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으로부터 “누구라도 황소 한 마리를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다”는 뜻밖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물었더니, “아주 어린 송아지 시절부터 하루에 한두 번씩만 그 소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 나중에는 다 자란 황소도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다”고 가볍게 대답하셨습니다. 솔직히 좀 미심쩍으면서도, 그 분이 말씀하시는 속뜻만은 얼추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곧 어린 시절에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얼마든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아이들이 어른을 기어이 이겨 먹고, 한창 배우고 훈련해야할 어린 십대들이 사회의 중심이 되는 세상이 올바로 돌아가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솔직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조금이라도 허튼 말을 하거나 사람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마을의 어느 어르신이라도 대뜸 나서서 자기 자식 나무라듯이 혼쭐내며 버릇을 가르쳤고, 그 때마다 젊은이들은 그 가르침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만, 요즘은 함부로 구는 젊은이들을 따끔하게 혼내주는 어른들이 거의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이 사라지면서 학교에서는 스승이 사라졌습니다. 가정에, 앵벌이처럼 죽어라 돈을 벌어 자식들의 뒤를 대주는 ‘인간 금고’는 있어도 ‘어버이’는 없고, 학교 강단에, ‘가르치는 기술자들’은 있어도 ‘스승’은 없습니다.
며칠 전, 자식들을 참 반듯하고 예쁘게 잘 길러낸 어느 집사님과 잠시 교제하던 중에 슬그머니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워낙이 서로 흉허물없이 친밀한 사이로 지내오던 터라, 진솔하게 여태껏 자식들을 길러온 이야기를 선선히 들려 주었습니다. 자녀들이 사춘기를 겪어내는 사이 어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 위태로운 시절을 슬기롭게 잘 이겨낼 수 있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자녀교육의 큰 원칙을 밝혀 주었는데 그 방법이란 것이 뜻밖에도 아주 간단했습니다. 자녀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의 말은 법이다. 이 법을 무조건 따르려거든 이 집에서 살고, 그렇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살고 싶으면 그냥 나가 살라”고 선언하고 그 원칙을 내내 지켜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나아 길러 주는 에미 아비의 말을 듣지 않는 막돼먹은 자식이 세상에 나가 과연 누구의 말을 다소곳이 들어 주겠느냐”는 주장에 저도 뜻을 같이했습니다. 저 또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따라 그와 거의 비슷한 원칙으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자녀 넷을 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2004년 9월호에 페트리샤 달튼의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지 말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을 큰 감동과 함께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에서 달튼은, 오늘날의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일방적으로 해 주어 자녀들을 ‘성인 아이’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둥지를 떠나 자녀들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갈 때의 아찔하고 짜릿한 기분을 느낄 기회를 부모들이 박탈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곧 지나치게 헌신적인 오늘날의 부모들이 사실은 자기 아이들을 앞장서서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의 눈에 아주 이기적인 것처럼 보이는 ‘구닥다리 부모’가 사실은 가장 위대한 인생의 스승이라는 것을 온 몸으로 깨우쳐 아는 속 깊은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2004. 12. 13.)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12. 13.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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