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협의회 통일부분 발표

                                                       주도홍(백석대학교 교수, 기독교통일학회 회장)




한국교회는 다른 길을 가라

   교회의 길은 정치의 길과는 원리적으로 다르다. 목사와 세상 권세와는 지근거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지옥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직업이 정치가이며, 천국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이 목사라고 했다. ‘정치는 권모술수’라는 마키아벨리의 입장은 정치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치가와 목사가 어울리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뭔가 어디에선가 고장이 나 있는 게 분명하다. 로마황제의 기독교 공인과 그 황제의 기독교를 향한 절대적 후원은 기독교의 타락을 부추겼을 뿐 아니라, 가속화시켰다. 나치의 히틀러와 ‘독일 기독교’(Deutsche Cristen)가 하나 되었을 때, 독일교회는 히틀러를 “독일의 구세주”(Der Deutsche Christus)로 고백하기에 이르렀고, 엄청난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600만 유대인 학살이라는 세계사의 비극을 낳기에 이르렀다. 처음에 히틀러는 가만있었는데, 히틀러를 향해 독일교회가 충성을 맹세하고 뜨거운 사랑을 퍼부을 때, 가톨릭교도인 히틀러는 이를 결국 자신의 정치에 이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국가의 위정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책무가 교회에 있다. 그럼에도 35%의 불교도를 가진 다중 종교의 비기독교국가 한국의 위정자가 비록 장로라도 복음화를 국정의 지표로 삼을 수 있어서도,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고 숨어서 그런 일을 해서도 안 되고, 이 기회에 덕을 좀 보려는 생각을 해서도 야비한 태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조용히 뒤로 물러가 묵묵히 기도할 뿐이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드러나지 않지만 그 맛과 역할을 소금처럼 빛처럼 해내는 ‘보이지 않은 크리스천’이다.
  
   통일문제에 있어서도 교회는 정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성경적 가치관 위에서 철학을 분명히 해야 한다. 왜 교회는 분단을 넘어서는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분단은 교제의 단절이며, 싸움이며, 정죄이며, 나눔이며, 미움이며, 슬픔이며 죄악이다. 통일은 이를 극복하는 것으로, 하나 되게 하는 주의 복음에 순종하는 것이고, 평화의 사도로 우리를 부르신 주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이다. 한국전쟁으로 250만 명의 죽음, 1000만 명의 이산가족,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에 떨어진 폭탄보다도 더 많은 수의 폭탄을 좁은 한반도에 쏟아 부었다. 이후 이데올로기에 의한 처절하고 철저한 세계 유일의 남북의 분단으로 살을 에는 아픔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산가족의 멍든 가슴은 응어리진 한을 풀지 못한 채 이제는 그리움의 눈물도 말라버렸다. 통일은 이를 넘어서 하나 되게 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보는 21세기 세기사적 하나님의 축복이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구체화되는 통일을 전제로 할 때이다.


실천 가능한 꿈을 꾸어라

  통일 후 북한에 세워질 교회를 바라보며, 연합의 정신에 의한 단일교단에로의 꿈은 분명 귀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통일 후 북한에 꿈꾸는 단일 기독교단은 한 마디로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비현실적이고, 다른 의도가 개입할 수 있다. 첫째 이유는 한국교회의 수준이 전혀 그에 미치지 못함이다. 세계교회사에 유래가 없는 분열의 역사를 보이는 한국교회의 미성숙, 실상은 단일교단을 이룰 수 없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본래 하나였던 세계가 바벨탑 사건으로 분열된 것을 다시금 하나로 묶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와 간섭이 있어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제는 거꾸로 하나의 바벨탑을 또 다시 쌓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 수 있다. 그러기에 차라리 단일교단이라는 식의 외형적 추구보다는 같은 지향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내면적이고 신앙적인 정신적인 지표를 통일을 향해 내거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며, 순수하다. 그러니까 통일 후를 바라보며 통일 전 다양한 준비를 범 교회, 범 교단 차원에서 소리 없이 차분히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땅의 통일, 법의 통일은 통일의 제1단계에 속할 뿐이며, 다음에 계속되는 사람의 통일, 이념의 통일, 마음의 통일을 향하는 통합화 과정은 분단 세월에 상응한 지난한 노력과 수고를 요구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교회의 역할은 통일 후를 준비하는 조금은 멀리 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특히 통일 후 드러날 다양한 남북갈등을 사전에 예측하여 통일 전 준비를 미리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크리스천이 통일 시대 십자가의 원리를 실천하여 남북 갈등의 중재자, 조정자 곧 피스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유물론주의에 물든 사람들과 만남에서 기독교인들이 도리어 트러블메이커로 등장하게 되는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남북갈등은 기독교인들로 인해 심화될 수 있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공산당에게 당한 상처를 십자가의 복음으로 치유 받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 후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듯이 겸허하게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할 것이다. 죽음을 이긴 부활의 복음에 든든히 설 때, 능력 있는 크리스천으로 세상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근거로 하여, 한국교회의 통일 전 역할과 통일 후 역할을 보다 체계적으로 차분히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인들의 좋은 친구로 다가갈 수 있도록 주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성숙함을 애써 훈련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는 공공신학을 확립하라

    한국교회는 공공신학(public theology) 관점에서 사회현상을 정확히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실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상황, 사회현상, 곧 콘텍스트(Context)에 대한 치밀한 공부를 한국교회는 해야 한다. 그런 후 성경적 대안(Text)을 제시하려 노력해야 한다. 어느 한 쪽에 편승하여 따라 해서는 안 되고, 성경적 대안을 찾으려 몸부림쳐야 한다. 좌파 우파, 보수 진보 식의 조금은 나이브하고 안일한 이분법적 시각으론 복잡한 사회현상 그 자체를 우선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결국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잘 알다시피 남북관계는 현재 정치적으로 길을 잃은 상태이다. 정확히 통일부는 존재의 이유가 없는 것 같은 상황이 되었다. 차라리 정치적으로 할 일이 없다고 결론이 났다면, 이명박 정부는 비정부 단체인 교회, NGO들이 보다 잘 일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줄 필요가 있다. 이는 크리스천 이명박 대통령의 자연스런 지혜, 역시 남북관계를 여는 동반자적 지혜일 수 있다.

   통일과 선교, 봉사와 선교를 분리하여 생각할 줄 아는 성숙함을 한국교회는 보여야 한다. 다른 말로 두 가지를 독자적으로 따로 떼어 놓아도 그 자체로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복음전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상최대의 사명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로 어려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는 북한을 향해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눈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어 꼭 복음전파를 위해 통일을 해야 하고(“복음통일”), 꼭 선교를 위해 봉사를 해야만(“선교봉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에서도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았지만, 전도를 해야만 봉사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다. 여러 가지로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사랑의 봉사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사랑은 변화된 성도의 자연스런 삶의 열매이다. 오병이어의 이적에서 “배고픈 자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조건을 떠나 배고픔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실 것을 명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아무 조건 없이 열 한센병자를 사랑했고, 그들의 병든 몸을 고쳐주셨다. 병들어 고통가운데 있는 그들을 예수님은 사랑으로 치료해 주신 것이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갇힌 자를 찾아 나서며,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는 일은 주님이 원하시는 바며, 결국 주님을 섬기는 일임을 예수님은 강조하셨다.

   경제 봉쇄로 소외에 시달리는 북한은 고난 가운데 도움을 절실히 바라며, 그 어떤 단체, 종파보다도 큰 기독교의 실질적 도움을 북한은 기뻐한다. 그럼에도 북한은 기독교의 복음전파를 가장 두려워한다. 유물론주의 공산주의에 기독교의 복음이 가장 치명적임을 북한정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북한의 생각을 넘어 한국 기독교가 정말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말씀에 입각하여 묵묵히 실천할 때, 한반도의 통일, 그 이후 한국의 복음화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찾아 올 것을 확신한다. 서독교회가 복음의 원리에 따라 분단 내내 동족 동독을 도왔으나, 다른 조건이나 의도를 드러내지 않았다. 순수하게 바보처럼 서독교회는 그들을 찾아가 그들 사이에 거하면서 성육신적 사랑을 실천했다. 결국 하나님은 독일에게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통일을 자신의 시간계획을 따라 허락하셨다.

    

통일 후 부여될 한국교회의 사명을 기대하라

   꿈이 없는 백성은 방자히 행하게 되는 것이 진리이다. 한국은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한 21세기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우리의 힘을 써야 할 허리를 움켜잡고 있는 분단은 한국교회의 힘을 제어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통일 후 한국교회에게 부여될 큰 사명은 기대가 된다. 아시아선교를 위해서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경제적 부담을 요청할 뿐 아니라, 가장 가까이 버티고 있는 경직된 북한체제는 북방으로 향하려는 한국교회의 선교의욕을 여러 면에서 약화시키고 있고, 북방선교에 대해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한다. 그렇지만 통일 후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전제로 할 때 육로를 이용한 예루살렘까지의(Back to Jerusalem) 한국교회의 자전거를 탄 배낭선교 여행은 상상을 초월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방학 때마다 전국 곳곳에서 전개될 기독청년 대학생 자전거 (문화)선교단 100만 명은 단순한 꿈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의 경비로 여러 가지 면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대의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장 강력한 세계 선교국 한국, 한국교회는 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에서 강력한 영적 에너지를 가진 나라로 평가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2007년 전 세계 168개 나라에 모두 1만 7697명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남북통일과 함께 하나님의 비전이 부상할 것을 기대한다. 곧 통일은 냉전시대를 벗는 민족의 화해, 세계화해를 위한 하나 됨 일 뿐 아니라,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 한국교회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시간(카이로스)의 도래를 의미한다 하겠다. 이 비전을 한국교회가 가슴에 품고 인내로서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를 따를 수 있어야 하겠다.      

통일주일을 지내라

  한국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을 한국의 전 교단이 함께 지내는 통일 주일, 통일주간으로 선포하는 것이다. 6월 25일에 가장 가까이 있는 주일을 통일주일로 지냄과 동시에 그 주일 이 후 한 주간을 통일주간으로 확정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한다. 통일설교, 통일헌금, 통일특강, 통일행사, 북한방문, 북한돕기 바자회, 금강산여행, 개성공단방문, 이산가족상봉 등을 기획하고 비정부적 입장에 서서 행사를 이끈다. 보다 다른 차원의 복음에 입각한 실천적 통일주간 행사를 통해 한국교회는 강한 도전과 함께 통일에로의 꿈을 새롭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한국교회는 땅의 통일, 법의 통일이 오기 전에 미리 통일 맛보는 ‘이미의 통일’을 이룰 것이다. ‘아직’(not yet) 분단 가운데 있을 지라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북한을 대할 때, 한국교회는 ‘이미(already)의 통일’을 앞당겨 맛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통일 후에도 한국교회는 자연스럽게 통일한국의 균형 잡힌 일원으로, 평화의 사도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교회의 통일신학은 한 마디로 ‘이미의 통일론’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