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카니스탄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가 전운이 감돌고 어수선하건만 예외없이 둥근달은 휘영청 떠오르고 갈바람은 조석으로 싸늘하더니 황금벌판을 달리며 귀향길에 올랐다.
명절이면 예외없는 교통사고 소식에 안타깝다. 부모를 따라 나선 3살박이까지 한가족 모두 사망이라니...
이 슬픔을 어찌한단 말인가? 게다가 교통사고로 한맺힌 장애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이들의 숫자가 증가추세라니 달리는 흉기라는 자동차는 가히 편리의 불편리가 되어버렸다.
귀향길에 곳곳에 '뺑소니 차량을 본 사람은 알려달라'고 호소하는 프랭카드를 볼때마다 안타까운 사연을 짐작해보기도 하고 달아난 뺑소니 운전자의 남은 인생은 어떠할까를 생각해 본적도 있다.
나도 운전한지 20년이 되어간다. 그간에 어찌 무사고였을까? 언젠가 기록해 둔 일기 한토막을 여기 옮겨본다.
두개의 기적
그날은 90고령의 할머니가 소천하신 날이었다. 문상을 갈 사람이 9명이어서 승합차를 몰게 되었다.
문상을 마치고 오던 중 속력은 불과 20키로 정도였다. 으스럼 땅거미지는 시간 차 안에선 인생무상, 장수가 과연 축복인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때다! 순간 아찔하여 "어머나!" 하면서 조용히 핸들을 놓고 말았다. 내가 아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왼쪽 핸들 밑 유리에 붙어 있었다.
초간에 '꿀꺽꿀꺽" 요출을 넘는 감각이 전신에 감지되었고 나는 아른하게 시끌한 소음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아무 일 없어요, 정신 차리세요." 또렷한 말이 들려왔으나 나는 자르르 핏기가 빠지는 느낌으로 고개를 분명히 저었다. '아니야! 죽었어! 난 알아!' 내 말을 알아들을 사람은 없었다.
가물가물 정신이 없어지면서 그 다음에 철렁 몸이 어디엔가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의식을 차렸을 땐 남편 친구의 병원에 입원되어 있었다.
뒤 늦게 소식을 듣고 남편이 곁에 와 있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 아이는 살았어" "자동차가 장난감이 아니란 말 이제는 실감 나나?" 남편이 말했다.
정말 자동차가 장난감이 아니었다. 그 동안 나는 벼라별 생각을 다 하고 있었다. 만약 그 아이가 불구가 된다면, 그 아이가 죽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의 착잡한 생각을 하고 또 했다.
사고신고를 마치고도 피해자보다 내가 병원에서 더 늦게 퇴원을 했다. 집에 와서도 나는 멍청하니 현실로 돌아와지지가 않았다.
사고난 아이를 만나보기 전까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생각이 멈추어 버린것 같았다.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길병원에서 8장의 사진을 찍고 진찰을 마친 후 전혀 외상도 없어 집으로 갔다는 전갈이 왔다.
내가 쇼크로 더 오래 입원을 했었다. 다음 날 이른아침 전화가 왔다. 밤에 아이가 많이 놀래고 구역질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이를 어쩌나?' 뇌에 이상이 온 것이 틀림없다. 겨우 안심하고 하루가 지났지만 다시 앞이 캄캄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부평의 자기 집 근처 아는 병원에 다시 입원하겠다고 한다. 물론 그리하라고 했다.
날마다 문병을 갔다. 상황을 알아보니 사고난 아이는 딸 넷을 낳고 겨우 얻은 외아들인데 아빠는 해외 취업중이라고 한다. 겨울 방학이 끝나기 전에 누나 직장에 한 번 와보고 싶어해서 왔다가 귀가 버스를 기다리던 중 길을 가로질러 까불고 말을 안들었단다.
누이에게 야단맞으면서도 서둘다가 순간 차가 오는 것을 보고 누이에게 올려고 뛰어든 것이다. 어둑해질 때라서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고 했다. 그 아이의 큰 누이가 목격자이다.
차 안에 9명이 탄채로 7세의 사내아이의 다리를 앞 뒤로 승합차 바퀴가 두 번을 넘었고 아이는 차 밑에 깔려 있었다. 완전히 기적이랄 수 밖에 없다. 바퀴가 머리로 지나갔담 뇌에 손상이 오거나, 흉부나 배로 지나면 장이 터졌을 것이다. 정갱이를 바퀴가 넘은 것이다.
겨울이라 옷을 두껍게 입은고로 외상도 전혀 없었다. 나중에 안 것인데 인체의 뼈가 1500kg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순간적인 강한 타격을 줄 경우는 다르지만...남편과 매일 한번씩 아이가 좋아하는 먹을것을 사갖고 문병을 했다. 아이는 나랑 친해졌고 해외에서 이 소식에 놀랄 아이 아버지에게 미안하다고 하니 드디어 어머니가 실토를 했다. 아이 아빠는 네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바로 3년전인 셈이다.
이 아들이 남편이자 아들로 의지하며 산다고 했다. 기막힌 사연이다. 귀하지 않은 자식 있을까만, 이렇게 귀한 아들이 죽었거나, 장애인이 되었다면 어쩔뻔 했는가? 남편도 교통사고로 죽었는데...아들까지?
교통사고 후 피해자를 찾아 문병하는 것이 백해무익이라고 충고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약점을 잡힌다는 것이다. 보험회사에서 다 알아서 하니 문병을 그만 다니라고 했다. 하지만 아랑곳 없이 매일 문병을 하다가 1주일이 되니 그 가족과 더욱 친해졌다. "내일쯤 퇴원할 생각입니다. 이제는 오지 마세요. 심려를 끼쳐 바쁘신 분들 부평까지 오시게 했어요" 아이 어머니가 말했다.
다음 날 아이에게 인사차 학용품 살 정도의 돈을 준비해 가지고 병원을 찾았다. 모두 퇴원하고 없었다. 합의를 위해 경찰서에 조서를 꾸미는데 전적으로 자기 동생의 잘못이라고 목격자인 누이가 진술했다.
이 광경을 본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또 하나의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을 만난것이 기적이라고 한다. 사실을 사실로 말하는 것은 기적이라니 아리러니 한 말이지만 세상이 그렇다고 말했다. 아직은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라면서 모두들 신기해 했다.
이것이 내 운전 경력 20년에 일생일대의 아찔한 경험이다. 모두들 두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라면서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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