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아래 동생이 졸업후 사립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고 내집에 잠시 동거하게 되었다. 나의 계모는 내심 전실자식인 나와 내 동생이 함께 살게된 것에 조금은 염려가 되시는 눈치였다.
얼마후 여러모로 피차 불편하여 동생은 자기 학교근처로 자취방을 얻어 살림을 나게 되었다.
어머니는 시골서 당신의 딸을 위해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챙겨 오셨다. 나도 동생이 살림나는 곳에 일을 거들어 주기위해 갔다가 어머니가 싸가지고 오신 보따리 속에서 약50원어치 정도의 하얀소금 한줌을 발견하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로구나! 바로 이것이로구나"
나는 내 인생의 하나의 해답을 얻어낸 기분이었다. 하얀소금 50원어치를 천안서 인천까지 보따리 속에 넣어 오신 어머니! 알듯 하지만, 정말 계모의 대답이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다.
"이 소금을 무엇하러 여기까지 가지고 오셨어요? 대문만 나가면 얼마든지 살 수 있고, 값도 얼마 안되는걸?" 아니나 다를까 계모는 말씀하셨다. "문앞에라도 나가야 사지 않겠니!"
나는 이 날 무척 울었다. 마음깊은 곳에서 슬퍼서 울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 큰 시각전환이 있었다. 지금까지 계모가 내게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어떻게 전실자식과 낳은 자식을 똑같이 대할 수가 있겠는가? 그건 불가능한다' 고 솔직히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 날 이후 나는 계모에 대해 어머니이기를 기대하던 마음을 깨끗이 포기했다.
나의 어머니가 아니라 한 여인으로 보는 시각을 열게 된 것이다. 흐르는 모정을 막을 길이 없고. 흐르지 않는 모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왜 계모가 '낳은 아이들과 나를 차별하는가' 마음 속으로 늘 소리없이 부르짖고 있었다. 당연히 차별할 수 밖에 없으며, 차별하면서도 차별하는것 조차도 본인은 알 수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소금 50원어치를 백리밖에서 싸가지고 오는 모정을 어찌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내가 첫아이를 출산했을 때 한 밤을 가까스로 지새고, 달아나드시 고향으로 내려가버린 계모에 대한 씁쓸한 기억도, 사춘기 때 가출한다고 엄포를 놓고 대문을 박차고 나갈 때 내다 보지도 않던 일이며, 내 기억 속에 깊이 박혀있던 모든 섭섭한 독소들이 송두리 채 뽑아짐을 경험했다.
뻥 뚤린 허전한 가슴은 누구도 메워 줄 수 없다는 것과 지나친 애정을 갈구하다가 지친 영혼의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오직 자신안에서 채우는 길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내 운명과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이상 내게 다른 선택이 없음을 인정하였다.
이 날 이후 계모가 자기 자식들에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나는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당연하고도 오히려 고마운 모녀지정이라고 감탄했다. 내가 그 같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상처때문에 많이 비뚤어져 있을것이라고 생각되어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마음을 다스리느라 무던히 마음을 쓰게 되었다.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50원어치의 소금이 내 영혼속에 녹아들면서, 나는 내 인생의 껍질 하나를 벗은 셈이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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