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이동전화를 이용한 전국적인 부정행위가 발각되어 온 나라가 들끓고 있습니다. 세계 100위 안에 드는 국제수준급 대학을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한 나라에서, 그 알량한 ‘학벌(學閥)’이란 것이 무시무시한 지식권력을 행사함으로써 현대판 귀족의 신분증 역할을 하는 역설적인 현실을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는 몹시 어렵습니다.
자식교육 경쟁의 도가 지나쳐, 이제는 아예 가정까지 해체시켜가며 ‘기러기 엄마, 펭귄 아빠’의 고단하고 외로운 삶을 각오하고 나섰다가 끝내 풀리지 않는 삶의 매듭을 뜻밖의 자살로 끊어내는 부모들이 줄을 잇고, 심지어는 엄마들이 몸을 팔아가면서까지 자식의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아무리 어지럽고, 아무리 썩어 냄새나는 곳이 많을지라도 ‘교육’이 바로 서서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가르치면 한 세대가 새로 솟아나는 25년쯤 후에는 민족 정기가 반드시 되살아나리라는 확신이 저에게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들의 교육현장은 그 가녀린 소망의 싹이 고이 자라기에는 영적,도덕적 자양분이 너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학입시 결과가 나오자마자 거의 모든 고등학교의 정문에는 빛나는 입시결과를 번듯하게 적은 펼침막이 내 걸립니다. 물론 거기에는 수도권의 일류 대학에 들어간 몇몇 학생의 이름이 대단히 큰 글씨, 눈에 번쩍 뜨이는 색깔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등급으로 생각되는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의 이름은 그보다 좀 작은 글씨로, 그 다음 등급은 좀더 작게 적다가, 지방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그냥 도매금으로 묶어 그저 두어 자리 숫자로만 표기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학교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는 하면서도, 미래의 일꾼들을 가르쳐 세우겠다는 선생님들조차 그토록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마당에 무슨 사람다운 구실을 할 인재들을 제대로 길러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에도, Home Room 시간에 전혀 다른 수업을 하고서는 학급일지에만 HR을 했다고 적도록 이른 바 이중장부 만드는 법을 학교에서 열심히 배워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요령 피우는 법을 일찌감치 배운 탓인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럴 듯한 대학을 나온 후 썩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이른 바 ‘분식(粉飾) 회계’니 뭐니 하는 잔재주를 피우며 눈속임하다가 세상이 떠들썩하게 대형사고를 터뜨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라의 요직에 누군가가 발탁되어 신문에 사진과 함께 이력이 발표되는 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수도권 두어 개 일류대학 출신들입니다. 그런데도 그토록 우수한 머리를 지닌 사람들이 큰 사건을 터뜨려 사회에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고 오랏줄에 두 손이 묶인 채 감옥에 들어갈 때는 어느 대학 출신인가를 도무지 밝히지 않는 묘한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아무튼, 수능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한 수백 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을 함부로 탓할 수 없을 만큼, 우리 모두가 지저분한 요령과 치사한 처세술에 너무 익숙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만 낯이 화끈거려 오는 것을 어쩌지 못해 몹시 안타깝습니다. (2004. 12. 6.)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12. 6.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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