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배선실이란 다른 의미가 있지만
병원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방을 말한다.
식사를 나르는 차를 충전하기도 하고 정수기도 준비되어 있어 음료를 제공하며
간단한 설거지도 할 수 있고 전자렌지가 있어서 음식을 데우기도 한다
배선실까지 거리가 제법 되지만 하루에 최소한 6회 정도는 왕래하게 된다
이곳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같은 시간에 모이고, 흩어지고, 만나는 곳이다.
모이면 병에 대한 정보도 나누고 괴로움도 서로 털어놓고 위로받기도 하고
병원사정을 전해 듣기도 하고 소문과 루머등이 떠돌기도 하고
선동하는 사람, 중재하는 사람, 인간들의 모든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같은 시간대에 밥을 데우거나 물을 받거나 설거지를 하기 위해 모이므로
예의 바른 사람, 예절이 허접한 사람, 가지각색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자그만치 4개월여 병원생활을 통해 배선실 출입을 많이 하다보니 이상한 일이 생긴다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이고, 말을 걸어오며, 묻기도 한다.
남편에게 신기한 현상을 알려주며 "왜 그럴까?" 하고 물었더니
"필요를 공급해 주는가보지," 이 말은 그들을 내가 섬긴다는 말이다.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무엇을 섬겼던가?
전자렌지를 처음 사용하는 듯한 사람에게 무안하지 않게 사용법을 도와주었다.
적절한 시간 알맞게 돌려서 가져갔다.
큰병이 도저히 들어가지 않는데 어거지로 들이대고 정수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낭비하는 사람에게 작은 컵을 빌려주면서 받아서 부으라고 권했다.
쉽게 물을 붓고 채워서 갖고 갔다.
병원 생활에 비위가 상해서 속이 뒤집어진다고
고추장이나 김치가 먹고싶어 죽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몇호에 있느냐고 물어서 슬그머니 김치를 갖다 주었다.
그릇을 가져와서 고개를 푹 숙이며 고맙다고 절까지 했다
정수기가 고장나서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간호사에게 가서 누구에게 신고해야 하느냐 고쳐달라고 했더니 다음날 즉시 고쳐주었다.
사람들은 누가 이 일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편리해졌다.
절편을 교회에서 가져왔다 전자렌지에 돌려서
지루하게 줄서서 밥을 데우려고 기다리는 이들에게
한개씩 따끈말랑한 것을 집어 먹으라고 권했더니
맛있게 한개씩들 먹었다.
배선실 갈 때 마다 그릇닦는 세제와 수세미를 가져간다
안가지고 온 사람들이 필요하다면 사용하라고 내어준다
아무것도 아닌 세제 몇방울을 고마워한다.
한번은 남이 갖다 놓은 세제를 주인 모르게 내가 쓴 적이 있다
다음날 아무도 모르게 세제를 가져가서 어제 쓴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채워 놓았다.
김치가 냉장고에 넣을 수 없을만큼 많이 갖다 주어서
그대로 쉬어서 내 버릴 형편이었다
종이에 편지를 썼다.
"냉장고가 적어서 이 김치를 넣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던 필요하신분 갖다 잡수세요"
라고 써서 배선실에 아무도 없을때 갖다 놓았더니 즉시 없어졌다. 누가 가져간지 모른다
이상은 아주 사소한 배선실의 나의 일상이다.
어느새 사람들은 나와 가까운 느낌을 갖고 말을 걸어오고
무엇이던 물어보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들을 한다
아주 작은 사소한 필요에 민감하고 도움을 주는 것은 섬기는 일이지만
섬기므로 낮아지거나 무시당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인정하고 의지하고 존경까지는 좀 과장인듯 하나
좋은 인상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틀림없다
높아지려고 하는자는 낮아지고
섬김을 받으려 하는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 진리다
높아지려고 낮아진 적은 없었고 섬김을 받고 싶어서 섬긴 적은 없었으나
낮아지고 섬기었더니, 어느새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고
지루하고 강팍하고 예민한 병원생활에도 이야기를 나눌 스치는 인연들이 생긴다.
자화자찬이라면 죽을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주시기 바란다.
실은 자화자찬 그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데
글재주가 이뿐이라서 엉뚱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