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수술하러 들어가면서 수첩에 빼곡히 쓴 유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교인들과 교회협력위원들에게. 번호를 쓰며 조목조목 글을 남겼더군요
젊은 날에 월남파병 때 제1진 청룡부대로 출병 전날 모두 유서를 쓰라고 해서
써본 후 두번째의 유서를 썼다고 합니다.
살아났으니 그 유서는 무효라고 하면서 보고싶지 않았으나
오늘 넌즈시 내게 보여주는게 아니예요
눈물이 나서 복도로 피난을 나간 모양입니다.
수술 직후 중환자실 밖에서 대기하라고 할때
혼이 빠져 나가는 경험을 했던 것은 머리로 생각하던 내 현실이
가슴에 느낌으로 처음 체험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에서 실패하거나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남편은
교회와 가정에 하고싶은 말들을 남겼더군요
부탁한 내용들 속에서 남편이 바라는 일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천국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소에 유서를 써 놓고 살다가 정초에 그 유서를 고치면서
살아보라는 충고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성도의 삶이 바로 유서를 써 놓고 사는 삶이 아닌가요
사형선고는 이미 떨어졌고 집행날짜만 모르는 삶
이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하지요
더 진지하게 삶을 대할 수 있고
좀 더 간결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품이나 허영을 제거하는 진솔함을 살기 위해서
덜 필요한 것들을 편집해 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을 놓지지 않고 편성하기 위해서
한번 유서를 써 보세요
나는 써 본적이 없어요 난 써 볼려면 공연히 감상적이 되어서
비현실적인것 같아 중단하곤 쓰질 못했어요
생각을 기피하고 싶은것이 죽음이지만
우리의 죽음은 어쩜그리도 가깝게 삶에 질기게 붙어 있는지
떼어낼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니까요
남편이 유서를 쓸때 얼마나 울었을까 생각하면서
남편 몰래 안 우는 척 우느라 힘이드는군요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군요
" 무효가 된 유서"
속히 퇴원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