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고 아우성치던 나의 변덕스러움을 질타라도 하듯, 추위와 눈보라는 어엿한 봄의 화신들에게 제 몸을 떠안기고 떠났는가 보다. 저만치서 아지랑이마저 하늘거리며 손짓한다. 맘껏 찬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나뒹굴다 고랑에 처박힌 낙엽을 들추면 벌써 봄나물들이 수줍은 새색시처럼 파란 고개를 배시시 내민다.
이리도 봄이 대범할 수가 없다. 그 듬쑥함에 오금이 저린다. 산골마을을 후벼 파고드는 봄바람에 방안 공기만으로 만족할 위인은 없다.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명감이 불일 듯 하는 오후, 등산화까지 차려 신고 언덕배기를 넘는다.
복숭아나무 잔가지를 도려내는 농부님에게 허리 굽히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가 트럭 문을 활짝 열어놓고 걸어 둔 테이프에서 트롯이 쉴 새 없이 산등성이들을 후려친다. 산들도, 들녘도, 나뭇가지들도 흥겨워 농부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춤을 춘다. 내 마음도 덩달아 춤을 추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침마다 구구구구 먼 산에서도, 가까운 산에서도 웃어대는 비둘기들은 한낮에는 무리지어 이산저산을 넘나드는 게 그들의 일인가 보다. 그들의 군무를 보는 것이 일락이 아닐 수 없다. 목장에서 퍼내다 밭과 논들에 뿌려놓은 우분(牛糞)만 아니라면, 봄은 그 풍경과 냄새, 그리고 낌새가 모두 천국과 그리 어울릴 수가 없다.
가끔 풀숲에서 먹이를 찾던 장끼나 까투리가 느닷없이 튀어 오르는 바람에 놀라 가슴을 쓰려내려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만 빼고는, 봄 숲 사이로 난 호젓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호사가 아니고 무엇이랴.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행복을 주시는지 모르겠다. 이럴 때마다 뭔가 하나님 보시기에 맘에 드는 구석이 있는가보다 생각하며 더 행복하다.
‘숲속이나 험한 산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저절로 찬송이 입가로 흘러내린다.
우리 지역 열사로 통하는 홍일섭 묘 부근에 이르러 잠시 쉬다가, 아내가 키 작은 소나무를 바라보며 솔잎을 좀 채취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과일즙을 내려먹는 터라 솔잎을 첨가하면 좋을 것 같아 둘이는 솔잎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솔가지 한 가지를 잡고 솔잎을 뜯으려고 하는데 우렁찬 푸드득 소리와 함께 하늘 위로 나는 시커먼 새가 있다. 돌차간에 일어난 일이라 아내나 나나 잘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잠시 가슴을 추스르고 소나무 가지들을 헤집고 안을 보니 앙증스런 비둘기 새끼 두 마리가 보인다.
비둘기가 둥지를 버리고 하늘 위로 날아간 것이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을 버려두고 도망을 가야 했을까. 지킬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될 때 그 어미의 마음은 어땠을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레취드 간호원으로 대별되는 시대의 압박, 그래 우리 부부가 그 비둘기에게는 그런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앙증맞은 새끼들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우리는 그 자리를 떴다. 더 이상 그들의 압박자로 남을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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