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선생님께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하면 그냥 하는 소리구나 생각했는데, 어머니 돌아가신 후 강산이 변하는 것을 보며 그게 그냥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끼니 나도 무척이나 형광등임에 틀림없다. 곁에서 아내가 자기 어머니께(?) 전화를 하며 다음 주에 뵈러 간다고 하는데 왜 그리 부러운지.
분명히 나와 같이 동행할 길인데도 난 내 어머니를 뵈러가는 것으로는 생각이 안 드니 이 건 웬 심수ㄹ인가. 한 치 건너 두 치라서 인가. 지금도 장모님은 가끔 전화하는 아내에게 전화세 많이 나오니 빨리 끊으라고 여전히 성화시다. 그럼, 아내는 괜찮다고, 교회에서 다 내준다고 해도 여전히 빨리 끊으라고 재촉하신다. 그래도 전화통화를 마친 아내의 눈빛은 아직 살아있다.
그러나 전화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때가 오면 그 영롱한 눈빛도 그리움으로 마냥 흐릿해지리라. 내 눈빛처럼.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참으로 미련한 동물이다. 그리워해도 소용없을 때 그리워하고, 사랑할 수 없을 때 그게 사랑이었구나 생각하니 말이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더욱 그런 것 같다.
심순덕이 쓴 시가 내 마음에 꽂힌다.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힘들게 일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뒤꿈치 다 헤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어머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들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돌아가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외할머니 보고 싶으시다고, 그것이 그냥 넋두리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어머니를 본 후론...아!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속절없이 흐른 세월을 원망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번 주간 있었던 모임에 동행했던 선배 목사님은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시다고 했다. 93세라고 하셨다. 물론 며느리 된 사모님은 내 아내에게 불편함을 토로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난 속으로 말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인 것을 아는 게 좋을 것입니다.’라고.
어머니가 한 여인, 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어머니는 안 계시다는데 우리들의 슬픔이 있다. 부모님이 살아계신 것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버이주일을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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