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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교회 원로/선교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공동회장

  제목 :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 평양에서 순교한 여섯 분을 추모하는 순교자추모예배(한국중앙교회, 2014.6.27 오전11시)

북한에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진실하게 목회 하시다가 45세에(1950년 6월 23일) 평양 교외 사동탄광에서 순교하신 분이 바로 저의 아버지 김관주(金冠柱) 목사님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평남 안주 출신인데(1905년 9월 25일생) 일본으로 가서 법학공부를 하다가 신학공부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의학전문을 나온 여의사와 결혼을 해서 저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동경신학교를 마친 후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으로 1938년부터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많은 시간을 함께 가지지 못했습니다. 목회 일에 바쁘셨을 뿐 아니라 신의주에 계실 때나 평양에 계실 때 주로 감옥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신의주에 있을 때 이따금씩 저를 칭찬해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신의주 감옥에 갇혀 계시던 아버지를 뵙기 위해 저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감옥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아버지를 직접 뵙지 못했고 담장밖에 서서 목소리를 돋우어 “뜸북 뜸북 뜸북 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 새 숲에서 울 제”를 부르거나 “아버지! 아버지!” 라고 소리 쳐 부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1946년 5월까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8, 9년 동안 부목사와 담임목사로 목회 하시다가 1947년 평양 서문밖교회로 옮겨 가서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기독교 자유당 결성과 관련하여 1947년 11월 18일 평양에서 투옥되었다가 평양 교외에 있는 사동 탄광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복역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함께 사동 탄광을 찾아가곤 했는데 죄수 복을 입으신 아버지를 몇 번 만나 뵌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신의주 제이교회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자주 인용하시던 성경 말씀과 자주 부르시던 찬송은 다음과 같았다는 말을 김명길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일이 있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환난과 핍박 중에도”(383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455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371장).
저는 아버지로부터 신앙적인 감화를 은은하게 받았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아버지의 삶을 통해서 실제로 받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도 그랬지만) 저에게 무엇을 강요하거나 잔 소리를 하신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릴 때부터 장난꾸러기로 살게 되었고 결국 자의적이고 자발적인 또는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삶을 한 평생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평양 제5 인민학교를 다닐 때 정학을 당하면서도 주일성수를 끝까지 고수했던 이유도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은 일도 아버지의 삶을 통한 신앙적인 감화와 함께 방임적인 교육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1948년 7월 사동 탄광에서였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여기서는 주일을 제대로 지킬 수 없기 때문에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참 바라보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결국 다음 달인 8월에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 바로 예배 드리기 위해,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기 위해서 11살 나이에 38선을 혼자서 넘어 월남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최봉석 목사님 김화식 목사님 등과 함께 평양에서 순교 하시여 천국으로 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아버지에게 감사와 존경과 사랑의 글을 띄운 일이 있습니다. 그 글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오늘의 나의 나 된 것은 물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 때문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무엇보다 먼저 나에게 신앙의 씨앗을 심어주신 아버지와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신 어머니 때문임을 그리고 아버지가 흘린 순교의 피 때문임을 저는 평생 고백하고 또 고백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저에게 말이 아닌 고난의 삶과 순교의 죽음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고 예배하고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를 순수하고 진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저의 이름을 “명혁”(明赫) 이라고 즉 “밝고 빛나는” 사람이 되라고 지어주셨는데 부족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밝고 빛나는 한 평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동경에서부터 유학생들 모임의 ‘총무’의 일을 하셔서 그랬는지 저도 학생 때부터 평생 ‘총무’의 일을 하면서 심부름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대로 아버지가 ‘강직’하시고 ‘진실’하셨는데, 저도 강직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동탄광에 계시면서 같은 탄광에서 노동하는 죄수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베푸셔서 저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저도 부족하지만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면서 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물 되는 삶을 살다가 제물 되는 죽음을 죽는 것을 저의 삶의 소원과 기도로 삼고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가 계시고 어린 아들이 먼저 가 있는 천국을 늘 그리워하고 사모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이런 중얼거림까지 했습니다. ‘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어머니, 저 좀 도와주세요.’ ‘철원아, 나 좀 도와다오.’ 조만간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천국에서 반갑게 만나 뵙고 아버지와 어머니 품에 힘껏 안기겠습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평화한국 세미나” 축사
강명희 전도사의 성경공부 교재 “삐약삐약 말씀의 삶”을 받아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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