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나 볼일 등으로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집이 뭐기에 이리 돌아오나? 서울, 부여, 조치원, 대전 등을 오가며 목회한 터라 어디서 목회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돌아오는 곳이 다르다.
내 집은 없지만 항상 내 집이 있는 사람, 그게 목사인 나의 삶이었다. 막 임지를 옮기고 난 후엔 낯선 곳으로 오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한참을 돌다가 다시 그 자리로 오는 느낌, 지금 조치원에서의 삶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항상 내가 들어가 누울 공간이 있다는 것이 고맙다.
퍽이나 두텁게 쌓여 길을 메우는 낙엽, 지나는 바람에도 제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듣는 은행잎, 스산한 갈바람에 입성들을 내주는 나무의 메마른 가지들, 이런 가을정경에 취해 그런지, 아니면 줄초상으로 세 명의 어르신들을 보내고 허전해서 그런지, 하여튼 돌아갈 곳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그런 가을이다.
사육신 중 한 분이었던 매죽헌 성삼문은 세조가 조카 단종의 왕위를 뺏자, 복위를 꾀하다 잡혀 형장으로 끌려가며 이런 시를 읊었다고 한다.
‘擊鼓催人命(격고최인명)/ 回頭日欲斜(회두일욕사)/ 黃泉無一店(황천무일점)/ 今夜宿誰家(금야숙수가)’
‘북소리 두웅둥 명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도 지려고 기울었구나!/ 황천길에는 주막도 없다 하는데/ 오늘밤은 뉘 집에서 묵을꼬.’
훌륭한 삶을 산 충신이었지만 성삼문은 그 자신이 지은 시로만 볼 때 돌아갈 곳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난감한 죽음 앞에, 생의 허망함이야 다 표현될 수 있었으랴마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은 더 황당한 일이 아닐까.
며칠 새 줄초상이 났다. 하도 연세가 많은 분들과 지내는지라 돌아가실 거라는 것은 알았지만, 세 분이 한꺼번에 가실 줄이야 몰랐다. 그러나 지난 주간 세 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 분 주검은 자녀들이 모셔갔고, 한 분만 우리교회에서 기독교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지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만약 돌아가신 분이 갈 곳이 없다면? 물론 주검이야 한 줌 재로 변해 납골당에 모셔지지만, 그 영혼이 갈 곳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래서 나 같은 목사가 이곳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란 걸 다시금 되새긴다.
사랑의마을은 신앙인으로 들어오는 사람, 들어와서 신앙인이 되는 사람, 들어왔지만 불신앙인으로 남는 사람 등이 어울려 산다. 세 번째 사람으로 그냥 돌아가시면 참 난감할 것 같다. 내가 와서 네 분을 보냈지만 다행히 아직 그런 사람은 없다.
오늘도 외출했다 낙엽 쌓인 오솔길로 차를 몰아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고 노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으니 감사하다고. 이 한 몸 뉘일 공간을 찾아 다시 올 수 있음이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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