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아내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왔다. 아내는 무덤덤 하지만 밝게 웃는 조용한 여인이었다. 깔끔한 옷차림에 단정한 마음을 가진 여인이라고 느껴졌다. 남자는 꺼벙하고 큰 덩치에 순진하게 보였고, 진담처럼 하는 농담이 여유있어 보였다. 한가지! 보일듯 말듯 아내가 약간 남편을 무시하는 듯한 여운이 남았지만 여성특유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결단한 것만으로도 신통할 뿐이었다.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남자는 활발하게 사람들과 교제했다. 시원시원하면서도 솔직한 언행이 쉽게 누구에게나 매력만점으로 부각되었다.
어느날 어머님까지 모시고 교회에 나왔다. 신심이 깊은 다른교회 권사님이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고부갈등이 위험수위를 넘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도 믿음 좋은 시어머니와 조신하고 정숙한 며느리가 어디가 어떻게 안 맞는 것일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둘 사이는 서로 얼굴을 피하는 사이라는 것을 우리는 짐작도 못했다. 늘상 엄마냐? 아내냐?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는 숙명앞에서 남자는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았다. 아내는 딸 둘을 낳았고 나무랄데 없는 여인인데다가, 어머니는 젊어서 과부되어 한 평생 살아온 그야말로 전형적인 고부갈등의 모델이었다.
두 여인은 서로 상극이었고 아들은 40이 다 되도록 어머니에게 종아리 걷고 매를 맏는 효자였다. 내외는 유원지에서 식당을 하다가 실패했다. 다시 남자는 부동산 중개업을 하다가 스켄달이 있다는 소문이더니 조용한가 싶었는데 이혼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아내는 시어머니와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하기 어렵다고 다른 교회로 가버렸고, 남자는 국회의원 선거운동 하느라 바쁘다고 교회를 졸업했다. 그 어머님은 노인들을 도와주기 위해 지방 양로원에 자원봉사자로 가셨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셈이다.
나중에 딸에게까지 재산상 손해를 입힌 남자는 온 가족이 거리로 나 앉을 지경에 이르자 폐결핵에 걸려 거리를 방황하다가 길에 쓰러져 있더라고 했다. 지금은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하는 단칸 셋방에서 어머니의 도움으로 결핵치료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마지막 자존심 하나를 지킬려고 마음문까지 꽁꽁 걸어 잠그고 초라하게 스러져가고 있다. 사랑하던 모두에게 버림받고 오직 한 분 핏줄이 땡기는 늙은 어머니가 한술 미음을 퍼주면 받아먹으며 투병하고 있단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아이 엄마가 되었지만 그의 큰 딸이 사춘기 방황할 때 간곡히 부탁해서 그 딸을 찾으려 도시의 곳곳을 수사반장처럼 누비고 다닌 적이 있다.
당구장에 있는 아이를 데려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그남자는 딸을 찾으려 굵은 눈물방울을 흘렸다. 나는 자식을 위한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내 아버지를 생각했었다.
이 남자에게도 새로운 생이 열릴 수 있을까? 이대로 끝나는 것 일까? 아내가 최후로 한 번 용서하고 받아들여 주면 안될까? 딸들이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고 집으로 모셔들이면 안될려나?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니 그대로 거두어야 하는 것일까? 아버지와 남편을 이대로 방치해두는 사람들은 정말 행복할까? 내 일이 아니라서 내가 너그러운 척 하는 것일까? 백번 교회 나가는 대신 한 번 이 남자를 받아주고 용서해 주면 어떨까? 치가 떨려도 품에 안으면 흐느낄지도 모르는데......서로 불쌍해서......
나라도 그 작은 셋방 방문을 깨뜨리고 들어가서 그의 자존심을 산산조각 내어 버릴까? 너무 안타까워서 며칠째 고민하고 있다. 이대로 두어도 되는건가?
추신: 그 후로 내외는 재회하였고 건강도 많이 회복되어 꺼칠하지만 반가운 낯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럼 그렇지 그게 믿음이지...!
또 다른 남자 이야기
그가 어색한 얼굴로 교회문을 열고 들어설 때 다시 한 번 쳐다 보았다. 분명 그였다.
순간 얼마나 반가운지 "명화는?" 하고 그의 부인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예! 부산에 가 있습니다." "혼자 오셨군요?" "예!" 이래저래 충격이었다. 그가 혼자서 교회를 나온다는 일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인에게 코 꾀어서 겨우 교회에 나와서도 별 취미가 없던 사람이다. 모태신앙인 그는 재취 부인이 교회 다녀주는 것만 고마워서 줄렁줄렁 따라 다녔다. 젊은 새 여자가 교회 나와서 손해날 것이 없다는 생각과 새엄마를 마지한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교회 다녀서 나쁜 소리 듣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아내는 활동적이어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고 잘 어울리는 좋은 성품이었다. 교회에서 자리를 굳혀갈 지음 세무공무원 비리에 관련되어 어려움이 있었다. 아내는 억울한 것을 벗겨달라고 새벽마다 애처롭게 기도했다. 오랜 후에 그는 몇차례의 재판을 거쳐 무혐의로 출옥했고 직장도 복직했다. 그때의 감격을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아내는 보험회사 소장이 되어 무척 세련되고 알아볼 수 없을만큼 멋쟁이가 되어 있었다. 내외는 교회를 떠났다. 그야말로 잘 나가니까. 교회 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얼마후에 볼링장을 경영했다. 교회를 떠난지 거의 1년도 넘었을 때였다. 어느날 그의 아내가 밤중에 나를 찾아왔다.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완곡하게 표현했는데 내용은 남자의 무능과 더 이상 매력이 없다는 것처럼 들렸다.
여러말을 했지만 아리송해서 알아듣기 어려웠다. 나는 그녀가 바람이 났나? 새롭게 신앙생활을 하고싶으니 도와 달라는 말인가? 아니면 보험 하나 들어달라는 어려운 부탁인데 내가 눈치를 못챈건가? 감을 잡을 수 없을만큼 그녀는 횡설수설하다가 갔다.
이미 오래전에 잊혀진 그가 다시 교회로 혼자 돌아온 것이다. 사업이 부도가 나서 온 가족은 다 흩어졌다고 했다. 아내는 언니가 하는 부산의 식당에 일 도와주러 갔다고 했다. 장성한 아이들에 대해선 미처 언급도 할 겨를이 없이 난파한 해적선의 선장처럼 꺼칠한 그의 모습이 눈물겨웠다.
그가 다시 그런 상황에 서 교회를 나올 때는 대단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고 싶다고 한다. 인간의 힘으로 안되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가 교회에 실망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의 곁에 좋은 믿음의 친구가 있어야 할텐데... 금가락지를 끼워주고 살찐 송아지를 잡으며, 잔치를 해주는 아버지를 꼭 만나야 할텐데... 옛이야기 할 훗날이 꼭 와야 할텐데...
그가 교회에 안 돌아올 때도 걱정이었는데 돌아오니 더 걱정이 커졌다. 교회는 어떤 곳일까? 정말 따뜻한 곳일까? 냉혹한 곳일까? 마음으로 그를 열 번이라도 안아주고 싶다. 쳐진 어깨를 든든하게 해주고 싶다. 그는 꼭 회복되어야 한다.
추신: 그는 서너번 얼굴 보이더니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도 소식이 묘연하다. 그의 방황은 이제 끝이 났을까?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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