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생인 필자는 이른바 ‘전후세대’다. 그럼에도, 한국전쟁(1950∼1953)의 깊은 상처는 50년 가까운 내 삶을 몹시 뒤틀리게 했다. 남북분단의 슬픈 현실 탓에, 이 땅에서 전쟁의 아픔과 무관한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전쟁의 고통이 이렇듯 길이 남는다는 점에서 전쟁은 온갖 종류의 악행이 뒤섞인 추악한 죄다. 인간의 존엄성, 아기자기한 삶의 곡절, 소박한 인생의 꿈과 소망, 목숨보다 사랑하는 이들의 생명이, 살벌한 전장에서 동물적 본능으로 분노와 복수의 방아쇠를 당기는 군인들의 작은 손가락 놀림만으로도 한 순간에 허망하게 사라질 수 있고, 한번 다친 생명은 결코 되돌릴 수 없기에, 전쟁은 그 낱말조차 입에 담기 고약한 추악한 집단범죄다.
지난 200년 동안 지구촌에서 160번 이상의 전쟁을 해온 미국은, UN도 무시하고 올 봄에 기어이 이라크를 침공, 점령했다. 그러기에 아프간, 이라크, 북한이 '악의 축'이라면 미국은 그야말로 '전쟁의 축'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명분은 '독재자 후세인 타도'였다. 그러나 후세인이 누구인가. 그는 원래 미국이 고성능 무기를 대주며 키운 사람이다. 친미 독재자 후세인이 이라크 국민을 무차별 학살할 때 미국은 잠잠했다. 그러나 그가 반기를 들자 미국은, 석유강국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오랜 비인도적 경제제재 끝에 일방적으로 침략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사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의 이면을 좀 깊이 들여다보면 기가 막힌다.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나라들은 모두 다 중국 접경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의 소련처럼 미국의 적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중국을 효율적으로 견제하며 아시아·유럽을 통제할 전략적 발판을 만들기 위해 치밀하고도 원대한 계획 아래 시작된 것이므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오직 미국의 국익만을 위한 추악한 범죄 행위·약탈 행위'일 뿐이다.
이처럼 추한 전쟁, UN과 170여 개국이 반대했던 전쟁에 '비전투요원이니 괜찮다'는 말장난으로 이라크에 선뜻 파병한 우리가 그곳에 국군 전투병력을 더 보내면 안 된다. 파병을 반대하는 이유는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 자체가 평화의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국익을 위해 파병하자"는 이들은, 힘센 나라가 그들의 국익을 위해 이 땅을 침공하면 어찌할 것인지, 이라크 백성의 국익을 희생시켜서 얻는 우리의 국익이 과연 얼마나 떳떳한 것인지 생각해 보라. "전투부대를 추가 파병하자"는 이들은, 우리가 월남전에 어떻게 휘말려들었는지, 수많은 월남전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생각해 보라. “미국의 승리는 무슬림 선교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이들은, 부시의 기독교 승리주의는 광신이요 과욕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 기독교는 십자가 정신(사랑과 섬김)으로 선교하기 때문이다. "우방 미국과의 의리 때문에"라는 말도 들린다. 글쎄, 우리가 미국을 우방으로 생각하는 만큼 미국도 우리를 그렇게 볼 것인지, 효순이 미선이 압사사건을 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정말 좋은 벗은 친구를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돕는 법, 지금은 우리 민족이 평화를 사랑하는 지구촌 모든 나라들의 우방이 되기를 힘써야 할 때다. 만일 미국이 어느 날 그들의 국익을 위해 또 다른 악의 축 북한을 친다면 그 때도 국군을 북녘에 보낼 것인가?
하나님은 은밀히 살해되어 암매장 당한 아벨의 피의 호소를 들으셨다. 하나님은 살인자 가인에게도 목숨을 부지할 은혜의 표를 주셨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아프간, 이라크, 북한 사람들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화평케 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살펴 들으시는 억울한 피의 호소를 듣지 못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겠는가.
7천만 우리 민족이 오직 세계평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통일비용보다 분단유지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 우리 조국의 이 뿌리깊은 아픔을 제발 우리 자식들에게는 물려주지 말자. 평화적·자주적인 조국통일의 그 날까지 우리 기독인들이 이 땅의 어두운 역사를 책임지자. 반전·평화·통일·생명을 위해 다함께 일어서자. 평화를 사랑한다는 우리가, 대통령 재선에 혈안이 된 전쟁광 부시의 압력에 밀려 국군 전투병력을 이라크에 더 파병하면 안 된다. 중무장한 미군들도 쩔쩔 매는 살벌한 이라크 땅에 이미 파병되어 있는 서희·제마 부대도 한시바삐 복귀시켜야할 판에, 우리 돈 퍼부으며 애먼 이라크 사람들과 원수 될 게 뻔한 "추가파병"이라니,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린가. (*)
글 : 이광우 목사(수필가/전주열린문교회 담임/전북학복협, 기독연대 공동대표)
* [Copyrightⓒ 2003.09.22. by 이광우 All rights reserved.] 이 글의 저작권(지적 소유권)은 이광우 목사에게 있습니다. 허락 없이 이 글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복사하거나 글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인용하는 것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광우 목사 연락처] 016-654-9125, sdglk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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