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음주의 발제>


한국교회 영성의 현주소
-용서와 화해를 중심으로-

김 성 영(백석대학교 석좌교수)


1. 서 언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이번에 ‘한국교회 영성의 현주소’를 ‘회개와 참회’, ‘용서와 화해’, ‘사랑과 봉사’로 나누어 진단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회개와 용서와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적용하시는 영적 사역이라고 가르친다.
  이러한 주제 설정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오늘의 한국교회에 진정한 회개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참된 사랑과 봉사가 있는가? 하는 반성을 전제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며, 둘째로, 성경이 가르치는 진정한 회개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봉사는 바른 ‘영성’에서 출발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적 실상은 어떤가? 하는 냉철한 현실 진단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든 사실 이 두 가지 의미는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 즉 한국교회의 영성이 바른 성서적 토대 위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게으르고 미련해서 한국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살았다 하나 실상을 죽은 상태’(계3:1)와 같은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이 주제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야 할 만큼 오늘날 한국교회의 영성-진정 회개와 용서와 화해의 영성-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할 것이다. 왜 그렇게 보는가를 굳이 묻지 않아도 그리스도의 종복(從僕)들인 우리의 영적 실상과 우리가 섬기는 한국교회의 영적 실상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오늘의 한국교회는 심각하게 세속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필자는 본 주제에 대한 성서적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 교회사 안에서 성서의 가르침을 실천한 몇 분의 삶을 조명해 봄으로써 한국교회의 ‘영적 실상'을 점검하고 반성하고자 한다.

2. 용서와 화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성서적 구원의 핵심인 ‘회개-용서-화해’
  성경은 죄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회개(悔改,Repentance)'와 '용서(容恕,Forgiveness)'와 '화해(和解,Reconciliation)'가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고후 7:10)’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막1:4),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음(엡1:7), 그리고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심(엡2:16)’, 등 많은 성구가 그것을 증거한다. 이것을 부정문(否定文)으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회개 없이는 하나님의 용서(죄 사함)를 받을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이것을 긍정문(肯定文)으로 표현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용서함을 받으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이처럼 회개와 용서와 화해는 구원의 서정(序程) 상 밀접한 전후 관계로서 삼각의 세 변과 같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대신(對神) 관계에서 죄인인 우리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야 하고 그 분과 화해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렇게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들이 대인(對人) 관계에서 마찬가지로 서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할 것이 있으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할 것을 가르치고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먼저 회개하고 용서하지 않으면 인된다고 가르친다.
  앞에서 박용규 교수께서 회개에 대해서 발제하고, 사랑의 섬김에 대해서는 손인웅 목사께서 발제하심으로, 발표자는 그 연장선상에서 용서와 화해의 성서적 의미와 그것을 실천(적용)하고 있는 한국교회사의 몇 분의 삶을 살펴기로 한다.

  2) 용서에 대하여
  성서적인 용서는 하나님이 죄를 면해 주는 것, 즉 사유(赦宥)의 은혜와 동일하게 이해된다. 죄인에게 베풀어진 하나님의 용서는 인간적인 용서와 전혀 다른데, 그 이유는 철저히 하나님의 의(義, Righteousness)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은 죄인에게 용서를 베푸시는 근거로 의를 요구하시는데 죄인은 그 어떤 행위로도 의로울 수 없으며, 오직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에게서만 가능한 것이다.
  구약 성경에 ‘용서(용서하다)’라는 단어가 처음 기록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돔 성 심판을 예고하시는 창세기 18장 24절 이하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18:2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 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18:26).” 여기서 ‘용서하다’라는 말은 נשא (나싸) 동사로, 기본 어근이 ‘들어 올리다’인데, 문자적, 상징적으로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용서’와 관련이 있는 의미로는 ‘완화하다’, ‘돕다’, ‘세우다’, ‘용서하다’ 등이 있다.
  그 외에 “...주께 득죄한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대하6:39)”에서 사용된 סלח (싸라흐, 관용하다, 용서하다.)나, 다윗이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시39:13)” 라는 탄원에서 사용한 שעה (샤아, 인정을 베풀다, 아끼다.) 등 여러 동사도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구약이 보여주는 용서행위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용서하심이 풍성한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다. 사죄(赦罪)를 위한 간구는 개인의 범죄로부터  아브라함의 이웃 종족을 위한 간구(창18:24), 모세의 선민을 위한 간구(출32:32;민14:19) 등으로 그 지경이 확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아버지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하심으로써 용서의 대인∙대신 관계의 밀접성을 강조하셨다. 특히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기 위하여 똑 같은 말씀을 긍정문과 부정문을 교차하여 반복하고 계심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άφίημι(압히에미)는 είμι(에이미) 동사의 강세형으로 ‘면제하다,’ ‘해방하다’, ‘용서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명사형 άφ-εσις(아페시스)는 죄의 사면, 면제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가령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잔을 가지고 축사하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하)” 하신 말씀에 나타난 ‘죄사함’을 뜻한다. 다른 표현으로 πάρεσις(파레시스)도 ‘관용’, ‘지나감’의 의미로 ‘용서’를 의미한다. 로마서 3장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에 나타나 있다.
  신약 성서 중에서 서신서들은 용서의 개념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신앙 공동체에서 피차 용서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데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이다(고후2:7,10). 무엇보다도 우리가 서로 용서해야 함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셨기 때문이다(엡4:32)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고난, 즉 대속의 죽음에 있다(롬4:25).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은 소급적인 효과가 있다고 가르친다(히11:40).

  3) 화해에 대하여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다. 아담의 범죄로 죄인 된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엡2:13).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 놓인 죄의 담을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시고 화목하게 하셨다(롬5:6-11). 특히 신약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 이후 부차적으로 강조하는 것이 인간 상호 간의 화해이며(마5:24;고전 7:11),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이다(롬11:7-32;엡2-3장).
  구약에서 ‘화해’를 의미하는 명사이면서 동사형인 단어 כפר (카페르)는 ‘(역청으로) 덮다’, ‘(상징적으로) 속죄하다’, ‘자비롭다’, ‘화목하다’, ‘감싸다’, ‘씻겨 없애 버리다’, 의 뜻을 가지며 ‘속죄’, ‘구원’의 의미로도 발전한다. 또한 ‘화해’라는 이 말 속에는 용서가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창세기 32,33장에 나오는 야곱과 에서의 극적인 상봉과 화해의 장면에서 이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함이었더라(32:20)” 에서 우리는 야곱이 선물로 형과 화해할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 한글 성경에서는 ‘예물로 감정을 풀다’, 즉 ‘화해를 시도하다’는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 이처럼 선물로 화해를 이끌어 내려는 야곱의 시도는 무산되고 결국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이루어짐으로- 형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영적 화해의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잠언 16장 14절에 ”왕의 진노는 살육의 사자와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노를) 쉬게 한다’는 뜻으로 ‘카페르’가 쓰이고 있으며, 이사야 47장 11절 ”재난이 네게 이르리라 네가 그것을 무마시키지 못하리라“에서 ‘(재난을) 무마시키다’는 뜻으로 ‘카페르’가 쓰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화해는 원한이나 진노로부터 용서를 받고, 그리고 재난을 덮고 무마시키며 그것으로부터 면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 ‘화해한다’는 뜻의 대표적인 희랍어로는 καταλλάσσω(카타랏소, 명사형은 καταλ-αγή,카타라게)와 διαλλάσσω(디알랏소)가 있다. 전자의 의미는 어원 상 적대관계에서 우정관계로 변화되는 것으로, ‘교환하다’, ‘혼합하다’, 화목케 하다’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 관하여 신약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화해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하여 그의 은총을 행사하사 화목하게 하심을 보여주는 것이다(롬5:11). 후자는 ’철저하게 변화시키다‘, ’화해하다‘의 의미로 마태복음 5장 24절에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 용어의 구분하는 바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가르치기를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하셨으며, 친히 하신 기도문을 통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6:12)” 하심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고 그분과 화해한 우리가 남을 용서하고 그와 화해하지 못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 도리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긍정문과 부정문으로 반복해서 강조하셨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
  그러므로 우리가 경성하고 실천해야 할 화해(화목,和睦)의 수직선상의 신(神)-인(人) 간, 수평선상의 인(人)-인(人) 간의 십자가형(十字架型) 교훈은 다음과 같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7-19).”

  위에서 살펴본 바, 용서와 화해의 성서적 의미는 1) 먼저 하나님과 죄인 된 인간의 사이에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져야 하며(엡1:7;2:14;골1:14;1:20;욥22:21) 2) 여기에 근거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에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져야 하며(마5:24;6:14,15;엡4:32), 3) 신인(神人) 간의 용서와 화해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 있으며(롬3:25,26), 4) 인인(人人) 간의 용서와 화해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에 근거하고 있으며(엡4:32;골3:13), 5) 우리가 남을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를 받을 수 없으며(막11:25,26;6:37), 6) 용서와 화해의 범위는 개인 사이에서 공동체(집단)과 지역, 민족, 열방과 자연 등 전 우주적으로 확대되는 것이다(골1:19,20).
  그러므로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성서적 의미에 근거하여, 용서와 화해에 대한 한국교회 영성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해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오늘의 우리들이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에 필자는 한국교회사를 통해 성서적인 용서와 화해를 실천한 몇 분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오늘의 한국교회 영성의 실상을 진단하고자 한다.  

3. 한국교회, 용서와 화해의 영성

  그러면 현재 우리 한국교회의 영적 실상은 어떤가? 주의 종들이 성도들에게 용서와 화해를 얼마나 성실히 가르치고 있으며, 얼마나 겸손히 실천하고 있는가?
  발표자는 한국교회 역사상 아름다운 용서와 화해의 모델이 되고 있는 성직자 중에 순교자 손양원 목사님과 평신도 중에 조만식 장로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 오늘의 한국교회 실상을 반성하겠다. 참고로, 길선주 목사의 회개의 영성에 대해서는 발표자에게 주어진 주제에 앞서 있으므로 생략하고, 순교자인 주기철 목사와 이기풍 목사와, 평신도 이승훈 장로의 경우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 손양원 목사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의 모범
  세계교회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가깝게 따라간 인물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앗시시의 성 프란시스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교회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치열하게 실천한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은 산돌 손양원 목사라고 할 것이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대체로 맞는 말이다.
  과연 손양원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천하신 한구교회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손양원(孫良源) 목사님은 1902년 6월 3일 경남 함안에서 부친 손종일 장로와 모친 김은주 집사의 장남으로 출생, 1908년 5월 부친과 함께 기독교에 입교(入敎)했다. 동경 스가모(巢鴨) 중학교를 거쳐 경남성서학원(1925)과 평양신학교(1938)를 졸업한 후 부산나병원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울산방어진교회를 개척하였으며, 1939년 7월 여수나병원의 애양원교회 전도사로 부임하여 나환자들을 돌보던 중 신사참배 거부로 1940년 여수 경찰서에 검속, 광주 형무소와 청주 보호교도소에 5년 가까이 구금되었다가 1945년 8.15 해방으로 석방되었다. 출옥 후 애양원 원장을 겸하여 교회에 복귀, 1946년 3월 목사 안수를 받게 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줄곧 애양원에서 나환자를 돌보며 목회에 전념하던 손 목사에게 1948년 10월 19일 실로 엄청난 불행이 찾아 왔다. 그것은 당시 제주 폭동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집결해 있던 군인들 중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물든 남로당 계열의 군인 일부가 반란을 일으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 와중에 손 목사의 두 아들 동인과 동신이 폭도들에게 무참하게 총살을 당했다. 당시 순천사범학교와 순천중학교에 재학 중인 형제는 평소 친구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하며 공산주의를 경계하고 비판했기 때문에 양민들 중에 제일 먼저 체포되어 인민재판을 받았는데, 이 때 두 형제는 서로 대신하여 죽기를 자원했으나 잔인한 폭도들은 형제를 한꺼번에 총살하고 말았다.

  원수를 용서한 십자가 사랑의 실천
  졸지에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는 장례식에서 마지막 인사 시간에 그 엄청난 슬픔을 딛고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축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등 아홉 가지의 감사 제목을 열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여 온 성도들을 놀라게 했다.
  여순반란이 진압된 후 정세가 바뀌어 손 목사의 두 아들을 죽인 자들의 한 사람인 안재선이라는 학생도 체포되어 총살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손 목사는 계엄 사령관에게 “이 학생을 죽이면 내 두 아들의 죽음이 헛될 것이니 부디 살려 달라”고 간청하여 그를 구출, 양자로 삼아 이름을 손재선이라 하고 부산 고려성경고등학교에 공부를 시켜 전도사로 키움으로써 우리 주님이 보이신 십자가의 사랑을 몸소 실천했다. 그 후 손 목사는 6.25 동란의 와중에서 교회를 지키다가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9월 28일 순교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손양원 목사님의 신앙을 통해, 독생자를 화목의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죄인을 용서하시사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 삼아 주시는 하나님의 망극하신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롬8:17,32;엡3:6). 십자가에서 확증하신 하나님의 사랑은(롬5:8)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고난에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손양원 목사의 이 놀라운 사랑의 실천은 한국교회사 차원의 사건을 넘어서 세계교회사에 유례가 드문 사건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용서와 화해의 사랑은 무엇으로 가능한 것일까? 손양원 목사의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자가 나왔다는 것은 영광’이라고 한 고백에서 보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구원의 은혜를 누린 자만이 남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우리가 삶 속에서 누구를 용서할 수 없거나 용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자신이 아직 구원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2천년 세계교회사에 비해 이제 막 한 세기를 경과함으로써 비록 역사는 일천하지만 20세기의 성자로 일컬음을 받을 만한 손양원 목사의 ‘용서와 화해’의 모범 사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조만식 장로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의 모범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을 중국의 손문에 비긴다면, 고당(古堂) 조만식 선생은 인도의 간디에 비길 수 있다”고들 한다. 이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주권을 침탈당했던 가장 쓰라린 수난기에 조만식 선생이 보여준 비폭력, 박애정신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발휘했는지를 웅변하는 말이다. 우리는 한국교회사에 기록된 훌륭한 평신도 중에서 특히 조만식 장로의 기독교정신의 구현을 통해서 용서와 화해의 영성을 배우게 된다. 발표자는 우선 조만식 장로의 사상을 조명하기에 앞서, 이 발표에서는 논외의 인물이지만 남강(南崗) 이승훈(李昇薰) 장로께서 3.1운동 당시 보여준 구국 차원의 타종교와의 연합과 배려 사상은 조만식 장로의 박애사상과 함께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위대한 한민족 사상이자 차원 높은 기독교정신으로써 한국교회가 계승 발전시켜야 할 영성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 두는 바이다.
  조만식(曺晩植) 장로는 1883년 2월 1일 평남 강서군 반석면 반일리 내동에서 조경학 씨와 김경건 씨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조만식이 태어난 곳은 1866년 내한하여 이 땅에서 최초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가 한문 성경을 배포한 강서군이며, 그가 태어난 때는 이 땅에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가 복음을 들고 내한한 1885년 이태 전이다. 어린 시절 향리에서 한학을 공부하고, 22세에 한정교라는 친구의 권유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1905년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여 안창호 선생의 영향을 받았으며, 1908년에 일본에 유학, 도쿄 세이소쿠영어학교와 메이지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일본 유학 중에 간디의 무저항주의 사상을 배우고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장과 평양 YMCA 총무, 조선일보 사장 등을 역임했다. 한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강서 지방을 비롯하여 지방 주동자로 활약, 해외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망명하려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2년에는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하여 3.1운동 이후 민족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1923년 41세 때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으며, 해방과 함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창립 위원장으로 민족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과 공산진영의 방해로 46년 김일성 일파에 의해 감금, 행방불명되었다. 일설에 의하면 공산군에게 피살되었다고 전한다.

  고당의 비폭력․박애정신
  조만식 장로는 일제 치하의 그 모진 학정 속에서도 일관성 있게 실천하려 한 것은 비폭력주의 사상이었다. 그는 평소 “사랑의 싸움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비폭력, 무저항보다 더 강한 힘은 없다.” 는 말을 구호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7일에 발표한 ‘과거의 소사(小事)는 청산하고 동포여 건국에 돌진하자!’라는 발표문을 통해 패망한 일본을 대하는 우리 국민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관하여 몇 가지 말할 것은 일본인에게 가해(加害)하는 등 사(事)는 절대로 금하여야 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해라는 것은 반드시 육체적인 박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정신상 상대의 인격이나 자존심을 상하는 것도 의미하는 것이다. 생각건대 30여 년간 우리가 피통치자로 지나온 동안에는 민족적 원한과 통분도 물론 없지 않았을 것이나 지금은 우리가 가장 큰 일을 할 때이지 그런 과거의 구구한 일을 추궁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정치적 속박을 벗어나 자유롭게 건국할 이때 무엇보다도 피차 곱게 분리하는 이상의 좋은 길은 없다. 생각해 보자. 가령 조선에 있는 일본인은 군인을 합하여 일백만 내외에 불과한데 그들에게 가해를 하고 보면 일본에 가 있는 7백만 동포의 입장이 어떻게 되겠나. 그뿐만 아니라 일본인에게 가해를 한다면 그네들이 수수(袖手)하고 가만히 이것을 감수(甘受)하겠는가. 다시 그들과의 유혈을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 나타난 고당의 사상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기독교 박애정신을 찾기에 어렵지 않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롬12:17~19)”는 말씀, 그리고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검으로 망하느니라(마26:52)” 하신 주님의 말씀을 연상하게 한다.
  이처럼 편협함이 없는 기독교 박애사상을 가진 고당은 1920년 한국 최초로 평양에 고아원을 세워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가르치고 돌보았다. 동경 유학 시절에는 ‘한인 유학생친목회’를 조직하여 봉사하기도 했는데, 정복자의 땅에서조차 유학생들이 지방색을 드러내며 분열하자 “우리가 앞으로 고국에 돌아가면 피차 고향을 묻지 말고 일합시다. 인화(人和)와 단결(團結)이야말로 앞으로 국권회복과 독립을 위해서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라고 기회 있을 때마다 호소했다. 이러한 고당의 한민족 공동체 사상은 ‘하나님도 한 분’이요, ‘교회도 하나’라는 성경적 화합사상(고전1:10)이라 하겠다.

  고당의 기독교 연합운동 ; 에큐메니칼 정신
  고당 조만식 선생은 일제 치하에서 한국교회사상 최초로 장로교와 감리교 연합교회를 설립한 기독교 연합운동가이기도 하다. 일본 유학 시절 1911년, 동경 YMCA 건물에는 장로교파와 감리교파 교인들이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이를 우려한 청년 조만식은 YMCA 총무 김정식, 장로교 출신 한석진 목사, 기독청연 운동에 힘쓰고 있던 백남훈 등과 힘을 모아 장․감 연합교회를 설립한 것이다. “감리교인과 장로교인이 한 건물 안에서 따로 나뉘어 예배를 드리게 된 판이니 문제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는 교파 문제라기보다 일본이나 외국인 앞에 체면이 안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한민족이 국난을 당하고 있는 이때 그것도 일본에서 이러한 이로 인해 민족 분영의 인상을 주게 된다니 너무나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긴급 대책을 세워 통합해 보도록 합시다!”
  이처럼 조만식은 학창 시절부터 민족이 분열되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으며, 조선인이 단합하여 힘을 과시해도 국권을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서 신앙의 문제로 인해 마음이 나뉘는 것은 국력 소모라고 생각했다. 그는 성경을 통해 교회는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분 예수 그리스도와 한 성령을 고백하는 연합체임을 배웠기 때문에 교파나 교단을 불문하고 한 분 하나님을 고백하는 성도들은 연합해야 한다(시133:1;롬6:5)는 사상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조만식의 신앙사상에 의한 노력은 일본에서 최초로 장․감 연합교회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당의 신앙을 통해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다(엡4:4)”는 교회연합정신과 주 안에서 형제가 연합하고 동거하는 화해, 화목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4. 결론 : 두 분의 모범에 비춰본 오늘의 한국교회, 그 반성과 결단

  오늘 우리가 섬기고 있는 한국교회의 용서와 화해에 대한 영적 실상이 어떤지를 개관적으로 제시할 데이터는 발표자에게 없다. 이것은 영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통계를 낼 수도 없고, 굳이 그렇게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라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하나님께 철저히 용서를 빌고, 형제간에 서로 용서하고, 야곱과 에서처럼 목을 껴안고 울며 화해할 일만 남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간 한국교회는 기회 있을 때마다 한 자리에 모여 회개와 용서, 그리고 화해를 위해 수없이 통회자복하며 기도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 진정한 회개와 용서와 화해의 강물이 흐르고 있는 지 두려울 뿐이다. 오늘 이 시간 우리 교회사에 용서와 화해의 모범을 보인 손양원 목사님과 조만식 장로님의 성서적인 아름다운 영성의 실천에 우리 자신을 비춰볼 때 더욱 그러하다.
  교회 안에서의 목회자와 성도 사이, 그리고 성도와 성도 사이의 갈등과 불협화음, 나아가서는 교단 안에서의 끝없는 정치적 주도권 다툼이 끊이지 않음으로써 교회가 세상에 얼마나 실망을 주고 있는가. 그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아직 믿지 않는 이웃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며, 현실에 있어서 타 종교와의 원만한 이해와 소통이 부족하고, 대사회적인 봉사에 대한 협력이 부재함으로 국민들로부터 배타적인 기독교라는 오해는 받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한국교회의 실상은 바로 오늘의 주제인 진정한 회개와 용서와 화해와 섬김과 봉사의 영성에 빨간 불이 켜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혁된 교회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존 칼빈 선생의 교회개혁의 모토가 새삼 절실히 요청되는 한국교회의 오늘이다. 물론 어떤 개인과 교회에 따라서는 발표자의 비판과 반성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교육과 실천을 잘하는 개인과 교회는 더욱 잘하도록 끊임없이 개혁의 몸부림을 해야 할 것이며, 훌륭한 신앙 선배들의 맑고도 성결한 영성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볼 때 부끄러운 우리들은 자다가 화들짝 놀라서 깨는 영적 경성함으로 회개와 용서, 화해와 섬김의 허리를 겸손히 동여매야 할 것이다.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거나 남을 탓하기 전에 지금 이곳에 모인 우리들부터 훌륭한 신앙의 선진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영성의 전통과 남기신 실천의 유산을 오늘에 되살려 국가와 민족과 교회를 바로 섬기는 용서와 화해의 사도들이 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국교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