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 협의회 4월 월례발표회)

         오늘 한국교회의  십자가 의미: 섭리의 신앙

                                  김영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장/ 한복협 신학위원장)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우리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의미를 기복의 신앙이 아니라 섭리의 신앙 안에서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기복의 신앙이란 나 중심의 신앙이나, 섭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이웃을 지향하는 신앙이다.

십자가는 인류가 지은 죄값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죄인을 향한 사랑이 나타난 인류의 대속의 사건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한 인류의 죄삯에 대해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이요 동시에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을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지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오늘날 율법주의자들은 설교 강단에서 하나님의 사랑 없이 인간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심판만을 강조함으로써 십자가 의미를 평가절하한다. 율법주의적 설교는 십자가가 갖는 사랑의 측면을 도외시한다. 이에 반해 보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진지한 언급없이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함으로써 십자가 의미를 제한한다. 보편주의적 설교는 십자가가 갖는 심판의 측면을 도외시한다.
  
1. 두가지 변질된 복음
1) 싸구려 은혜의 복음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가 지배하였던 암울한 시대에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를 집필하였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하여 당시 독일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은혜로 변질시킨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칭의만을 부르짖고 제자됨의 대가를 지불하지 못한 루터교회와 신자들을 책망하였다. 본회퍼는 죄를 짓고도 통회와 뉘우침과 새 삶의 행위가 없는 삶을 영위하는 신자들이 받는 은혜를 “값싼 은혜”(cheap grace)라고 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외치는 복음이 그리스도의 고귀한 은혜를 시장에서 덤핑으로 파는 싸구려 은혜로 변질시키지 않는지 우리는 반성해보아야 한다. 양적 성장만을 위하여 신앙과 헌신없는 신자들을 교회에 등록하도록 하고 직분을 무분별하게 나누어 주는 것은 값싼 은혜의 목회이다. 오늘날 무인가 신학교에 의하여 저질의 목회자가 양산되는 것은 한국교회가 가진 심각한 종교적 내지 사회적 문제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와 18세기 영국의 엘리자베스 시대 처럼 거룩한 직분이 싸구려로 팔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2) 번영과 축복의 복음

오늘날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십자가의 복음 대신에 번영과 행복의 복음이 들어서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 강단에서 외치는 복음이 하나님의 고귀한 은혜에서 번영과 축복의 무속으로 변질되지나 않는가 우리는 다시 한번 반성해보아야 한다. 번영과 축복의 복음은 하나님을 번영과 축복만을 주시는 분으로만 제한시키고 고난과 슬픔과 재난은 악마가 가져다 주는 것으로 설교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교는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는 설교이다. 이러한 설교는 심지어 고난과 고통과 슬픔 속에 있는 자들을 죄 값을 치루는 자로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받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설교자들은 번영과 축복의 무속적 복음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사도적 복음

사도적 복음은 번영과 축복의 복음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이요, 헌신과 희생의 복음이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복음은 신자들이 고난과 고통과 슬픔을 당면하게 될 때 운명이나 숙명에 직면한다거나 하나님의 심판에 내맡겨졌다고 보지 않는다. 십자가의 복음은 이러한 어려움을 통해 선하신 뜻을 실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내와 연단의 소망 속에서 헤아리게 한다. 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난 없이 이루어 질 수 없듯이 우리의 행복과 축복은 십자가를 지는 고난과 헌신과 희생을 통과함으로써만 그 열매로서 주어진다.  

1)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은 대속의 복음이요, 새 인간의 복음이다. 오늘날 십자가의 의미가 닫힌 보수주의에서는 개인주의적 구원으로 협착화 되고 있으며, 닫힌 진보주의에서는 사회화와 인간화로만 협착화 되고 있다. 구원이 개인의 구원으로만 이해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속적인 종교의 구원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구원이 단지 사회화와 인간화로만 이해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회정책적 프로그램과 크게 다를 것이 없게 된다.

2) 헌신과 희생의 복음

오늘날 한국교회는 십자가의 복음을 한국사회의 영적 발전과 윤리적 향상을 위한 자기 헌신과 희생의 복음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교회가 권력과 부를 추구하고 현실에 안주할 때 예언적 정신을 상실하고 기득권의 세력으로 변질될 때 한국교회는 사회변혁의 주체에서 밀려나가게 된다.

십자가의 고난이란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죄인이 받아야할 심판과 고통을 대신 지신 것이다. 여기에 우리는 고난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 그리고 슬픔은 인간의 죄를 심판함으로써 죄인을 용서하고 새 사람이 되도록 하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다. 이 십자가는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희생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3) 섭리의 신앙

우리는 고난과 슬픔에 직면할 때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보다 성숙한 성도의 신앙을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과 슬픔의 십자가는 결단코 운명이나 숙명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슬픔의 십자가는 이것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여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의 신앙을 요청한다. 이 신앙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성찰하는 성숙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개혁신앙이다. 우리가 성공하고 강하고 칭찬받고 주변 사람에 의하여 인정받는 우리 삶의 밝은 날에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흑암의 날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절규 속에서 죽어가셨다. 가시적으로 주님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당한 것 처럼 보였다. 그는 실패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나님은 그 순간 전혀 간섭하지 아니한 것 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모든 것은 끝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 전혀 십자가의 다른 국면이 드러난다. 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버리심을 받는 그 가장 질흙 같은 흑암의 그 순간은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강렬한 시간이었던 것을 발견한다. 우리 인간의 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부재 속에 하나님은 숨어 있는 구속의 경륜과 섭리를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밝은 국면에서만 아니라 우리 삶의 어두운 국면 속에서도 여전히 주권적인 섭리자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러한 섭리에 대한 신앙고백이 우리들에게 필요하다.  

맺음말

오늘날 한국교회 신자들에게는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과 같이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신앙이 요청된다. 이것이야 말로 성숙한 신앙이다. 이 성숙한 신앙 안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섭리의 신앙이다. 섭리의 신앙이란 현재의 고난과 고통과 슬픔의 십자가를 통해서 그 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신뢰의 신앙이다. 이러한 섭리의 신앙을 가질 때 우리는 십자가를 단순히 나 개인의 구원과 행복위주가 아니라 고통과 슬픔 속에 있는 우리의 이웃을 향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의 십자가 신앙은 더 이상 기복의 십자가가 아니라 이웃과 타자를 위한 헌신과 봉사의 십자가로 전환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고난주간을 통하여 십자가 신앙을 섭리의 신앙으로 다시 한번 받아들이도록 요청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