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묘소에 벌초를 하고 오는 고속도로에서 볼썽사나운 일을 보았다. 평일이라 밀리지 않는 도로, 느긋한 마음으로 핸들을 잡고 비교적 제한속도를 지키며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달려와 신호도 없이 끼어드는 차량 한 대가 있다.
이런 때 아내와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뭔가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사복경찰이 범인을 잡으러 가나 보다.’, 임종을 지키러 가는 자녀인가 보다.’ 등등.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는 이런 일을 만나면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었다.
2차선의 내 차를 1차선에서 달려와 추월한 차는 내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건 안중에도 없이, 앞서 가던 1차선의 트럭과 경주라도 하듯 앞으로 쏜살같이 간다. 트럭보다 조금 앞서더니 1차선의 트럭을 향하여 삿대질을 하며 뭐라고 지껄인다.
내 뒤에서 그 두 차량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나는 모른다. 추월한 차 운전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미루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추월차량, 즉 삿대질을 한 운전자가 여성이다.
때로 남자들이 욱하는 성격 때문에 그러는 모습은 봤다. 이번에는 여성 운전자가 그러는 것이라, 그런 여성 운전자를 처음 보는 터라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화가 나 물불 안 가리는 게 꼭 남성운전자여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다.
무엇이 그 여자를 저리 화나게 했단 말인가. 다행히 트럭운전자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래서 그냥 그 사건은 거기서 종결되었다. 대개의 경우 그런 사태가 일어나면 공격을 받은 운전자도 차를 몰아 상대 차량의 앞으로 끼어들기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내가 옆에서 말한다. “여자가 참 독하게 생겼네요.” 난 관찰하지도 못한 걸 아내는 관찰한 것이다. 난 그냥 아내의 말에 고개로 대답하곤 이렇게 속으로 감사한다. ‘주님, 내게 저런 운전자가 시비 걸어오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여성 운전자가 이해는 간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러겠는가. 하지만 이해와 행동은 다르다. 아무리 화가 나도 난 그렇게 하진 않았을 거다. 갑작스런 끼어들기에 깜짝 놀랐다면 깜박이로 놀랐다고 의사를 표현한다든지, 아니면 경음기나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난 이도저도 안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 여자의 심보는 무엇일까. 그렇게 함으로 얻어지는 게 무엇일까. 아니면 얻어지는 게 전혀 없다 하여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일까. 전문가가 아니라 정신병리학적인 분석은 할 수 없지만, 그 여자의 심보가 궁금하기는 하다.
자신의 화를 어필하기 위해 남의 차량 앞으로 신호도 없이 쏜살같이 끼어들어 피해를 준 것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는 거기에 대하여는 전혀 눈치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아픔 때문에 남의 아픔은 관찰하지 못한 것이다.
목회를 하다 보면 종종 그런 성도를 만난다. 자신이 힘든데 목사가 위로해 주지 않았다고 시험 드는 성도, 몸살이 걸렸는데 심방 와주지 않았다고 삐치는 성도, 실은 목사는 더 큰 비애와 슬픔을 안고 씨름하고 있는데. 그런데 어쩌랴. 그게 인간의 모순 중에 뛰어난 모순이니. 목회의 특성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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