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교육열이 높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이 땅의 부모님들은, 아이들이야 힘들어하든 말든, 빚을 내서라도 욕심껏 학원이란 학원은 다 보내면서 어찌하든지 공부 잘 하여 남의 집 자녀들보다 더 멋지게 출세(?)해서 잘 살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꺼이 외로운 펭귄아빠 기러기엄마의 길을 잘도 걸어갑니다. 그런데, 내 집 아이가 남보다 더 잘나고 더 영리하기를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우리 부모님들이, 정작 아이들을 한껏 멍청하게 만드는 텔레비전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지내는 것이야말로 참 이해하기 힘든 역설입니다.
유명한 신경학자인 한스 버거는, 1924년에 보통의 수신장치를 이용하여 뇌에 흐르는 전류를 백만 배 이상으로 증폭시켜 그 리듬을 측정하는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 결과, 독서, 대화, 운동, 운전, 요리 등의 일상생활을 할 때는 우리의 뇌파에서 파장이 짧은 베타(β)파가 나타나고, 수면이나 최면상태에서 뇌의 활동이 현저히 저하되기 시작하면, 파장이 긴 알파(α)파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일단 이 알파파 상태에 들어가게 되면, 거의 모든 의식 활동이 멈추고, 눈동자는 한 곳을 응시한 채 멍하니 쳐다보게 되는, 이른 바 ‘무반응’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주당 평균 무려 35-55시간씩이나 TV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T.V.스위치를 켠 후 약 20분쯤만 지나면, 방영되는 장면이 아무리 자극적이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거의 모든 사람의 뇌파가 알파(α)파로 바뀌게 됩니다. 이 때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는 모든 현상들에 대해 아무런 비판도 가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분석하거나 걸러내지 못한 채, 방영되는 내용을 멍청하게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T.V. 앞에 넋빠진 듯이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것을 곧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T.V.를 흔히 ‘바보상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루 이틀도 아닌 거의 날마다 몇 시간씩 이런 정신 상태로 있게 되면, 도대체 무엇을 깊이 생각하는 일 자체가 귀찮아지게 되고, 그런 습관이 더 강화되면 마침내 인생을 대충 대충 살아버리는, 정말 허우대만 멀쩡한 ‘폐인’이 되기 쉽습니다.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 중계방송이 없거나 즐겨 보던 연속극이 끝나버리고 나면 정말 살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게 되는데 그런 분들은 이미 TV에 깊이 중독된 것입니다.
일부 TV 프로그램에 나타나는 매우 저급한 내용, 물질만능의 경향,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요란한 복장과 과다노출 등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솔직히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황금 같은 저녁시간을 바보상자에게 몽땅 바치는 바보로 사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자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깊이 생각해 봐야할 일입니다. 가족들이 합의하여 하루에 한 시간씩만이라도 TV보는 시간을 줄여 나가면서, 온가족이 함께 사랑으로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면 어떻겠습니까? 바보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보상자의 종이 되지 말고 그것을 종으로 부려서 우리의 삶을 정말 풍요롭게 하는 길을 좀 더 열심히 찾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5. 4. 18.)
* 이광우 목사의 CBS 라디오 에세이 : 매주 월요일 밤 11:55, FM 103.7 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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