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아내로서 많이 울었다. 지금 그 슬픔의 열매는 거침없이 예쁘게 성장하고 있다.
그 무서운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어디서 올까? 위로부터 오는 삶의 준엄한 명령에 진실하게 순종함에서 오지 않을까? 삶은 처음부터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어늘 요즘 청소년들의 자살! 어쩌면 좋을까? 살아야 한다. 아무리 슬퍼도 살아야 한다. 태어났다는 것은 살아야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다음은 실화이다. 너무나 가슴아파 적어 놓았던 슬픈날의 일기를 올려본다.
3살박이 훈이가 비석 앞에서 논다. 비석에 써 있는 글짜에 작은 손구락 을 집어넣고 글짜 획을 따라 어루만지면서 훑어내리고 논다. 3일 전에 죽은 아버지 이름인 줄도 모르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애비없는 호로자식이 된 줄도 모르고, 비석 앞을 뱅뱅 돌다간 아빠 이름 석자에 손바닥을 대보기도 하고 더듬어 보기도 한다.
훈이 엄마 아빠는 부부 은행원이었다. 결혼한지 3년, 아침에 훈이 볼에 뽀뽀를 남기고, "장모님,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훈이를 부탁하고 인사 드린 후 여늬날처럼 아내를 은행에 내려주고, 차를 몰고 갔는데...
둘이는 푸른 꿈이 부풀었는데... 새벽 2시에 전화가 왔다. 남편이 이미 숨을 거두었노라고... 회식 후 친구들과 2차를 갔다가 너무 힘들어해서 술 깨거든 집에 들어가라고 여관방에 재웠단다.
함께한 친구가 좀 이상해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그만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게 전부다. 원망스럽다. 이상하면 병원 응급실로 가지 왜 여관방에 데려갔을까? 젊은 사람이니까 술만 깨면 회복될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장남을 졸지에 잃은 시댁에선 비보에 시모가 기절하고, 훈이 엄마는 남편이 관속에 들어갈 때도, 땅속에 묻히는 순간까지도 눈물이 없었다. 그저 구경을 할 뿐이었다.
종종 훈이가 옆에 있나 살펴본다. 눈물샘이 말라 붙었는지...... 사위 이름을 부르며 한 곡조 서럽게 토해내는 친정엄마 곁에서 가끔 부르터 올라 타 버린 입술을 깨물어 뜯어냈다.
과부! 이제 훈이 엄마는 과부다. 훈이는 애비없는 호로자식이다. 광야같은 세상에 애비없는 3살박이와 28살짜리 과부가 청산을 내려온다. 구비구비 돌아 내려오는 묘지 길을 따라 누워있는 이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거기 따뜻하던 한 남자의 얼굴이 겹쳐진다.
"훈이 아빠! 나 혼자 어떻게 살아!" 후두둑! 이름 모를 산새 한마디 날아간다.
다음은 하나의 이야기이다. "하나가 왔어요" 순간 나는 헝크러진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초등 5학년인 하나는 키가 제법 크고 머리카락을 곱게 길러 처녀티가 났다. "엄마!" 간신히 신음하듯 부르는 하나의 작은 목소리가 애간장을 찢는다. 나는 되도록 하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한 많은 여인의 장례식에 상주라고는 하나! 오직 하나 뿐이다. 처녀적에 찍은 사진인가? 뿌옇게 흐린 흑백사진이 청초하기까지하다. 하나가 조금 더 크면 저 여인과 모습과 영락없이 같을 것이다. 하나곁에 더 슬픈 여인의 피를 토하는 눈물이 있다.
"숙아! 잘 가거라! 먼저 가거라 에미도 곧 갈테니... 숙아! 하나가 여기 왔구나, 네가 보고싶다던 하나가 여기, 숙아! 이제는 가거라 잘 가거라!" 하나의 외할머니는 에미를 앞서는 딸의 죽음이 비통하다
하나어미는 올 3월 결혼생활 13년을 청산한 이혼녀이다. '병신 서방도 없는 것 보다는 낫단다' 는 엄마의 말씀 때문에... 그리고 하나 때문에 참고 살아온 세월이다.
정말 술주정뱅이의 아내는 아무 것도 없다. 꿈도, 자존심도, 아무런 의미도... 아비없는 자식을 만든다는 것이 두려워 살아왔던 숙은 이미 지쳤다. 단 하루라도 남편 없는 하늘 아래 편히 살고 싶었다.
30세 노처녀가 시집을 가겠다고 결심하기까지도 무척 힘겨웠는데, 43세! 이제 한을 품고 잠들어 버린 것이다.
숙은 이혼이 하나와의 이별이란걸 각오하기까지 엄청난 시이소오를 했다 하나를 잃더라도 아니! 나중에 찾더라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숙은 이미 깊이 병들어 있었다. 죽을 병에 걸린 것을 아무도 몰랐다.
이혼하고 애써 홀가분하다고 생각하고 싶었는데...질병에 잡혀버린 것이다. 게다가 하나에 대한 그리움까지 겹쳐 그녀를 살려두지를 않았다. 칭칭감은 자기 생의 자락인 하나를 굳게 잡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두달을 지나면서도 단 한 번도 숙은 실수로라도 하나를 부를까싶어 조심! 혀를 깨물고 참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와 혼수상태에서, 그것도 어머니 앞에서 "하나가 보고 싶어요, 한 번만 보여주세요" 그렇게 요청하고 말았다. 정말 한 번만 보고 떠나고 싶었다.
숙이 어머니는 먼 길을 떠나는 딸을 위해 긴급히 자존심이 무너지는 요청을 사돈댁에 했다. 하지만 하나를 끝내 보낼 수 없다고 전갈이 왔다 .
숙이 어머니는 하나를 못 보낸다는 사돈댁의 소식을 들었건만 손가락이 힘을 잃어가는 숙에게 "응 조금만 기달려라. 하나가 온단다. 조금만 기다려! 정신차려라,숙아! 에미 얼굴 보이느냐? 숙아!" 그렇게 울부짖었다.
숙은 끝내 하나를 보지 못하고 힘 없이 친정어머니 손을 놓고 말았다 한을 품고 잠드는 숙의 손이 싸늘이 식어간다. 에미보다 먼저 눈을 감는 딸을 보내는 한을 아는가? 한 많은 할미 가슴을 어미 잃은 하나가 쥐어 뜯는다.
이 겨울에, 이 따스함이 필요한 성탄의 계절에 슬픈 추억들은 주변을 돌아보게 하고 가슴 차가움을 민망하게 한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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