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기억을 해보면 항상 배경이 문제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그림에는 좀 소질도 있어서,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 선생님이나 친구들, 어머니나 누나들이 칭찬해 주시는 것이 좋아 늘 없는 살림에 크레파스 사 내라고 어머니께 떼를 쓰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마다 배경이 문제였다. 까만색을 칠할 것인지, 그럼 너무 우중충한 느낌이 들어 안 되겠다 싶고, 하얀 도화지를 그냥 놔두자니 그림을 그리다 만 것 같아 완성도가 떨어지고, 하여튼 배경색은 언제나 나를 괴롭혔다. 더군다나 그림이 그려진 공간보다 배경색을 칠해야 하는 공간이 많으면 좋든 싫든 하는 수 없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크레파스를 칠하곤 했다. 그림이 되든 안 되든.
인생은 배경에 대하여 늘 생각하게 한다. 배경이 좋은 사람, 배경이 없는 사람, 배경이라고 내놓을 수조차 없는 사람, 배경 때문에 울고, 배경 때문에 웃고..... 그림 그릴 때와는 달리 이 인생의 배경은 먼저 칠해진다는 점이 다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칠하여진 종이를 받는다는 편이 맞다.
대개는 자신하고는 상관없이 누군가에 의해 -대부분 부모인 경우가 많다.- 만들어진 것이다. 이미 점수를 따고 시작하는 인생이 아직 점수를 따지 못한 인생보다 쉬울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래서 너나없이 배경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실패하고는 배경 탓으로 자조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타인이 자신의 배경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이 말은 자신은 다른 이의 배경이 되어 주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있다. 엄청난 이율배반이 깔려 있는 무서운 이야기이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배경이 되어주셨다는 것을 믿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이의 배경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한다.
안도현은 [연어]에서 배경이 된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렇게 읊는다.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이다. 별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까만 하늘처럼. 꽃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무딘 땅처럼. 함께 하기에 더욱 아름다운 연어 떼처럼.”
그렇다. 남이 내 배경이 되어달라고 요구하기보다 내가 남의 배경이 되어 주길 즐긴다면 어떻게 될까? 세상은 이미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정이서 가족끼리 남의 배경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일터에서 서로 남의 배경이 되려고 열심이라면, 교회에서 성도들끼리 남의 배경이 되려고 헌신한다면..... 상상만 해도 신나는 일이다.
배경 때문에 그림이 살아나고, 배경음악 때문에 영화가 돋보인다. 배경이 주 목적은 아니지만 목적을 목적되게 하는 게 배경이다. 예수께서 사신 삶이 배경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도 모두 주인공처럼 으스대기보다 배경으로도 만족한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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