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일꾼들로서
                                              종교인들의 역할은?


  
                                                                                               박 남 수 교령
                                                                                            (천도교 선도사)


○ 3.1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돌아보는 까닭
해마다 3월이 되면 3.1운동 정신 계승에 대하여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보입니다. 특히 최근 들어 우리의 근대사와 관련된 국내정치(국정교과서), 국제정치(한일관계)의 이슈나 문화(영화) 영역에서의 사건들 때문에 3.1운동을 비롯한 근현대 민족운동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3.1운동 정신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는 것이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것인지, 나아가 오늘의 우리 국가와 사회, 그리고 시민 개개인에게 3.1운동과 그 정신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에에 대해서는 정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1운동을 왜 세계 역사에 빛날 위대한 독립운동이라고 할까요?
3.1운동이 일어난 지 97주년을 지나고 100주년을 준비해 가고 있는 지금, 많은 사람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3.1운동의 의의에 대하여 이곳에서 짧은 시간에 모두 이야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만 먼저 말씀드린다면 3.1운동과 정신은 오늘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성을 가능하게 한 출발점이요 기본정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전문(前文)의 첫머리를 장식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구절은 그 의미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본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은 3.1운동의 일부분이요, 3.1운동의 본령은 ‘전근대’의 우리 민족 공동체가 ‘근현대’의 새 시대 민족공동체로 재생하고 부활하는 출발점이요, 지구촌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자기 선언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의지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과 경험 그리고 전민족의 합의와 지지 그리고 자기 내면화(학습)를 필요로 하는 역사적 과정이고, 3.1운동이야말로 우리 민족에게 바로 그러한 장(場)이었습니다.
3.1운동이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민족이 남북으로 갈리어 서로를 적대시하며 닮아가고, 남에서는 또 계층 간, 노소 간, 지역 간으로 갈리어 갈등하고 분열하는 속성을 노골화하면서 ‘헬조선’을 서슴없이 부르짖는 상황이 바로 3.1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가 다시 3.1운동의 역사와 그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을 되살리고 온전히 계승하여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본 동력으로 삼자는 뜻입니다.
3.1운동의 역사와 정신 속에는 그것을 가능케 하는 요소와 에너지가 충분히 잠재해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 3.1운동의 전개과정과 의의
1910년 경술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말미암아 구한말 이래의 자주적 근대화를 위한 민족운동은 일시에 지하로 잠복하고, 무장 항쟁을 목표로 한 운동가들은 만주로 근거지를 옮겨 새로운 차원의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수천 명의 무장경찰(헌병) 그리고 수만 명의 일본군들이 주둔한 채 물 샐 틈 없는 무단통치가 펼쳐진 한반도 내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민족의 새날을 위한 운동을 준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생명을 가진 존재의 본연한 자세요,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행동이요, 유구한 역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으로서의 자연스러운 발걸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단통치하의 한반도 내에 지도자는 종교 지도자들뿐이었으며, 민족적 궐기를 조직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단체는 종교 단체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조건 속에서 최후의 깃발을 든 분이 바로 민족대표가 되어 기미년 3월 1일 독립선언서를 선포하고 전국의 종교인과 학생, 시민들의 총 궐기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3.1운동은 종교인이 주축이 된 민족대표 33인이 앞장섰으나, 그 주체가 특정 단체 특정 종단이 아니었습니다. 종파를 초월하였습니다. 반상의 계급을 망라했습니다. 지역의 차이도, 빈부의 격차도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종교 간의 갈등도 종파 내에서의 진리도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득과 실도 논하지 않았습니다. 3.1운동 3대원칙이라고 할 공약삼장은 ① 독립운동은 대중화할 것 ② 독립운동은 일원화할 것  ③ 독립운동의 방법은 비폭력으로 할 것이라고 하여,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운동이며 그렇기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켜온 우리 민족이 왕조시대를 마감하고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의 나라를 세우는 기본 정신이 되었고, 온 민족이 한결같이 떨쳐 일어선 그 경험 덕분으로 ‘우리’는 ‘우리’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3.1운동의 민족대표들이 타협적이었고, 소극적이었다고 비판합니다마는 이는 실로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그 정신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돌아보지 않는 단견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1운동은 배타적인 폭력, 단편적인 독립, 일시적인 감정에 구애되지 않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그리고 세계 인류의 장래를 보고 나아간 위대한 운동이며, 3.1정신은 위대한 정신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종교간 화합이나 공동행동은 3.1운동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이 아니면 실로 기대하기 어려운 역사적 전통이라는 점을 생각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독교, 불교, 천도교 교단의 지도자들은 각 교단의 상황과 교리적 차이, 역사적 배경 등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을 살신성인의 자세로 극복하고 민족운동사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부활의 기적을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3.1운동정신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오늘 우리가 재조명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러한 ‘기적과도 같은 일로서의 3.1운동의 의의’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을 돌아보십시오. 참으로 기적이 아니고서야 어찌 대안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십 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젊은이들은 어떻게든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서 몸살을 치고, 70년이 넘도록 시도때도 없이 불거지는 전쟁위협 속에서 속절없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이산가족들의 상황 하나하나가 어찌 차마 눈뜨고 볼 수 있는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각각 종교인입니다. 종단마다 표현은 다를지라도 종교인의 본령은 ‘기적’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일반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배 종교인들께서 보여주신 기적과도 같은 3.1운동의 역사와 정신을 오늘의 이 ‘헬조선’에 부활시키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들이 할 일이라 할 것입니다.

○ 마무리 말씀
한편으로, 우리는 광복도 얻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정치, 경제의 성장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까지 누적된 모순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그 성과들이 온전히 우리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된 조국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도교의 의암 손병희 성사님, 기독교의 이승훈 선생님, 만해 스님과 용성스님께서 지금도 계신다면 당장에  남북평화통일을 위해 전 종교인들이 하나 되어 죽을 각오로 나서라고 크게 꾸짖으실 것입니다.

이제 2019년이면 3.1운동의 100주년입니다. 저희 교단을 비롯해 모든 종교계가 다시금 손을 잡고 선열/선배들의 명령을 따라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천도교단이 그때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기치를 들었습니다. 함께 열심히 준비하여 100년 전 선배들의 업적에 손상되지 않고 그들의 높은 뜻을 올바르게 계승할 수 있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미래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과제가 과거의 과제만은 아닙니다. 각각의 시대가 안고 있는 과제를 풀어내는 것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바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과 같은 어려운 시절에 다시 평화 통일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길 역시 기독교 불교 천도교가 함께 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오늘 말씀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