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의 천인공로할 테러리스트들이 동시다발로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하여 연일 세계는 분노하며 떨고있다.
구겨진 미국의 자존심은 보복, 응징으로서 정의개념이 세워질 듯하니 이제 피가 피를 부르는 세계3차 대전도 불사할 조짐이다.
무슨 공상영화에서나 봄직한 장면들이 계속 방영될 때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가슴이 답답하다.
원수의 실체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인지조차 미혹당하고 있는 인류는 이제 생화학무기를 사용하고 싶어진 것은 아닐까? 사망을 이기는 생명력은 어디로 부터 오는가? 미움을 극복하는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착잡한 마음으로 지난날 가슴 아팠던 일기 한토막을 열어본다.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되뇌이면서...
나는 나이에 비해 시체를 많이 본 여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임종환자도 그렇다. 최초의 시체를 본 것은 아주 어릴 때 어린아이의 시체가 잿더미에 버려진 것을 보았다.
세살쯤된 사내아이의 시체였다. 그 충격이 평생 잊혀지지를 않는다. 왜 어린아기가 버려져야 하는걸까?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시체는 독약을 먹고 자살한 40세 가량의 여인의 경우였다. 그녀의 남편이 너무나 창피해서 친척에게 알리지 못하고 급한 김에 내게 부탁해 왔다.
졸지에 그녀의 죽어가는 과정을 꼬박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말초신경부터 새까맣게 죽어들어가는 고통스런 그녀의 죽음 곁에서 함께 절망을 맛보았다.
긴 사연을 어찌 다 밝히랴만, 종합병원인지라, 그녀의 남편이 수속하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동안 나는 응급실의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보는데서 그녀의 보호자인양 그 곁을 지키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간호사의 부탁을 따라 되도록 빨리 그녀가 소주에 타서 마신 것이 수면제, 쥐약, 제초제, 중 무엇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그녀는 술기운인지 독약이 퍼지느라 고통스러운지, 계속 험한 욕을 하며 온몸을 떨고 광난이었다. 주변의 환자와 보호자들의 따가운 시선이 나를 비웃는것 같았다. 내가 그녀를 죽게라도 한 것 처럼...
내가 그녀의 언니쯤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사투를 하고 있건만 나는 고작 내가 당하는 수치심을 견디느라 고통스럽다. 그녀의 고통에 비하면 얼마나 호사스럽고 민망한 이야기인가?
사지를 묶어 놓았건만 몸부림을 치는데 어찌나 기운이 센지 나로선 환자를 감당하는데 역부족이었다. 이따금 남편 욕을 심하게 했다. 순간 '왜 빨리 안 죽는거야' 하며 몸부림을 쳤다.
무슨 약을 먹었는지 물으면 희롱이라도 하듯 모든 약을 다 먹었다고 대답한다. 드디어 나를 똑 바로 쳐다보더니... "살고 싶어요" 라고 말했다.
"응 그래! 날 봐! 무슨 약을 먹었나 바로 말 해!"
"제초제를 소주에 타서...!" 순간 나는 너무도 비통했다. 살고싶다고 했는데...
" 간호사들이 제초제를 먹었다면 전혀 손 쓸 여지가 없다고 했다. 제초제 만큼은 해독제가 없단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부끄러워요" 그녀가 죽기 전 내가 들은 두 마디의 진실! "살고 싶어요, 부끄러워요"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그동안 살았던 것이 아니다.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자살하는 사람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마지막 선택한 죽음마져도 부끄럽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과 두 아들을 남기고 시퍼렇게 굳어갔다.
무엇이! 어쩌다! 이런 죽음을 선택하게 했을까? 버려진 아기의 시체와 잊혀진 여인의 부끄런 죽음은 지금도 나를 침통하게 한다. 단 한 사람만이라도 알아주는 친구가 있으면 자살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던데...
그녀는 단 한 사람에게도 죽고싶은 자기의 사연을 말 할 곳이 없었던가? 그 단 한 사람! 그 단 한 사람이 될 기회가 내게 올찌 몰라서 지금도 한 밤중이라도 나를 찾는 곳이 있으면 이유없이 달려간다. 나를 찾는 곳이면 자다가도 눈을 부빈다. 어디엔가 살고 싶은 부끄런 죽음이 있을까 봐서......
아기를 버리는 비정한 세상을 붙들고 몸부림치며 나도 운다.
남상순
인천YWCA 이사
청암교회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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