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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제목 : 주도홍 교수의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을 읽고서(1)



주도홍 교수의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을 읽고서(1)

내가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제자 주도홍 교수가 아주 적절한 때에 그의 평생의 간절한 관심사인 “남북 통일”에 관한 학문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내용의 책을 저술한 것을 귀하게 생각하면서 책의 내용에 대한 소감의 글을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책 서두에 고백한 다음과 같은 “사랑”의 고백을 아주 귀중하게 생각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기독교의 사랑은 원수사랑에서 그 빛을 발한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십자가의 사랑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그 사랑 맛본 자만이 그 사랑을 실천하러 애쓴다.” 여기 “사랑”이란 말을 7번 계속해서 사용했다. 사실 기독교는 진리 선포만의 종교도 아니고 예배 의식만의 종교도 아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그래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함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아주 귀중하게 여긴다. 결국 기독교의 오메가 포인트는 인간과 우주 만물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이라고 지적한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저자는 통일을 “이미의 통일”로 묘사한다.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이미의 통일론’ 곧 선취통일론이다. 아직not yet 분단이어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북한을 품을 수 있을 때, 한국교회는 이미already 통일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나누어져 있어도 서로 만나고 오순도순 한 솥 밥을 먹으며 대화할 수 있다면, 벌써 실질적 통일의 상태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이 우주의 평화와 통일을 ‘이미’ 미리 내다본 것처럼 주도홍 교수도 남북의 통일을 ‘이미’ 미리 내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주도홍 교수는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에 관한 책을 쓰게 된 동기가 간절한 사랑이고 아픔과 고민과 안타까움이라고 고백한다. “이 책은 70년 분단 상황을 맞이하면서 지난하게 고통 하는 남북의 동족을 향한 사랑에서 시작되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시작된 외세에 의한 한반도의 남북의 나누임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을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이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를 한반도에 살아가는 한 일원으로서 게다가 한 크리스천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독일통일에 있어 독일교회의 역할을 연구하며, 성경에서 안타까운 분단을 넘어 통일로 가는 그 길을 찾으러 노력했다. 성경의 주제인 예수님의 십자가는 바로 죄로 인해 갈라진 사람과 하나님의 하나 됨, 곧 화목과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곧 통일의 교과서가 다름 아닌 성경이라는 점이다.” 너무너무 순수하고 올바른 성경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들은 너무 세속적인 정치 경제 문화적인 관점과 가치관에 치우쳐 있는데 말이다. 좀 어리석어지고 약해지고 바보스러워지는 것이 필요한데 말이다. 그것이 바로 성경의 길이고 십자가의 길인데 말이다. 나는 주도홍 교수의 순수한 성경적이고 십자가적인 사랑의 관점을 너무너무 귀중하게 생각한다.

주도홍 교수는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에 복잡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반공주의”의 문제를 순수하게 다룬다. “한국교회가 남북의 문제를 말할 때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성경을 강조하는 한국교회가 남북의 문제를 말할 때는 성경을 제쳐두고 다른 이야기로 시작하며 흥분을 금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한국교회는 남북분단을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먼저 가져오는 것은 반공주의였다. 물론 유물론적이고, 반신적이고, 반 교회적인 공산주의의 북한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결코 환영하고 기뻐할 수 없는 상대임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한국교회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는데, 이념은 인간 역사의 시대적 산물이며, 구원의 복음은 영원 불변한 진리인 하나님의 계시라는 점이다. 그러기에 복음의 관점에서 남북분단의 문제를 직시하며,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하실 지를 마땅히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길이 다름 아닌 복음의 길이다. 이 복음의 길에서 한국교회는 남북통일의 지혜를 얻으리라 확신한다. 예수님이 가신 길이라면 기꺼이 그 길을 따라 갈 때 한국교회는 교회다움을 회복할 것이다. 21세기 사마리아 북한을 향해 과연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 우회하셨을까? 포기하셨을까? 아니면 그 사마리아로 들어가셨을까?” 기독교 신학자치고 이렇게 반공주의와 남북 통일의 문제를 수수하게 복음적으로 다루는 것을 별로 본 일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주도홍 교수는 열 한 장에서 남북 분단의 문제들과 통일 방안들을 복음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다루는데 그 내용을 간단 간단하게 적어본다.

주도홍 교수는 1장에서 남북 분단의 비극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반 통일적인 정서를 서글프게 지적하면서 왜 통일을 원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한다.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사랑하는 별난 사랑이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는 원수사랑에서 그 진가를 제시한다.” 그 다음 “광활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작은 땅 한반도가 그것도 남북으로 나눠진다는 것은 오늘 한국에 사는 우리가 섬에 갇힌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사람들의 소심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그 답답함이 스트레스로 변한다.” 그 다음 “북한의 복음화를 위해서이다. 북한처럼 철저하게 복음의 문이 닫힌 땅은 극히 예외적인 이상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하고 지구상에 없을 듯하다. 분단 이전 평양은 '제2의 예루살렘'이라 불릴 정도로 신앙이 꽃핀 땅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북한 현실은 너무도 극단적으로 치우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비정상을 바로 잡는 길은 남북이 하나 되어 정상적인 나라가 되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북한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아 신앙의 자유를 향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주도홍 교수는 얽히고 설킨 모든 문제들을 “사랑”의 열쇠로 풀려고 한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올바른 방식이다.

주도홍 교수는 2장에서 통일 파트너로서 한국교회의 사명과 역할을 지적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에 아무런 열매도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한국교회가 통일의 파트너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교회가 비정치적으로 길을 열어 남북의 정치적 관계에 숨통을 터줄 수는 없을까? 그 길은 첫째로 한국교회가 남북분단을 영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얼마나 무서운 죄악 가운데 한반도가 진통하고 있는지를 인식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둘째로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한 편을 지지하면서 통일에 관한 입장을 찾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떠나 성경적으로 복음적 통일론을 정립하라는 것이다. 곧 예수님이라면 남북분단의 대치상황에서 어떻게 하실 지를 찾으라는 것이다. 셋째로 한국교회가 복음에 근거하여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 국가의 소중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넷째로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한계상황에 마주치면서 스스로의 무력과 한계를 인정하고 한국교회를 분단을 넘어서는 일에 있어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아주 올바른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관점이며 현실적인 제안들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또한 칼빈과 웨슬레와 카이퍼가 교회는 국가와 긴밀한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한국교회가 한국정부의 소중한 파트너로서 통일의 역할을 수행하여야 할 것이라고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로 한국교회는 문화변혁의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로 교회의 길은 섬김의 길이고 사랑의 길이다. 셋째로 한국교회는 사회적 이슈에도 복음적으로 처방하는 힘을 길러야 하겠다. 넷째로 국가도 교회가 자신들의 파트너임을 인식하는 일이 있어야 하겠다. 다섯째로 기독교인을 즉결 처형하는 북한에서의 선교는 신중해야 하겠다. 여섯째로 한국교회의 남북관계에는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바람직한 현실적인 제안들이라고 생각한다.  

주도홍 교수는 3장과 4장과 5장에서 독일 통일과 독일 교회의 역할을 다루면서 독일 통일이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을 찾으려고 한다. 독일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하면서 독일 통일에 있어서 독일 교회가 수행한 사랑과 섬김의 역할을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 그리고 기독교통일학회를 만든 사람으로 이론이 아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 몇 가지 중요한 조언들을 인용한다. “동독교회를 서독교회는 순수한 사랑에 의해 물질적으로 도왔는데,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놀라운 것은 단 한 번도 도와준 돈의 사용처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재정적 지원의 중요한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그룹은 다름 아닌 디아코니아 재단이었다. 디아코니아 재단의 활동은 병원, 양로원, 고아원 등을 위시하여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그 어떠한 기관이라도 주의 사랑으로 찾아가서 따뜻한 이웃이 되었다. 디아코니아 재단의 활동은 결국 동서독의 인간관계를 언제나 견고히 묶어주는 사랑의 띠였던 것을 우리는 확인하였다.” “역사적인 독일의 통일은 실로 ‘조용한 개신교회의 혁명’이었다. 이와 같은 역사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는 한국교회여야 할 것이다. 역사는 궁극적으로 오늘의 자신을 인식하게 한다. 역사의식의 상실은 결국 모두를 역사적 치매로 이끌어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내일의 희망이 아니라, 근거 없는 미래의 불안만을 가중시켜 줄 뿐이다. 북한에 남겨진 형제/자매들을 돕는 일은 우리 주님의 명령에의 순종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돕는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이 다가올 통일한국으로 가는 길을 닦고 가꾸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정치적 논리를 따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민족의 상처를 메우고 넘어서 이제 서로 용서와 화해, 사랑과 하나 됨, 통일에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 길을 평탄케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민족의 허리를 자르고 묶어놓은 휴전선은 한국교회가 세계복음화로 나아가는데 있어 거대한 장애물임을 바로 통찰하고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흑암에 앉아 신음하는 2300만 북한 동포에게, 13억 중국인에게, 그리고 저 광활한 실크로드를 타고 중동 아시아와 아랍 여러 나라들과, 마침내 사도 바울이 그 첫걸음을 떼었던 복음 선교의 출발지인 예루살렘, 안디옥으로 향하는 거대한 복음 선교의 대장정을 펼칠 수 있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 지구상 마지막 남은 철의 장막 휴전선이 제거되는 순간 한반도의 통일과 함께 복음의 환태평양 시대가 북한을 출발점으로 도래 할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복음화의 본격적 출발은 비로소 휴전선이 걷힐 때이며, 이것이 21세시 우리가 통찰해야 할 한국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세계사적 비전으로 생각한다.” 주도홍 교수는 복음과 역사에서 중요한 복음적인 교훈과 함께 역사적 통찰의 교훈을 찾아서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주도홍 교수는 한국교회가 복음보다는 이념에 사로잡혀 있음을 지적하며 한국교회가 지녀야 할 것은 이념이 아닌 십자가에 나타난 원수 사랑이라고 거듭해서 지적한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이념으로 발목 잡혀있다. 특히 일제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시대를 살아오면서 겪은 이념으로 인한 깊은 상처는 마치 복음이 이념을 대치하여 존재하는 상대적 진리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의 적은 기독교이며, 기독교 역시 공산주의 내지는 사회주의를 적그리스도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그들의 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적그리스도로 여기며 그들과 싸울 것을 마음에 굳게 다짐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자신을 죽였던 원수들을 역으로 품으시고 사랑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한국교회가 공산주의 북한을 향해서 가져야 할 태도이다. 한국교회가 가져야 할 자세는 이념을 대적하여 북한을 원수 삼아 쳐부수고 싸울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그들의 어리석음을 내놓고 기도하며, 그들의 고난과 아픔에 참여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복음은 인간의 이념을 치유하는 것이지, 인간의 이념을 대적하여 싸우는 하나님의 진리가 아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통일 후 무신론적 공산주의자와 그리스도인이 함께 하지 못한 채 평화를 깨뜨릴 뿐 아니라, 통일한국에서의 트러블메이커로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음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복음의 사람들이 품지 못할 사람들이 없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의 사랑은 궁극적으로 원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현실적으로 받아드리기가 너무 어려운 조언이지만 너무너무 귀중하고 올바른 십자가 복음적인 사랑의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 자신은 본래는 반공 반북 반 모슬렘에 앞장 섰던 극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공산주의자들과도 북한 사람들과도 모슬렘 사람들과도 타 종교인들과도 친밀하게 교제하며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사람이 되었다.


주도홍 교수는 계속해서 몇 가지를 제안한다. “기독교 대북 NGO 활동: 싸늘한 냉전의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길은 기독교대북NGO를 통한 실천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복음은 허수아비이며, 그 존재를 의심하게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옛 사람을 벗어버린 후 새 옷을 입은 사람들로서 새 시대를 준비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이미의 통일론: 여전히 분단으로 인해 문제는 많지만, 그래도 교회는 ‘이미’ 통일을 앞당겨 맛보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맺는 말: 통일이 이루어졌을 때 부작용이 많이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며 특히 정신적으로 북한인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우리의 신앙과 도덕성을 함양해야 할 것이다.” “일곱 가지 원칙을 확립하는 한국교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첫째, 성경적 음성에 순종하라. 둘째, 존경을 받는 교회로 거듭나라. 셋째, 십자가의 사랑에 보답하라. 넷째, ‘상처 입은 치유자’로 나서라. 다섯째, 정치를 이끄는 교회가 되라. 여섯째, 통일을 앞당겨 맛보라. 일곱째,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라.” 깊고도 바르게 생각한 제안들이라고 생각한다.


주도홍 교수는 5장에서 독일 통일을 “조용한 개신교 혁명”이라고 지칭하면서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 “통일 후 독일 교회의 현황과 과제를 인식하여 한국통일 후 한국교회의 모습을 예측하며, 그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하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발견하고자 함에 있다.” “물론 독일과 한국은 분단에 있어서 확연히 다른 역사와 상황들을 가지고 있다. 동족상잔의 뼈아픈 전쟁을 치른 한반도의 상황, 그로 인한 남북이 서로 간에 가졌던 원한과 상처는 독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방관과 미움의 태도를 계속해서 한국교회가 견지해도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어쨌든 서독교회가 무신론주의 동독을 돕는 일은 어렵고 지난한 일이었다. 오늘 우리가 북한을 돕는 일도 어렵고 힘이 들고 분명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께 칭찬받는 한국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독일통일 전 독일교회의 통일을 위한 역할은 자타가 인정하듯 결정적이었다. ‘특별한 공동체’, ‘실천적 대화’, ‘섬김의 신학’, ‘디아코니아 재단’, ‘사회주의 속의 교회’, 동서독 교회가 함께 했던 공동행사 등으로 묘사할 수 있다.” “마음의 통일: 동독과 서독 사이의 장벽이 허물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깨어진 꿈: 독일교회의 가장 큰 좌절감의 근거는 통일 후 기대했던 교회로의 ‘복귀의 붐’이 일어나지 않은 점이었다.” “공산주의의 잔재: 현재 독일교회가 당면한 문제로서 ‘청소년 축복식’은 동독 공산정권이 오늘 통일 독일에게 남겨준 슬픈 유산이다.” “의무 신앙교육: 통일 후 독일 공립학교의 정식 의무과목인 ‘학교 신앙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극우파의 부활: 통일 후 독일에서 극우파 네오 나치주의자들에 의한 외국인 증오로 인한 범죄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부흥을 외치는 교회: 급기야 독일교회는 통일 후 교회의 어려운 현재를 보며, 부흥을 외치는 교회로 나선 것이다.” “교회의 사회적 역할: 독일 통일 후 제기되는 많은 사회적 문제는 교회의 손을 요구하고 있다.” “통일과 한국 교회: 독일교회의 역사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지혜를, 교훈을 얻어야 하겠다. 그것은 한 마디로 북한동포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조건 없는 사랑의 인내 어린 실천이다!”


주도홍 교수는 6장에서 “21세기 세계 최대 사건은 남북한의 통일이 될 것이다.” 라고 선언하면서 “한국교회의 통일신학”을 사실적으로 다룬다. 먼저 한국교회가 복음과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한국교회에서 복음은 하늘에서 내려오다 말고 공중에 멈춰 서있다. 처절하기까지 한 인간의 삶의 현장인 땅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기에, 구체적 현실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살아야 할지를 말해주지 못하고 있다. 너무 홀리한(?) 한국교회는 사람들의 생의 현장을 모르기에 말하기를 꺼려할 뿐 아니라, 그들의 땅의 삶을 쉽게 속되다 말하며 무관심 속에 방치하기에 이르고 있다. 한국교회는 이중적이고, 이원론에 빠진 중세교회와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가 처한 한반도의 위기에 대한 인식도 감상적이며 즉흥적이고 체계적이지 못하고 세상적이고 이념적이다. 세상과 함께 길을 잃은 한국교회는 답 없이 거센 세파에 밀려 방황하고 있다.” 주도홍 교수는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거룩하다는 성의를 벗고 일상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성도들이 처한 리얼한 삶의 현장으로 내려와 함께 생활하며 예수님처럼 그들의 친구가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한반도가 처한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바른 인식이 이뤄져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세상이 어느 곳에 와 있는지, 우리의 이웃이 어떻게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치열하게 공부하며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예배당에 숨어 있다. 아니 한국교회는 예배당에 갇혀 있다. 한국교회는 실질적으로 세상 속에서의 역할을 상실하는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감사한 것은 점점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성경에 근거하여 사회참여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다스리지 아니할 한 치의 땅도 지구 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의 분단은 오늘의 한국교회가 마땅히 짊어져야 할 십자가, 중요한 과업으로 다가오고 있음은 다행하고 감사하다.” 한국교회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삶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성도의 예배는 예배당 안에서만 이뤄지는 의식으로서 결코 다일 수 없다. 삶이 전제되지 않은, 또는 삶과는 무관한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리고 “기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기복주의에서 벗어난 “하나님의 나라 및 하나님의 통치 관점에서 기도가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곳이 어디든지 속히 임하길 바라는 간절함과 소망 가운데서 드려지는 기도로 변할 때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분단이 얼마나 크고 강렬한 기도의 제목인가를 인식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눈물 어린 뜨거운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복음의 진리를 삶의 현장으로 가져가는 일에 보다 더 치열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분단 하의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은 정치를 뛰어넘고 이념을 초월하여 복음적 확신 속에서 오직 십자가의 사랑으로 배고픔, 추위, 질병, 인권유린으로 인해 죽어가는 2400만 명의 이웃을 향해 순수한 사랑을 조건 없이 베푸는 일이다. 그럴 때 아직 땅은 분단이지만 그 분열을 넘어 하나 되는 통일을 벌써 맛보게 될 것이다. ‘아직’ 분단이지만 ‘이미’의 통일을 당겨 누리게 되고, 보다 자연스럽게 그 바라던 ‘아직’의 통일도 현실로 찾아오게 된다는 말이다.”


주도홍 교수는 7장에서 “선언문으로 본 교회의 통일운동”을 다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이름으로 1988년 2월 29일 발표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과 1994년 2월 19일 기독교학문연구회와 기독교대학설립동역회 등7개 단체의 이름으로 발표한 “1994 한국기독인선언”을 다루면서 그 의미를 평가한다. 그리고 1994년 5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의 이름으로 발표된 “통일 및 북한선교를 위한 결의문”과 1996년 12월 17일 한기총 49개 가맹교단 교단장과 13개 기관단체장 및 한기총 통일정책위원회 임원 전문위원 및 공개정책회의 참석자 의 이름으로 발표된 “한국교회의 통일정책 선언”도 다루면서 그 의미를 평가한다. 그리고 1998년 11월 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88선언”의 1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88선언 10주년기념 선언문”도 다룬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교회는 메시야적 공동체이다. 미래를 현재로 사는 공동체이다. 아직 통일이 오지 않았지만, 이미 통일의 새 세계를 열어가며 사는 공동체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북교회는 남북의 모든 민중에게 소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출발은 참된 회개에서 가능하다. 회개를 통한 새로운 삶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다. 통일운동은 진보와 보수를 어우르는 대중적 연대운동이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을 ‘섬기는 자’라고 일컬으셨다. 우리도 이처럼 이러한 섬김의 행위를 가지고 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교회의 삶의 스타일은 사랑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도홍 교수의 『남북통일을 향한 성경적 성찰』을 읽고서(2)
CTS 기획 “오페라 손양원”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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