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생활운동’을 돌아보며: 배경과 내용과 열매” 복음과 상황(4월호)
첫째로 “새 생활 운동”은 “4.19 학생 의거”의 여파로 일어난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60년 4월 19일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난 ‘4.19 의거(혁명)’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탄압에 대한 봉기였고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거였습니다. 저는 그 때 서울문리대 3학년 학생이었는데 4월 19일 날 아침 학교에서 강의를 듣다가 교정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에 학생들이 교실에서 나와서 데모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치밀하게 계획된 데모는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갑자기 이루어진 데모였습니다. 물론 생각이 깊은 손봉호 친구는 보다 심각한 의분을 품고 있었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이렇게 그 때를 회상했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불법을 저질렀으니 웬만한 양식을 가진 국민이라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이튿날 반드시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것을 직감하고 아예 작업복을 입고 학교에 갔다.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고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 불의에 대한 순수한 분노가 전부였다.” 사실 저는 그 때 그런 심각한 분노도 품지 못했고 대규모 시위가 일을 것이라는 예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시위대열에 끼게 되었습니다. 중앙청 앞까지 데모의 행진은 계속되었습니다.
둘째로, “새 생활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4.19 이후 우리 사회의 정치적, 도덕적 부패와 혼란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승만 정건은 무너지고 과도 정부가 세워졌으나 우리 사회는 정치적, 도덕적인 부패와 혼란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우리 신앙의 친구들 몇 명이 서울 문리대 한 구석에서 순수하고도 열정적인 신앙의 동기에서 하나의 새로운 운동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나라가 바로 되기 위해서는 사상의 혁명과 생활의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정신적, 신앙적 자각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토론하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던 사람들이 바로 손봉호, 김상복, 이형기, 김명혁 등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캠퍼스 한쪽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있는 부류들이 학생회장을 중심으로 ‘국민계몽운동 발대식’ 같은 것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 10여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증거를 찾고 연구하여 사회실태를 발표하고 나서자 학생들이 점점 이쪽으로 관심을 가지고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손봉호 교수는 재무부에 가서 커피와 양담배가 얼마나 밀수되는 가를 조사했는데 그때 당시 커피와 양담배의 1년 분 밀수 액이 대전시 인구가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 값과 맞먹는다고 했어요. 전교생들이 모인 가운데 이와 같이 조사된 것들이 발표되자 학생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 개인주의적인 문리대 학생들이 연합한다는 것은 기적이었어요. 무언가를 본 겁니다. 이기적인 동기에서가 아닌 진실을 발표할 때 가슴으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킨 겁니다. 그때 우리는 돈도 없었어요. 플래카드 한 장 쓸 돈도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동대문 시장으로 나갔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랬더니 장사하던 분들이 주머니를 털어 돈을 보태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큰 격려를 받았지요. 이른 아침부터 수백 명이 모여 밤늦게까지 다방마다 찾아 다니면서 ‘지금 우리가 양담배 피울 때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커피 마실 때가 아닙니다.’고 외쳤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양담배를 꺼내 주고 커피를 안 마시겠다고 하는 등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어요. 밤에는 댄스 홀로 낮에는 파고다공원 극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 다니며 가슴 속에 있는 것들을 호소했습니다.”
손봉호 교수는 새 생활 운동의 동기와 진행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4. 19 혁명으로 정권은 바뀌었는데 정치나 사회에는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부패했고 사회는 무질서했다. 전국 방방곡곡에 골목마다 다방이 있었고 거기에는 모두 밀수된 커피를 팔았다. 웬만한 남자는 다 양담배를 피웠는데 모두 밀수된 것이었다. 곳곳에 댄스 홀이 생겨나서 한 낮에도 유부남녀들이 부둥켜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새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군용 짚 차를 페인트 해서 법이 한정해 놓은 번호를 무시하고 소위 “가” 넘버를 달고 거리를 누볐다. 이런 현상을 좌시할 수 없다 하여 기독학생 몇 사람이 ‘새 생활운동’이란 것을 시작했다. 김명혁, 김상복, 이형기, 그리고 우리 영문과 3총사 등이 발기인으로 출발했는데 수 백 명의 학생들이 호응해 주었다. 댄스 홀에 찾아 가서 ‘지금이 춤이나 출 때냐?’하고 호통을 치면 춤추던 사람들이 구석에 얼굴을 가리고 웅크리고 있었다. 김상복 목사는 영어를 잘 해서 미군들이 춤추는 댄스 홀에 가서 왜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영어로 설명하면서 연설을 하여 미군들의 박수를 받았다. 지금 명동 롯데 백화점 자리에 있었던 건물에 있는 덴스 홀에 침입해서 2층 홀에는 김명혁 목사가, 3층에는 내가 목이 쉬도록 고함을 지른 기억이 난다. 하루는 “가” 넘버를 달고 다니던 국회의원 짚 차 100여 대를 붙잡아서 시청 뒷마당에 끌어 모은 일도 있었다.”
우리 서울문리대 학생들 수 백 명이 6월부터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모여서 다방으로 극장으로 댄스 홀로 요정으로 몰려다니면서 “새 생활 운동”을 펴 나아갔습니다. “새 생활 운동”은 전국의 대학교와 고등학교로 확산되었습니다. 우리 서울문리대 학생들은 산 더미처럼 모은 양담배를 어깨에 메고 광화문 길 한복판에까지 걸어가서 지나가는 차들을 다 세우고 애국가를 부른 뒤 모두 불 태워버리기도 했습니다. “새 생활 운동”의 동기와 목적은 개인적인 또는 정치적인 야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과격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파괴를 지향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운동의 뿌리는 순수한 기독교 정신과 윤리적인 정신에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이호 내무장관의 호응도 얻을 수 있었고 시경 국장이 점심까지 제공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나중에 떠들면서 과장하지 않아도 순수하게 신앙적으로 몇 사람들이 마음을 합하면 수만 명의 전국 대학생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확신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새 생활운동을 회상하면서 너무 뜻 깊은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몇 사람들이 소박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시작했던 새 생활 운동이 전국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 자신들에게도 한 평생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정권의 새 마을 운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교수나 목회나 사회운동이나 연합운동을 하는 현장에도 지금까지 잔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젊은 이들에게 권면의 말을 한 마디 한다면 젊었을 때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한 번 쏟아 보라는 권면입니다. 공부가 제일은 결코 아닙니다. 좋은 직장이나 좋은 사업이 제일도 결코 아닙니다. 무엇인가 올바른 일을 위해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시간과 열정을 한 번 쏟아 보라는 권면을 하고 싶습니다. 분노와 증오를 품지는 말기를 바랍니다. 인권운동이 중요하고 민주화 운동이 중요하고 통일 운동이 중요하지만 분노와 증오를 품고 하는 운동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가슴과 몸에 깊은 상처를 입히기 때문입니다.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없는 모든 옳은 일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손봉호 교수는 새 생활 운동을 돌아보면서 다음과 같은 조심스러운 평가를 내렸습니다. “역시 우리의 동기는 순수하였고, 그 때문에 그런 난동에도 불구하고 일반시민들은 4.19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을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시민사회로 성장케 하는데 상당할 정도로 공헌했을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동기와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런 운동이 우리 사회의 안정과 의식수준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그런 방법의 운동은 오늘날에는 용납될 수 없다. 사회 상황이 그 때만큼 절박하지도 않고 법에 의하지 않은 강제행위는 그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거기에 참여했던 우리들에게는 일생 동안 영향을 끼쳤다. 상당기간 우리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군사 독제 시절에 우리는 그렇게 표나게 반대운동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김명혁 목사와 나는 나름대로 항의 성명을 많이 발표하였고, 지금 비록 나이는 많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불의에 대한 비판정신은 아직도 조금 남아 꿈틀거리고 있다. 오늘의 젊은 세대는 비록 우리가 쓰던 방법은 따르지 않더라도 사회의 정의와 시민들의 정당한 이익을 위하여 시간과 정열을 바쳤던 우리의 정신과 순수한 동기는 이어받았으면 한다. 최근의 우리 대학생들은 너무 약고 너무 이기적이 되어서 정의와 공익에 너무 관심이 없어 보인다. 우리 사회와 전 세계의 상황은 그런 무관심이 정당할 정도로 평안하지는 않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