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母)교회를 섬기시는 C 장로님은 참 신실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일찍 주님을 영접하여 평생동안 주님의 몸된 교회를 최선을 다해 섬겨오시는 분, 참으로 열정적인 주님의 일꾼이십니다. C 장로님에 비하면 제 아버님은, 인생 후반에 들어서야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신 늦깎이 신앙인이십니다. 아버님은, 늦깎이 신앙인임에도 신앙생활 초기부터 새벽기도에 끊임없이 참석하시는 눈부신 열정을 보이시더니 마침내 장로로 부름 받아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없이 열심히 섬기시다가 몇 년 전에 은퇴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처음 교회당에 나가기 시작할 무렵, 경주 이씨 가문의 며느리로 살아오시던 제 어머님께서 제일 걱정을 많이 하셨던 어른이 바로 저희 집안의 종손이신 제 아버님이셨는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큰 은혜가 아버님께 임하여, 어머님과 저희 형제들의 염려가 그저 기우에 불과했다고 생각될 만큼 아버님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변화되셨고, 이후 아버님의 신앙의 열정은 교회공동체 안에서 모든 이들이 다 인정할 만큼 줄기찼습니다. 늦게 예수 믿으신 것이 안타까우셨던지, 아버님은 예수 믿기 전에 아주 조금씩 하시던 술·담배마저 단번에 끊으시고, 일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회에 열정을 지니고 참여하셨습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새벽마다 큰자식을 위해 하나님 앞에 간구하시는 제 아버님 어머님의 기도에 선히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제 모교회의 C 장로님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일찍부터 신앙의 깊은 맛을 아시고 살아오신 터라, C 장로님의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소 두 아들 중에 한 아들만이라도 목회자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고 지내오시던 중에, 아들들이 어느 정도 철이 든 어느 날 큰아들에게 "목회자가 되면 어떻겠는가?"를 조심스럽게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의 소원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아들은 대뜸 "목회자의 길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제법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큰아들의 대답에 좀 섭섭하긴 했어도 아직 둘째 아들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크게 상처를 받지는 않고 그렁저렁 지내시던 어느 날, 혼자 있는 둘째에게 참으로 조심스럽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이 둘째 아들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목회자가 되어 보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길을 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완전히 잘라 말하지는 않는 둘째의 말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조심스레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새벽기도회라는 것만 없으면, 목사가 되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새벽잠을 안 자면서 살 자신은 정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새벽기도회는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결국, C 장로님은 자신의 희망대로 목사로 일하는 자식을 두지 못하고 말았고, 지금도 늦깎이 중에 늦깎이 신앙인인 제 아버님을 정말 부러워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제 아버님에게는, 부족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목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큰자식인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대학 2학년 때부터 교회에 발을 디디기 시작한 터, 어떤 의미에서는 늦깎이 신앙인인 탓에 경건한 삶의 습성이 어려서부터 몸에 온전히 배어 있지 못합니다. 그런 까닭에, 어쩌다 모태신앙으로 자랐거나 주일학교나 선교단체에서 훈련받고 성장한 동역자들을 만나면 지레 겁을 먹고 두려워하거나 그들을 한껏 부러워합니다. 그 분들과 대화할 때마다 "예수 믿고 일찍 복 받은 당신들은 참 좋겠다"고 부러운 눈초리로 말을 하면 이 분들은 "그게 뭐 그리 큰 은총이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저를 쳐다보곤 합니다. 하지만, 단 하루 단 한 시간만이라도 더 일찍 예수를 믿고 믿음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이제 너무 잘 아는 저로서는, 모태신앙인이 된다는 것, 주일학교 시절의 경험과 추억이 있다는 것, 선교단체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 인간이 받아 누릴 수 있는 복 중에 가장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저희 부부에게 주신 4남매는 모두 다 모태신앙인이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늦깎이인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늦게 예수 믿기 시작한 까닭에 경건의 습성이 몸에 깊이 배지 못한 탓에, 저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해 자칫 다소간 도식적인 활동이 될 수도 있는 이 새벽기도회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최근, 새벽기도회를 아예 없애는 교회들도 많고, 심지어는 미주지역이나 유럽의 교회들처럼 공식예배를 주일 낮예배 한 번으로 줄이는 교회가 하나 둘씩 늘어나는 흐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목사로 사역하는 동안은 새벽기도회를 계속하려는 생각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제 겨우 30년쯤 된 제 신앙경력을 되짚어 볼 때, 새벽시간의 기도회를 통해서 그동안 받아 누린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한참 꽃잠을 달게 자는 새벽 4시 무렵에 일어나서 활동하는 것, 한창때의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더군다나 전날 밤 일이 많아 새벽 1-2시까지 일을 하다가 겨우 한두 시간 눈을 붙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는, 마치 군대생활을 하면서 피교육생 시절 한 밤중에 보초를 서러 나가는 것만큼이나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 이틀, 혹은 일정 기간 시기를 정하여 하는 것도 아니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몸이 아프나 일평생 한결같이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것은 인간의 힘이나 노력만으로는 애당초 가당치도 않은 참으로 힘겨운 일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와 보살핌과 도움이 없이는 연약한 인간으로서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바로 새벽기도회입니다. 새벽기도회 시간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깊은 체험이 없이 인간의 의지나 열정만으로 새벽기도회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새벽기도회에 어쩌다 잠시 동안 열심을 낼 수는 있으나, 일평생 한결같은 자세로 그 일을 감당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부어주시는 은혜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공동체에도 한결같은 자세로 새벽기도회(얼마 전부터 '전교인 합심기도회'로 이름이 바뀜)에 꾸준히 참여하시는 동역자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이 무슨 기도를 어떻게 하는가를 말하기 전에 이분들의 꾸준한 신앙의 자세를 볼 때마다, 저는 모태신앙인이나 주일학교 혹은 선교단체 출신의 동역자들을 대할 때와 같은 일종의 '경외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을 느낍니다. 새벽기도회에 참여할 '의무'(?)가 있는 교역자도 아니고,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것을 안 한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거나 책망하는 것도 아닌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년 365일 한결같은 자세로 '언제나 그 자리에' 말없이 앉아 계시는 듬직한 그림자만으로도, 저처럼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목회자에게 정말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이 분들의 신실한 모습에서 저는 종종 우리 예배당을 새벽에 말없이 찾아오신 주 예수님의 모습을 보곤 합니다. 새벽마다 주님 앞에서 흘리시는 이 분들의 눈물, 그 백성을 보살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되어 삶에 지쳐 깊이 잠든 여러 성도들의 가슴을 시원케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을 지키는 평신도 동역자님들의 한결같은 기도의 동역…… 저처럼 여리디 여린 목회자에게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습니다. 눈부신 신학체계를 지닌 신학자들보다, 빛나는 신앙의 업적을 남긴 신앙의 위인들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로운 뒷모습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시는 이들이 바로 새벽기도회에 한결같이 나오시는 평신도 동역자님들이기 때문입니다. 말없이 새벽을 지켜오신 제 어버이와, 부족한 목회자와 공동체를 가슴에 안고 주님 앞에 새벽마다 엎드리는 이 분들의 눈물과 땀이 없었다면 우리 공동체의 오늘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역하다 힘이 부치고 낙심될 때마다 저는, 새벽눈물의 강 언덕에 서서 이 신실한 동역자님들에게 하나님이 장차 주실 약속의 땅을 큰 기대를 품고 바라봅니다.
"사랑하는 주님,
묵묵히 새벽을 깨우는
당신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일평생 말없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의 복>을 충만히 부어 주소서!!!"
글 : 이광우 목사(수필가/전주열린문교회 담임/기독연대, 전북학복협 공동대표)
전주열린문교회 홈페이지 : www.jopendoo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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