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의 지도자 조만식 장로

                        
                                        이 만 열(국사편찬위원장)

   古堂 曺晩植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일제 강점기와 해방 초기에 걸쳐 교육 경제 언론 체육 정치 등 근대 한국의 민족·민주·통일 운동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위대한 선생이다. 그는 풍운이 감돌던 19세기 말 음력으로는 1882년 12월 24일(양력 1883년 2월 1일)
   지금부터 1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한국의 개화와 국권회복운동에 힘쓴 애국지사들의 출생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고당 조만식의 출생을 이러한 선각자들의 출생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월남 이상재: 1850-1927, 백암 박은식: 1859-1925/
한서 남궁억: 1863-1939, 남강 이승훈: 1964-1930/
우남 이승만: 1875-1965, 백범 김 구:  1876-1949
도산 안창호: 1878-1938/
단재 신채호: 1880-1936, 우사 김규식: 1881-1950
고당 조만식: 1882-1950, 몽양 여운형: 1886-1947,

그는 1904년 전후하여 기독교에 입신한 이후 곧 선교학교인 숭실학교과 관련을 맺었고 일본에 유학할 때에는 동경에서 장·감 연합교회를 설립하는 데에 협력하였으며, 귀국해서는 기독교학교인 오산학교와 숭인상업학교에서 가르쳤고 평양 YMCA 총무에 산정현교회 장로로 시무하였으며,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는 산정현교회의 주기철 목사를 격려하며 그가 용감하게 그 반대투쟁을 선도하도록 뒷받침했던 것이다. 그의 생애를 일별해 볼 때, 대부분의 사회적·민족적 활동은 어쩌면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느낌을 갖는다.
그가 어떻게 신앙인으로 기독교에 입문했는지를 여기서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다만 그의 신앙이 어떻게 그의 인격을 형성했으며 민족지도자로 만들었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이 그의 활동 무대 전체를 이끌어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흔히 고당이 활동했던 그 시대의 지도자들은 어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다방면에서 전인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정신은 곧 그들의 삶에 그대로 투영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그들의 정신이나 신앙과 유리되지 않았다. 백암 박은식이 그가 신봉했던 처음에는 성리학, 뒷날에는 양명학의 진리가 가르치는 대로 행동했으며, 단재 신채호가 그랬고 그 밖에 많은 지도자들이 그들의 종교적 신앙이나 사상적인 이념과 어긋나지 않게 생활했다. 우리가 고당 선생의 정신적 지표였던 그의 기독교 신앙을 먼저 따지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가 기독교에 입문한 때를 감안한다면, 그의 고백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얻는다는 대속의 진리를 믿고 있었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을 기본으로한 기독교 신앙을 신봉했고 신학적인 교양을 면밀하게 쌓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교회의 영수 집사를 거쳐 산정현 교회의 장로로 오랜 동안 시무하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 입문당시에는 한문으로 번역한 쪽복음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기타 당시 유행했던 전도문서인 引家歸道, 德慧入門 등을 보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을 통해서 가졌던 그의 신앙은 그 당시의 일반적인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것에서 멀지 않은, 말하자면 근본주의적인 신앙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가 장로가 되어 활략했을 1920년대부터는 소위 타계주의적인 요소가 팽배하여 ‘예수’ ‘천당’ 신앙이 기독교계를 횡행했던 때였다.    
그러나 고당 선생의 신앙은 당시 한국 교계를 사로잡고 있던 타계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신앙의 틀 속에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뛰어넘음으로써 그는 기독교 신앙을 소유했으면서도 민족문제에 대결할 수 있었던 지도자가 되었을 것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신앙은 그의 인격과 지도자적인 자질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으면서도 그는 그의 시대에 풍미했던 기독교 신앙의 폐쇄적인 틀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기독교계가 목표로 삼고 활동의 영역으로 하고 있는 그 틀 안에서는 진정한 십자가의 희생과 새로운 부활을 맞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그의 신앙적인 경력과 관련, 몇가지를 특기할 수 있다.
첫째는 기독교 신앙생활과 숭실학교 교육을 받게 되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방탕했던 생활을 청산하고 전혀 새로운 생애를 걸어가게 되었다. 그는 이 때부터 40여년간 금주·단연하는 생활을 철저히 지속하였다. 이것은 그의 기독교적 인격을 알게하는 대목이다. 그가 당시 기독교회 안팎을 아우르는 지도자로서, 오늘날의 진보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취하는 것 처럼, 금주 단연 문제에 대해 얼마든지 융통성을 두고 대범하게 다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성경에 명시한 것이든 아니든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주변의 핀잔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 나갔다. 지도자는 금도를 가져야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였던 것이다. 이런 그의 자세가 1920년대에 들어서서 물산장려운동과 토산품애용운동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운동이 당시의 기독교 절제운동과 함께 전개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물산장려운동은, 고산 자신이 말했듯이, 외국산을 전적으로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세계화정책을 거스른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토산품애용을 통해서 우리의 산업능력을 키우는 효과를 거두고 무엇보다 자신의 것을 아끼고 자신의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하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특히 물산장려운동이 생산자와 소비자를 적절하게 연결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 산업사회가 안고있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문제에 대해 이미 그 당시에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산장려운동은 오늘날에 와서 그대로 원용하기는 힘들겠지만 그 정신은 얼마든지 원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당시의 물산장려운동은 기독교적 절제운동을 수반함으로써 기독교 윤리가 추구하고 있던 정직과 신의, 근면과 절약을 생활화하는 데에 큰 힘을 보태주었던 것이다. 한국이 자본주의를 수용하여 산업화 정보화를 기하고 있지만, 20세기 초 막스 베버가 주장했던, 정직과 근면과 절약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얼마나 체득하고 있는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독교가 서북지방에 수용될 때에 소위 자립적 중산층(Independent middle class)이 이를 환영했고 이들은 바로 기독교의 정직 신용 근면 절제를 기본으로 한 이 윤리를 적용함으로 그 지역에서 자본가로 등장해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교훈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큰 교훈을 준다고 할 것이다. 고당 선생이 물산장려운동을 하면서 간디의 정신을 체현하여 조선의 간디라고 불려졌던 것이나, 그가 일상 입고 쓰고 다니는 검정 두루마기와 말총모자에서 풍기는 인상은 바로 물산장려운동과 토산품애용운동 그리고 절제운동이 어울려진 어떤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는 그가 1905년에 그는 선교사 베어드(W.M.Baird 裵緯良)가 1897년에 설립한 숭실학교(중학부)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베어드 교장으로부터 그는 기독교 신앙이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당간다는 것을 강조하던 그 시기에, 그런 내세의 천당이나, 이상적이고 공허한 어떤 내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신앙적인 요소를 강조받았기보다는, 식민지적 현실과 관련하여 기독교신앙이 추구해야할 방향이 무엇이며 요소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숭실에 입학했을 때 교장 베어드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조선에서 전도할 새 조선인은 내세 영혼의 천당구원을 위함보다 현재의 사회적 구원 즉 실제생활에서 구원을 얻으려함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통해 그것을 배웠다.
한국기독교 신앙의 흐름에는, 신학 신앙적으로 근본주의적인 점이 처음부터 강조되고 있었지만, 당시 우리 민족이 처했던 봉건사회를 개혁하고 식민지적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는 사명의식 때문에 내세천당을 강조하는 내적인 흐름과는 민족과 사회를 구하기 위한 신앙적 흐름이 있었다. 가령 한말 항일구국운동은 보면, 일제에 저항하여 무력적인 행사를 행하여 매국원흉들을 제거하려고 한 사람들이 모두 기독교인들이라는 점은 이런 사실을 대변하고 있다. 을사오적을 제거하려고 애썼던 전덕기 목사,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븐스를 제거한 장인환 의사, 국내에서 권총으로 이등박문을 없애려고 했던 정재홍 선생, 캐돌릭 신자인 안중근과 함께 이등박문을 제거한 우연준 의사, 친일매국내각의 총리 이완용을 명동성당에서 제거하려다 실패한 이재명 의사와 그 동지들, 이런 분들이 모두 기독신자들이었다.
고당 선생이 베어드로부터 배웠다는 민족구원을 위한 기독교 신앙의 흐름은 도산 안창호로부터 시작하여 백범 김구, 남강 이승훈, 월남 이상재, 한서 남궁억, 고당 조만식, 산정현 교회의 다른 두분 장로(김동원․오윤선), 후대의 일가 김용기, 성산 장기려로 이어지는 맥락을 갖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들은 설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어두운 민족사에 비추고 실천함으로써 설교하는 목회자 이상의 지도자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그들은 한 교회의 목회자가 아니라 민족이라는 넓은 영역을 교회로 생각하고 그들이 성경을 통해 터득한 기독교 신앙은 생활화하고 민족을 이끌었던 것이다. 고당 선생의 신앙에는 십자가 보혈로 구원얻는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랬던 만큼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는다는 확고한 신앙 위에서 민족을 그곳으로 이끌려고 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의 지도는 단순히 설교에 그친 것이 아니고 교육과 독립운동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방면에 걸쳤던 것이다. 신앙을 사회화하고 생활화하면 이렇게 폭발적인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가 기독교적 신앙을 실천하는 장소의 하나로 가장 잘 거론되는 곳은 바로 교육의 현장이었다. 그는 기독교신앙을 교육속에 실천하려 했고 이를 강조했던 분이다. 오산학교나 숭인상업학교 숭실학교 등에서의 그의 교육은 이런 바탕 위에서 전개된 것이었다. 그의 교육은 실천을 수반한 것이었다. 학생들과 같이하는 교육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문하에서는 그를 닮은 많은 젊은이들이 나왔다. “한 때 민족운동에 열중하였지만 소명감에 불탄” 주기철 목사가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일제의 민족말살책동의 하나로 강요된 신사참배를 반대하게 된 것은 오산학교의 고당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며 또 산정현 교회에서의 제자를 섬긴 스승 조만식 장로의 격려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오산을 나와 한국을 이끌어간 많은 젊은이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의 분야에는 그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오산과 숭인 등에 영원히 남아 있던 고당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사회에서 실천하려 했기 때문에 이룩했던 것이다.
셋째 그의 신앙은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요즘말로 에큐메니즘을 몸소 실천했던 분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생들을 위해 1906년 8월에 ‘在日本東京 朝鮮基督敎 靑年會’가 창립되고, 1908년에는 한인들에 의한 ‘동경교회’가 역시 유학생들과 관련하여 설립된 후 그 이듬해(1909) 5월에 韓錫晉 목사가 와서 김정식 조만식 吳舜炯을 領袖로, 金顯洙 莊元瑢 張惠淳 白南薰을 집사로 하여 교회의 조직을 체계화 하였다. 그러나 동경교회가 장로, 감리 두 파로 나눠져 예배를 보려고 할 때에 고당은 일본 사람들의 이목을 생각해서라도 따로 예배해서는 안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본국의 장로교·감리교회와 교섭, 동경교회를 장·감연합교회로 만들었던 것이다. 고당의 에큐메니칼한 이념과 실천이 드러나고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식이 뒷날 ‘고향을 묻지 맙시다’라고 외치면서 예상되는 교파적인 분열은 물론 지역적 갈등도 대승적으로 승화시켜 민족적 화합을 주장하게 되었다.
고당의 이같은 신앙과 실천은 가볍게 볼 것이 아니다. 동경유학생 때에 이미 나타났던 지역적인 분파작용은 이미 상해임정에서 노골화하여 임정을 무력화시켰던 것이다. 해방 후 이같은 행태는 교회의 분열에도 깊이 침투하여 한국 교회를 사분오열시켰던 것이다. 현재 장로교의 대교단들은 바로 이러한 지역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같은 교단 안에서도 총회장과 감독회장을 뽑는다고 할 때 오래 전부터 이런 지역주의는 할거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남북이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서 뿌리깊이 작요하고 있는 동서의 대결은 가히 망국적인 형편에 이르게 했다. 오늘날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는 바로 이 지역주의를 볼모로 정권을 잡아온 정치행태에 있고, 지역주의 청산을 목표로 집권한 현정권이 오히려 지역주의를 심화시킨 큰 오류를 남겼다는 점도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고당 선생의 이같은 에뮤메니즘 정신은 오늘날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한국의 정치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해부하는 데에 대단히 유용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런 지역주의와 파벌주의 극복의 문제는 앞서 말한 기독교 신앙을 사회화하려는 분들에게서 일정하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였다. 3.1운동을 주도했던 남강 이승훈이 기독교와 천도교 등이 합쳐서 거족적인 민족운동을 결행하려 할 때 기독교 일부에서 신조와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천도교와으 합작을 꺼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강 선생은 그것을 극복하고 단일의 거족적인 민족운동으로 담아내었던 것이다. 33인의 기명순서를 두고도 역시 아집에 사로잡힌 주장을 할 때에 “이거 순서는 무슨 순서가 있어, 이거 죽는 순서야, 손병희를 먼저 써”라고 한 데서도 그의 파벌주의의 극복의 이념은 엿볼 수 있다. 참 신앙인은 이렇게 지역주의와 파벌주의을 극복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잘 아시다 싶이, 상해임정을 발족시킨 제일의 공로자다. 그러나 그는 총리대행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뒷날 조각이 완료되었을 때에는 노동총판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 뒤 상행임정 안에서는 지역주의가 너무 팽배하여 결국 도산이 임정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 뒤에도 여러번 지역주의에 시달린 나머지 이 지역주의를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중요한 것은 고당 선생은 자신보다 연세가 높은 남강이나 도산이 이 지역주의 파벌주의의 병폐를 깨닫고 시정운동에 나서기 전에 벌써 이 지역주의 청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그는 한국인이 갖고 있는 이 병폐에 대한 진단을 먼저 내리고 대처했던 것이다.
넷째 그의 기독교 신앙은 신앙의 절조와 민족적인 신념을 굳게 지키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지도자가 절조를 잃으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절망한다. 일제말기의 많은 지도자급의 사람들이 그랬다. 앞다투어 훼절했고 일제에 대한 충성을 맹서했다. 춘원같이 글재주를 가진 사람들은 그 글재주를 가지고 일제에 훼절 정도가 아니라 충성을 바쳤다. 지금도 춘원의 글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감동하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쓴 도산 성생의 전기인 <도산안창호> 그렇고, 도산 공원에 자리잡은 도산선생의 비문 또한 명문이다. 춘원이 풀어썼다고 하는 국사원본 <백범일지>도 아주 뛰어난 문필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글을 어떻게 저렇게 유려하게 물흐르듯이 풀어나갔을까 감탄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지 않을 수없다.
또 당시 재력을 가진 사람들은 또 그 재력으로 일제에 아부했고, 종교인들은 그들의 신의 이름을 가지고 그 제단 앞에 갖다 바치며 갖은 아부를 하고 꼬리를 쳤다. 교육자는 어땠는가, 그들은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았다. 국내에 있던 많은 지도자들이 훼절했다. 일제하에서는 국내에 있으면서 절조를 지킨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지도자일수록 생존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한만디로 국내의 삶이란 창살없는 넓은 감옥이었다. 지도자들이 국내에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일반 평민과는 다른 큰 고통을 안겨 주었는데, 하나는 일제의 집요한 유혹과 협박이었고 또 하나는 식민지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참아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고통이었다. 그러나 고당 선생은 1920년부터는 한번도 외국에 나가지 않고 고통받는 민중과 함게 그 고통을 같이하며 1930년대 말부터 강화되어 온 일제의 전시체제에 그의 조용한 성품으로 버티었던 것이다. 1940년대에 들어서는 일제의 요구에 아예 응하지 않기 위해 은둔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지키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많은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그는 그 흔한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음으로써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대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도자는 포용력과 원융의 정신을 잃지 않고 실천해야 하지만 어떤 결단이 요구될 때 특히 민족문제가 결려 있는 곳에서는 원칙에 충실하면서 이를 양보하지 않는 지조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고당을 지금도 우러러 보는 것은 일제하에 그렇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공산주의자들과의 대결에서도 이런 원칙을 고수하면서 결국 자신을 희생시켰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 간에는 논란이 있는 문제이지만, 해방 후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와 조선민주당이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과 소련 군정이 신탁통치를 지지하는 분위기하에서도 굳이 신탁통치를 반대했던 것은 그가 지켜온 민족문제에 대한 원칙 문제에서 보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문제에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민족문제의 원칙에 양보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희생되었던 것이다.
끝으로 기독교 신앙인인 고당은 자신의 전 생애를 민중과 더불어하는 삶을 살아갔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이 대목에서 예수가 갈릴리의 버림받은 민중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과 고락을 같이한 것을 설명한다.] 그의 가세는 부유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런대로 궁핍한 삶을 영위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삶을 사는 지도자라면 민중의 삶에 그렇게 철저히 자신을 밀착시키는 것이 체질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그의 지도력은 바로 그 점에서 탁월했던 것이다. 그가 고등학문을 닦았고 비교적 순탄한 삶을 영위했지만, 그의 정신과 삶에서는 조선 민중을 생각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가 절제생활을 한 것도 어쩌면 민중과의 삶의 간극을 없애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1920년 망명을 결행하려 한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 뒤 더 어려웠던 시기에 그는 조선을 떠나지 않고 이 안에서 조선 민중을 껴안고 그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공산치하에서  자기 자신 한 몸만이 살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나 혼자만이 살기 위하여 이곳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을 버리고 떠날 수가 있겠소”, “나는 일천만 북한 동포와 생사를 같이 하기로 했소”라는 비장한 결심을 한 데서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이 그의 온 생애는 민중과 더불어 한 삶이라는 삶의 목표를 자신의 사명으로 생각하고 실천한 분이었던 것이다.    
그의 삶이 백성과 더불어 한 삶이었다고 할 때 이것은 이미 조선후기 실학시대의 선각자들이 깨닫고 실천함으로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었던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간 분들이 있음을 기억한다. 실학시대에는 수많은 왕후장상이 있었고 영웅호걸이 있었다. 그러나 실학시대라는 이름 하에서는 그들은 역사에 떠오르지 않고 죽어있다. 실학시대에 살아있는 몇사람은 반계 유형원과 성호 이익, 그리고 다산 정약용 정도이다. 그들이 그 시대에 특별할 역할을 하지 못했고 다산 같은이는 귀향생활을 19년간이나 했던 사람들임에도 역사에 그렇게 찬란하게 살아있는가. 그것은 그들이 당시에 고통받는 민중을 생각하면서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지배계급에 속하는 양반신분이었지만, 다산 정약용이 ‘原牧’이라는 논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牧爲民有也>(牧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체득하고 실천적으로 살아갔기 때문이다. 지도자인 고당이 살아간 삶도 바로 <牧爲民有也>의 삶이었던 것이다. 그는 해외에 나가 영웅적인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암울한 식민지 조선 안에서 또 북한의 어두운 현실 속에서 민중과 더불어하면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면서 살아갔던 것이다.
나는 몇 년전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고당 조만식>이라는 제목으로 학술발표를 하면서 결론으로 그의 생애가 조선 민중과 더불어 십자가를 지는 길이었다고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는 데 그 때 내렸던 결론으로 오늘 강연의 결론을 삼고자 한다.
옥문 밖에서 순교자 주기철과 동행했던 고당은 해방 후 자신을 기대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위해 자기의 한 목숨을 버리는 殉民의 길을 걸었다. 자기 한 몸이 살 수 있는 여러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장한 결심으로 죽음의 길을 택했던 것은 바로 일제하의 순교자의 길을 걸었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소양 주기철이 하나님 이외에 어떠한 존재도 숭배하지 않겠다는 ‘崇神 신앙’에 근거한 것이라면, 고당 조만식은 하나님이 창조한 그러나 의지할 데 없는 민중들을 끝까지 봉사하겠다는 ‘活人 신념’에 근거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십자가를 지는 길이었고 민족의 고난에 동참하는 숭고한 신앙인의 길이었다.
고당에게는 그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찬송가가 있었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이 가사와 같이, 고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모든 것을 이기리라는 믿음으로 일제와 무신론자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간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있는 신앙의 원칙과 한국 민중을 위한 희생의 길을 걸어갔으나,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역사 속에 그리고 한국의 민중 속에서는 살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