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50분 인천발 관광버스는 우리 일행 15명을 합해 41명을 태우고 10분쯤 연발했다. 이틀간의 여행일정에 대한 설명이나 유인물은 없었다. 조금 답답했지만 어차피 편한 마음으로 여행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모르는 것도 좋을찌 모른다고 생각했다. 출발한 차는 1시간여 동안 인천을 뱅뱅 돌고 있었다. 알고보니 부천에서 3명을 더 태우려고 가장 복잡한 출,퇴근 시간에 시내를 누비고 있다. 서해안 도로로 곧장 달렸다면 평택은 갔을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여행사의 사정이 있는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1시간 낭비한 것이 결정적으로 진도에 도착하여 바닷물에 발도 담가보지 못한 원인이 될 줄이야! 운전기사는 낭비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150키로로 달렸다고 내내 공로처럼 떠벌인다. 과속한 것이 잘한 일인가?
점심시간에 모악산 관광지의 식당에 도착하여 예약된 식사를 하였다. 식당의 청결상태는 불량했고 이상한 냄새로 불쾌했다. 버스의 맨 앞에 부착된 팻말에 눈이 갔다. '고속버스 안에서는 고성방가, 가무를 금지합니다' 그러나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가이드가 아이스박스에서 소주를 몇병 가져다 손님들에게 돌렸다. 앞자리 우리일행 15명을 제외하고 술먹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원해서 뒷자리에 앉았다. 차안에선 금방 김치냄새랑 술 냄새가 진동했다. 아찔하다.
일행은 모두 44명 전원 여자였다. 곧 술을 마신 여자중 한 사람이 노래를 한곡 하더니 모자에 돈을 쑤셔 넣었다. 그리곤 맨 앞에 앉은 내게로 마이크를 준다. 노래를 하라는 것이다. 노래방 기기가 설치되어 있어 노래를 불렀다.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그리고 나서 배추 잎파리를 넣으라고 하기에 서슴없이 만원을 넣었다.
돈을 넣다가 아까 맨 처음 넣은 사람의 돈이 천원이었음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싸움이 벌어졌다. 누군 천원내고, 누군 만원 내라는가... 2,3천원 내는 사람들에게 배추 잎파리를 내야 받는다고 시비가 붙은 모양이다. 돈을 강요하다 쌈판이 되어버렸다. 어떤 여자가 나와서 '이러지들 말고 다시 똑같이 5천원씩 개인별로 내라'고 한다. 44 명이 5000원씩 내서 22만원 걷어 10만원씩 가이드와 기사 팁을 주고 2만원은 도로비를 준다던가? 가이드는 관광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진도대교에 사람들을 풀어 놓고, 차안에서 노래 부르도록 앰프를 틀어주고, 미치광이처럼 함께 뛰면서 춤추어 주는 것이 가이드의 일이었다.귀가 먹을 정도의 고성방가 가무에 미칠 지경이다. 우리 일행은 그들에게 욕을 먹었다. '조용한 것이 좋으면 자가용으로 다니지, 왜 관광버스를 탔느냐'고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재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화장지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고통을 참는 인내훈련을 했다. 친구 두명은 리듬박스 소리에 괴롭다 못해 위장장애와 두통을 호소했다. 생소한 여행 문화가 적응하는데 몹시 힘들었다.
진도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30분이었다. 저 아래 해변 주차장에 주차 할테니 7시까지 바다를 보고 오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1시간 30분에 바닷길 갈라지는 곳을 왕복하는 것은 절대시간량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안내가 깃발이라도 들고 바다 갈라지는 곳까지는 안내를 해야만 당연하지 않는가? 어디가 어딘지 사람들이 많은 곳을 따라 무작정 가는 중인데 벌써 바다가 합쳐진다고 나가라고 한다. 바닷물 갈라친 근처도 도착 못한 시간이었다. 그대로 도로 나오는데 버스를 찾을려니 불가항력이었다.
500여대의 관광버스가 있는 곳에서 타고 온 버스를 찾는다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가이드가 자기 승객을 찾으러 한 지점에 나와 있었으나, 거기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헤멜 수 밖에 없다. 버스를 찾는 사람들로 아비규환이다. 노인들은 어쩌란 말인가? 나는 전화걸다가 일행을 노치고 한 줄 정도 버스를 뒤지다가 즉각 포기하고 해남 가는 길목으로 나왔다. 핸드폰이 있었고 친구들이 번호를 아는지라 연락이 오면 버스를 출발시켜 입구에서 합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장소가 핸드폰이 잘 터지지 않는 곳이라는 점과 핸드폰의 배테리! 가 달아 통화가 불가능하게 될 한계상황이 왔다는 것이다.
7시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무려 3시간 동안이나 사람찾다가 밤10시가 다 되어 출발 하였단다. 나는 2시간 정도 같은 장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기다려 핸드폰의 도움으로 친구 내외를 극적으로 만났다. 어두워지는 낯선 곳의 밤길에 오돌오돌 떨면서 전화 하나에 희망을 삼은 처량함이란 이루 말로 표현키 어려웠다. 치욕감이 절정에 달하였다. 이게 관광여행인가? 친구 내외는 진도대교 및에 울돌목 명랑대첩에 대한 설명을 들려주며 이순신장군의 얼이 살아나도록 멋진 가이드를 해주었다. 물살이 너무 세어 태풍의 눈을 보드시 넋을 읽고 들여다 보다가 생각하니 바로 오늘이 충무공의 탄신일이 아니던가? 님은 가시고 님의 정신은 여기 물살과 함께 소용돌이치고 있다.
진도개가 다리앞에 동상으로 버티고 있었다. 개만도 못한 우리네 인생도 많으니 개동상 앞에라도 숙연 해질 수 밖에... 특수공법으로 영국인들이 만들었다는 진도대교는 샌프랜시스코의 금문교와는 맛이 다르지만 휘어진 다리의 야경이 인상적이다. 푸짐한 님들의 대접에 금방 가족같이 따사로왔다. 미니골프장, 고무보드가 있는 친구네 집을 한밤중에 방문하였다. 잘 키워진 분재랑 정돈된 너른 집의 분위기, 대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해남 사나이! 너른 가슴은 내 친구를 품고도 남으련만. 긴긴날 자녀가 무엇이기에 격주말 부부로 저들은 헤어져 살아왔을까? 그리움이 더 좋아서였나? 1시간을 마다치 않고 나의 공동숙소에 태워다 주면서, 밤길 운전에 하이빔을 켜라고 시골길의 위험을 가르치는 남편의 열정에 역시 천년 억겁을 지켜온 인연의 천상연분 아닐런지... 벗의 남편! 고맙기도 해라.
해남에서 나는 일행을 다시 찾아 만났다. 이런 난장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써비스 부재의 현장이었다. 관광객들은 그저 무작정 서로 찾아 헤메고 다녔다고 호소한다. 무식한 대접에 노도처럼 노여움이 일고 있었다. 저녁식사도 오밤중에 하고 숙소는 말이 아니었다. 23명을 한 방에 넣고 세면기, 화장실이 한개밖에 없는 합숙이다. 수학여행 온 학생 취급이다. 30년도 넘는 옛날로 후퇴한 기분이었다. 도무지 화가나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관광버스의 생리를 모르고 탔다는 댓가가 이리도 혹독하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관광문화는 이 정도인가? 정말 몰랐다.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당신 부인이 관광버스로 여행을 하겠다면 보내겠는가?" 기사는 즉시 "미쳤어요? 안 보냅니다" 정말 기가 막힌 노릇이다. 대답치곤 명답이다. 회가루 넣은 두부를 만든 사람에게 "당신 아들에게 먹일 수 있오?" 라고 물었더니 "미쳤어요?" 라고 말했다더니...
최대한 들뛰고 비틀고 흔들던 여자들을 이해해 볼려고 노력해 보았다.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저리도 발광을 할까? 맺힌 한을 풀어낼 다른 방도를 터득치 못해서일까? 저렇게 풀고 돌아가선 건강하게 현실을 잘 이기며 살아가는걸까? 뿐만 아니라 '여기서 이렇게 푸는 사람들은 비교적 건전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가상적으로 '시부모님 장병에 효도하다가 스트레스를 풀러 왔을찌도 모른다'는 등의 온갖 생각을 다 하며 내가 부정적 편견을 갖고 있는가? 생각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여자가 한 말은 인상적이고 잊혀지질 않는다. 그 여자 왈! '관광여행이란 밤에 소주 한박스 맥주 한 박스 사서 기사방에 가서 술 마시고 밤새 고스돕치고 하는거' 라고했다. 아연실색 나는 그 말 에 충격이다. 밤새 술마시고 놀음하고 다음날 어찌 운전을 한단 말인가
돌아올 때 차안에서 또 고성방가에 시달릴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어제 고단해서 지쳐서 좀 나을 것이라고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인내하기로 했다. 출발해서 약 30분쯤 되어 요출을 넘다가 버스가 갑자기 뛰는 바람에 차 안에서 노인 3분이 허리를 다쳤다. 전혀 꼼짝을 못하고 통증을 호소하자 종합병원에 버스를 댔다. 3시간 동안 아무런 안내나 사과없이 병원마당에 우리 일행을 기다리게 했다. 이 환자들를 앰브런스로 인천까지 수송 하느냐, 해남에 입원 시키느냐는 문제로 시비가 생겼다. 관광회사와 기사 안내 또 환자 사이에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끝나질 않았다. 도무지 합일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모든 여행이 중단 된 것이다.
나중에 몹시 분노하여 40여명이 데모를 하자 안전사고 신고를 파출소에 하고 환자들을 해남병원에 입원시키고 변산반도로 출발했다. 변산반도를 차에 탄 채 둘러보며 채석강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채석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냥 삐죽삐죽 한거예요. 돌아보면 알아요" 이게 설명의 전부다. 내려서 회를 먹고 5시 30분까지 차를 타라고 한다. 6시 채석강에서 인천을 향하여 출발했다. 회를 먹어서 힘이 났는지? 다시 흥분해서 미친사람처럼 춤을 추었다. 긴머리를 풀어제키고 사정없이 흔들어대고 상하체를 맞대고 부비드시 흔들어대는 광란의 춤이 계속되다가 앵!~ 하고 싸이렌을 울려주면 모든 것을 딱!~ 멈춘다. 길에 경찰이 나타난 것이다. 지나치면 즉시 아까 그 무지 빠른 굉음에 속하는 리듬박스를 틀어 준다.
게다기 가이드 하는 처녀는 마이크로 괴성을 박자마다 이따금씩 집어 넣어 춤 추는 사람들을 흥분시킨다. 광란의 춤을 구경하느라 눈이 둥그레진 우리 일행은 기절초풍!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신기해서 구경을 하니 더 신이났는지 미친드시 흔들어댔다. 전신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쩔줄을 모르는 흥분상태였다. 미친드시 가이드가 춤추는 이유는 고객들이 춤을 보고 돈을 허리춤에 찔러준다고 했다. 뒤에 앉아 직접 본 친구들이 말했다.
버스 운전에 지장이될 것이라는 부담감에 무척 초조하였다. 다시는 우리나라에선 관광버스를 타지 않을 것과, 노인들 광관여행 안 보낼 것과 관광버스로 관광 다녀왔다는 사람을 다시 한 번 더 쳐다볼 것 이라고 마음 먹었다. 채석강에서 회를 먹는데 옆자리 있던 남자들 중에 한 사람이 우리 테이블에 왔는데 "묻지 마! 합시다" 했다고 한다. 신문보도에서 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접근하는 경험을 처음한 친구가 눈을 똑바로 뜨고 "사람 잘 못 보셨군요" 했더니 "실례했습니다." 했고 다른 시비는 없었다고 한다.
밤 11시가 되어 인천에 풀어 놓았다. 먼 곳에서 온 친구들은 전철이 끊어질까바 허둥대고 있는데... 부천서 태웠던 여자 세명은 기사에게 은밀히 다른 버스에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집이 없는 여자들인가? 너무도 애처로왔다. 내 평생 처음 악몽같은 이틀간에 경험한 것을 조금도 과장없이 그대로 옮겨놓았다. 모든 관광버스가 다 이렇지는 않을찌도 모른다. 또 내가 탄 버스에만 특이한 사람들이 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준비된 관광회사의 서비스 불량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며, 우리나라 관광의 실태와 현주소는?
65000원 경비가 너무 싸서 2일간 싸구려 인생으로 전락해 버린 것인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경찰단속이며, 회사의 영업실태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한심한 관광여행! 이래도 좋은가? 전라도의 김제평야, 평탄한 산자락에 드리운 풍요를 흠뻑 감사하기에는 차안의 고난이 너무 막심했다. 도도히 자태를 드러내는 변산반도의 공기조차 한 숨도 마셔보지 못한 채...채석강의 운치를 노래할 사이도 없이 차는 그저 달릴 뿐이다. 출렁거리며 광란하는 여인들의 아리아!~ 달리고 또 달리고...전라도를 달리며 벌겋게 드러난 인생의 내면을 보는 듯 속속들이 들어난 내장의 비틀림을 보는 듯, 이번여행을 망친 원한 만큼이나 깊이 패인 여인들의 허망한 욕망을 애처로와 하면서... 이틀 나그네! 돌아 올 고향이 있어 그나마 행복했다.
진도! 모세의 기적만큼이나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우리네 관광문화는 요원하게 불투명한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었다. 다만 언젠가 수일을 계획하여 정말 조용히 전라도를 여행하리라 다짐하며 아직은 덜 개발되어 안심되는 자연에, 위로 받았다. 진도여행! 참으로 수난의 터널을 빠져나온 안도감에 잠시 머문다준비없는 여행의 허실을 맛 보고 돌아보며 내 인생여정도 점검해본다.
ps.위 글은 98,4.27-28일 진도여행을 마치고 쓴 것입니다. 그때 다쳤던 할머니 한분은 그후유증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은 차안에서 뛰고 노래하는 것은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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