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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제목 : 주도홍 교수의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을 읽고서(2)



주도홍 교수의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을 읽고서(2)

주도홍 교수는 8장에서 “한국 장로교와 통일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장로교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다룬다. “한국 장로교회는 100여 년 동안 세계교회사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누렸다. 세계교회도 부러워하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한국교회를 주목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한국교회에는 마냥 감사할 일만 있지 않았음을 인정한다. 결코 길지 않은 세월 속에서도 한국 장로교회는 수많은 분열을 거듭하였으니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을 정도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서로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관용하지도 못 한 채 상대방의 작은 티를 들보로 확대해 보며 정죄하며, 부질없는 세상 욕심 때문에 수많은 싸움과 분열을 거듭해 왔다. 2012년 현재 300여 개가 넘는 한국 장로교단은 기네스북에라도 올릴 수 있을 만큼 무분별한 분열의 프로, 아니 분열의 포로가 되어 있다.” “한국교회가 아무리 세계선교를 거창하게 외치고 열정적 이웃사랑을 내세운다 할지라도 가장 가까운 우리의 이웃 북한의 2400만의 영육을 사경에 헤매게 방치하고 있다면 한국교회는 위선자이며, 회칠한 무덤이다.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바로 성숙하기를 원하시며, 보다 업그레이드되길 기다리신다.” 주도홍 교수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한국장로교회에 내리신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거듭해서 성경적 통일론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원수를 사랑하라.” “사마리아로 가라.” “그 비유의 의미를 재고하라” 저자는 그 비유의 의미를 이렇게 재고한다. “범죄한 강도를 정죄하고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 강도는 십자가 위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구원의 대상이며 사랑의 대상이다. 십자가 위에서 만난 강도에게 구원이 선포되는 장면은 오늘 한국교회가 마음에 담아야 할 소중한 장면이다. 이런 맥락에서 십자가의 복음은 강도와 같은 죄인들을 감동시키는 복음이어야 한다. 그들을 정죄하며 기독교적 삶의 영역에서 쫓아내어 소외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럴 경우 다시 바리새인적 우를 범하게 되며, 사람의 하나 됨을 근원적으로 추구해야 할 통일의 아름다움을 한국교회가 앞서 부서뜨리게 될 것이다. 제자들의 강력한 만류를 뿌리치고 사마리아로 들어가셔서 사마리아의 복음화를 이룩하신 놀라운 예수님처럼 한국교회는 북한을 품에 안고 기도한 후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우리가 가진 정죄와 판단의 칼을 내려놓은 후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행했던 그 순전한 사랑을 비로소 실천할 수 있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너무너무 귀중한 재고이고 착상이고 받아드리고 실천하여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언젠가 21세기 세계사의 최대의 사건이 될 남북의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하나님과 세계교회 앞에 「한국 신앙고백」(The Confessio Coreana)을 ‘제2의 예루살렘’으로 불렸던 평양성에서 선포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교회의 남북교류를 위한 5원칙”을 제안한다. “하나, 성경적 원리를 확립하라. 둘, 존경 받는 교회여야 한다. 셋, 보답하는 사랑을 해야 한다. 넷, ‘상처 입은 치유자’로 나서야 한다. 다섯, 정치를 이끄는 교회여야 한다.”

주도홍 교수는 9장에서 “북한교회 회복”을 다룬다. 북한교회 회복과 재건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김중석, 한화룡, 한기총 남북교회 협력위원회, 조동진, 신효숙, 오일환, 정지웅, 김동선, 손봉호 등)의 제안들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긍정적으로 소개한 후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결론을 내린다. “한국교회는 먼저 통일 후 북한교회재건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버려야 한다. 통일 후 많은 돈을 들여 멋있는 예배당을 북한 땅에 짓고, 잘 교육된 목회자들을 파송하면, 북한교회 재건이 쉽게 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통일 독일교회는 이러한 환상이 얼마나 잘못인지를 가르치며 교훈하고 있다. 그러기에 북한교회 재건은 이미 분단 하에서 침착하게 보다 슬기롭게 준비되어야 한다. 분단 하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통일 후 북한교회 재건의 성패는 달려 있다. 통일 후 전리품 정도로 북한선교를 생각한다면 한국교회는 다시 뜻밖의 위기를 맞을 것이다. 준비하는 통일이 아름답다고 할 뿐 아니라, 준비하는 북한교회 재건이 아름답다라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기도로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다각도로 예상하고 전문적으로 준비해야 하고, 탈북자교회를 통해 ‘이미의 북한교회’를 재건하는데 노력해야 한다. 사실 탈북자들의 결신률은 전혀 높지 않은데, 이는 북한교회 재건이 얼마나 어려울지를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교회는 우리에게 생생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게 꿈꿨던 ‘복귀의 붐’이 독일교회에서는 전혀 뜻 밖에도 무산되었다. 반세기에 걸친 집요한 동독 공산정권의 반기독교 교육이 통일 후에도 여전히 힘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한국을 꿈꾸며 한국교회가 시급히 준비해야 할 것은 예루살렘 성전도 그리심 산 성전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통일한국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우선되어야 할 것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수 있는 그 구별됨, 거룩함의 사람, 사람들이다.”

주도홍 교수는 10장에서 “김준곤의 통일신학”을 상세하게 다룬다. “남북통일을 위해 김준곤이 제시한 길은 제3의 길이었다. 한반도의 캄캄한 어둠이 아직 걷히지 않은 때 서둘러 길을 나선 그만의 길, 김준곤의 공공신학이었다. 그의 모습은 많은 기도, 묵상, 독서 게다가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한 통찰력이 낳은 열매로 생각한다. 한 마디로 유성의 통일신학은 한결같고 분명했으며, 복음적이었다. 그는 암담한 시절 절제된 언어로 통일을 꿈꾸며, 그가 만난 꿈을 잃어버린 한국의 청년들에게 자기만의 강렬하고 노골화된 언어와 방식으로 애절하고 강력하게 호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 상황이 바뀜과 함께 점점 적극적 언어로 그의 통일에의 비전이 보다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냉전적 남북분단을 그는 영적인 차원으로 바라보며 따뜻한 민족복음화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다.” 주도홍 교수는 김준곤의 통일신학을 “혁명주의”로 “반전주의”로 “반공주의”로 규정하며 동시에 “민족복음화”의 열정에서 찾고 있다. “반공주의자 김준곤과 공산주의자와의 만남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들의 복음화를 위해 원수사랑은 김준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김준곤은 예수님이야말로 ‘초주의자’로서 이 지상의 어느 정치 체제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그 어떤 주의자가 아니며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아니고 초주의자며, 좌익도 우익도 아닌 ‘초익’이라는 점이다. 예수님이야말로 그가 누구이든지 모든 죄인들을 위한 구세주라는 사실을 제시한다. 여기서 북한의 공산주의와 김준곤이 소유한 예수 복음과의 만남이 기꺼이 만나게 된다. 바로 여기에 김준곤의 통일신학의 핵이 있다.” 결국 주도홍 교수는 김준곤의 “통일신학”을 “사랑의 통일”과 “복음화의 통일”로 설명한다. 그리고 김준곤의 통일운동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김준곤에게 통일운동은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함께 건너야 하는 강이며 뚫어야 할 장벽으로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주도홍 교수는 김준곤이 “1.1.1. 기도운동”을 일으킨 것을 소개한다. “매일 오후 1시에 1분 동안 각자가 있는 곳에서 세 가지 기도를 하는 운동으로, 그 중 첫 번째 기도가 남북통일과 민족과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였다. 북한의 한 동리, 학교, 기관들을 양촌(陽村) 삼듯 기도자의 중보기도 대상 마을로 삼는 기도운동이다.” 주도홍 교수는 김준곤이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식량은행”을 만든 것을 소개한다. “한국 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북한 동포들의 식량을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식량자금 모금 및 적금을 위한 운동을 전교회적으로 전개하기 위한 운동이었다.” 주도홍 교수는 김준곤이 “기독교 대학생 통일봉사단”을 만든 것을 소개한다. “한국CCC는 1995년 5월 20일 잠실올림픽 주경기장에서 10만 대학생 통일봉사단 입단 헌신 서약식을 거행하였다. 이는 북한 선교와 아울러 세계 선교에 헌신하는 순간이었다.” 주도홍 교수는 김준곤이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 “금강산 젖 염소 목장”을 만든 것을 소개한다. “이렇게 김준곤은 국토통일 이전에 ‘사랑의 통일’을 꿈꾸었던 것이다.”

주도홍 교수는 한국교회가 대북정책에 있어서 양극으로 갈라져있을 때 김준곤은 남북통일을 위해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갔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현실에서 남북통일을 위해 자기만의 길을 줄기차게 갔던 인물이 김준곤이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삶에서 밝혀낸 복음적인 통일론으로 미워할 수밖에 없는 북한을 예수 사랑으로 극복하여 그들의 고난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으로 북한과 한국을 복음화 하여 결국은 민족복음화로 통일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토록 열심히 김준곤은 통일을 외쳤으나 김준곤은 순수하게 성경 안에서 통일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여기에 이념적인 오해를 떨쳐버릴 수 있었기에 철저한 반공주의자 김준곤에게 철저한 반공주의로 무장한 한국교회도 그리고 군사독재정권도 그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군사독재정권이 끝나고 김영삼 장로가 대통령이 되고,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에 올랐을 때 김준곤의 통일신학은 점점 실천면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행보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김준곤의 통일신학은 이론과 실천을 갖춘 진정한 복음적 통일신학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인데, 21세기에도 여전히 예배당에 갇힌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공공신학public theology이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체험적 반공주의자 김준곤이 어떻게 북한을 품어 그토록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놀랄 수 있겠지만, 예수 사랑이 김준곤으로 하여금 불가능한 원수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었다. 한반도에 살아가는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기를 갈망했던 열정적인 복음의 사람 김준곤은 결국 민족복음화에서 남북통일의 꿈을 달성하려 했다.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의 분단을 김준곤은 영적 방정식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민족의 길을 찾아 나섰던 김준곤이야말로 영적 꿈쟁이, 한국의 요셉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일은 그의 비전을 따르며 보다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남북통일은 오늘도 한계에 부딪힌 정치가에게만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21세기 한국 개신교의 피할 수 없는 숙제라는 점, 그리고 왜 한국교회가 이 일을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를 바로 인식하여 알리는 것이라 하겠다. 미래 어느 날 남북통일이 되었을 때, 김준곤의 통일신학이 초석을 놓아 한국 개신교가 이룩한 일이었다고 평가를 들을 수 있었으면 참으로 좋겠다.”

주도홍 교수는 마지막 장인 11장에서 “평양 대 부흥 집회”에 대한 입장을 피력한다. “한국교회는 2007년을 맞이하여 제2의 도약을 추구했다. ‘부흥, 어게인 1907’이 2007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바램이었다.” 그런데 그 바램은 무산되고 말았다. “한국교회는 그 뜨거울 것만 같았던 부흥을 경험하기는 고사하고, 한국사회, 언론의 심한 질타를 받으며, 아니 무차별 폭격을 받으며 침몰의 위기마저 느끼고 있다. 한국교회는 부흥은 고사하고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두려움에 빠져들기도 했다.” 결국 주도홍 교수는 지금 요구되는 것은 대형 집회가 아닌 “윤리적인 실천” 이라고 지적한다. “동서 분단 하 독일교회의 NGO 「디아코니아 재단」을 통한 활약은 남북 분단 하 한국교회의 윤리적 실천에 많은 숙고와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무엇보다도 무신론주의 북한 정권과 기독교와의 연결고리는 다름 아닌 윤리적 현장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가페의 사랑에 입각한 수준 높은 기독교 사회윤리를 가지고 공산주의자들을 감동시키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한국교회가 ‘1907년 부흥 어게인’을 외치며 여기저기 기존의 대형집회를 옛 방법으로 계획했지만, 무언가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히 평양에서의 집회까지도 계획해 보았지만 꿈같은 공허한 이야기로 끝을 맺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기독교 NGO의 활동, 곧 NGO를 통한 디아코니아가 다양하며 구체적이고 활발하다. NGO 사역에의 참여를 통해 상당한 크리스천들이 사회 속에서의 존재의미를 발견하며,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예수의 윤리적 선언이 조금씩 깨달아지기 때문이다. 사회를 향한 한국 기독교 윤리의 천착이 이론적으로뿐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요구된다 하겠다. 기독교 NGO는 기독교인 사회윤리의 구체화라는 관점에서 절실히 요구되며, 한국교회가 무신론주의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성경적 지혜이기도 하다.” 주도홍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통일을 향하는 한국교회의 인식은 보수와 진보의 입장차가 분명히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전향적으로 나아가고 많은 점에서도 생각이 겹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제는 더욱 체계적이고, 더욱 성숙한 신앙과 교회로서 북한을 상대할 수 있길 기대한다. 한국교회의 성숙된 신앙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는 통일을 미리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의 휴전선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통일을 미리 앞당겨 맛보는 ‘이미의 통일론’을 한국 교회는 가져야 할 것이다. 기독교 사회윤리의 실천은 기독교 최고의 미션인 복음전파, 선교를 위한 또는 향한 가교 곧, Pre-evangelism의 역할을 감당한다. 한국교회가 기독교 사회윤리학적 관점에서 지금이라도 철저한 자기 개혁적 성찰이 요구된다. 과연 고난 당하는 북한에게 한국교회는 어떤 존재였는지, 북한은 한국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며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배고픈 자에게 먼저 먹을 것을 주라’는 주의 음성이 들린다.” 주도홍 교수의 귀중한 저술인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의 독후감을 마무리하면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귀중한 가르침과 통찰력을 얻게 되기를 바라면서 내가 2015년 1월 1일 오후 2시 임진각에서 모인 “한국교회 평화통일 기도회”에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라는 제목으로 전한 메시지 또는 기도문을 거의 그대로 옮긴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창조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궁극적으로는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이신 것을 이 죄인은 잘 알면서도 한 평생 민족의 구원은 물론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마음도 몸도 생명도 바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을 미워하고 정죄하는 반 화해적이고 반 평화적이고 반 통일적인 아니 반 하나님적인 반역과 위선의 죄를 짊어지고 이기적으로 정욕적으로 살아온 것을 뉘우치며 북녘 땅을 바라보는 이 자리에서 통회 자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던 형 에서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울면서 형과 화해한 사실을 기록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지만, 우리들은 잘못을 범한 동족을 끌어안지도 함께 울지도 못하고 서로 미워하면서 한 평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요셉이 자기를 애굽에 노예로 팔아먹은 형들을 만나서 분노와 증오를 나타내는 대신 형제의 정을 억지하지 못하고 방성대곡하며 울면서 형들과 화해한 사실을 기록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지만, 우리들은 6.25를 통해 우리들에게 해를 끼친 북녘 동포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계속해서 지니고 나타내면서 한 평생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분단 70주년을 맞는 지금까지도 남북의 화해는커녕 남남의 갈등과 한국 교회의 분열만 조성하면서 분노와 증오와 정죄와 위선을 몸에 지닌 반 화해적이고 반 통일적인 삶을 살아오고 있는 죄를 뉘우치며 북녘 땅을 바라보는 이 자리에서 통회 자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것이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세상에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기록해 주시고 우리들에게 알려주셨고 그리고 우리들에게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는 사명을 주셨지만, 우리들은 오히려 불화와 혼란과 분열을 조성하고 정당화하는 반 십자가적인 삶을 살아온 죄를 뉘우치며 북녘 땅을 바라보는 이 자리에서 통회 자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 부끄러운 우리 죄인들이 하여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울면서 죄를 회개하는 일이고 그리고 우리 북녘 동포들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화해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의 불순종의 죄를 통회 자복합니다. 북녘의 동포들이여! 우리들의 무정함과 적대시의 죄를 통회 자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은 전혀 자격이 없지만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의 구원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제물이 되신 것처럼, 스데반 집사와 손양원 목사가 그 뒤를 따른 것처럼, 우리들도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한 조그만 제물들이 될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저는 아무 자격이 없는 죄인 중의 괴수이지만, 주님과 누군가를 위해서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기를 소원합니다. 북녘 동포들을 위해서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혹시 제가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을 수는 없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여기 모인 부족한 우리들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셔서 조만간 우리들에게 평화 통일을 선물로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여기 모인 부족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남북과 민족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위해 바쳐지는 조그만 제물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독생자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을 보시고 그리고 순교자들이 흘린 피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 모두에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주시옵소서! 주여! 우리들을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도구들로 써 주시옵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고, 혼란이 있는 곳에 평화를 심고,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와 하나됨을 심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꼭 하고 싶은 말”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기독교신문 (15.3.22. 사랑의 실천)
주도홍 교수의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을 읽고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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