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생일이었다. 소담한 흙장미 56송이 2묶음 그리고 또 분홍장미! 꽃바구니에 장미 가득! 온통 장미마을이 되어버렸다. 장미 200여송이! 너무나 아름다운 아침! 아이들이 사온 케익은 케익처럼 생긴 아이스크림이었다. 불켜고 노래하는 사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출근하자마자 사무실 직원들이 불을 끄더라나?
"불키(켜)!~ 뭐하노?" 무드없는 아저씨! 촛불도 못키게 해서 그냥 케익만 나누어 먹었단다 쑥쓰럽고 곤욕스런 그이의 하루! 장미숲에서 마냥 좋아하는 내게 늦은 밤 그이는 말했다. "장미가 그리 좋나? 내는 하나두 안 좋다. 언제부터 우리가 장미문화고? 미역국에 쌀밥이면 그만이지." 지난 남편 생일날의 해프닝이다.
아이들 유치원 다닐때 생일잔치 풍경이 떠올랐다. 엄마들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아이는 고깔모자를 씨우고 케익과 제철 과일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아이들은 노래부르며 즐거워한다.
생일잔치 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사탕부케를 목에 걸고 하루 종일 친구들과 흥겹게 지낸다. 아이들이 조금 성장하면 계속 "내 생일"을 읊어댄다. 자기 생일에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종주목을 대기도하고 생일전에 뭔가를 사달라고 졸르면 생일날 사준다고 보류시키기도 한다.
우리아이들 어릴때는 자장면과 케익 그리고 과일로 파티를 열어주었다. 아이들은 자기와 친한 친구들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제법 고뇌하는 눈치였고 그날이 되면 숙제도 미루고 나가서 신나게 노는것이 주 행사였다.
조금 더 자라서 말귀를 알아듣게 되자 어느 날, 아버지가 딸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네 생일은 네가 세상에 나온 날이다. 너도 세상에 태어나느라 고생을 했고, 엄마도 목숨을 건 날이기도 하다. 그간에 이만큼 키워주신 엄마에게 보답할 기회가 없었으니 생일 하루라도 엄마를 위해 아침밥을 해드리며 어떻겠느냐?" 딸은 끄덕이며 그해부터 자기 생일이면 아침에 부엌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밥상을 차려 주었다. 물론 내가 도와서 밥상을 차렸지만, 하고저 하는 마음이 갸륵해서 짐짓 누워있기도 하고 딸의 효도를 받기도 하였다.
남편은 결혼 후 내 생일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아주 힘겹게 살때는 케익을 살 돈이 없어서 전병 500원어치를 사다놓고 (전병은 실은 자기가 제일 잘 먹는 과자다.) 간절히 축복기도를 해주고 나서 그것을 혼자 다 먹어 치우기도 했다. 하지만, 생일 아침 남편에게 축복기도를 받는 여자들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이다. 감동스런 장면이 아닌가?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어느날 남편의 생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거의 집에 밤 12시가 넘어야 오고 새벽에 달아나니 코빽이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와중에도 아버지 생신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선물을 사러 갈 시간도 만만치 않던 아이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내용인즉 "쿠폰"인데 백지에 주욱 네모를 치고 네모속에 각가지 메뉴가 들어있었다.아침 설거지=5000원 구두닦기=1000원 집안청소=2000원 성적상승=20000원 노래한곡조=50000원 기타 뻑적지근했다. 쿠폰 총계가 100만원도 넘었다. 최대로 비싼 선물을 받아보았는데 쿠폰이라서 필요할 때 아빠가 요청하도록 되어있었다. 그 쿠폰을 사용해 보지 못했으니 부도수표나 마찬가지긴 했지만, 기발한 아이디어가 당시에 유행했던 모양이다. 미국 유학중인 누이에게서 선물도 약속쿠폰으로 왔었으니까.
지난 7월 결혼한 딸이 9월7일 생일이었다. 사돈댁에서 호텔로 우리가족을 초청했다. 며느리의 첫생일에 양가가 다시 만나 기쁨을 나누자는 뜻이었나보다. 얼마나 황송하던지... 새식구가 된 며느리를 이쁘게 보아주신 사돈어른들께 마음깊이 감사하면서 효도해야 된다고 가르치고 또 가르쳤다.
며칠전 내 며느리 시집 온 후 4번째 맞는 생일이다. 시집 온지 벌써 그리 되나보다. 마침 주일이어서 한끼 밥도 함께 먹질 못했다. 주일은 가족들이 교회 가는 시간이 모두 다르고 분주하기 이를데 없다. 간신히 카드 한장을 마련하고 현금을 봉투에 넣어 주었다. 실용적이긴 하겠지만 며느리 줄 선물을 사러 다니는 멋진 시어머니의 품위를 보여줄 기회를 잃고 말았다.
생일 그 의미가 무엇일까? '이 세상에 네가 태어난 것을 기뻐한다. 너는 참 보배롭고 필요한 인생이다.' 라고 인정해 주는 날일까?
나이가 50을 넘어 한살씩 나이를 보태다보니 생일에 축하를 받아야 할 일인지? 죽음에 가까워지니 서글픈 날인지 썰렁해 지기도 한다. 하긴 한해 동안 질고와 환란속에 다행스럽게 살아 남았으니 감사하기야 이를데 없지만...
친정 삼촌은 내 믿음의 아버지시다. 삼촌네 생일풍습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생명을 나누어 주는 헌혈을 하신다고 들었다. 피에 생명이 있으니까...헌혈을 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선 뜻이 좋아도 실천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생일의 의미를 십분 생각해보게 하는 일이다.
생일풍속도도 가지가지이고 내 가정안에서만도 생일풍속의 흐름이 변천하고 있다. 생일! 그 날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어 가는 것은 아닐테지?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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