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나라사랑

전병금(강남교회 목사)

한국사학계에서 독보적인 이만열 교수의 ‘한국 기독교인의 나라 사랑’에 대한 역사적 서술과, 한국 교회 목회자의 사표이신 유경재 목사의 ‘안동교회 지도자들의 나라사랑’에 대한 발제는 깊은 감명과 공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나라, 민족, 애국 등의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주제 가운데 하나라 하겠다. 지금도 곳곳에서 구국기도회를 비롯하여 정치적인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시점에서 교회와 나라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와 국가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는 먼제 ‘하나님의 나라’를 그 전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대마다 다른 ‘나라사랑’에 대해 상대적인 평가 이상을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과거 교회의 행적에 대한 평가가 평가 시점에 있는 사회적 가치에 머문다면, 온전한 평가에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전망 또한 불투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발제에 대한 논찬은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대부분 일제시대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일제 시대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구원 사역을 설교하면서 기독교의 나라사랑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찾았다. 확실한 성서적 근거를 확보한 한국 기독교는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선도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당시 조선 총독부는 이와같은 교회의 활동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고, 성서를 불온서적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실상 성서에는 출애굽기 뿐만이 아니라 예언서, 복음서, 계시록 등 불의한 국가 권력에 대한 비판이 가득하기 때문에 총독부의 이러한 조치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예수님의 나라사랑은 애틋하기까지하다. 예수께서는 로마와 헤롯의 이중 압제에 신음하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통곡하시기까지 하였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를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 자녀들을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눅 13:34)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시고 통곡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곧바로 심판의 메시지가 되어 폭군 헤롯을 비롯한 대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새인, 그리고 그들에게 부하뇌동하는 유대 민중들에게로 향한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 13:35)고 하셨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의 궁극적 관심은 특정한 나라, 민족이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 18:36)
예수님의 최종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마 6:33)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을 끝까지 버리시지 않으셨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를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저 세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부터 시작되었고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는 확장되고 있으며, 예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이 땅에 복음을 증거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인 사회참여에 나서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에 보수, 진보가 따로 있을 수 없으며, 함께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68년 박정희의 삼선개헌에 대해 한국교회가 보수와 진보의 견해차가 생기게 되었다는 이만열 교수의 지적은 한국 교회가 하나님 나라 운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말 사회개혁운동, 항일주권수호운동, 독립운동까지 한국교회는 나라사랑을 기독교 신앙과 일체화하는 위대한 신앙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듭되는 혼선과 견해 차이 속에서 박정희의 3선 개헌를 기점으로 보수-진보의 갈등이 극명해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한 한국교회의 꺾이지 않는 신앙은 나라사랑 운동으로 표출되면서 박정희의 권의주의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사회를 민주화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는 민족의 분열이 민족 분단에서 오는 것으로 진단하고 통일운동에 선도적으로 나섬으로써 한국교회의 빛나는 유산을 남기게 되었다. 이러한 유산은 앞으로도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서로 협력하여 유지 발전시킴으로써, 언제나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는 사명을 함께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 목사의 안동교회의 선각자들에 대한 소개는,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안동교회의 선각자들의 개혁정신과 선비정신에서 오는 청빈 정신을 잘 보여주었다. 여기 소개된 선각자들은 오늘날 자본주의 병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꼭 닮아야할 표본이라 할 것이다. 그들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갱신되어, 다시금 한국 교회가 모든 백성으로부터 존경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 한번 두 분의 훌륭한 발제에 감사드리며, 한국 교회가 본연의 신앙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이 나라를 일으키는데, 모세처럼 하나님의 손에 쓰임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