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국문화협회는, 협회 창설 70주년 기념 행사로 102개 비영어권 국가에서 4만여 명에게 수십만 개의 영어단어 중 대표적 상징성을 가진 70개 단어를 제시하고 그 가운데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고르도록 한 결과 ‘어머니(mother)’라는 낱말이 1위에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mother’에 이어, ‘passion(열정)’ ‘smile(미소)’ ‘eternity(영원)’ ‘fantastic(환상적인)’ ‘destiny(운명)’ ‘freedom(자유)’ ‘tranquility(평온)’ 등이 10위권에 올랐습니다. 무슨 까닭인지 ‘아버지’를 뜻하는 단어 ‘father’는 70개 단어 중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만일 영어권 나라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면 틀림없이 ‘God(하나님)’이라는 낱말이 최상위권에 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하는 낱말로 10위권 안에 든 것들을 좀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이 ‘모성애’의 어떤 측면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한 평생을 살면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머니’에 대한 짙은 향수와 그리움에 늘 젖어 지낸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를 왜 꼭 어미 모(母)자를 붙여서 ‘모국’이라 하고, 자기가 다녔던 학교를 기어이 ‘모교’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기러기 아빠’라는 처량한 이름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습니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젖을 물려 오랜 세월 살을 부비며 양육하는 모든 과정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 있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인종과 국가 문화와 관습을 초월하여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남성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아비’의 이름을 달고 사는 처지에서 스스로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이래저래 저도 ‘고개 숙인 남자’의 한 사람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30년 가까운 옛적 일이지만, 공수특전단에 차출되어 특전사령부 공수교육대에서 공수훈련 4주차에 첫 번째 낙하훈련을 하기 전 주일날, 온 종일 다른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고 어머니께 잘못했던 일들만 애틋하게 되살아 오르던 추억이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큰 만큼 장차 아버지가 되어 살아야할 자신의 앞날을 남몰래 측은히 여겼던 기억 또한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열정’도 있고, 자식을 포근히 감싸는 ‘환상적인 미소’도 있기에, 모든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치마폭과 따스한 가슴과 넉넉한 등허리는 ‘영원’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험난한 세월을 살며 꿈에 쫓기는 삶을 사는 사람일지라도, 한 밤중에라도 버선발로 마중 나오시는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집 문 앞에 서면 무한한 ‘자유’와 ‘평온’을 느낍니다. ‘어머니’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엮어주신 사랑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어버이를 주신 우리 하나님께 그저 눈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2004. 11. 29.)
* CBS 라디오 에세이(2004. 11. 29. 밤 11:55 방송) 원고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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