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오란 것도 아니었는데, 오늘도 어느 일간신문 지사장이 저희 집을 찾아와 값비싼 선물 공세와 함께 반 협박조로 구독을 강청하다가 마침내 혼자서 화를 풀풀 내고 돌아갔습니다. 자주 있는 일이어서 그냥 무덤덤하게 넘기려 해도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아파 옵니다. 두어 달 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고 잔뜩 어지럽혀진 집을 치우느라 정신 없을 때 저희 집을 방문해서 간곡히 구독을 요청하던 어떤 분의 축 쳐진 어깨가 또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언뜻 40대 후반쯤으로 보이던 아무개신문의 전주효자동지국장이라던 그 분은 한 눈에 꽤 값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그럴 듯한 경품을 내 놓으며 “앞으로 7개월 동안 무료로 신문을 넣어 드릴 테니 저희 신문을 꼭 좀 구독해 주시라”며 사뭇 애원조로 달라붙었습니다. “이미 보고 있는 신문이 있다”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평소, ‘그런 신문은 거저라도 그냥 받아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 오던 바로 그 신문만 아니었다면 눈 딱 감고 그냥 한 부쯤 구독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날 정도로 예사롭지 않은 세상살이의 고달픔이 그 지국장의 애처로운 눈빛에서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얼굴 따라 무슨 직업이 꼭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선비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깨끗한 얼굴빛과 맑은 눈망울 등이 그날 따라 왜 그렇게 서글픈 느낌으로만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외판 영업에는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여리디 여린 모습인 그 분과의 참으로 지루하게 느껴졌던 10여 분간의 실랑이 끝에 간신히 그 이를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이들에게 “그런 신문들은 공짜로라도 받아 주지 말 것”을 강조해 오던 소신을 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문 좀 똑바로 만들라”는 모진 이야기를 차마 할 수가 없어서 “신문 구독할 필요가 생기면 연락 드리겠다”면서 명함까지 한 장 달라며 입에 발린 인사말을 하긴 했지만 애당초 그런 신문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 꽤 지루한 실랑이 끝에 힘없이 돌아서서 아파트 계단을 쓸쓸히 내려가던 그 지국장의 쳐진 어깨가 여러 달 지난 지금까지도 제 가슴을 아프게 후벼옵니다. 어쩌다 너무 이른 나이에 직장을 읽은 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해 보다가 마침내 신문지국을 열었지만, 그나마 성과가 시원치 않아 체면이고 뭐고 다 내던지고 맨발로 나서서 동분서주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하는 그 작은 사업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랑하는 처자식들이 그에게도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한 동안 제법 비싼 자전거를 경품으로 내걸고 구독자를 모집하여 ‘자전거 신문’이라는 낯뜨거운 별명까지 얻기도 했던 초대형 언론사들이, 그 비싼 경품제공전략 같은 것에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바르고 정직한 붓의 힘’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당당하게 받아낼 수는 정말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어느 시대나 언론이 시대의 나침반이요 이정표라는 점에서, 바르고 곧은 언론을 향한 저 같은 시골 무지렁이의 소박한 기다림은 그 애처로운 지국장의 쓸쓸한 뒷모습과 함께 아쉬움을 넘어 큰 슬픔으로 늘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2005. 3. 14.)
* CBS 라디오 에세이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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