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손톱 무좀으로 고생한다. 간에 부담이 된다고 먹는 약을 거부하고 계속 매니큐어 같은 약을 천날만날 바르고 또 바른다. 남자가 메니큐어를 하고 그 순간은 하나에서 열까지 입으로 내 손발을 빌린다. 손톱이 그처럼 귀중한 줄을 예전엔 미쳐 몰랐다. 손톱에 힘이 없어지면 손 전체를 사용하기에 힘들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인체의 부족하게 보이는 부분들이 더 소중하다는 말도 기억난다.
마광수 교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 그는 여인의 긴 손톱을 미칠드시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손톱을 페티쉬(fetish-성교 자체보다도 여자 속옷이나 장신구, 머리칼, 모피코트등에 집착하는 경향을 페티스트라면 그대상물들)로 본 것이다.
손톱은 감각이 없고 각질화된 점에서 물질적 성질을 갖지만 약간의 생명력도 가지고 있다. 그는 물질처럼 꺼져버리고 싶은 無化에 집착하면서도 아직은 생의 욕구를 간직하고 있는 자아의 모습이라고도 했다. 여자의 손톱을 만져도 보고, 비벼도 보고, 뺨에 부벼보기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종교적인 근엄함의 체질이 못되는 바에야, 계속 어린 아이처럼 관능적이고 싶고, 육체적 본능과 정신적 당위 사이에 적당히 양다리를 걸치고 중용을 운위하는 엉거주춤한 타협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실존적 외로움을 손톱으로 표현한 것이다.
엊그네 나는 한 여인의 손톱을 무심코 보고 가슴이 찡했다. 거치른 손 마디는 말할 것도 없고 손톱이 정말 멋 없이 달라 붙어 있었지만, 그녀에 대한 존경이 손톱에서 오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이 높은 사람이고 손을 가꾸기 위해 시간과 돈을 쓸만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요즈음 손톱 손질하는 가게가 호황이란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손톱은 뭉그러져 있고, 손등은 굵은 힘줄이 솟아 있었다.
곱게 가꾼 청결한 손톱! 아름다웁지 아니한가? 그러나 그녀의 손톱은 지금까지의 내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흔들어 놓고만 것이다. 얼굴 한 번 쳐다보고 그녀의 손톱을 다시 내려다 보며 나는 망치로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아름다웠다.
긴긴 여름날 해가 뉘엿할 때면 귀하게 얻어다 두었던 백반에 소금을 조금 준비하고, 아주까리 잎에 콩콩 찧은 겹봉숭아 꽃잎을 조심스레 손가락에 올려놓고 칭칭 무명실로 저리도록 싸매어 한밤을 실패할까 몇 번이고 들추스르며 선밤을 자고나면 새벽 눈비비고 손톱을 들여다 본다. 그렇게 한두어 차례 할라치면 손톱엔 빨갛게 물이 들고, 여름 다가도록 모진 일 하다가도 손톱 내려다 보며 흐뭇하던 우리네 여인들...
요즈음은 칼라 손톱을 부치는 시대가 되었다. 맘에 드는 색깔을 열손 가락 다 다르게 붙일 수도 있다. 딸 아이가 하늘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아빠에게 보여주자? "아이고 딱하다, 그 손으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한 적이 있다. 딸은 당장 다른 손을 보여주며 "아빠! 일은 요손으로!" 하면서...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은 다른 손을 보여주었다. 할 말을 잃은 우리 내외는 기발한 착상에 상징적 의미를 읽을 수 있었다.
멋스러운 손톱이 있는 한, 삶에 찌들지 않겠다는 심사와, 손톱이나 가꾸는 일에 세월을 낭비하는 여자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양면성에, 더 이상 딸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그저 "너의 삶을 살아라" 밀어주고 싶었을 뿐, 용안에 손톱 자욱을 내어 역사를 흔들었던 여인이 있었는가하면, 첫 아이 유치원 보내던 날 얼굴에 손톱 자욱은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기도 한다.
유령이나 귀신이 묘사될 때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톱이 먼저 나온다. 내 경우는 신부화장을 하는데 눈섭도 안 붇치고 손톱도 칠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미용사에게 망신을 당한 씁쓸한 기억이 있다.
남편의 얼굴에 손톱자욱을 내 본 적은 없다. 부부싸움의 형태는 ! 고작 말로 대들다가 사태가 험악해지면 놀래서는 입 꼭 다무는 형이다. 힘이 센 것도 당연히 남자니까 지레 백기를 들고 만다. 흉기로 손톱을 휘둘러 본들 결과가 뻔하니까...
내 손톱은 죽을 때까지 곱고 깨끗하게 깍아서 일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면 족하다. 한판승부에 무기로 등장할 수도 없고, 길고 아름다워 남자의 실존을 깨닫게 해 줄 재간도 없고, 귀신이 되어 흐느낄 이유도 없으니, 그저 시드는 날까지 열심히 깍고 청결하게 할 뿐이다.
손톱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은 단 몇초면 충분하다. 그러나 무덤에 갈 때까지 누구도 이 손톱을 뽑으라 할 사람도, 붙이라 할 사람도 없는 내 손톱은 오늘도 안녕하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