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는 11살 때 혈혈단신 월남해서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예일대와 풀러신학교 신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후암교회에서 교육 목사로 목회를 시작해 1979년부터 강변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했다. 2008년 1월 13일 은퇴한 후에는 ‘작은 교회와 소외된 교회 돌보기 운동’을 하고 있다. 총신대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장,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총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공동회장을 지냈다. 현재 강변교회 원로목사 및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세계선교협의회 이사 및 공동대표, 소련선교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죄란 무엇인가>(성광문화사), <복 있는 사람은>(성광문화사), <신앙과 현실>(성광문화사)외 저서 다수가 있다.
<복음과상황> 편집위원회는 2010년을 비평화 100주년으로 맞이한다. 1910년 국권피탈로 한반도의 비극적인 역사가 시작된 지 꼭 100년이 지났다는 의미에서다. 419혁명 50주년, 518민주화운동 30주년, 625전쟁 60주년을 맞기까지 한반도는 분단 체제를 청산하지 못했고 남북과 남남이 갈등하면서 분단의 상처를 대물림하고 있다. 우리는 2010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앞으로 한국교회는 어떻게 한반도의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기 위해서 남북 종교인 상봉을 추진하고 있는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민족의화해와평화를위한종교인모임)를 윤환철 편집위원(한반도평화연구원 사무국장)과 함께 만나서 한반도 평화와 한국교회 갱신의 길을 물었다. 인터뷰는 지난 2009년 12월 10일 (목) 멀리 남한산성이 내다보이는 수서역 부근 김 목사의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2010년은 1910년 국권피탈된 이후 비평화 100주년입니다. 한반도는 아직도 냉전 체제의 긴장이 남아 있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악화하고 있습니다. ‘민족의화해와평화를위한종교인모임’을 만들고 남북 종교인 상봉을 추진하시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기독교의 중심적인 가르침은 화해와 평화였어요. 인류 역사를 보아도 비극은 서로 침략하고 이웃을 정복하고 증오해서 생겼잖아요. 민족적인 탐욕 때문에 남을 정복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자기 세력을 확장해 왔지요. 문화와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빌미로 자기 세력을 확장했어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낮고 겸손한 자세로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과 화해와 평화가 중요합니다. 십자가가 뭔가요, 화해지요. 십자가는 하늘과 땅, 동과 서가 화해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도 ‘화해’와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였어요. 예수님을 평화의 왕이라고 해요. 사도 바울도 십자가를 통해서 ‘화해’와 ‘화평’을 이루었다고 말해요(고후 5:18; 엡 2:14; 고후 5:18,19; 골 1:20). 십자군은 정복이지만, 십자가는 화해와 평화입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화해와 평화가 중요하다는 걸 깊이 인식하게 됐어요.
젊은 시절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할 때는 ‘화해(reconciliation)’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구원(salvation)’이라는 말만 좋아했지요. ‘화해(reconciliation)’라는 말은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다가왔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사야 19장과 49장, 요나서와 복음서, 사도행전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이 변했어요. 이사야 19장에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사 19:23~24)라는 말씀이 있어요. 이스라엘과 앗수르와 애굽은 서로 원수거든요. 이건 아주 혁명적인 얘기예요. 얼마 전에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의 국경이 만나는 삽합에서 이사야 19장을 묵상했어요. 지금은 화해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해요. 종교간 화해와 협력은 물론 공산주의, 무슬림과도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종교간 대화를 시작한 강원용 목사님을 싫어했는데 자주 만나면서 나중에는 아주 존경하게 되었지요. 강 목사님도 나를 아주 좋아하셨어요. 강 목사님께서 말년에 김명혁 목사를 짝사랑했다는 말을 하실 정도였어요.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병원에 가서 기도했지요. 물론 종교 혼합은 반대합니다. 하지만 31운동도 타종교인들과 협력한 거 아닙니까. 사회적 공의를 세우기 위한 협력이 중요합니다. 남남, 남북이 서로 증오하고 저주하니까 화해를 조성하는 길이 없을까 모색하게 됐어요. 그래서 작년에 ‘민족의화해와평화를위한종교인모임’을 만들었지요.
민족의화해와평화를위한종교인모임에서 지난 10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남북 종교인 상봉을 청원하고 남북 화해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밝힌 것은 한반도적 시각에서 시대적 가치와 비전을 제시한 뜻깊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남북 종교인 상봉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한국교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대결 양상까지 보이고 있어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유치와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총회 유치 문제로 갈등하고 있고 남북통일이 민족의 지상 과제인데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있어요. 남북문제뿐 아니라 남남갈등도 화해가 필요해요. 그래서 ‘민족의화해와평화를위한종교인모임’을 시작했어요. 순수한 개인들의 모임이에요. 단체가 참여하면 이해관계가 얽히기 쉬워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들의 마음을 모아 보자는 뜻에서 개인들의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270명이 참여했는데, 지금은 320명이 마음을 함께하고 있지요. 애초에 아주 극단적인 분들은 참여를 안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배제했어요. 모여서 싸우면 안 되니까, 극단으로 나간다 싶은 사람은 옆에서 지켜보시게 한 거죠.
작년에는 굶어 죽어 가는 북한 동포를 살리자는 백만 인 서명운동을 했어요. 113만 명의 서명을 100일 만에 받아 냈습니다. 그것을 통일부 장관에게 전달했는데 장관이 아주 싫어하면서 받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아주 불쾌해진 손봉호 장로가 탈북자가 쓴 ‘우리의 밥은 쌀밥이 아니다. 나무껍질이다’라는 시를 통일부 장관에게 읽어보라고 줬어요.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요구도 안 하는데 뭘 도와줍니까?” 그랬어요. 체면 하나로 사는 북한 사람들에게 요구 안 했다고 비난하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예전 통일부 장관에게 크게 실망을 했던 일이었어요.
‘남북 종교인 상봉’에 대한 생각은 금년 3월 13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조찬기도회에서부터 시작됐어요. 그날 아침에 5개 종교의 지도자들이 경동교회(박종화 목사 담임)에서 ‘31 운동 90주년을 맞으며 31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라는 주제를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발표했는데, 참석자 300여 명이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 자리에서 내가 “남북의 종교인들이 함께 만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자고 했지요. 그 자리에서 편지를 낭독하고 보냈는데, 북측에서 긍정적인 답이 왔고 결국 금년 12월 중에 남북의 종교인들이 평양에서 함께 모이자는 데 합의를 했어요. 우리는 백여 명이 가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20명이 가서 회의하자는 게 아니었어요. 남북의 종교인들이 함께 만나서 화해의 분위기를 조성해 보자는 것이었어요.
법륜 스님도 백 명은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 다음 주에 북측에서 좋다는 응답이 왔어요. 그래서 인명진 목사를 통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낸 것이지요. 정중하게 글을 써서 북에도 도움이 되고 국제 관계에도 도움이 되고 대통령 국정 운영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 답이 없었어요. 진보, 보수 종교인들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는 모임에서 요청했는데 아주 무시하는 처사라고 봐요. 나중에 통일부 장관이 만나자고 하더니 2,30명이 만나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긍정적인 답을 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32명 종교인들에게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하면서 그 사실을 일부 언론에도 알렸지요.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현 정부가 국민의 소리, 특히 종교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화해라는 주제를 구원보다 자유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으로 오해했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많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그런 생각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근본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많지요.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서 많은 근본주의적인 목회자들이 ‘무슬림은 안 된다’,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됩니다.
나는 세계 곳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해와 포용의 폭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을 비롯해서 많은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지요. 젊었을 때는 한경직 목사님의 에큐메니컬적 입장을 비판한 적도 있어요. 그분이 WCC 지도자를 초청했을 때 왜 그런 지도자를 초청했느냐고 질문까지 했지요. 그런데 결국 한경직 목사님의 영향을 받아서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일본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일본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며 사랑하게 되었어요. 또 내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고 북한 동포 돕는 데도 앞장을 서게 되었지요. 이 일에 있어서는 손양원 목사님의 영향과 스티브 린튼 박사님의 영향이 컸습니다. 나는 불교 스님들과도 가까이 지내고 천주교 신부들과도 가까이 지냅니다. 모든 종파와 타 종교에서 배울 게 많아요.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고귀한 인성과 신성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는 시선으로 보면, 무슬림도 공산주의자도 모두 귀하게 보이는 거죠.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와 같아요.
앞으로도 제자들을 많이 키우셔야겠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정부가 표명하는 바와는 달리 대북 압박 정책입니다. 이 정책의 이면에는 북한의 붕괴와 같은 급변 사태의 가능성이 전제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북한 정권을 고립, 고사시켜서 주민들을 해방시키는 방식이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데 유효할 것으로 보시는지요? 그 과정에서 ‘압박’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시는지요
북한을 압박하면서 북한 정권의 붕괴를 기대하는 것은 장로로서도 옳지 않고, 정치가로서도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봅니다. 중국의 경우 압박과 붕괴가 아닌 경제적 개방으로 유도했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할 수 있었어요. 러시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에 이라크와 아프간에 대한 적대적인 정책은 실패하고 말았지요.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이라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후세인을 공격하는 부시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지요. 기독교적 입장에서도 대북 압박을 통해서 북한의 붕괴를 기대하는 것이 아주 잘못된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25:42)”고 하셨고, 사도 바울도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롬 12:20)고 하셨어요. 연변 과기대 김진경 박사와 깊은 대화를 나눴는데, (대북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을 보며) “너무 속상하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하는데 아무것도 주지 않으니 이런 정부와 정책이 어디 있느냐?”고 했어요. 내가 ‘정치고 뭐고 다 떠나서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라’고 했다고 하니까, 김 박사가 “그 사람들이 원수입니까?”하고 반문했어요.
지금도 어떤 목사들은 그런 생각을 해요. 원수가 굶어 죽기를 바라는 목사들은 인간 중심적이고 자기 자신만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바리새적 사고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타미플루를 조금 보내는 것은 아주 잘한 것이지만, 겨우 옥수수 만 톤 보낼까 말까 생각하는 식으로는 안 되지요. 북한 동포를 거지 취급하는 거예요. 그것은 예수님의 방식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식도 아니지요. 니느웨가 악독이 제일 컸지만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셨지요. 예수님은 로마의 백부장에게도 긍휼을 베푸셨어요. 결국 그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고 저분은 의인이었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달라지게 하셨지요. 대북 압박 정책은 정치적으로도 잘못된 판단이고 북한 정권의 갑작스런 붕괴는 남한에도 혼란과 불행을 초래하게 되니까, 차츰차츰 개방을 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동서독의 경우도 점차적으로 개방하고 선도했어요. 무너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 것이 되고 말아요. 남한 것이 되지 않아요. 전문가들이 많이 우려하는 점이지요.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는 일본과 공산당에 의한 박해와 환난의 시대를 거치면서 70여 년 동안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했으나 1960년대 이후부터 경제성장과 정치적 발전을 이루면서 차츰 신앙의 순수성을 상실하며 세속화의 길로 치닫게 되었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역사신학자로서 한국교회가 간직해야 할 순수한 신앙의 알맹이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국교회는 지금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너무 부하고 강해졌어요. 2008년 8월 인도 델리에서 개최된 아시아복음주의연맹(EFA) 총회 주제 강연에서도 한국교회의 현실을 라오디게아 교회에 견주어서 소개했어요. 옥한흠 목사님은 최근에 한국교회가 사데 교회처럼 되었다고 지적했는데, 나는 한국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 비슷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한국교회는 크고 부해졌으며 정치적으로 힘이 세졌고 경제적으로 영향력이 커졌어요. 그러나 예수님처럼 좀 약해지는 게 필요해요. 사도 바울은 약하고 두렵고 떤다고 했어요. 십자가는 약해지는 거예요. 한국교회가 약해진다면 다른 종교들이 무서워하고 적대감을 품기보다 아마 불쌍히 여길 거예요. 약해지고 착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자기 유익과 기쁨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기쁨을 구하는 거예요. 나만 아니라 주변으로, 대한민국만 아니라 변방으로 가는 것인데, 땅 끝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십자가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는 길 두 가지를 생각하게 돼요. 하나는 환난을 당하는 거예요. 70년 포로 생활을 하고 나면 약하고 착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로가 되게 하셨지요. 포로가 되면 바벨론 강가에서 울어요. 울면 달라져요. 신앙의 순수성은 40년에서 80년까지 가기가 어려워요. 40여 년의 평화 후엔 환란과 박해가 따라오곤 했어요. 이것이 초대교회 300여 년의 반복된 역사였고 사사시대에 일곱 번 반복된 역사였어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환란의 바람을 보내실지 모르겠어요. 또 한 가지는 작년부터 늘 말하는 건데, 조나단 에드워드나 길선주 목사님이나 이기풍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과 같은 제물이 필요해요.
어떤 제물이냐, 첫째는 상하고 통회하는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유창한 기도나 설교가 아닙니다. 우는 것입니다. 순수한 하나님의 사람이 울면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시고 사람이 감동해요. 둘째는 ‘긍휼’이에요.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와 한경직 목사의 마음에는 긍휼이 있었어요. 분열과 갈등과 증오와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입니다. 셋째는 사랑의 제사입니다. 무조건적인 용서와 사랑의 제사입니다. 사랑은 수고와 고난으로 나타나지요. 지금 우리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제물들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 열두 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여섯 명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을 그대로 내버리실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70년 포로 생활이라는 환란의 바람을 통해서 메시아 사상과 종말 사상이 나오게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들에게도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제물 되는 사람들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아간이라고 평생 회개했던 길선주 목사님,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평생 참회했던 이기풍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제물 여섯 명만이라도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지난해 1월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에서 28년 목회를 마감하신 후에 2년간 전국의 50명 미만 교회 200여 곳을 찾아다니시면서 격려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를 돕는 일을 하고 계신데 한국교회는 갈수록 대형화, 물량주의, 그리고 정치 세력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형교회의 이런 행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교회의 대형화는 반대합니다. 대형교회는 하나의 기형적인 현상입니다. 신약시대나 종교개혁 시대에도 교회는 지역교회였어요. 개교회가 서울을 모두 자기 교구로 삼으면 안 됩니다. 지교회나 지성전도 아주 잘못된 발상이지요.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지역교회가 있어요. 전국 교회 중 90%가 100명 이하로 모이는 교회고, 80%가 50명 이하로 모이는 작은 교회들입니다. 이런 교회를 돌아보고 돕는 게 필요해요. 점점 더 끌어 모으고 더 크게 짓는 것은 장기려 박사에 의하면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아닙니다. 장기려 박사는 밀턴의 <실낙원>을 읽은 후 고층 건물만 봐도 사탄이 지은 것처럼 보인다고 했어요. 그리고 고딕 예배당을 봐도 비슷한 생각을 했고요.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면 하나님 축복이라고 하는데 장기려 박사님은 그것도 의심스럽다고 했어요. 큰 교회, 큰 건물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고 했어요. 최근에 이만열 교수님도 한국교회가 교회다운 교회로 회복하려면 영적 각성과 함께 가난의 실천과 작은 교회운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어요. 한국교회가 자본주의 정신에 입각해 대형교회로 치닫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어요. 내가 늘 강조해 오던 말을 하신 거예요.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작은 교회를 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까요
일주일에 두 교회씩, 1년이면 100교회, 2년 동안 200교회를 방문한 셈이지요. 주로 50명 이하로 모이는 교회였어요. 전국에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예요. 거제, 통영, 고흥, 광양 등 전국을 다 가 보니까 그 지역 산과 바다를 봐서 좋고, 그래서 이해의 폭이 좀더 넓어졌어요. 나처럼 은퇴하신 분들이 작은 교회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함께 예배드리고 격려하는 거죠. 사도행전 20장부터 28장까지를 읽어 보면 사도 바울도 수백 명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어요. 열 명 또는 스무 명을 찾아 다녔지요. 그리고 그들과 하루 이틀 이레 또는 석 달을 머물다가 떠날 때는 바닷가에서 울며 기도하면서 떠났어요. (행20:1,2,6; 20:36~38; 21:3-6; 28:14). 관심을 갖고 만나는 게 좋아요. 크게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찾아 가서 만나고 말씀 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 좋을 것 같아요.
<복음과상황> 독자들 중에도 대형교회에 다니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형교회 청년들이 수평 이동을 많이 하기도 하는데, 그 청년들이 작은 교회나 집 가까이 있는 지역교회로 옮기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형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분할하는 운동을 할 필요가 있어요. 물론 그렇게 하려고 들지 않을 거예요. 의식 있는 평신도들과 갈등이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작은 교회 목사들이 분노를 느끼고 있어요. 많은 교회들이 인근에 또는 조금 떨어져 있는 중대형교회들로부터 교인들을 빼앗기는 피해를 당하고 있어요. 젊은이들이 의협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학생운동을 할 필요도 있어요. 나는 1960년 419가 일어났을 때 대학생이었는데, 새생활운동을 일으켰어요. 나와 손봉호, 김상복, 이형기, 이명섭 등이 사회의 부조리한 실태를 조사해서 학생들에게 발표했어요. ‘밀수입되는 커피와 양담배의 일 년 분 금액이 대전시 전체 인구가 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 값과 같다’는 조사 내용을 발표하자 학생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어요. 서울대 문리대생 수백 명이 6월부터 한 달 동안 매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참여했어요. 그때 거의 전국 대부분의 대학이 참여했고 고등학생까지 참여했어요. 다방, 극장, 댄스 홀, 요정,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연설을 했어요. 양담배를 산더미만큼 수거해서 광화문 네거리에 쌓아 놓고 애국가를 부르며 불태우기도 했지요. 정치적인 야망은 없었어요. 당시 이호 내무장관도 우리들을 격려했고 서울시 경찰국장도 점심을 사주면서 격려했어요. 울릉도에 가 계셨던 목사님과 동대문 상인들도 격려해 줬지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학생운동, 너무 과격하고 파괴적이지 않은, 나라를 사랑하는 그런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손봉호 박사를 만나면 그때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때 경험이 평생을 가요. 아마 거기서 기윤실운동도 나왔을 거예요.
목사님께서는 복음의 본질을 약함과 착함과 주변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약하고 착하고 주변으로 가는 삶의 방식을 통해서 건강해져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목회 철학은 어떻게 형성하셨습니까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고린도후서 12장 10절입니다. 내가 겪은 슬픔과 아픔이 보석이 되었지요. 열한 살 때부터 어머니와 이별하고 한평생을 살았어요. 그런데 그 슬픔과 아픔이 하나님의 은혜로, 보석으로 바뀌었어요. 또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천국으로 떠나보내야 했지요. 철원이는 1973년 11월 11일 미국 예일대학이 있는 뉴헤이븐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 뇌수종이라는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났어요. 4년 동안 머리뼈가 벌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지내다가 1977년 10월 10일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갔지요. 만 4년 동안 철원이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체휼하면서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느꼈어요. 그러면서 자꾸 약함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또 1974년 미국에서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교육 목사의 일을 몇 년 했는데 그 때 결핵환자와 암환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가까이 다가가게 되면서, 넉넉하고 부요한 것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게 나쁜 게 아니다, 슬프고 아픈 게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요.
그러면서 착한 게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행10:38) 라고 말해요. 예수님도 제자들더러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은 착한 행실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는 삶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이전에 착한 사람이었어요(행11:24). 바나바의 착한 삶이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안디옥교회도 소아시아 선교도 없었을 거예요. 디모데도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착한 사람이었어요. 기독교는 착함의 종교입니다. 착함은 인본주의나 자유주의가 아닙니다. 착하니까 자기 유익을 포기하고 남의 유익을 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착하니까 십자가를 지고 바울은 로마까지 가고 예수님은 땅 끝까지 가신 거예요. 약해져야 착해지고 아파보고 울어 봐야 착해지지요. 목회자들이 약해질 수 있는 용기, 착해질 수 있는 소양이 있어야 합니다.
민족주의, 국가주의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회복’이 아니에요. 주기철 목사님도 설교에서 “민족주의자들은 산정현교회에서 나가고 도덕을 배우러 온 사람도 나가시오. 예수 믿고 중생하기를 원하는 사람만 오시오”라고 했어요. 조만식 장로도 “일본 놈이라는 말 하지 마라. 일본 사람 잘 보내드려라”라고 하셨지요.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건 위태로운 거예요. 한경직 목사님도 이것을 많이 지적했어요. 기독교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초월하는 거죠.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이 안 계셨다면 한국교회는 지금처럼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품으셨던 마음을 품고 무슬림에게도 가고 공산주의자에게 가까이 가야겠지요. 그래서 나는 2007년 아프간 사태가 일어났을 때 아프간의 탈레반들에게 달려가려고 했어요. 우리의 젊은이들 23명이 붙잡혀 있는데 목사가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 잘못이다, 내가 탈레반을 설득하든지 대신 잡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했지요.
은퇴 뒤 더 바쁜 목사. ‘작은 교회와 소외된 교회 돌보기 운동’을 시작한 김명혁 목사는 매주 수요일과 주일마다 전국 각지의 작은 교회를 다니며 설교하고 격려한다. 2008년 1월 20일 강원도 정선 유천교회를 시작으로 200여 작은 교회를 방문해서 격려했다. 김 목사의 일정표를 보니 12월 17일 현재 2010년 3월까지 주일설교 예약이 끝난 상태다. 김 목사에게 목회는 삶이다. 설교나 기도나 은사보다 예수 닮은 삶을 소중하게 가꾸어 온 그의 노년은 바다처럼, 저물수록 더 빛을 내고 있었다.[복음과 상황 231호, 2010, 1월호 권두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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