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




                                                                                                    법륜 스님
                                                                  (평화재단 이사장, 정토회 지도법사)





요즘같이 대립과 갈등, 분열과 보복이 판치는 사회에서 이렇게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모임’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여러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화해를 추구한다’는 것에는 대립과 갈등, 미움과 보복, 불신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미움으로서 미움을 극복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평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실제적 단면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놈을 용서하느냐, 어떻게 저런 사람과 교류와 협력을 하느냐, 저런 사람들은 단죄하고 보복해서 전멸을 시켜야 한다.’ 는 분위기가 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대립과 갈등이 심해집니다.
아까 전병금 목사님이 말씀을 전해주시면서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 이상이 종교인구’이라는 통계자료를 언급하셨습니다. 만약 종교가 제 역할을 감당했다면 ‘국민의 절반이 종교인구’인 대한민국 사회가 이런 분위기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생각해봅니다. 종교인들이 자기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부 종교인들은 오히려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서로 대립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대립을 완화시키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 라고 생각합니다. 이해 이전에는 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겠지요. 상대방이 나와 종교와 사상과 신념과 민족이 다를 때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 그는 나와 다르구나.’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아야 한다, 나와 같아야 한다, 네가 변해서 나처럼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립과 갈등이 끝날 수 없습니다.
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저런 말과 행동이 나올 수 있겠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될 때, 신앙과 민족과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 한 자리에 앉아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려고 할 때, 서로 다 조금씩 양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우선적으로 양보해야 되는 쪽은 힘이 있고 강한 자라고 생각합니다.
힘 있는 쪽이 양보하면 세상은 그것을 포용이라고 말합니다. 아름답게 보이지요.
그런데 힘이 없는 사람이 힘이 눌려서 양보를 하면 그것은 굴복이라고 표현합니다. 굴복은 힘이 없어서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반드시 저항을 합니다.
일시적으로 조용해보일지라도 온전한 평화의 상태는 아닌 것이죠. 갈등과 분쟁이 잠시 잠복할 뿐입니다.

오늘날 한일관계에서도 국력이 조금 더 강한 일본이 조금만 포용을 하면 한일관계가 한결 좋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절대로 포용과 양보를 하지 않지요. 결국 우리나라가 약간 양보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저항하고 분노하게 됩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봐도 남한이 조금 더 힘이 셉니다. 둘만 비교해도 그렇고, 배후의 미국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세지요. 그러면 조금만 북한의 처지를 이해하고 양보해주면 관계에 물꼬가 트일텐데,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 해’ 하며 굴복을 시키려고 하니까 저항이 있는 것입니다.
국내적으로 여야 사이에도 여당이 조금만 양보를 하면 국민적 합의를 가져올 수 있을텐데, 법안이고 뭐고 하나도 양보를 안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니까 야당이 굴복을 못하겠다고 저항하고 그래서 갈등이 끝이 없습니다.
여당 안에서도 권력을 쥐고 있는 주류가 비주류에게 조금만 양보하면 될텐데, 양보없이 자기 뜻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하니 분쟁이 생깁니다. 야당 안에서도 분열된 쪽 중 조금 더 세력이 강한 쪽이 양보하면 될텐데 통째로 굴복을 시키려니까 또 시끄럽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니다.

그런 우리가 화해와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이해와 포용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힘이 있으면 그게 또 잘 안되는 게 이 세상인 듯 합니다. 그래서 우리 종교인부터라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오늘 3.1운동 97주년을 맞아서 3.1운동 당시의 짧은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독립운동 당시 최대종교는 천도교였습니다. 교인이 300만 정도였다고 합니다. 불교인은 30만 정도였고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개신교는 11만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때 백용성 선생이 손병희 선생에게 와서 종교가 같이 힘을 모아서 독립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우리 힘만으로도 충분한데 무엇 때문에 같이 하려고 하느냐, 큰 힘도 안되는데...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손병희 선생을 이렇게 설득했다고 하지요. “아무리 천도교가 커도 천도교 혼자 하면 천도교 독립선언이지 전 민족적 독립선언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작아도 불교와 기독교가 뜻을 같이 하면 전 민족적 독립운동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 뜻을 최제우 선생님께서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셔서(사실 그러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재정난이 있는 신흥종교 개신교에 5,000원이라는 거금을 재정지원까지 하면서 마음을 합해 일궈낸 거사가 3.1 운동입니다.
100년의 세월이 지나다보니 이제는 개신교가 힘이 제일 커졌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개신교가 타 종교를 배타하지 말고 포용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정부도 남북긴장의 위기, 국가적 위기라고 하는데, 여당 안에서부터 조금 포용을 하고, 정부가 국회를 포용하고 그래서 국민 통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한쪽에서는 위기라고 얘기하면서 한쪽은 그 위기를 이용해서 자기 세력을 확충하는 모습을 볼 때 조금 생각있는 사람은 ‘정말 위기가 맞나, 위기라면서 왜 저렇게 행동할까’ 생각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국가적 위기임에도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말보다는 실제적인 행동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오늘 김명혁 목사님께서 이렇게 저희들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오늘 모인 경동교회의 강원용 목사님께서는 종교간에 대화를 주선하시고 또 그 당시에 어려웠던 농민들, 노동자들, 여성들 교육을 위해서 크리스찬아카데미를 창립하셔서 우리 민주화에 많은 역할을 해주셨는데요. 이런 뜻깊은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만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