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바닷가에서 자라,
꽃게를 잡아 함부로 다리를 분질렀던 것,
생선을 낚아 회를 쳐 먹었던 것,
햇빛에 반짝이던 물꽃무늬 물살을 마구 헤엄쳤던 것,
이런 것이 일시(一時)에 수런거리며 밑도 끝도 없이 대들어 오누나…….
제가 사랑하는 박재삼 시인의 "신록을 보며"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순수하다 못해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예민한 시인의 감성이 돋보입니다.
꽃게 다리를 부러뜨리고,생선회를 먹은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인간으로서 무슨 죄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살다가 어느 한 순간, 삶의 고즈넉한 언저리에 서서 호젓한 심사로 문득 어린 시절의 까마득한 추억까지 맘 아파하 는 시인의 깊은 속을 저는 이루 다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꽃게 다리가 다 뭡니까, 우리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찬찬히 둘러보면, 참으로 함부로 얼굴 들지 못할 부끄러운 일들이 비 내린 숲속의 버섯 마냥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을…….
알고 짓고, 모르고 짓고, 이게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 또 짓고, 잘 해보려다가 그만 힘이 모자라 또 짓고, 때로는 그 무언가의 힘에 끌려 어쩔 수 없이 짓고, 이렇게 짓고, 저렇게 짓고, 이렇게 핑계 대고 저렇게 둘러대며 짓고, 울며 짓고 웃으며 짓고, 기쁨에 들떠 짓고, 슬퍼서 홧김에 짓는 것이 바로 죄악 아닙니까?
사람으로는 차마 못할 일을 하고, 못할 일을 당하고, 그래서 원수가 되고 원수 갚으며, 수없이 죄로 죄다짐을 하며 사는 것이 인 생은 아닌지요. 나보다 힘센 사람 것을 교묘히 훔치고, 힘이 약한 사람을 무참히 짓밟고, 함부로 다짐하고, 함부로 화내며, 함부로 욕 하고 함부로 미워하다가, 시기심어린 눈 찢어지게 흘기며 살아온 날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요컨대, 우리네 삶에 어둡고 곰팡내 나는 죄악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았던 순간은 과연 얼마나 되는지요?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이 우리의 소망은 될 수 있을지언정, 삶의 또렷한 현실이 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사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이야말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일 것입니다. 고로, 참 슬프게도 죄악은 우리 인생의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때문에, 죄짓지 않기 위해 허망히 노력하는 것보다는, 우선 죄악의 결과를 처리하는 참된 길을 진지하고도 겸손하게 찾는 것이 좀더 현명할 것입니다.
죄악이 심각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결과(흔적)가 끝까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한 어떤 이가, 살인죄로 기소되어 한 20 년쯤 징역을 살고 나온다해서, 20년전으로 완전복귀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 죽은 자는 다시 살아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죄악이 어떤 것이건, 눈에 보이지 않는 죄악의 결과는 우리들의 세월과 함께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쌓여갑니다.
무심한 세월 속에 연륜이 하나 둘 쌓여 가면서 망각의 통로를 따라 때로 우리들의 죄악은 더러 잊혀지기도 합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세월 속에 그 슬픈 상처들을 조금씩은 묻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참으로 두려운 것은, 잊혀진 것이라 해서 그 죄악(의 슬픈 결과) 자체가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사람의 마음 속을 꿰뚫어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길이 엄연히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인생이 짊어진 여러 가지 짐 중에서, 죄짐이야말로 가장 고통스럽고 무겁고 큰 것입니다.
그 처절한 고통을 잊으려 별의별 짓을 다해도, 꿈 속에서 조차 마음놓고 부려놓지 못하는 것이 죄악의 짐입니다. 걸쭉한 선행으로 보상한다해서 죄악의 결과가 없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지요.
"구스인(흑인)이 그 피부를,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구약성경 예레미야 13장 23절)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완고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죄악의 결과를 인간의 힘으로 돌이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짐작케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피부빛깔을 바꿀 수 있다면, 가장 천대받는 유색인종인 흑인이 끝까지 흑인으로 남아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표범이 가죽의 얼룩점을 바꿀 수도 없습니다. 마음대로 가죽을 뒤집어 입을 수도 물론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네 삶의 검은 빛깔, 죄악으로 얼룩진 마음 속의 검은 반점들, 너무 많아서 그 수를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그래서 이제는 그 부끄러운 일들을 돌이킬 시간도 힘도 결코 없는 무서운 죄악의 흔적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닦아낼 수 없습니다
곧 죄짐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 인간 스스로에게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무서운 짐을 지고, 날이 날마다 그 짐을 눈덩이처럼 키워가면서도, 마음 속에 아무런 두려움도 안타까움도 없는 우리. 정말 차원 높은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길은 차치하더라도, 언제쯤 박재삼 씨같은 소박한 시심(詩心)의 언저리나마 밟아볼 수 있을는지요…….
이광우목사
전주열린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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