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교회 담임목사, 부단히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 나보다는 그분을!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음, 저서: '사랑이란 말 가득 가슴에 남겨 두고', '예배의 부름'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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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을 가 예배를 마치고 과일을 먹으면서 문밖을 봤다. 100년은 되었을 성싶은 큰 은행나무가 유리문을 통하여 눈에 들어온다. 노랗게 익은 은행들이 주저리주저리 달렸다. 어림잡아도 은행 한두 가마니는 너끈히 딸 것 같다. 지근거리라 혹시 송 권사님네 것인가 하여 내가 물었다.
“저 은행나무는 누구네 거래요? 몹시도 많이 열렸네요.”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송 권사님께서 말한다.
“그거, 앞집 것인데, 해마다 은행이 많이 열려요. 00가 나무를 좋아해서 심은 건데 저 은행나무를 통해 많은 걸 배우네요.”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말,
“이렇게 가을만 되면 많은 결실을 해요. 나도 말년에 저렇게 좋은 신앙의 결실을 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해요. 조금 더 있으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요. 그러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나도 신앙인으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이렇게 남의 도움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
노환으로 부부가 가사도우미를 청하여 도움을 받다 보니 나온 말이다. 송 권사님의 말을 들으면서 은행나무 한 그루를 보며 그녀가 뱉는 말이 예삿말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움직이기 힘든 몸으로 문밖에 서있는 은행나무가 철을 바꿔가며 변하는 모습을 보며 신앙적인 묵상을 한 결과다.
거동이 불편한 그녀와 남편에게 바깥세상 이야기는 은행나무가 다 전해주는지도 모를 일이다. 유리문을 통하여 그들 앞에 보이는 게 큰 은행나무와 그 곁에 서있는 감나무 한 그루가 전부니까.
은행을 빼곡히 달고 서있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이리도 선명하게 한 신앙인을 자극하는구나, 생각하니 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녀가 묵상한 은행나무처럼만 되어도 얼마나 진국의 신앙인인가? 때를 따라 고운 색으로 변하고, 때가 되면 튼실한 결실을 하는….
“이미 권사님은 저 은행나무보다 더 많은 결실을 했는 걸요. 그 아름다운 신앙을 이미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진정이었다. 내 이 말은. 20여 년 전에는(예전에 섬기던 교회에 다시 부임함) 시험을 당해 그렇게 권면해도 교회에 나올 생각을 안 하시더니, 지금은 이렇게도 좋은 신앙인이 되어 계실 줄이야. 지난 추석 때 자녀들이 주고 간 용돈에서 십일조를 떼어놓았다며 봉투를 하나 내민다.
“심방감사헌금은 내가 교회 가서 할게요.”
헌금을 내미는 그의 깡마른 손을 덥석 잡으며 생각했다. 목회란 무엇일까? 목회자의 결실은 무엇일까? 나도 은행나무처럼 시시때때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쳐질까? 때가 되면 주렁주렁 열매를 내놓을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한다 해도 지금 이 모습만으로도 행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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