공산군에 의해 피살되었다. 이처럼 신석구 목사는 한국 교회사에 신앙과 민족 양심을 지키며 순절의 삶을 산 몇 안 되는 ‘올곧은’ 목회자로 기록된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을 역임했고 1991년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강의하였다는 이유로 감리교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목사직에서 파면당한 변선환(邊鮮煥, 1928-1995) 박사가 유일하게 ‘신앙의 아버지’로 불렀던 인물이 바로 신석구 목사다. 해방될 당시 변선환은 수재만 다녔다는 진남포공업학교를 나와 가장 촉망받는 직장이었던 남포제철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한복 차림에 흰 수염을 휘날리는 ‘70노인’ 신석구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바로 이거다!” 하고 직장을 때려치우고 목사가 되기 위해 평양으로 올라가 성화신학교에 들어간 것이다. ‘목사’ 변선환은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신학생 시절 변선환은 종종 신석구 목사와 동행해서 평양과 진남포행 기차를 탔는데, 그 삼엄했던 공산당 시절, 신석구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기차간에서도 큰 소리로 “예수 믿으라!” 고 전도하여 젊은 신학생은 모골이 송연하였다 한다.
변선환 박사는 자신의 토착화 신학과 종교다원주의 신학의 연원을 설명하면서 종종 신석구 목사를 언급하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신석구 목사님의 위대성은 종교와 정치와의 관계보다도 오히려 복음을 동양종교의 콘텍스트 속에서 해석하여 변증하려고 하였던 데 있었다. 동양종교와의 대화 속에서 증거되는 그의 설교는 동양적 신학 또한 한국적으로 토착화된 신학의 원형이다.”

변선환 박사가 이처럼 신석구 목사를 “토착화 신학의 원형”이라고까지 언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동양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한복 ‘수목 두루마기’를 고집하는 ‘한국적’ 문화의 삶을 배경으로 한 것만은 아니었다. 신석구 목사 자신이 동양 종교에 대해 갖고 있는 신학적 입장 때문이었다. 신석구 목사는 1917년 감리교 협성신학교(현 감리교신학대학교) 기관지 <신학세계>에 “信으로 得救하는 道理를 論함”이란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소위 ‘이신칭의’(以信稱義)로 일컬어지는 구원의 교리에 관한 논술이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타종교와 기독교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진술하였다.

“然則 簡略히 斷言컨대 他敎는 人으로 하야곰 罪를 覺케 하야 예수끠로 紹介하는 蒙學先生이오 예수는 人을 罪에서 救援하시는 眞道이니 人이 萬一 罪를 覺悟케 하난 道를 縱하야 其 敎示한 바 摩西[모세]曰 律法冊에 記錄한대로 凡事를 恒常 行치 아니하는 者는 咀呪하는 下에 在하다 함과 孔子曰 罪를 天에 獲하며 禱할 배 無하다 하는 嚴訓을 信하면 다만 上帝의 震怒하시는 下에 在하야 恐懼戰慄할 而巳오 罪에서 救援하시는 道를 縱하야 其 敎示하신 바 我가 義人을 召하러 來한 것이 아니오 罪人을 召하러 來하엿노라 하신 福音을 信하면 平安함과 所望이 有하나니 何道를 縱하겠나뇨.”

신석구에게 동양에서 유교는 예수님 시대 유대교(모세의 율법)와 같은 의미였다. 유교는 동양인을 ‘참 도’(기독교)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종교는 기독교 구원에 이르는 ‘예비 은총’(prevenient grace)이었다. 이는 타종교를 이단이나 우상으로 해석하여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배타적(exclusive) 개종주의 입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신석구의 신학적 입장은 타종교와 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며 궁극적으로는 기독교에로의 개종을 목적으로 한 포괄적(inclusive) 성취론자였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변선환 박사가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pluralism)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타종교에 ‘열린 자세’를 취하였던 신석구의 타종교 이해를 자신의 토착화신학 내지 종교간 대화신학의 ‘선행 근거’(preliminary supposition)로 삼은 것은 당연했다.

2. 가난과 고난의 십자가

이처럼 신석구 목사가 변절과 배반, 갈등과 혼돈이 끊이지 않았던 일제의 식민 통치와 해방 직후 시대를 살면서도 신앙과 신학, 목회와 민족운동에서 일관되게, 열린 자세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올곧은 성품과 투철한 민족의식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후 지속적으로, 깊이 있는 종교 체험을 한 것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친구의 전도를 받고 개종을 결심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세례 받고 교인이 된 후, 그리고 목회와 민족운동 현장에서 그는 수시로 ‘주님의 음성’을 듣고 개달음을 얻는 신비적 종교체험을 함으로 신앙의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다른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수난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신석구 목사가 평생 삶을 통해 풀어야 할 과제는 ‘가난’과 ‘고난’, 두 가지였다. 이 둘을 하나로 엮은 것이 곧 ‘십자가’였다. 경제적 가난과 육체적 고난은 그에게 ‘십자가’ 체험으로 다가왔다. 3․1운동 때 2년 반 옥고를 치렀고, 일제말기 신사참배를 거부한 혐의로 천안 경찰서에 6개월 옥고를 치렀고 진남포로 옮겨 간 후에도 일제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검속되어 용강경찰서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에도 고난은 계속되어 공산 치하에서 결국 ‘옥중 순교’로 삶을 마감했다.
그리고 가난은 그의 어린 시절부터 예수 믿기 전 ‘벗을 수 없는 굴레’였고 목회자가 된 후에도 그의 가족은 ‘극빈’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일제말기부터 그는 생식을 했는데, 그것은 요즘같이 여유 있는 자들의 건강식이 아니었다. 그는 시골 가난한 교회들만 맡아 목회하였는데, 심방할 때마다 가난한 교인들이 목사 대접하는 문제로 고심하고, 심지어는 심방을 받고 싶어도 대접할 것이 없어 심방을 요청하지 못하는 교인들을 보고는 생식하기로 결심했다. 곡식 가루를 싸 들고 다니다가 끼니때가 되면 가루를 물에 타 먹으며 “난 생식하는 사람이오.” 하니까 그제서야 교인들이 ‘목사 대접’의 부담감을 덜게 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목회자였다.
신석구 목사에게 ‘가난’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십자가’ 은혜를 체험하는 통로였다. 신석구 목사는 1949년 무렵 후배들의 요청으로 회고록을 썼는데, 그 가운데 ‘경제문제’란 제목으로 한 장을 설정하여 자신의 ‘가난’ 체험과 그로 인해 받은 은혜를 진솔하게 진술하였다. 뒤에 읽을 “십자가에 대한 명상”과 연결되는 내용이기에 그 전문을 소개한다.

“경제문제(經濟問題). 이 문제에 대하여는 교역 생활 하는 이가 빈곤치 아니한 이 누가 있으리오마는 그 어려운 중에서 은혜도 받고 시험도 받은 것이 있기로 대강 기록한다. 홍천(洪川)에 있을 때 봉급은 12원 50전인데 5인의 가족이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여 오다가 갑자기 4인이 더 첨부하게 되매(매부 가족이 반이[搬移]하여 옴) 예산 막연하여 얼마동안 우심중(憂心中)에 있었다. 1일은 주님의 음성이 들린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 됨을 믿으면 왜 생활난으로 근심하느냐. 하나님께서 모든 죄인도 먹여 살리시는데 어찌 아들을 먹이지 아니하시겠느냐?’ 이 말씀을 들으매 나의 신심(信心)이 부족함을 자복하는 동시에 일변으로 ‘오- 아버지께서 나를 살리시리라’ 하는 용기를 얻어 그 후부터는 생활난으로 근심치 아니하였다. 춘천(春川)에 있을 때 한번은 나와 두 친구가 한 자리에 앉아 있는데 교분으로 말하면 3인간에 별차별이 없는데 친구의 생활은 나보다 유족하다. 그런데 3인이 동좌(同坐)한 좌석에서 양인간(兩人間)에 미미담소(娓娓談笑)함과 나에게 대한 냉정한 태도를 볼 때에 내 마음은 심히 격동함을 받아 그 자리에서 물러 나와서 하나님 앞에 나에게도 생활의 요족(饒足)함을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참 부끄러운 기도요 어리석은 기도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응답하시기를 ‘내가 너를 부요하게 하려고 부른 것이 아니오 나의 일을 하라고 불렀다.’ 하셨다. 나는 이 응답을 받으매 너무도 감격하고 너무도 기뻐서 나의 받은 직분이 얼마나 고귀함을 깨닫는 동시에 빈한한 것이 나의 본분임을 깨달아 50세까지는 거의 장기를 잡고 뒤를 도라보지 아니하고 나갔더니 50세 이후부터 나의 심중에 시험이 들어온다. 교계(敎界) 점점 지식적(智識的)으로 나감으로 나 같은 무식계급(無識階級)은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사세(事勢)로 지금까지 일간두옥(一間斗屋) 일평토지(一坪土地)도 준비가 무(無)하니 장차 어찌할까. 무슨 부업(副業)도 해보랴고도 하고 가공(架空)의 옹산(瓮筭)도 하여보았으나 실행은 그만두고 생각만 하여도 교역(敎役)에 방해됨을 깨달아 그런 사념(思念)을 쳐 물리치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무슨 기회만 있으면 악마의 유혹은 다시 침입하여 어디 지나가다가도 산수(山水)나 명랑한 곳을 만나면 ‘아, 여기나 집이나 하나 짓고 토지나 장만하여 노경(老境)에 안온(安穩)한 생활을 하였으면.’ 하는 공상도 많이 하여 50후 60여세까지 10여 년간은 장기전(長期戰)을 하여 근근 직분을 받들어 왔다. 63세 되던 해 천안(天安) 있을 때 어느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보는 중 신성기도(晨醒祈禱, 새벽기도) 중 이런 음성을 들었다. ‘내가 네게 좋은 집을 주니 아니하고 내가 지던 십자가를 주었다.” 하신다. 나는 이 음성을 들을 때 너무 감격하여 많이 울었다. 내가 어찌 감히 주님의 지시던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 이는 나의 영광 중에 가장 큰 영광이다. 다른 사람은 십자가를 괴로운 것으로 알른지 모르나 나에게는 영광의 십자가이다. 그 후에도 간혹 악마의 유혹이 들어왔으나 십자가로 쳐 물리쳤다.

‘십자가에 가까이 의지하고 서서
게서 천당 가도록 항상 머물겠네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세상 지나갈수록 무한 영광일세.’”

3. 감리교신학교 수양회에서 행한 ‘십자가’ 설교

평생 자기 집 한 칸 없이 가난한 목회자로 가난한 교회만 돌보다가 결국 남의 집(평양교화소)에서 숨을 거둔 신석구 목사. 젊은 시절엔 그래도 “주님의 일을 하는데 가족을 굶기시겠나.” 하는 오기로 목회에 전념할 수 있었지만 나이 50이 넘어 은퇴가 가까워 오자 순간순간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이 엄습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63세 되는 해, 자신이 담임하고 있던 천안읍교회 부흥회 때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 “내가 네게 좋은 집을 주지 않고 내가 지던 십자가를 주었다.”는 음성을 듣는 순간, ‘주님의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얻었다는 감격과 함께 가난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체험을 통해 신석구 목사는 비로소 ‘가난’으로부터 해탈! ‘가난’을 사랑하게 되었다. ‘가난’은 그에게 ‘바울의 몸 속 가시’(고후 12:7) 같이 은혜의 통로였다.
이 같은 ‘십자가 체험’이 있은 직후 그는 서울 감리교신학교 학생 수양회에 강사로 초청받았다. 그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를 주제로 삼은 것이었다. 십자가 은혜로 충만한 상태에서 토해내는 그의 설교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감동으로 전달되었다. 그 때 하였던 설교 한 편이 신학교 기관지 <신학세계>(1937년 3월호)에 “십자가에 대한 명상”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6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의 글은 여전히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국 교회사를 공부하면서 읽은 여러 글 중에 감히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를 대표하는, 혼과 맥이 살아 있는 명문장’이라 할만한 글이다. 이 글 한 편 읽게 된 것만으로도 신석구 목사님께 감사할 일이다.

4. 신석구 목사의 “십자가에 대한 명상”

“나는 십자가에 대하야 내가 스사로 연구해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서서 깨달었다. 하루는 부흥회를 맞추고 내가 내 방으로 돌아가 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아느냐?’ 하셨다. 나는 여기에 대하야 명상했다. 나는 크게 감격했다. 나는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고 감격했다. 이 고난은 말로 다할 수 없다. 사람이 총에 맞어 죽는 것이나 물에 빠져 죽는 것이나 불에 타서 죽는 것은 다 순간적이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고난은 육신으로만 당하신 것이 아니다. 만일 육신의 고난으로만 생각한다면 예수의 십자가를 오해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천지가 창조 된 때부터 지금까지 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다(묵 13:8 이하).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사 십자가 고난을 맛보시기 시작하셨다. 말구유에 탄생하시고 갈보리 산에서 죽으시기까지 일생을 통하사 십자가 고난을 맛보셨다. 예수께서 하루는 말슴하시기를 내가 마땅히 받어야 할 잔이 있어서 내 마음이 답답하다 하셨다(눅 12:50 이하). 내가 일즉이 답답한 일을 한번 당해보았다. 내가 재판소에서 예심으로 있을 때 한 적은 상자 속에 가처서 하루 동안 고생했다. 상자에서 나와서 감옥소로 간즉 내 집에 간 것처럼 평안했다. 넓은 우주를 창조하신 주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삼십삼년간 생활하실 때 얼마나 답답하섰겠나.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실 때 뿐 아니라 서례 받으실 때 고난을 당하셨든 것이다. 무죄하신 예수께서 죄인의 지경에 들어가사 죄인들과 같이 고개를 숙이시고 세례 받으실 때 다른 사람의 비소도 들으섰을 것이오 예수님의 심정에는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분 중 누가 애매히 죄수처럼 붉은 옷을 입고 쇠사슬에 매이고 강도라 강간자라는 누명을 쓸 때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또 어떤 숙녀가 유곽에 한번 들어가서 기생들과 한자리에 앉었다만 나와도 그 수치가 얼마나 크겠는가. 이런 경우에 그 마음에 고통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니 이 같이 예수 죄인측에 드서서 세례받으실 때 당하신 고난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예수님이 삼십삼년간 가난한 생활 하신 것은 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시며 기도하신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아프섰겠나. 찔리지 않으신 이마에서 피땀 난 것은 답답하심이 격렬하야 염통으로부터 난 것이니 가시 면류관이나 창에 찔리사 피를 흘리신 것보다 더 아프신 것이다.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의 고통당하신 것은 다 알 사람이 없다. 예수님의 감각은 보통 사람의 감각보다 더욱 예민한지라 그 당하신 고통도 더 예민하게 깨달으신 것이다. 십자가 아래서는 성모 마리아가 통곡하기를 ‘내 아들아, 네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이 같이 죽느냐. 나는 이제 누구를 의탁하고 살리오, 나는 과부요 집에는 어린 것들이 있는대 어찌할가’ 하섰[다]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해보았다. 내 자식이 죽을 때 나는 심히 애통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또한 그런 고통을 당해보았다. 내 곁방에 한 사람이 사형선고를 받었었는대 나도 그 사람과 같은 죄목으로 가처있었는대 나도 사형이나 당하지 않을까 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이렇게 일주일을 지났는대 판결받기 바루 전에 내 눈은 어두워저서 사호 활자로 된 찬송가를 볼 수 없었다. 내게는 다행히 사형의 판결이 나리지 않었다. 그래서 눈은 다시 밝어젔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갈사록 심했다. ‘아바지여 이 무리ㅡ를 사하야 주옵소서. 저희들이 저희의 하는 것을 아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이하). 이는 예수님의 지극한 고통의 외치는 소리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멸망당할 것을 생각하시고 예수님은 애통하섰다. 사형선고 받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고통 얼마나 클까. 우리가 그런 입장에 있다면 얼마나 슬프랴. 복음 중에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일곱 번이나 말슴하섰다. 예수님의 신령한 눈은 장래를 내다보시는지라. 죄인의 영들이 형벌 받을 것을 미리 아시고 이렇게 말슴하섰고 그네들을 위하야 예수님은 고통을 당하섰다. 이 고통은 예수님의 영원한 고통이다. 이 십자가 고통은 몇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뭇 영들이 다 구원 얻을 때까지 계속되는 고통이다. 나는 예수님이 당하신 이 고통을 일일이 생각하고 크게 감격되었다. 나도 저 불구덩이에 들어가 고생할 것인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영원히 살게 되었으니, 어찌 아니 감사하고 감격되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중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버리심을 당하심이다. 예수 외치시기를 엘늬 엘늬 라마 사박다니라 하섰으니 곧 ‘나의 하나님이어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야 나를 버리시나이까?’ 함이다(마 27:46 이하).
어찌하야란 말은 예수께서 애매히 고난당하심을 말함이오, 버리신다는 말은 악인의 손에 버려두신단 말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늘 말슴하시기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있다고 하섰다. 아버지와 영원한 관계를 가지신 예수께서 버리심을 당하신 것은 신비스러운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 중에 죄를 경솔히 보는 사람도 있으나 참된 신자는 죄를 중히 생각한다. 이는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관계를 끊어지게 하는 까닭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때 우리는 심히 답답하다. 전에 내가 어떤 친구에 틀려서 여러 달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내보았으며 안해와 틀려서 석달 동안 말을 하지 않고 지내도 보았으며 다른 사람에게 대하야 시기와 혐의를 품은 때도 있었다. 이러한 때에 나는 기도할 수가 없었다. 대개 사람과 틀린 것이 있으면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 한번은 내가 부득이 한 사정으로 인하야 어떤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 날 밤에 내가 기도하려 할 때 할 수 없었다. 내 양심이 내게 말하기를 네가 가서 그 사람에게 자복해라 했다. 그 사람은 비기독교인이오 관청 사람이었다. 나는 부끄러워 자복하지 못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새 내 기도는 막혔었다. 그래서 마츰내 그 사람에게 가서 자복하고야 비로소 평안함을 얻었다. 죄인은 내세에서만 지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금세에서도 지옥생활을 한다. 예수께서 외치실 때 내 아버지라고 아니하시고 내 하나님이여 한 것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호소하시는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세상 만민을 대신 하서서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대신 당하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이렇게 명상할 때, 나는 그 은혜에 격동되어서 내 입으로 주를 찬송하는 것이 부족한고로 내 머리 털까지 다 주를 찬송하되 역시 부족해서 내 전신을 주께 바칠 수밖에 없다. 나는 내 구주를 아니 사랑할 수 없다. 우리가 만일 주를 사랑치 않으면 이는 간음죄나 살인죄나 강도죄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예수를 신자가 사랑치 않는 것이 큰 죄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의 십자가를 늘 생각하고 안일된 생활을 취하지 않는다. 대개 우리가 잘 입을 때 주님의 벗으신 것을 잊어버리기 쉽고 우리가 잘 먹을 때 주님의 주리신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안일을 구하지 말고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우리 몸에 채우도록 힘쓸 것이다.”

5. 처음부터 끝까지 십자가 영성

나는 2000년 봄, 신석구 목사 전기를 탈고한 후, ‘후기’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것은 감동이었다. 그리고 아픔이었다. 쓰고 싶은 것을 쓰게 된 감동이었고, 쓴 글에 비추어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견디기 힘든 채찍이었다.”

그 중에도 신석구 목사님이 남긴, “십자가에 대한 명상”은 감격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십자가를 통한 고난 극복의 과정을 읽어나가면서 느낀 기쁨과 감격은 “너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르러 수치와 고통으로 바뀌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바로 신석구 목사님께서 신학교에 다니실 때 생활했던 기숙사 건물(지금 감리교신학대학교의 ‘교수회관’), 바로 그 건물 한 모퉁이 방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제말기, 민족과 교회가 고난의 극점을 향해 치닫고 있던 시절, 이 곳 감리교신학교 언덕으로 올라오셔서 아들 뻘 되는 신학생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십자가’ 설교를 하시던 목사님이셨다. 그 시절 신학생으로 신석구 목사님 설교를 들었던 김만식 목사님의 증언이다.

“부흥회 기간 중 한번은 신 목사님께서 우리 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는 기숙사에 들어오셨어요. 그 때 학생들이 휴게실에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지요.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보신 신석구 목사님은 학생들에게, ‘잡기는 그만 두시오. 그 시간에 성경 읽고 기도하시오. 교회와 민족의 운명이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어요. 기도 많이 하고, 성경 많이 읽어야 여러분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하셨어요. 그분 눈에서 눈물이 주르룩 흐르는 것을 보았지요.”

언제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을지 모르겠으나, 신석구 목사님이 생활하셨던 건물에서, 그 분의 50년 후배인 내가, 그 분의 80년 후배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다 ‘십자가’에 철저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엔 답이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