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기도 부탁을 받았다. '40일간 모 호프(맥주집)앞의 공중전화박스에서 밤9시경 자기가 전화를 할테니 전화를 받고 사모님은 사모님집에서 꼭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자기 남편이 그 카페의 지하 은밀한 마담방에서 상주한단다. 친정식구들이 덮쳐서 간통죄로 고소할 자료를 다 가지고 있으나 교도소 보내는 것보다 회개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작정기도를 하기로 했단다.
직장에서 퇴근하는 길에 꼭 거기서 기도하라고 성령께서 지시하셨으며 틀림없이 그 시간에 남편의 자가용이 있으므로 자기 눈으로 확인하면서 적극적으로 기도하겠단다.
듣자하니 성령님도 너무나 가혹하시지, 눈 앞에 남편의 자가용과 지하방을 상상할 수 있는 현장에서 꼭 기도를 하게 하셨단 말인가? 나는 그녀에게 시공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설명할 수도 있었고, 인간감정의 한계상황을 인정하라고 말할 수도 있었으나, 단호한 그의 결심에 할 말을 잃었으며, 어떤 것이 성숙한 신앙인지 나도 헷깔렸다.
착잡한 괴로움과 그남자에 대한 미움이 가득한 채 약속의 기도를 하루하루 진행했다. 손님이 와도 기도방으로 들어갔고, 외출할 일이 있어도 약속을 이행했다.
그 집사의 괴로움에 동참하려는 단순한 의지적 행동이었다. 기도 응답의 확신이 없는 것이 내심 부끄러웠으나 믿어져야 믿는 것이 아니련가? 하지만 그 집사는 나와 달랐다. 하루하루 분노와 미움이 눈물로 바뀐다고 했고 방황하는 남편이 불쌍해진다고 했다.
나는 괘씸하고 더러운 놈이라는 생각과 '바보같은 집사! 당장이라도 직장있겠다! 교도소에 잡아넣어 뜨거운 꼴을 좀 보여주지' 라는 생각뿐이었다. '하나님! 나쁜놈을 심판해 주세요, 착한 아내를 괴롭히는 녀석은 천벌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싶었으면서도 차마 그렇게 기도할 수는 없었다.
진실성이 없는 기도에 하나님도 기가 막히셨을것이다. 어렵사리 40일 기도를 끝냈다. 그런데 기도의 응답이 오기는커녕 내가 예상한대로 여전할 뿐만 아니라 상황은 더욱 노골적으로 악화되었다.
바람피는 정황이 알려진 다음에는 더 떳떳하게 바람을 피우면서 당분간 기다리라고 호통을 친다. 기도 마친 후 두어 달이 지나 지칠대로 지쳐 기도할 힘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카페마담이 집사에게 찾아와 "제발 네 남편 좀 데려가라"고 왔다. 그 동안 카페할 자금을 대어 주었는데 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토하여 낼 것이며, 조건없이 다른 지방으로 이사 가겠다면서... 하루 빨리 그 남자와 헤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남자가 생긴 것이다. 나는 텔레비 연속극을 보는 것 같았다. 아니! 텔레비에서도 이런 각본을 본 적이 없다. 이건 정말 연극이다. 제 발로 찾아와서 사정을 하는 꼴이란, 세상적인 상식으로도 납득이 가지를 않는다. 결국은 여자문제가 해결되었다.
그 가정은 미국으로 이민갔다. 고향산천 부모동기간을 두고 떠나는 와중에도 집사는 신혼여행을 가는것처럼 약간 흥분되어 있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새로운 인생을 살도록 허락하실 것이라는 꿈을 갖고 울면서 웃으면서 떠났다.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잊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이상한 곳에서 기도하게 하셨던 그 집사의 하나님이 나를 웃긴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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