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교회 담임목사, 부단히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 나보다는 그분을!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음, 저서: '사랑이란 말 가득 가슴에 남겨 두고', '예배의 부름'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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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는 확연히 구분을 하였다. 카네이션의 빨간 꽃과 하얀 꽃을. 어버이날이면 부모님이 살아계신 아이들의 가슴엔 빨간 꽃이 달리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아이들의 가슴엔 하얀 꽃이 달렸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이런 구분이 없어진 것 같다. 모두가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다닌다. 이제는 그런 풍경을 보기도 힘들다. 부모의 가슴엔 꽃이 더러 달리는데 젊은이의 가슴에 꽃이 달린 걸 보기란 어려워졌다.
나는 눈이 좋지 않은 데다 노안까지 겹치면서 2년 전부터 다 초점 렌즈를 낀 안경을 쓰고 있다. 이게 여간 불편하지 않다. 가까이 보려면 안경의 아주 아랫부분을 활용하고, 멀리 보려면 윗부분을 활용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떤 때는 예전의 안경보다 더 안 보이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뀌면서 부모님 모두에게 사랑과 효도를 하자는 것이 이제는 초점을 잃은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어머니에게 집중되던 사랑이 아버지에게까지 이르지 못해서라고 하면 궁색한 변명일 테다. 다 초점 렌즈의 안경처럼 말이다. 그러나 사랑의 속성으로 볼 때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이 분명하다. 다만 사랑이 식은 게지.
요샌 빨간 꽃과 하얀 꽃이 그리 확연히 구분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나로서는 말이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이들도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살아 계시다고 하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계실 때도 하지 못했던 효도가 안 계시니까 더욱 절실한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산길을 걷다가 바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 그 자체로서 그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길섶에 우뚝 선 나뭇잎이 살랑대거나 목이 긴 원추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통해 비로소 바람을 보았던 것이지요. 땀으로 젖은 내 살갗에 바람이 닿았을 때 이윽고 그가 바람이 되었듯이 사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이외의 또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그제야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겠지요.” 이지누의 「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 중의 한 구절이다.
그렇다. 부모님이 안 계신 지금 나는 바람을 본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미 바람이다. 나의 아들과 딸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당신들의 바람이다. 이제야 새삼 바람을 만지고 느끼고 볼 수 있으니 얼마나 불효막급한 일이냐. 부모가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그 눈으로 설상 무엇을 보았다고 해도 그저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사람이 꽃에게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시인의 말처럼, 부모를 볼 줄 아는 눈을 소유할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는 진리를 잊으면 안 된다. 잔잔한 바람으로, 싸늘한 바람으로, 훈훈한 바람으로 내가 존재하는 한 부모님은 거기 계셔야만 한다.(ye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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