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나는 설악산 자수정을 백금에 물린 반지를 남편에게 결혼 증표로 받았다. 투명한 보라색이 품위롭던 반지! 지금도 기억에 새롭다.
옥가락지 둥글드시,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사랑이라던가, 둥글둥글 원만하게 살고자던 중용의 덕도, 불변의 사랑을 언약하던 금지환도, 그 반지의 화폐적 가치보다는, 뜻을 담아 서로 약조물로 나누었던 것이리라. 은장도로 절개를 말하거나, 창포물에 감은 머리 은비녀로 단장하던 수려함을 다 말하지 않더라도, 보석에 감추인 고귀한 여인의 품위를 뉘라서 허영심이라 탓할까?
결혼 후 얼마 안되어 나는 결혼반지를 잊어버렸다. 우여곡절로 도난당하고 말았다. 그 뒤로 나는 결혼반지에 대신하는 보석을 남편에게 받아 본 적이 없다. 좋게 말하면 보석보다 더 확실한 남편의 사랑속에서 살았고, 보석 마음을 둘만큼 여유롭게 살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아니, 보석보다 훨씬 귀한 자식들을 가꾸느라 보석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다.
신혼여행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우리는 어찌된 셈인지 외국여행의 기회가 제법 많았는데, 그 때마다 특산물이라는 보석들을 기념이 될 정도로 사게되었다.
그래도 그것들이 별로 소중한 줄도 몰랐고, 그것들을 손가락에 끼운다 하더라도 끼고 다닐 곳이 없었다. 늘 만나는 일상의 사람들이 교인들이고 사모로서 갑자기 보석에 관심이 생긴 내가 부끄러울 것 같고, 기실 나는 아직은 보석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변했다. 주글주글해진 내 손가락을 내려다보며 애처롭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허전함에 휘감겼다. 나는 뉘 알세라, 몇개 있던 보석들로 반지 목걸이로 만들었다. 아무도 없을 때 그것들을 끼워보고, 주글거리는 손잔등에 크림을, 주름진 목덜미에 로션을 미끄리고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변하고 있었다.
믿음이 허술해지고 세속화해가는 것이라고 스스로 나무라면서, 나는 새로운 보석에의 관심이 스스로도 염려가 되었다. 마침내 남편에게 천박한 여자로 무시당한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날 어떤 분의 재혼식에 참가하게 되었다. 부자들이 모이는 곳이니 나도 보석을 갖추어 회식에 참여하였다. 그 날 나는 내 인생일대의 초라함에 참패하고 말았다.
바로 말해서 보석이 부요를 자랑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단순한 자기 만족이나 허전함 이상이라는 것을 드디어 알고말았다.
내가 가진 보석을 자랑할 때 누군가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정이 떨어졌다. 단지 무언가 허무하고 허전하다는 소박한 공허를 달래려고 끼우고 매달아 본 보석들이 어떤 의미에서건 부를 상징한다는 것과 그것들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보석에 감추인 더 깊은 뜻에는 아직도 여전히 무식해서 조심스러운 언급이기도 하다. 나에게 때가 왔다. 내게있어 가장 좋은 것들을 곱게 새로 세팅해서 며느리에게 주었다. 허영이나 자랑의 표현으로가 아니라, 내 아들을 사랑 한 너를 우리집 며느리로 기뻐한다는 뜻을 담아 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춘천에서 친구가 사다 준 국산 옥가락지를 끼고있다. 한복 에도 썩 어울리고, 어떤 경우에도 부요스럽지 않고, 그저 시원함을 더 해 주는 그 고운 돌맹이를 나는 보석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자나이 40을 넘으면 보석에 눈을 뜬다고 했던가?
여자가 50을 넘으면 보석을 떠나는 때인가보다. 그리고 여자 나이 60을 넘으면 보석처럼 빛나는 삶으로 인생을 다듬어야 하지 않으련가?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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