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 주일이 또 온다. 어릴적 어머니날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날처럼 내가 쓸쓸했던 날은 없었다. 새학기 반편성이 되어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을 담임선생님이 했다.
"어머니 안계신 사람! 손 들어 봐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조사를 공공연히 친구들 앞에서 했던가 모르겠다. 지금도 여전할까? 그때 어머니 안계신 사람으로 손드는 것은 내겐 얼마나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른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리고 부끄러웠던 뿐이다. 어버이 날이 되면 내겐 아버지에 대한 추억에 잠기곤 한다. 나무를 가꾸시던 아버지 사랑 일기로 적어두었던 것 두편 열어보니 아버지가 유난히 보고싶은 날이다.
목단 내 아버지!
백철죽이 흐드러지매 진 자줏빛 목단이 한꺼번에 화알짝 피어버린 것을 미처 몰랐습니다. 비 개인 맑은 아침에 화들짝! 놀라 버렸답니다.
아버지! 지금은 나의 뜨락에서 키가 훌쩍 커버린 목단입니다. 삐죽삐죽 잎들이 하늘을 향하고...헤푸게 웃어버린 꽃잎을 나무라면서 도도하게 버틴 모습에 찬연히 멈추었습니다.
외숙이 그리도 아끼던 나무를 빼앗다시피 가져오실 때 나는 아버지는 욕심장이! 화초광이라고 생각했었지요. 나무를 옮기는 번거로운 과정은 지켜보는 것은 내겐 더 없이 짜증나는 일이었고 말이예요. 하지만 꼼짝 못하고 그 나무를 허락하신 외숙과의 은밀한 대화내용을 내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목단을 돌보시던 아버지! 묶어두었던 짚동가리를 풀기 시작할 때부터 싹이 필무렵! 아버지는 정원에서 1시간여 화초를 다듬으시곤 아침상을 받으셨지요. 회양목 잎을 한개 한개 손질하시는 모습은 도를 닦는 모습이셨어요.
아버지 가신 후, 목단은 내 뜰로 이사왔어요. 느티나무와 함께 하루 공정을 드려 캐왔죠. 해거리도 안하고 피어나던 목단! 너무도 짧게 피고 져버리는 아쉬움!~ 그 화려함!
아버지는 그 나무에서 내 어머니를 찾아내셨던 것을 알아요 내가 지 금 다시 아버지를 목단에서 만나드시... 그리도 짧은 삶을 말 없이 살다 가신 어머니를! 목단을 닮은 여인을 가꾸고 계셨던 내 아버지!~
외사촌 오래비에게 듣고 알고 있었어요. 그 나무에 서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은 내곁에서 피었다 져버린 목단!
뜰을 거닐며 아버지! 작은 소리로 불러봅니다. 20대 푸른치마로 생을 마친 한 여인의 삶을 그리도 아끼셨던 아버지!
아버지! 제가 어머니 보다 두배나 더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던 여인의 자취! 목단을 노래하는 나의 그리움에 포옥 파묻습니다. 유난히 아버지가 그리운 계절 목단이 지는 계절에...
느티나무 내 아버지
그이의 집무실 창 밖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다. 수령이 80년은 넘었으리라. 분재형태의 자그마한 나무가 창을 덮는다 아버지가 기르시던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무척 크게 자라는 나무일 뿐 아니라, 동구밖에 외로히 서서 천년전설을 담는 나무다. 발그스레 아기 잎들이 솟아날 때 부터 낙엽되어 떨어지기까지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코 흘리던 시절을 아는 나무다.
아버지 돌아가시자 손 볼 사람이 없다고 계모되시는 어머니가 큰 사위 창가로 옮겨 주신 것이다. 천안에서 인천까지 이사를 온 나무이다.
그이는 장인의 손길이 머물던 느티를 보면서 힘을 얻고 또 평정을 찾기도 한다.
이른새벽, 정원의 화초들과 대화하시고 말괄량이 딸들 여덟에게 좋은 아침을 열어주시던 아버지!
님은 가시고 나무는 살아서 말한다. 내 아버지의 많은 이야기들을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면 나의 아이들은 때로는 무용담을 듣드시, 때로는 먼 나라의 동화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그 언젠가 내 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들에게 나와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 있으려나? 나무라도 정성드려 기르다 가야 하는게 아닌가?
느티에 시퍼런 여름이 오고 또 노르라니 가을이 머물고 간 후 눈 서리가 몇 번을 휘몰아 치면 나도 느티나무의 주인을 만나는 날이 올테지. 그리고는 또 내 아들의 창가로 느티는 이사를 가고....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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