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때문에 꽤 오랜 세월 동안 유럽에서 생활하다가 인생의 나머지 시간은 모국에서 보내야겠다며 어렵사리 귀국을 결정하고 돌아온 친구가 얼마 전에 다시 큰 슬픔과 아픔 속에 우리 조국을 아주 떠나갔습니다. 그토록 오고 싶던 조국, 그토록 꿈에 그리던 대한민국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조국 땅에 묻히기를 원했던 친구는 조국에서의 1년 남짓한 감격의 시간도 잠시, 마치 지옥 같은 깊은 마음 고생을 하다가 긴 탄식과 고민 끝에 결국 다시 유럽으로 영원히 떠나고 말았습니다. 쌓인 회포를 다 풀기도 전에, 사랑하는 친구를 다시 머나먼 이국으로 등 떠밀어 내쫓는 우리 조국의 서글픈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십수 년 만에 고국을 찾은 친구 부부에게는 이 땅이 너무 살가운 곳이었지만, 외국에서 자라난 친구의 자녀들에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겉모양은 멀쩡한 한국인인데도, 친구의 아이들은 한국 문화에 너무 낯설어했습니다. 우리말조차 시원찮은 아이들이 학교에 나가자마자, 한 반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너나없이 달려들어 이 아이들을 동물원 원숭이 다루듯 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얻어맞고 엉엉 울며 들어와서 다음 날 학교에 가기를 두려워하는 자식들 때문에 친구 부부는 숨죽이며 꽤 오랜 시간을 고민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아무리 말려도, 이 땅에서 치고 패며 자라난 아이들의 매서운 손맛과 매몰찬 자세는 어쩔 도리가 없었고, 사랑하는 자식들의 하소연과 흐느낌과 탄식, 마침내는 초기 자폐 증상까지 보이는 것을 보다 못한 친구가 결국은 조국에서의 삶을 서둘러 마감해 버린 것입니다.
요즘 학교 주변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유행하는 ‘왕따’니 뭐니 하는 낱말들은 사실 그 말을 입에 담는 것조차 부끄러운 일인데, 제가 어릴 적에도 이런 일은 숱하게 많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무지막지한 주먹과 흉기를 내두르는 몇몇 동기생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늘 마음 졸이며 오가던 오싹한 학교길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쓸쓸히 떠나는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이 왜 그토록 잔인한가를 내내 생각했고, 마침내 이 땅의 어른들이 폭력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아이들이 또한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쓸쓸히 떠나간 친구를 생각할 때마다, 이사야 선지자의 이 예언(사 11:6-9)이 절절하게 다가오곤 하는데, 죄로 썩은 인간이 모인 곳에서는 이렇듯 끊임없이 큰 힘이 작은 힘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슬픈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나 봅니다. 나보다 약한 이를 돌보고 섬기라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힘’으로 남을 짓밟는 서글픈 흐름이 속히 그치기를 바랍니다. 부디 ‘힘’에 대한 우리의 철학이 근본부터 바뀌어, 그리운 친구를 다시 만나볼 수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힘’은, 남을 지배하는 흉기가 아니라, 약한 이들을 돕고 섬기는 소중한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2004. 6. 21.)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21.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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