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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2011.3. 주여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주시옵소서-조동진 박사



<한복협 평화통일세미나, 2011년 3월 11일>


조동진 목사


(녹취)




  반갑습니다. 이 노인을 초청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요. 오늘 내가 말할 제목을 화해 선교와 평화 선교를 통한 평화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입니다.

  1985년 10월 24일에 유엔이 특별 총회를 열고 1986년을 세계 평화를 위한 해로 증진 시키자 그런 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지 세계 평화에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제거해 나가야 되겠다고 스무 가지 평화를 위협하는 조건들을 세웠어요. 오늘 그것만 얘기해도 한 시간 걸릴 테니까 오늘 우리와 직접 관련된 2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분쟁 지역의 해결을 위해서 군사력을 사용하지 말라.
세계 어떤 분쟁 지역에도 군사력을 사용하지 말라. 우리 정부가 꼭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 분단된 국가에서 다시 통일이 이루어지도록 하자.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도록 만들자.

20가지 이상의 평화의 걸림돌이 되는 것 중에 오늘 이 두 가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986년 그 후에 3년이 못 돼서 독일이 통일이 되었습니다. 86년 이후로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 동안 주둔했던 군사를 철수시켰습니다. 미국이 남미와 중동에서 하던 모든 군사 전력을 중단했어요. 그러자 1989년 11월 9일 그 추잡한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요. 그후에 329일이 지나서 1990년 10월 2일 동독 수상 헬멧 콜과 서독 수상 로타르 드메지에르가 평화 통일의 서명을 했습니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은 양쪽 수상들이 평화통일 선언에 서명을 해서 된 것입니다. 양쪽 수상의 통일 독일 서명. 독일이 어떤 나라입니까. 2차 대전의 원인을 제공하고 세계를 초토화한 나라입니다. 독일이 통일되기 원하는 나라는 유럽에 어떤 나라도 없었습니다. 프랑스는 파리까지 점령당했던 아픈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은 ‘절대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독일은 통일 되어서는 안 된다.’ 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독일이 통일되면 유럽에서 제일 큰 나라가 되기 때문입니다. 독일 통일은 유럽의 위협입니다. 영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독일군에 의해 런던이 초토화 된 나라였습니다. 마가렛 대처 수상은 ‘절대 독일은 통일 되어서는 안 된다.’ 라고 했습니다. 고르바초프는 ‘독일이 통일이 되면 우리가 동독을 내줘야 하는데 안 된다.’ 아버지 조지 부시는 ‘절대로 독일이 통일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누가 해냈느냐. 1970년대 초부터 동방 정책을 일으켰던 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이 자기들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국가들을 위해서 자기나라 국방 예산의 3배나 되는 돈을 내줬어요. 동부 유럽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 헝가리, 동독을 끌어안았어요. 동독이 20년 동안 브란트 수상 이후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동방 정책 때문이었어요. 그 혜택을 보자 고르바초프는 콜 총리와 어떻게 독일을 이룰까 4대 2정책. 4는 소련, 미국, 프랑스, 영국, 2는 동독과 서독. 그 사람들은 통일은 우리 문제다. 우리 잘못은 통일이 우리 문제가 아니고 6개 나라의 문제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안 그랬습니다. 통일은 동독과 서독의 문제이기 때문에 4+2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동독과 서독과 이야기 할 때는 4나라의 눈치를 살펴야 되요. 그래서 동독의 문제를 논할 때에는 콜 수상은 반드시 고르바초프에게 먼저 찾아갔어요. 고르바초프에게 찾아갈 때는 먼저 부시 대통령에게 의논을 했어요. 그리고 미테랑 대통령에게, 마가렛 대처에게 내가 고르바초프를 찾아간다 말했어요. 다시 말하면 주변 네 나라의 환경을 잘 조성했습니다. 절대로 우리의 통일이 저들에게 거리낌이 되지 않도록 했습니다. 오죽하면 고르바초프가 동독 통일을 허락하면서 나를 좀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도와줬습니까. 엄청난 수십만 톤의 돼지고기와 수십만 톤의 소고기를 부어 먹여 살렸어요. 우리가 북한에 가랑비와 같이 조금 줘놓고 퍼줬다고 하고 있습니다. 소련에다가만 수십만 톤의 고기를 줘서 먹여 살린 만큼 통일에 방해가 되는 나라들에 돈을 썼습니다. 그리고 통일을 할 때에는 통일을 반대하는 네 나라가 축복할 때 두 나라 정상이 서명을 하고 손을 들고 통일을 했습니다. 그게 평화통일이예요.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겁니다. 내 운동은 그거예요.

  나는 1986년 세계 평화의 해를 유엔이 발표한 다음 1986년 10월에 무역센터 본부에 세계 기독교 지도자들을 소집했어요. 유럽과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선교지도자들을 모으고 ‘세계 크리스천의 평화 회의’를 조직했습니다. 그래서 ‘평화선교가 곧 기독교 선교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 한국 사람들끼리는 평화통일 신학동지회를 만들었습니다. 아까 김영한 박사님께서 통일의 신학적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평화 통일 기독재미신학자들을 모아놓았어요. 여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주로 진보적인 사람들입니다. 반한 지도자 박정희에게 지목을 받아 한국에 들어오지도 못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연합 장로교회의 선교부 총회장이었던 이승만 박사, 감리교 선교부총무 윤길상 박사, 콩코디아 신학교 교수인 강희조 박사, 로펌 대학 김동수 박사, 선한 사마리아교회 담임목사 홍동권 목사, 한국에서는 감리교회 박순경 박사, 기장총회 홍근수 박사 이렇게 해서 통일을 위한 신학 동조회를 만들었어요. 그것이 북한에 영향을 주었어요. 윌리엄 케리 대학의 조동진 교수라는 사람이 이상한 일을 한다. 통일 신학 동조회를 한다고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을 다 가지고 만든다. 그렇게하고 우리가 어떻게 하기로 결정을 했냐면 이들을 위해서 한 번 재미 기독 학자들이 북과의 대화를 하자. 그래서 북한의 대표들하고 대화를 제안 했어요. 첫째 모임은 비엔나에서, 두 번째 모임은 헬싱키에서, 세 번째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했습니다. 그 때 온 사람들이 북한의 장관급 사람들이었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위원장 전경철, 안병수 서기국장, 전 유엔대사, 해외 동포 원호회위원장, 사회과학위원회 주체사상 우두머리 박승덕 박사, 그리스도연맹 고기준 목사. 그들이 와서 이야기할 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만 보수주의자였는데. 나머지는 자기들하고 그동안 통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계에 북한밖에 교회가 없는 나라가 없는 걸 아십니까. 당신내들이 진보주의자들만 초청하는데 미국은 보수주의국가입니다. 진보주의 겉다리들만 초청해서는 북미관계가 잘 될 까닭이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을 초청하세요.’ 그러니까 ‘아 조 박사의 얘기가 아주 매혹적입니다. 누구를 청할까요?’ ‘빌리그래함을 초청하세요.’ ‘그가 누구입니까.’ ‘빌리그래함 목사님을 모르는 사람이 나라를 움직여야 되겠습니까. 후르시초프도 모스크바에 빌리그래함을 청했습니다. 동독에도, 루마니아도, 폴란드도 그리고 등소평도 청했어요. 그런데 당신네들만 빌리그래함을 모르니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럼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 한테 맡기세요. 내가 한국에서 150만 명이 빌리그래함 초청하는 큰 대회의 총무였으니 내게 맡기세요.’ ‘그리고 또 누구를 초청하면 되겠습니까.’ 남침례교 전도사 출신 지미 카터 대통령을 초청하세요. 그 사람이 전도사인 거 아십니까. 그 보수주의자가 아틀란다 시장이 된 것도 흑인 세력과 보수주의자들 때문에 된 것입니다. 민주당 대통령이 됐지만 실제 보수주의자들이 찍어서 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초청해야지 엉뚱한 사람을 초청해야 되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거예요. 돌아가서 김일성에게 얘길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제가 김일성 대학교에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윌리엄 케리 대학 고려연구소 소장인데 여기 도서관에 북한의 책들을 좀 놓아야겠는데 하나도 없소. 당신들이 책을 구해서 보내주시오.‘ 답이 왔는데 한 백 여권이 왔어요.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100개 문학책도 보내주시고 김일성에 대한 책, 주체사상에 관한 책, 역사책도 좀 보내주시오.‘ 했는데 한 이천권이 왔어요. 돈도 안 보냈는데. 고맙다고 하니 고맙긴 우리가 고맙다고 하면서 저를 초청했어요. 1988년 12월에 초청장을 받고 1989년 1월 8일에 처음으로 평양 땅을 밟았습니다. 나를 공식적으로 영접한 사람은 노동장 국제서기장인 윤기복 서기였습니다. 이 사람은 서울 출신, 수성 초등학교 출신, 일본 동국제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여기 오니 교회가 하나도 없어 내가 갈 교회가 없어요. 난 목사라서 주일에 교회를 가야 하는데 교회가 없어요.‘ ’그 얘기 들었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금년 중에 교회가 생길 것입니다.‘ 87년에 얘기했던 것이 89년에는 열매를 맺어 89년 크리스마스 전에 동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우리도 책을 보내줄테니 종교학과에서 책을 쓰세요. 했어요. 자기네 책 받았는데 우리 기독교 책 안 받겠다고 하겠습니까. 2517권의 책을 사서 비행기에 태워 만 오천 불 비행기 삯을 줘서 북쪽에 보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수령께서 허락하신 도서 해서 기독교 서적 2517권 에 전부 도장을 찍어 김일성 종합 대학 도서관에 진열해 놨습니다. 그리고는 나보고 김일성 대학 150명 교수들에게 강의를 부탁했습니다. 제가 처음 한 강의의 제목은 ’민족과 기독교‘ 였습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평화 운동이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는데 많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 후로 나는 10여 년간 일 년에 두 번씩 북한에 방문하며 평화 선교를 했습니다.

  얼마 전에 이명박 대통령에게 초대를 받았던 한 목사님이 나를 만나서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을 하며 앞으로 북한이 언제 쯤 망할 것 같습니까 물었대요. 그러니 오래가야 7년이면 끝날 겁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얘기를 그 목사가 와서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통일이 된다는 이 어리석은 생각을 대통령이 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통일이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1950년 유엔군이 북쪽으로 38선을 지나 황해도를 지나 압록강까지 갔습니다. 김일성은 쫓겨나 중국으로 도망갔습니다. 중국은 부리나케 요람성에 김일성의 근거지를 만들어 주었어요. 우리는 통일은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우리 이승만 대통령은 대중을 모아놓고 통일 축하 연설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돌아온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중공인민군 50만 여명이 황해도를 지나 평양을 지나 서울로 들어왔습니다. 불과 한 달 동안 부산에 도망갔던 이승만은 두 번 때 다시 도망을 갔습니다. 이승만의 생각에는 중국이 모택동이 정권을 잡은 지 일 년 밖에 안됐는데 무슨 군대가 있어서 군사를 보내겠느냐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기는 1949년에야 겨우 장개석이 내쫓고 정권을 이루었는데 그들이 일 년 이내에 한국 전쟁에 50만 대군을 보낼 힘이 있을 것이라고는 세계 어느 나라도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38선 남쪽에 있던 개성도 북한이 가져갔습니다. 그러다가 3년 동안은 애를 쓰다가 휴전 협정을 하는데 남한 땅에 있는 판문점에서 했어요. 밀고 다투다가 마지막에는 휴전 서명을 해요. 김일성이 최고 사령관으로 서명을 해요. 중국인민군의 사령관이 팽덕회가 서명을 했어요. 한국군은 서명권이 없어요. 작전 지휘권이 유엔군에게 넘어갔거든. 한국은 휴전 당사국도 아닙니다. 휴전에는 권리도 없고 책임도 없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렇게 불쌍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중국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휴전선까지 올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오늘이라도 휴전선까지는 자기 영역이거든요. 우리가 이건 왜 생각을 안 하냐는 것입니다. 나는 통일로 이르는 길이 북한의 붕괴를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1950년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대통령이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서해에서 군사한계선을 통해 연평도가 큰 난리를 겪었습니다. 군인과 평민 4사람이 목숨을 잃고 수 십명의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왜 이렇게 됐습니까. 북한이 작년 일년 내내 ‘좀 도와주시오, 살려주시오, 비료 좀 보내주시오, 금강산에서 회의 합시다. 개성에서 회의합시다.’ 그랬는데 남쪽에서는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남쪽에서는 쌀이 남아돌아서 차라리 바다에 버리자고 했습니다. 지식있는 사람들은 북한으로 보내자 했습니다. 대통령은 중간에서 이러지도 않고 태도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서 주먹질 한 것이 연평도입니다. 연평도 사건이 다른 거 아닙니다. 저는 우리가 미국에 소련에 동독과 서독이 협력한 것 처럼 우리가 미국과 중국이 남북 통일을 위해 협력하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북한에 가 있는 동안 정주영씨가 같은 때 왔어요. 그래서 나를 안내해준 사람이 정주영 씨가 왔다고 했습니다. 이제 방송으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해서 거기서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몇 년 후에 정주영은 소 천 마리 가지고 북한으로 갔습니다. 김일성이 이에 감동을 해서 북한을 다 내줬습니다. 정주영 고향에 경제 특구를 만들어줬습니다. 금강산 관광, 칠보산 관광, 백두산 관광, 개성에 공단 만들어라. 정주영은 거기에 성이 안 차니 신의주도 주시오, 해주도 주시오. 다 허락을 받았어요. 개성 관광도 너희가 해라. 소 천 마리에 땅을 다 내주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진실만 있으면 감동을 받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가 이루었던 남북 공동 성명을 다 깔아뭉개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남은 것은 주먹 밖에 없는데 무얼 하겠습니까.

  남쪽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981년에 발행한 조선말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낱말
1981년도 판
1992년도 판
교회
반동 통치 계급이 정치적 비호 밑에 근로자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예수교의 교리와 사상을 선전하여 퍼뜨리는 거점
기독교에서 여러가지 종교적 의식을 하고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선전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 례배당
개신교
16세기에 상층 부르죠아지들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한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 자본가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며 남의 나라에 대한 사상 문화적 침투에 적극 복무하고 있다
새로운 교회라는 뜻으로 프로테스탄트를 이르는 말. 16세기 종교개혁 때 새로운 교리와 계율을 주장하면서 로마 카톨릭교에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의 교파이다
장로
예수교의 한 갈래인 장로교의 직책의 하나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 착취 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복무한다
기독교의 한 갈래인 장로교에서 목사와 집사 사이의 종교 직책의 하나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김일성이 죽은 다음에 김정일이 국방위원장이 된 이후에는 더 달라졌습니다.

1995년 12월에 간행된 『조선대백과서전』에는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랐다.

교회: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의 집단 도는 집합장소. 고대 헤브라이어로 “소집한다”는 뜻을 가진다. 유태교에서는 ‘신’에 의해 선발된 사람들의 ‘집회’를 교회라고 하였다. 영어에서 교회라는 말은 “주(신)에게 속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에서 교회는 예수가 죽은 다음 그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집단을 무어 활동한 원시기독교의 교단에서 발단하였다. 이 시기부터 교회에서는 례배, 세례, 성찬과 같은 례식이 진행되었다. 원시기독교 교단에는 사도, 예언자, 교사, 장로, 감독, 집사 등의 직무가 있었다. 초기기독교 교회에서는 기독교의 발생지인 예루살렘교회가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392년에 로마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된 다음에는 점차 로마교회가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시에 로마의 대사교가 기독교 교회의 최고권위자로, 사도 뻬뜨로의 지위를 계승하는 법왕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교회의 위계제가 확립되게 되었다. 교회의 력사에서 가장 큰 사변으로 되는 것은 11세기에 있은 로마카톨릭교와 동방정교회의 분렬 그리고 16세기에 있은 종교개혁운동이다.

이것은 아마도 브리데리커 백과사전에서 배낀 것 같습니다.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변화의 조짐을 평화 선교와 화해 선교를 위해 계속해야 합니다. 나는 평화 통일, 동독과 서독이 통일 되는 날까지, 베들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평화 서명을 할 때까지 329일 동안의 일을 책에 썼습니다. 장벽이 무너진다고 통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장벽이 무너진 이후 329일 동안 콜 수상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썼습니다. 329일 동안 프랑스에 대해, 영국과 소련에 대해, 미국에 대해 외교하고 외교했는지, 동독을 도와 파괴되지 않고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을 다 해서 마지막에 평화 선언을 할 때 네 나라의 수상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평화스럽게 통일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가 주변 4개국의 축하를 받으면서 남과 북이 함께 평화 통일에 서명을 하는 날을 그러한 평화 통일의 날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녹취 끝)



<원고 원본>


화해와 평화선교를 통한 통일환경조성






조  동  진
통일환경연구원장




  북한 당국은 지난 해 이른 봄부터 가을 추수기까지 줄곧 남한 당국에 식량과 비료, 그리고 의료품 지원을 호소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개성과 금강산에서의 남북대회를 통해 화해와 평화의 제스처를 계속해 왔다.
이명박 정부는 남아도는 남쪽의 쌀을 비축할 길이 없어 차라리 버리는 것이 어떻겠냐는 일부 소리와 북한의 기아 민중을 위해 쌀을 보내야 한다는 양식 있는 많은 지도자들의 소리 사이에서 엉거주춤 북한 정권의 붕괴만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이명박 대통령의 초대를 받았던 개신교 목사 중 한 사람이 북한정권이 얼마나 갈 것 같은지를 물었고,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길어야 7년 이내에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내용의 대답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1978년부터 30년 가까이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화해선교(Reconciliation Mission)와 평화선교(Peace Mission)에 앞장서 왔던 사람으로서 북한 정권의 붕괴가 가져올 결과를 크게 두려워한다. 1953년 휴전협정과 그 후 전개된 북, 중, 러, 그리고 한,미, 일 간의 힘겨루기를 미루어 볼 때, 나는  북한 김정일 정권의 붕괴가 곧 통일로 이루어진다는 속단의 무지와 오판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1950년 10월, 국군은 압록강변 초산까지 진군하였고 김일성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의 통화까지 후퇴하면서 북한 정권은 다 무너진 것 같았다. 우리나라 이승만 대통령은 평양에 가서 북한 군중 앞에서 통일 완성을 자랑하는 민중대회를 가졌다.
그러나 그 후 열흘이 못 되어 50만이 넘는 중국 인민군이 압록강을 건너 남으로 밀고 내려왔다. 평양과 해주를 지난 중공군은 12월 말에 38선을 넘어 남한의 개성을 점령했다. 이승만 정권은 새해 들어 넷째 날인 1월 4일 서울을 중곤군에게 내어주고 부산까지 도망치는 부끄러운 신세가 되었다. 전쟁은 1953년 7월까지 계속되었고 개성을 빼앗긴 미군은 남한 땅인 판문점에서 김일성과 중공군 사령관 팽덕회와 미군 사령관이 서명한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한국군은 휴정협정 주체가 아니었다.

  북한 정권 붕괴가 곧 통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이명박 정권의 국제감각은 이승만이 평양에서 통일을 축하하다 중공군에 쫓겨 부산까지 도망갔던 역사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면서 또 다시 그런 사태가 오지 않나 싶어 소름이 끼친다. 중국은 휴전협정 주체국이어서 언제든지 휴전선 앞까지 자국 군대를 내려 보내는데 아무 국제법적 거리낌이 없다.
  NLL 북군사한계선을 마주하고 있는 연평도를 비롯한 백령도 등 서해의 다섯 개 섬들을 생각해 보자.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평화정책이 이루어 놓은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남북공동선언을 무시하는 대북 강경정책으로 날마다 불안한 평화를 유지하던 연평도에 북한의 포탄이 날아와 연평도가 불타고 군인과 민간인 네 사람이 죽고 적지 않은 부상자를 내자, 이명박 정권은 또 다시 강경 대응과 확전을 선동하는 세력들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주먹 밖에 없는 북한은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남쪽에 구걸을 해왔는데 돌아온 것은 거부의 거친 말 밖에 없자 몇 차례 욕지거리를 하다가 끝내는 주먹을 휘두른 것이 연평도 포격이다.  그것 외에 북한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우리 남쪽에는 이러한 무모한 도전을 억제할 수 있는 많은 평화와 화해의 인센티브가 있었다.

  나는 1988년 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박관오 박사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이 나를 초청한 이유는 1979년부터 미국 윌리암케리대학교 교수로 고려연구소를 설립하고 10년에 가깝도록 김일성종합대학을 통하여 이천 권이 넘는 북한 도서를 구입한 데 대한 특별 초청이었다.
내가 평양에 도착한 것은 1989년 1월 중순이었고, 그들은 나를 고려호텔에 머물도록 했다. 내가 도착한 후 하루 이틀 후 안내원은 나에게 지금 남한 기업인 정주영 회장이 평양에 와 있으며 백화원초대소에 머물고 있다고 알려주며, 정주영 회장이 오늘 낮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이 TV로 중계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재미동포 학자가 미국 대학교를 위해 북한 도서 이천 권만 구입해도 감동을 하며 북한 땅에 초대하는 그러한 나라이다. 나는 윤기복 국제담당비서에게 “이 지구상에 단 하나의 교회도 없는 곳은 북한 밖에 없다”고 말했다. 북한은 나의 이런 충고를 받아들여 그 해 1989년 평양에 봉수교회를 건축하고 1991년에는 김일성이 어린 시절 부모들과 함께 다녔던 칠골교회를 재건축했다. 뿐만 아니라 1990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종교학과’가 설치되었다.
  나는 또한 나를 초청한 답례로 윌리암케리대학교 총장 이름으로 여덟 명의 북한 고위층 지도자들을 미국으로 초청했다. 북한 대표단 한시해 전 UN주재 대사를 비롯한 정부 고위관리와 기독교도연맹과 사회과학연구원 학자들은 미 국무성의 입국허가를 받아 1991년 6월 초 뉴욕에 도착했다. 이들은 나의 안내로 조지아 주 플레인즈에 있는 지미 카터 대통령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의 평양 초청을 전달했다. 이들은 이어서 빌리그래함전도회 본부를 찾아가 빌리 그래함 박사를 평양으로 초청했다. 이들은 한 달 동안 나의 안내로 국무성과 국방성, 그리고 의회를 방문하고 돌아갔다.
  
  1992년 북한노동당은 그들이 발행한 『조선말사전』에 종교 관련 항목을 대대적으로 수정 발표했다. 여기에 1981년도 판과 1992년도 판의 세 가지 항목을 예로 제시한다.


낱말
1981년도 판
1992년도 판
교회
반동 통치 계급이 정치적 비호 밑에 근로자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예수교의 교리와 사상을 선전하여 퍼뜨리는 거점
기독교에서 여러가지 종교적 의식을 하고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믿도록 선전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 례배당
개신교
16세기에 상층 부르죠아지들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한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파. 자본가들의 착취를 정당화하며 남의 나라에 대한 사상 문화적 침투에 적극 복무하고 있다
새로운 교회라는 뜻으로 프로테스탄트를 이르는 말. 16세기 종교개혁 때 새로운 교리와 계율을 주장하면서 로마 카톨릭교에서 갈라져 나온 기독교의 교파이다
장로
예수교의 한 갈래인 장로교의 직책의 하나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 착취 계급의 리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복무한다
기독교의 한 갈래인 장로교에서 목사와 집사 사이의 종교 직책의 하나 또는   그 직책에 있는 사람


김정일 시대에 들어서서 1995년 12월에 간행된 『조선대백과서전』에는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한 것을 보고 나는 크게 놀랐다.

교회: 같은 종교를 믿는 신자들의 집단 도는 집합장소. 고대 헤브라이어로 “소집한다”는 뜻을 가진다. 유태교에서는 ‘신’에 의해 선발된 사람들의 ‘집회’를 교회라고 하였다. 영어에서 교회라는 말은 “주(신)에게 속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에서 교회는 예수가 죽은 다음 그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고 집단을 무어 활동한 원시기독교의 교단에서 발단하였다. 이 시기부터 교회에서는 례배, 세례, 성찬과 같은 례식이 진행되었다. 원시기독교 교단에는 사도, 예언자, 교사, 장로, 감독, 집사 등의 직무가 있었다. 초기기독교 교회에서는 기독교의 발생지인 예루살렘교회가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였으나 392년에 로마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국교로 선포된 다음에는 점차 로마교회가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시에 로마의 대사교가 기독교 교회의 최고권위자로, 사도 뻬뜨로의 지위를 계승하는 법왕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며 교회의 위계제가 확립되게 되었다. 교회의 력사에서 가장 큰 사변으로 되는 것은 11세기에 있은 로마카톨릭교와 동방정교회의 분렬 그리고 16세기에 있은 종교개혁운동이다.

  나는 북한 노동당 출판국이 윌리암케리대학에 2,000여 권의 도서를 기증하여 준데 대한 답례로 남한의 기독교 도서 2,000여권을 김일성종합대학에 기증할 테니 승인해 달라고 했다. 북한은 나의 이러한 제의를 두 말 없이 받아들였다. 나는 1992년 3월 남한의 기독교 서적 2,514권을 윌리암케리대학교 고려연구소 이름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냈고 김일성 주석은 이 도서들에 일일이 자신의 도장을 찍어 승인했다. 그 도장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주석께서 배려하신 도서’라고 써 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도서관에 이 도서들을 위한 특별서가를 마련하여 비치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강연회를 열어 150여 명의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들을 모아 나에게 ‘민족과 기독교’라는 강연을 하도록 했다.
이와 같은 나의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평화선교와 화해선교는 1999년까지 10년 동안 이어졌다.

  정주영 회장은 평양을 방문한 후 얼마 안 되어 소 일천 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휴전선을 넘어 평양을 다시 찾는다. 북한 정권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금강산 바로 앞인 그의 고향 강원도 통천을 경제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금강산 관광사업과 칠보산과 백두산 관광사업권을 정주영 회장에게 주기로 약속한다. 정주영은 김일성에게 신의주와 해주와 개성을 경제자유특구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고, 김일성은 그 제안에 동의할 뿐 아니라 개성 관광사업권을 그에게 내어주게 되었다.
북한 정권은 소 일천 마리에 이렇게 감동받는 가난한 나라이다. 북한이 내어줄 수 있는 것은 땅 덩어리 밖에는 아무 것도 없다. 금강산도, 개성도,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산과 도시를 남한 기업인에게 내어줄 정도로 남쪽의 기업인들과 민족간의 경제협력을 갈구하는 나라이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이러한 움직임은 나로 하여금 기독교의 대북활동이 ‘평화선교’와 ‘화해선교’로 바뀌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더하게 했다.
예수께서는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 5:42) 하셨을 뿐만 아니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고 하신다. 또한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도 하신다.

  우리는 오늘날 남북갈등과 국제적으로 얼어붙은 통일환경을 어떻게 하면 봄날에 녹아 사라지는 얼음처럼 녹여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왔는데, 통일 환경을 조성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와 그 정책을 계승하여 통일 독일을 완성한 헬무트 콜 수상의 조국 통일 기록을 담은 책 『독일 통일의 기적을 만든 결정적 순간들: 329일』이라는 책을 읽고 우리의 남북통일도 이러한 길로 가야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그것으로 결코 갈사라진 동서 독일의 통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서독 수상 헬무트 콜은 독일 통일을 반대하는 프랑스, 영국, 그리고 독일을 점령하고 있는 소련과 미국을 어떻게 설득하여 통일환경을 조성하였는가를 콜 수상의 수석 외교안보자문관이었던 호르스트 텔칙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콜 수상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짐으로 말미암은 동독의 붕괴를 막기에 전력한다. 그리고 소련, 프랑스, 영국, 미국 강대 4국과의 연속적인 대화와 협의로 완전한 통일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무너져가는 붕괴 직전의 동독 정부를 329일 동안 계속 지탱시킴으로써 마침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한 해가 지난 1990년 10월 2일 소련의 고르바초프 수상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 미국의 부시 대통령의 환호를 받으면서 서독 수상 헬무트 콜은 동독 수상 로타르 드메지에르와 <독일통일조약>에 서명한다.

  빌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이어받은 헬무트 콜 수상의 줄기찬 통일환경 조성 노력으로 주변 4개 강대국과 모든 유럽 국가 정상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독일통일조약> 서명을 마치고 동독 수상의 손을 맞잡고 창가로 가서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화해와 평화선교의 노력으로 완전한 통일환경을 조성하여 남과 북의 정상들이 모든 나라들의 축하를 받으면서 이루어지는 평화통일조약에 서명할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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