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선주 목사님께서 새벽기도회(새아침모임)를 처음 시작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큰 자랑이자 든든한 신앙의 젖줄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삶의 양식이 매우 복잡해져가고,교통체증 때문에 출퇴근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는 탓에,경건한 신앙인들에게조차 새벽기도회는,매우 유익함에도 불구하고,날이 갈수록 무거운 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참 꽃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활동을 하는 데서 오는 생체리듬의 변화,거기서 오는 부담이 결코 작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새벽기도회가 없으면 할 일의 반 이상이 줄어들 것 같은 게 목회사역(신앙생활)입니다. 하지만 새벽기도회는,그것을 함부로 폐지해 버리기에는 장점이 매우 많은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므로,이를 함부로 폐지하기보다는,최대한 운영의 묘를 살려나가는 길을 꾸준히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 그런지,목회자들이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눌 때면,새벽기도회에 얽힌 일화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위에는 양복을 입고,아랫도리는 파자마를 입은 채 교우들이 앉아있는 교회당 중앙통로를 지나 강대상으로 올라갔다느니,황급히 일어나 옷을 챙겨 입느라고 와이셔츠도 입지 않은 채,맨 목에 넥타이만 매고 나갔다는 등등의 포복절도할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목회자인 저 또한 새벽기도회가 매우 큰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더러 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특히,전날 밤늦게까지 강의나 설교를 하고 돌아온 다음 날 새벽시간은,정말 죽지 못해끌려 다니던 공수훈련 때보다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더 힘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가 일어서기까지,무던히 힘겹지만,이내 교회당에서 기다릴 교우들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저 자신을 재촉합니다.
이미 이런 생활이 몸에 충분히 배었음에도,혹 실수할까 싶어서,언제나 알람시계와 삐삐의 알람기능을 10분 간격으로 작동시켜서 이중으로 대비를 한 채 잠자리에 들곤 합니다.
그런데,오늘 새벽,느닷없이 전화 벨이 요란하게 울려댔습니다. 단잠이 산산 조각난 탓에 잠결에 똘부아가 치민 저는,'어떤 몰상식한 사람이 이
오밤중에 전화를 거는가' 생각하며 겨우 일어나 더듬더듬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제요,누구제요?
(잠이 덜 깨 혀 꼬부라진 소리)"
"목사님,접니다." 듬직한 이 장로님의 목소리. "목사님 어디 편찮으세요?"
"아, 아니,괜찮습니다. 그런데 지금 몇 시나 됐지요?"
"예, 5시 20분이 넘었습니다."
"아니,제 삐삐가 아직 울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지금 5시 20분입니다. 저희끼리 잠시 기도하고 가겠습니다. 오늘은 그냥 더 주무시지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요 며칠간,그간 사용해오던 소형 알람시계가 수명이 다했는지 약을 갈아줘도 자꾸만 늦어져서 사용하지 못하고,삐삐의 알람 기능만을 주로 이용해왔습니다.
사실 '새아침모임'이 이미 몸에 배어서 요 며칠동안은,삐삐의 알람기능만으로도 실수없이 일어나곤 했는데, '왜 삐삐가 울리지 않았을까','혹 내가 너무 깊이 잠들어서 경보음을 듣지 못했는가' 황당함과 송구스러움을 달래며 어둠 속에서 잠시 헝클어진 생각을 정리하다가,한참 만에야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젯밤,수요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급히 집을 나서는데,갑자기 삐삐에서 건전지를 갈아 끼우라는 경보음이 났고,그 바쁜 틈에 서둘러 건전지를 갈아 끼운 뒤,"현재시간"만 다시 설정해 놓고는,"알람시간"은 미처 설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그 삐삐를 "굳게 믿고" 그만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전도하다보면,자기는 "큰 믿음"이 없어서 예수를 믿을 수 없다는 분들이 퍽 많습니다. 크게 잘못된 생각입니다. 믿음은 "크기"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그 "대상"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분명히 알람이 설정되지 않은 삐삐를 야무지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큰 믿음"이 저를 실수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일 그 삐삐를 믿지 않았더라면,다른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고,그랬더라면 교우들 앞에 실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믿음은 언제나 "크기"보다는 "대상"이 문제 입니다. 곧 '누구(무엇)'를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신약성경 마태복음 17장 20절/예수님 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신약성경 요한복음 14장 6절)
겨자씨는 먼지보다도 더 작습니다. 그토록 작은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대상만 올바르면 누구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정말 믿어도 될까,늘 조바심이 날지라도,믿음의 대상이 올바르면 능히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저처럼 잘못조작된 삐삐를 크게 믿어 잠시 실수한 것은 사실 별 것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당신이 크게 믿고 있는 것들이 실은 아무 것도 아니며,예수 믿는 길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만에 하나 옳을 경우,그 결과는 치명적인 것이될 것입니다.
예수님은,정말 믿을 만한 분이십니다.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예수님을 향한 것이면 충분합니다.
"예수님을","겨자씨만큼만" "믿어"보십시오.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광우목사
전주열린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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