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에 있는 어느 교회에 다니시는 권사님께서, 제가 섬기는 전주열린문교회의 교회당 부지를 사 주신 데 힘입어, 교회 개척 11년 만에 전주시 효자동 1가 안행지구, 참으로 아름답고 복된 땅에 새 교회당을 지어 지난주에 예배처소를 옮겼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새 교회당 안에 담임목사인 저의 서재를 아름답게 꾸며 주셔서, 저의 집안 구석구석에 수북히 쌓여 있던 제 책짐도 함께 옮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 석사,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면서 사 모은 문학관련 서적 한 트럭 가까운 분량을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는 친구에게 넘겨주었는데도, 그러고도 남은 책이 또 다시 한 트럭 분이 되었습니다. 사실, 어려운 살림에 근근히 돈을 모아 한 권 한 권 정말 피나게 사 모은 책을 친한 교수 친구에게 그냥 넘겨주던 날, 그 책을 실은 트럭이 우리 아파트 앞마당을 출발하는 순간 소중한 팔 다리 하나를 잘라낸 듯 마음이 아파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돌기도 했습니다. 넘쳐나는 책 때문에, 집에 아주 작은 공간만 있어도 거기에 맞는 책장을 구입하여 거기에 책을 꽂고, 그러고도 남는 책들은 제 책상 주변, 집안 구석구석에 빼곡이 쌓아 두고 지낸 까닭에, 집안에 들어서면 어디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을 정도로 늘 비좁기 그지없었고, 제 책상 위에도, 글을 쓰고 성경을 연구하면서 펼쳐 놓은 여러 권의 책 때문에 컴퓨터 자판 하나 올려놓을 틈새를 찾기도 쉽지 않아 몹시 복잡하고 힘들던 터에, 교회당 안에 예쁜 서재를 만들어 주신 우리 교우들의 사랑과 정성이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습니다.
교회당 짐을 옮겨 주기로 한 이삿짐센터의 양해를 얻어 제 책짐을 한 이틀 먼저 옮기기로 하고 책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끄집어 낼 때마다 매캐하게 푸석거리는 먼지 속에 묻혀 질식하던 손때 절은 책들이 마침내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짐을 정리하다보니 책뿐만 아니라 그간 수집해 둔 많은 자료들과 신문 기사 스크랩, 해묵은 원고뭉치들이 꾸역꾸역 쏟아져 나왔습니다. 책짐을 싸는 틈틈이 그 책과 자료들을 다시 분류하여 어떤 것들은 버리고, 또 어떤 것들은 쉽게 눈에 띄도록 손닿기 쉬운 곳에 둘 요량으로 따로 포장하였습니다. 구석구석 쌓아 두었다가, 이렇듯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이삿짐을 싸면서 정리하다 보니, 굳이 지니고 있어야할 이유가 이제는 별로 없는 것을 몹시 소중하게 간직해 온 것들도 많고, 더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참으로 소중한 자료를 그 위치조차 모른 채 까맣게 잊고 지낸 것들도 많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어렵사리 책짐을 싸고 옮기고 다시 풀어서 새 교회당 안 저의 서재에 다시 정리하는 작업을 하면서 저는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육신의 장막에 거하는 이 땅의 나그네 삶이 다하고 죽음의 강을 건너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사할 때, 별 의미가 없을 지도 모를 허망한 것들을 부질없이 짊어지고 허덕인 어리석음이 제발 없어야겠고,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삶의 본질적인 것들을 함부로 놓쳐 버린 안타까움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2004. 6. 14.)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6. 14.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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