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큰 애야,다음 주부터 교회 나가자." "못 나갑니다." "그러지 말고 '딱 한 번만' 같이 나가보자." "다른 건 다 해도 그것만은 '절대' 못합니다." "야, 이광우,너 도대체 누구 아들이냐?" "어머니 아들입니다." "그래? 네가 정말 내 아들이라면,'딱 한 번만' 엄마하고 교회 나가자." "……." "엄마 소원이다. '딱 한 번만'……." "……정말 '딱 한 번만'입니다?" 약 30년 전,대학 2학년 때 겨울 어느 날,저의 신앙생활은 이렇게 우습게 시작되었습니다.
솔직히, 말이 신앙생활이지, 사실은 "효도 차" 하는 "억지 춘향이 교인노릇"이 시작된 것이지요. '딱 한 번만' 가자 하고는, 정말 비겁(?)하게도 그 날 예배시간에 저를 일으켜 세워, 환영하는 박수랍시고 온갖 창피를 다 당하게 하는가 했더니, 예상대로 어머니의, "딱 한 번만 더" 라는 생떼. 그 성화를 못 이겨 여지껏 그냥 그냥 황홀하고 얼떨떨한 교회울타리 안에 눌러 앉게 되었습니다.
……경주 이씨 가문의 종며느리로서 일년이면 열세 번 이상 있는 조상님들의 기제사를 도대체 어쩌실려고 어머니가 느닷 없이 예수에 미쳐 교회타령인지 이해가 잘 안 되었습니다. 유교 문화에 오래 젖어온 아버님은 또 어찌 설득할 것이며,집안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은 어찌하시려는지 정말 걱정됐습니다.
……노상 징징 짜며 울기를 잘하는 예수쟁이들 꼴도 별로 곱지 않았고, 예배시간이면 늘 눈 앞에 어른거리는 잠자리채(헌금 주머니)도 보기 싫고, 틈만 나면 모이자고 졸라대는 예수꾼들이 정말 싫었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죄인" 취급하며 사람 약올리는 것도 신경질 나고, 목산가 뭔가의 설교랍시고 하는 장황하기 그지없는 빤한 잔소리도 듣기 싫었습니다. 강도는 칼 값이라도 투자하지, 이건 숫제 칼도 안 들고 돈 뜯어내려고 하는 수작에 지나지 않는 짓들로만 생각되어 늘 불쾌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는 귀 먹었는지, 걸핏하면 고래고래 악을 쓰고 지저분하게 눈물 콧물을 흘리며 기돈가 뭔가를 하는 이들을 도무지 봐 줄 수가 없었습니다. 조상이 줄줄이 변호사 출신인지, 기도만 했다하면 숨도 안 쉬고 따발총을 쏘아대는 사람들. 기름 집 됫박만 빤질거리는 것이니라, 예수쟁이들 입도 무던히 빤질거리더라구요.
얼마나 할 일없는 녀석들이 찬송간가 뭔가를 만든다고 쓰잘데기없이 꼭 4-5절까지 만들었는지 그것도 불만이고,정말 우습지도 않은 "성경"이란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꿀떡같이 믿고 앉았는 꼴들이라니…… 정말 가관이었지요.
아무리 찾아도 코빼기도 얼씬 않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를 만들었다든지, 바다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다든지, 하늘에서 날마다 먹을 것이 내렸다든지,여리곤가 뭔가 하는 성을 뱅뱅 돌다 고함 한 번 꽥 지르니 성이 그냥 무너졌다든지, 처녀가 애를 낳았다든지, 예순가 뭔가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모양으로 왔다든지, 풍랑을 잠잠하게 했다든지,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났다든지,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3류 무협소설 뺨치는 부황한 이야기들……. 그런 걸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 외눈박이 동네에 가면 두눈쟁이가 병신 취급 당한다더니 제 꼴이 과연 그런 것 같았습니다. '
'부황하기는 해도, 어떤 녀석인지 꽤 머리 좋은 녀석이 썼구나' 성경을 대할 때마다 늘 이런 생각만 했습니다. 아무리 애쓰고 고민해도 믿어지지는 않고, 도대체 재미도 없고,심심하고, 따분하고……. 이렇듯 처절한 갈등 속에 10여년을 오직 효도하기 위해 참고 지냈습니다. 그 10여년 동안의 갈등과 고독,짙은 소외감을 어찌 다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괴로웠습니다.
더더군다나, '신앙의 확신'으로 늘 밝게 상기되어 살아가는 알짜 크리스천들 틈에서, 아무 재미도 없이, 믿음이 있는 양 연극하며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특히 더 괴로운 것은 지루한 예배시간…….
똘똘 몰아서 해치우면 단 몇 분이면 끝날 것같은 순서를, 엿가락 늘이듯 해 가지고, 돌아가면서 올라와 마이크 잡고 한 번씩 잘난 체하고, 그러느라 금쪽 같은 시간을 허비하고……. 사실 그 금쪽같은 시간에 집에서 공부를 하면 영어단어를 수십 개는 외울 수 있는데……. 시간 아까운 것은 그렇다 치고,교회 밖에서는 제법 똑부러진 사람인데, 예배시간만 되면 완전히 비맞은 수탉처럼 늘 으지짠한 내 모습, 아,속상해라…….
'집구석에서 성경만 갖고 놀다 왔나?' 설교 본문 찾는 데는 정말 도튼 사람들. 옆 사람은 전혀 생각 않고 잘난 듯이 후닥닥 본문을 찾아놓고는, 강단의 목사를 하나님 바라듯 바라고 앉았는 모습이라니, 원 쯧쯧. '그런데 요놈의 "합"이 도대체 뭔고?' 어차피 인쇄비는 똑같이 들텐데 누구 약올리려고 일부러 꼭 요렇게 약자로만 써 대는지…….
체면상 번지수는 찾고 앉았어야겠는데, 인정사정머리 하나 없는 목사는 눈치없이 이미 설교를 시작해 버렸고. 역시 그렇고 그런 얘기 흘려들으며 은밀히 성경을 뒤적이는데, '이놈의 책장 넘기는 소리는 왜 이리도 크게 난다냐?' 얼핏 들으니, 오오라, 오늘 본문이 '호박국'이란다. '하나님도 호박국을 드시나보군? 우선 좀 얇은 신약성경 쪽부터 찾아볼거나? 헌데,아무리 뒤져도 호박국은 커녕 된장국 냄새도 안나니 이거 어쩌면 좋다냐? 에구, 남부끄럽고 답답해라.'
……어찌어찌 숨바꼭질 끝에 '호박국' 아닌 '하박국'을 엉뚱한 구약성경에서 겨우 겨우 찾아놓았더니, 얼래? 그 잘난 설교가 벌써 거의 끝나가고,이런 젠장……. ……마침내,더이상 이런 의미 없는 수모를 당치 않기 위해, '두눈박이'가 '외눈박이' 마을을 기꺼이 떠나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불쌍하고 우매한 기독교인들 틈에서 두 눈 번연히 뜨고 더 이상 내가 머물 이유가 없다. 어머님께는,어쨌거나 10년 가 까이 순종해 드리지 않았는가? 사실 나만한 효자도 요즘 세상에 흔치는 않을 터이니,어머니도 이해를 하실 것이다. 그래,"다음 주부터"는 이 지겹고 따분한 생활은 굿바이 아듀다.'
바로 이런 절박한 순간, 제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고, 정말 어이없이 그토록 안 믿어지던 성경이 꿀떡같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제가, "믿고 있었습니다."
……이 후, 날마다 "눈부신 신세계"가 열렸습니다. 결국,신약성경에서 '호박국'을 찾으며 헤매던 이 웃기는 고집쟁이 청년, 어느 날 갑자기, 다 받아놓은 '박사학위'도 포기하고 신학대학원 간다고 생떼를 쓰더니, 지금은 목사가 되어 날마다 '호박국'찾 는 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너희를 불러,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장 9절)
……누가 뭐래도,"딱 한 번만"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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