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첫번 연주회가 있던 날이었다. 입학 후 첫 연주회다 청바지만 입던 아들에게 신사복이 있을리가 없어 아버지 양복을 입혀 보냈다. 아버지 양복을 입고는 어찌나 우줄거리며 좋아하는지, 남편의 청년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 온 아들이 "어머니! 나 오늘 망신당했어요" 라고 했다. 무대위에 올라가니 한쪽 구석에서 여자친구들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하더니... 온통 장내가 소요가 있어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시침 뚝! 떼고 연주를 마치고 나니 바지가 10센티 가량이나 짧은데 무대위에 올라선 후 아래서 올려다 보니 더 짧아 가관이었던 모양이다. 어찌나 딱한지...이리저리 변명을 하면서 위로했다.
그러던 어느날 교회에서 성가지휘를 하는데 푸르스름한 아버지 양복 웃저고리를 좋다고 콤비처럼 검정바지에 맞추어 입고 나가는거다. 그럴듯해서 못본 체 했다.
"어머니! 나 오늘 또 망신 당했어요"
열심히 지휘를 하는데 어떤 여자 집사님이 오더니 "아이구 우리 지휘자! 불쌍해라. 아버지 여름양 복을 입었자나!" 하더란다.
'아니! 그 집사님은 왜 그리 눈이 밝은지, 그리고 여러사람 앞에서 왜 그리 망신을 주시는지' 얼굴이 뻘개져서 쩔쩔 매니까, 성가대원들이 몽땅 웃어버려 진땀을 뺐다고 한다.
98년 11월 아들이 약혼식을 했다. 멋진 양복을 한벌 샀다. 입혀놓고 바라보는 내 기분이 아주 흐뭇했다. 마마보이처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보며 패션쇼를 하듯 하는데 잘 따라 모델이 되어 주었다.
이젠 아버지 옷은 굿바이! 허리는 너무 크고 다리는 너무 짧고, 아버지 옷은 끝! 그러다가 지난 9월19일 결혼할 때 장모님이 신사복을 사주셨다. 이제는 어찌나 멋진 신사가 되었는지...
옷이 날개라더니. 날개 달고 수진이에게 훨훨 날아갈 망정 기분이 좋다. 날개달린 내 아들! 멎져!
아들에 대해 써두었던 일기를 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옷이야기를 하다보니 최근 나의 심경을 말하고 싶어졌다. 나이 50을 훌쩍 넘기고 나서 내게 심경의 변화가 조금 왔다.
첫째 사진이 찍기 싫어졌다. 사진속에 낯설은 할머니 한 사람이 웃고 있질 않던가? 여행 다녀올 때마다 증명사진들을 많이 찍어오지만 그때 뿐! 별로 들여다 보지 않고 남는건 추억과 사진뿐이라는데 그 많은 사진을 훗날 어찌 처리 할 것인가 생각해 본적이 있다.
훗날 아이들이 버릴수도, 간직할 수도 없어, 난처할게 아닌가 생각하다가 문득 사진을 찍기 주저하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옷장속의 옷을 정리할 마음이 생겼다. 한계절에 단촐하게 바꿔입을 정도의 옷이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기분 변하는대로 사고싶은대로 맞춰입고 사입던 옷을 삼가하게 되었다.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후 입던 옷이 생각보다 많다면 남겨진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지 않을 것만 같다. 검소하고 깔끔하게 살았던 자취가 아무래도 존경스럽지 않을까?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없지만 허영심을 들키고 떠나기엔 자존심이 허락치 않는것이다.
셋째는 남편과 잘 지내고 싶다. 한수도 안지고 살려던 오기를 포기해 버렸다. 약간의 긴장이 장수의 비결이라지만 미워하며 살기에는 너무 시간이 짧게 남았기 때문이다.
성령의 열매중 마지막 열매가 절제의 열매인데 기쁨도 절제하고 미움도 절제하고 세상을 향한 욕망도 절제하며 육체의 남은 때를 살고저 하나 때로 옛사람이 내 영혼을 혼미케 할때도 있다.
이제 옷이 날개인 계절이 아니라 심령의 청결이 내 가장 아름다운 날개이려니...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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